2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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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이 일어났다.

태양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

이 난세에서 어쩌면 신께 가장 가까이 있는 이에 대한 것이었다.

파루스 제 일 장로.


단식기도가 끝난 후 부터였을까.

기도가 끝나자마자 돌연 칩거를 선언한 파루스 장로를 보며, 사제들은 당황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신께 무슨 계시를 받은 것일까?

지옥과도 다름없는 암담한 현실에 부딪혀 신의 구원을 바라는 이들에게 그러한 것은 참을수 없을 정도로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사제와 다른 장로들은 파루스 장로를 존중했다.

태양교단내에서 가장 신실하고, 고결한 자라고 평가받는 이니까.

그의 결정에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그들은 납득했다.

다만...

그 결정이 머지앉아 교단에 내려앉을 파멸적인 절망의 방아쇠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어젯 밤, 멜루스 사제가 실종 되었다더군."


어둑한 밤.

하급 사제, 두 명이 칠흑같은 복도를 걸으며 어제의 실종 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다섯 명인가?"


"더 늘어날지도 모르지. 자네도 조심하게."


"말세로군...다른 곳도 아니고 태양교단 내에서의 실종이라니."


넋두리하듯이 말하는 사제 고란을 보며 빈센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안그래도, 그것 때문에 교단 기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지만, 아직이라하네, 그야말로 사람이 완전히 사라져버린게지."


"허어..."


고란의 탄식을 보며, 빈센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부터 꺼낼 말은, 어느정도 교단 기사들과 친분이 있던 그 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빈센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방금 말한 멜루스 사제 말일세...그의 방에서 끔찍할 정도로 많은 피가 나왔다더군."


"그게 정말인가?"


"쉿, 자네만 알고 있게. 자네도 알지만, 내가 교단 기사들과 친분이 좀 있지 않은가. 직접 들은 얘기니 확실하네."


"그렇다면, 단순 실종이 아니라 살인이라도 일어났다는 겐가?"


"그럴테지. 발트 기사가 말하길, 짐승의 피는 아니라더군. 그럼 뭐겠나?"


고란의 얼굴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설마 교단안에서의 살인이라니.

안전할것이라 생각했던, 교단마저도 저 심연에서 몰려오는 광기와 절망에 물들어가는 것일까 생각하며, 고란은 몸을 떨었다.

정녕 신은 우리를 버린것인가.

굳을것이라 생각했던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은 쉽게 흔들리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항상 누군가에게 기댄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 기댈 곳마저 위험에 처해있다면, 지금 나는 누구에게 기대야 한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아찔해져, 고란은 눈을 감았다.


"태양신이시여...저희를 구원하소서..."


자리에 멈춘채 고란이 읊조렸다.

그것은 언제나 미사의 끝맺음마다 꺼내는 말이었다.

다만, 고란은 그 어떤 때보다, 절박히 그 말을 내뱉었다.

구원해주시길. 제발 어둡고 차가운 구렁텅이에서 빛을 내려주시길.

아니, 반드시 그러실것이다.

태양신.

그 기적을 몸소 두 눈으로 보았지 않았는가.

그 광채를, 그 따스함을 느꼈지 않은가.


공포에 떨리던 몸이 다시금 가라앉는다.

흔들리려던 믿음을 다시금 다잡으며, 고란은 그 어떤 추악한 악의에서도 언제나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되새긴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빈센트. 갑자ㄱ..."


고란이 다시금 곧은 마음을 담은 눈을 떴다.

다만, 옆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빈센트를 보며, 순간적으로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꿀꺽.


꿀꺽.


꿀꺽.


삼키고 있다.


"....으,....어...?"


고린의 입에 멍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무언가가 빈센트를 삼키고 있었다.

차마, 설명하기 조차 힘든, 괴악한 것.

그것이 지금 사람을 먹고 있었다.

이미 머리가 집어삼켜진 빈센트의 몸이 그 무언가에 들어가며 발작하고 있었다.


꿀꺽.

하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그가 점점 작아진다.

이내 발작이 잦아들고, 이내 축 늘어진 빈센트의 몸은 빠르게 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게 뭐야...?"


고란은 그저 멍하니 빈센트를 먹은 것을 바라보았다.

도망쳐야 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작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왜 이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인지.

자신조차 저 '무언가'에 먹힐지도 모름에도, 고란은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대는..."


빈센트를 먹은 '무언가'가 고란을 보았다.

눈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고란은 지금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허어억!"


그 순간, 고란의 머릿속이 천둥이 울린듯 강렬한 충격이 짓쳐들었다.

심연.

심연.

그것은 심연이다.

끝도 없는 무저갱이다.

그 일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고란의 머릿속은 진창이 되었다.


"우웨에에에엑!"


극도의 공포에 토악질을 하고 말았다.

뭐야...

이게 뭐냐고...

이미 고란은,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신실한 자구나..."


괴의한 목소리로 무언가는 입을 열었다.

신실한 자.

무언가는 고란을 그렇게 불렀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저 것이 신실하다라는 말을 꺼내도 되는거야?

불경과 추악을 한데 섞은 존재가, 꺼내는 말은 피폐해진 그의 온몸을 뒤흔들었다.

잇달은 정신적 충격은, 이미 그가 감당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부정당했다.

자신의 믿음을 보이는 것은 저런 존재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고란의 발이 풀렸다.

차디찬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울고 있는 고란을 보며, '무언가'는 말을 이었다.


"그 믿음을 끝까지 가져라...진정한 신의 강림은 머지 않았으니..."


이내 괴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긴채, 어둠안으로 사라진다.


"하하..."


