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다가 잠깐 뇌정지 와서 숨 돌릴겸 써봄


게임으로 따지면 초보자 마을의 검술교관 얀붕이. 그런 얀붕이에겐 어릴적 마물들의 습격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얀붕이와 똑같이 가족이 없는 제자 얀순이가 있었어. 

얀붕이는 과거 부상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황실의 기사로 발탁됐을 정도로 실력있는 검사였고, 그런 얀붕이조차 범인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얀순이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지. 

얀붕이가 마물들과 마물들이었던 고깃덩이 사이에서 미처 날뛰는 얀순이를 거둔 날부터 3년이 지난 어느 날, 얀순이는 스승인 얀붕이를 완벽히 뛰어넘는 실력을 갖게 돼. 자신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에게 배울 검술은 없고,  부모님을 죽인 마물들과 마물들의 수장 마왕을 싸그리 해치우려면 얀붕이의 제자로 있을 시간이 없었지.

그렇게 얀붕이에게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한 얀순이는 더 강해지기 위해 얀붕이를 손절해. 물론 과장해서 손절이지 마왕 토벌대에 지원하는 걸로 얀붕이의 곁을 떠난 것뿐이지만.

토벌대에 가입하기 위해 얀붕이와 얀붕이와 같이 살았던 얀챈 마을을 떠나는 그 날, 얀붕이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얀순이를 보며 말해.


"얀순아. 내가 감히 네 길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네 스승이니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마."


얀붕이의 말을 여기까지 들을 때까지만 해도 얀순이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어. 그녀의 머릿속엔 오직 마수들의 시체와 더 많은 피, 살육, 비명소리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얀붕이가 얀순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한 번도 만지게 해준 적 없는 기사단의 검을 건넨 순간 얀순이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표백돼. 

방금 전까지 유혈과 비명으로 가득 찼던 얀순이의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처럼 하얘졌어. 그리고 그런 얀순이의 머릿속에 얀붕이는 자신의 색을 한 방울 떨어뜨렸지.


"꼭 돌아오렴. 나는 언제나 이곳에 있을 테니."


지금껏 혼자인 줄로만 알았던 얀순이에게 처음으로 돌아갈 장소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말이야. 

그 때부터 얀순이의 머릿속은 마물들과 마왕 대신 얀붕이에 대한 것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어. 마치 투명한 물에 농축된 색소를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하지만 얀붕이를 떠나는 그 날까지는 얀붕이보다 마물에 대한 것이 더 컸기에 얀순이는 눈물을 흘리며 얀붕이에게 절을 한 뒤, 그대로 토벌대에 가입하기 위한 길을 올랐어.


그리고 2년이 지났지. 


2년간 많은 마물들을 베고, 그만큼 빠르게 성장한 얀순이는 어느새 용사파티의 일원이 되어 염원했던 마왕의 목을 따버려. 정작 용사는 마왕의 손목 정도만 잘랐을 뿐이라서 주객이 전도돼도 이런 전도가 없을 정도였지.

마을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소녀에 조금 더 가까웠던 얀순이는 2년만에 젖살이 다 빠진, 누가 봐도 입을 떡 벌릴 정도의 미모를 갖게 돼. 그런 얀순이의 미모와 실력에 용사는 반해버렸고, 마왕의 머리채를 잡고 무심하게 바닥에 휙 던지는 그녀에게 자신과 결혼해달라 청혼하지. 그녀의 염원이었던 마왕의 목을 땄으니 이제 목표가 사라졌을 거고, 자신이 그 목표가 되어주겠다는 발칙한 틈새공략이었어.

하지만 용사가 모르고 있던 게 있었어. 그건 바로 얀순이가 마왕의 목을 딸 때 느낀 감정이 성취감이나 후련함 같은 게 아닌, 드디어 스승인 얀붕이에게 갈 수 있겠다는 안심이었던 거야.

일생의 염원이었던 마왕 토벌조차 지금의 얀순이에겐 그저 얀붕이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길에 널려있는 장애물에 불과한 거지. 그렇게 용사의 청혼을 가볍게 씹어버린 얀순이는 수도로 돌아가 포상을 받는 준내게 귀찮기만 한 일은 전부 스킵한 채, 꿈에만 그리던 얀챈마을로 달려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얀붕이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쿵쾅대고, 미칠 듯한 설렘에 마물살육기계라고 불렸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사랑에 빠진 소녀의 것이 되었지.

그렇게 얀챈마을로 돌아와서 '얀챈마을의 자랑! 마물살육기계 얀순이!'라는 별 해괴망측한 플래카드를 무시한 얀순이는 곧장 얀붕이의 도장으로 달려가. 그리고 패기 넘치게 도장의 문을 연 순간, 보고만 거지.


"얀진아. 오늘도 정말 수고 많았다."

"그럼... 오늘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스승님."

"그래, 그래.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주마."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 얀붕이의 곁에서 웬 듣도보도 못한 여자가 쓰다듬을 받고있는 걸. 


아무튼 이제 다시 글 쓰러 가야해서 여기까지 쓸게. 아ㅋㅋㅋ 이런 건 없냐? 글 처음 쓰는데 이거 좀 재밌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