다시 적막만이 가득한 복도에 한참을 주저앉아 바닥을 바라보던 고란의 입에서 허망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신이라고?

강림이라고?


"하하하..."


저것들의 신이 강림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거지?

인간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거지?

그 심연의 신이.

그 주인이 이 곳에 온다면?

아니, 이미 왔다면?

사람은...그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하하하하하...."


무너지기 시작한다.

벼랑 끝에 내몰려있던, 그의 마음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모든것이 부정당한채, 떨어진 사람은, 자신이 본 심연안에서 먼지 한 톨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기이한 웃음이었다.

두 눈 가득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고있는 그 모습은, 실로 광기에 절여져 있었다.


"무슨 일이냐!"


"자네는 고란 아닌가?"


"아하하하하하!!!!! 우린 다 벌레야!!!!!!!!!!!!! 그저 땅을 기는 벌레라고!!!!!!!!!!!!!!!"


갑작스런 소란을 듣고 달려온 교단기사들이 끌고 갈때에도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울음과 웃음은, 인간의 종말을 예견한 슬픔인지, 아니면 그 속에서도 심연의 신에게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기쁨때문인지 고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 날, 빈센트는 여섯번째 실종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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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불쾌한 소리를 내뱉으며 문이 열렸다.

갑작스러운 외지인의 방문을 성토하듯이, 꽤나 커다랗게 퍼지는 그 소음은,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다섯... 많지는 않군.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은 고작해야 다섯이었다.

마수사냥꾼.

명색이 마수에 의한 재난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들은, 패색의 기운을 가득 띤채 악의만이 남아 경계하는 눈빛을 쏘아보내고 있다.

공기가 무겁다.

한때는 왁자지껄 춤과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무용을 떠들었을 사냥꾼 길드에는 그저 무거운 공기만이 가득하다.

다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노려보는 마수사냥꾼들을 뒤로한채, 천천히 의뢰공문을 살폈다.

빽빽하다 못해, 도배가 되어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어마한 양의 공문들이 게시되어 있었다.

누구하나 의뢰를 받지 않아, 먼지만 쌓여간 것들.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마수사냥을 받아들일 정신나간 사냥꾼들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을테니, 당연한 것이었다.


치익.


공문을 하나 떼었다.

그랜드 라인 주위에 산재하는 마수에 대한 토벌 의뢰였다.

분홍색 피부에 커다란 입을 가진 마수.

익히 알고 있던 마수이기도 하고, 거리도 가깝다.

오늘안에는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딸꾹... 형씨. 지금 무순 짓을 하는지 알기는 하ㄴ...거야?"


잔뜩 꼬인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비틀, 비틀.

나를 노려보던 이들 중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내 확 퍼지는 술내음이 코를 간질인다.


"씨발. 그걸 왜 쳐 봐? 그냥 죽고 싶으면, 집에 가서 목을 매. 보니까...여기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에..."


삿대질을 하며, 꼬나쥔 술을 들이킨 사냥꾼은, 이내 내가 쥔 공문을 뺏어들었다.


"이건 씨발! 그냥 사형공문이라고오!"


찌익! 찌익!


공문이 성난 사냥꾼의 손에 찢어졌다.


"어차피 다 뒤질거야! 그럴 바에 형씨도 술이나 쳐먹고 씨발! 남은 인생을 즐기라고오! 씨발 짧잖아? 떡이나 존나 치고, 하고 싶은거나 쳐 하다가 그냥 뒤지라고!!!! 쓸데 없는 개짓거리 하지 말고!!!"


울분에 찬 말이었다.

그의 옷깃에 달린 사냥꾼 뱃지는, 피와 얼룩에 점칠되어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무너져 있었다.

이미 그를 포함해 이 곳의 모든 이들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허억, 허억....씨발....."


"길드장인가."


"..........."


내 말에 그는 침묵했다.

길드장.

뱃지의 옆에 붙은 다른 표식이 그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었다.


"쓸데 없지 않다. 내가 하겠다."


"닥쳐! 닥쳐! 씨발! 아가리 닥쳐!"


길드장의 핏발 서린 눈이 번뜩인다.


"외부인이 뭘 알아?! 아니, 잘 알잖아? 이미 씨발 좆된거야, 이 세상은 마수로 좆되버린거라고! 마수사냥꾼?! 이 니기미 좆같은 이름 쳐달고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단 말이다! 몇명이나 죽었는 줄 알아?! 어! 씨발 그 병신같은 윗대가리 새끼들이 토벌인지 나발인지 그 씨발짓거리를 했다가 몇 명이 죽었는지 아냐고!!!!! 전부 죽었어! 내가 다 죽인거라고! 씨바아아아알!!!!!!!!!!!!!!!!!!!"


챙강!


유리가 깨지며, 술이 바닥에 튀었다.

날 노려보던 마수사냥꾼들도, 그 순간만큼은 고개를 숙였다.

깊은 절망.

그런 감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겠다."


"............"


"못 들었나."


"여기서 꺼져. 가서 뒤지든 말든, 알아서 해."


축객령이었다.

다만, 알아서 하라는 말로도 충분했다.


"곧, 완수하고 오지."


"이 좆같은 새끼..."


그 말을 뒤로 한채, 길드를 나섰다.

길드장이라.

사실상 마수의 위치정보를 얻는데만 있어도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다만, 그 길드장의 울분에 섞인 회환은 이상하게도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조금은 궁금하다.

그 마수의 머리를 들고 오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잃어가는 감정속에서도 약간이지만 나는 그것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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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신년초라 회사가 좀 미치게 돌아가서, 글 쓸 여력이 없었다.

눈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 제설작업 할때마다 치가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