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지..살려줘.."


"자네는 아주 훌륭한 실험체라네.."


"아아아ㅏ아ㅏㅏ살려줘!!"


"나 총맞았어..나 총맞았어.."


나는 알수있었다.


이것은 내가 지어낸 환상이 아니라 나의 '기억'이란걸.


***

"으아아아ㅏ아아ㅏ아아ㅓ아! 시발!!!"

일어나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총상을 입은곳은 붕대로 칭칭 감겨져있었고 옆에서 새근새근 엎드려서 자고있는 익숙한 얼굴을 맞이했다.


"하하하..시발..내가 이젠 아주 헛것을 보는구나..하하"


"우웅..? 일어났어..?"


"너가 왜 여기있어..? 45."

대충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예상이 간다. 아마도 전장에서 쓰러진 나를 데려왔겠지. 


하지만 왜? 그녀는 날 분명 싫어할텐데? 그렇게 괴롭히고도 아직 만족을 못했나?


"내가 여길로 데려오자그랬어. 원래라면 지휘부에 있는 침상에 있어야하지만 카리나가 거부해버려서 이리로 데리고와버렸어~"


"그리고..정말 미안해..진짜 너무 미안해..난..난..그런줄도 모르고.."

갑자기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지금 명확한것은 그녀가 내 생명을 구했다는 것이다. 


"고마워..45..뭘 미안해해..괜찮아.."

슬그머니 그녀를 안았다. 어쩌면 이 아이 속은 착한걸지도 모르겠다.

***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몸은 다시 움직일수 있을정도로 회복되었다. 이젠 다시 움직여야한다.


"45, 고마워. 이제 가볼게.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가져온 짐을 챙기고 나가려는 순간 45가 나를 살며시 안았다.


새삼스레 귀엽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그녀의 팔이 점점 좁혀져오더니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45..이제 슬슬아픈데..?"


"안돼..지휘관..안돼. 또 이대로 어디로 가버릴려고..?"


"지휘관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난 이제 여기 소속이 아니라고."

그러더니 조이는 팔의 강도는 더 세졌다. 


"컥..컥...놔..줘..."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서 목소리도 안나온다.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침과 눈물이 줄줄흐르기 시작했다. 


"그치만..놔주면 또 어디론가 도망갈거잖아..? 그러면 안된다구..그리고 난 이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바보같은 실수는 더이상 하지않을거야.." 


45는 어딘가 많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다신 잃지않는다니..대체 무슨말이지? 이전에 이곳에 있을때에도 45는 솔직하지 않았다. 그저 돈으로만 움직이는 용병 그자체였지만, 그런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듣고보니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는다니..그게 무슨말이야?" 

나는 문에서 45방향으로 돌아서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의 팔이 느슨해지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길어..흐..흑..내가..내가...40을 쐈어..끅.."

그녀의 우는 모습을보니, 나를 폭행하던 그녀의 모습은 지금만큼은 생각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지휘관..아니 슬레지..지금 생각하는거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녀도 나를 슬레지라고 불렀다.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른것에 화들짝 놀랐지만 우선은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곤 천천히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나저나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거야?"

우선 그녀를 진정시킨후에 차근차근 물어보고싶은걸 물었다.


"저번에 정찰임무를 나갔을때, 정규군의 버려진 실험시설에 들어갔었는데 그곳에서 슬레지의 얼굴이 붙여져있는 파일을 봤어.."


"그리고 봐버렸어..너와 네 동료들이 어떤짓을 당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널 어떻게 이용해먹었는지도..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알아버렸어. 난 사실 널 사랑하고 있었어.. 그때 널때린건 아마..너에대한 경멸과 착각도 있었겠지만..그땐 몰랐는데..날 냅두고 다른 여자랑 서약한게 너무나도 괘씸했나봐..겉으로는 응원하고 있었는데..내 마인드맵의 한구석에선 널 지워버릴수가 없었어.."


"정말 미안해..사실 널 때렸던건 그 영상이랑은 별개였어..정말 미안해미안해미안해.."

그녀가 또 울면서 내게 사과한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해가 갈법도 하다. 나도 처음엔 임무중에 그리폰에 새로 취임한 지휘관을 조용히 암살하고 싶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잊어가는 중이다.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차근차근알려주던 M4의 상냥한 모습이 내겐 잊혀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없다.

이젠..이젠...나도 그리폰 소속이 아니니..

***

그리폰에 돌아오니 반갑진 않지만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있었다. 언제나 날 개무시하는 흥국이, 그리고 맨날 잠만자는 G11, 그리고 나보고 보란듯이 날괴롭혔던 9이라던지 아니면 지금은 나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지않는 45라든지. 


적어도 404소대한테만큼은 내 평판이 어느정도 돌아온거 같았다. 그녀들은 내가 무슨짓을 당했는지 아니까. 하지만 이제 다른 문제가 있다. 


과거의 기억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투투투투"


"슬레지 조심ㅎ..아아아아아앍!!"


"슬레지..나 죽어가..나 어떡해..? 나 살려줘.. 나 살고싶어.."


미안해..미안해....살려주지못해서..미안해...


"슬레지 왜그래..? 괜찮아..?"

45가 놀란표정으로 나를 진정시켜줬다.


"친구가..친구가 죽어가고 있었어.."


"그 녀석하고는 초등학교때부터 같이다녔는데 총에 맞아서 죽어버렸어.."


"걔가 죽어가고 있을때 난 아무것도 못했어! 쾅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걔가 나보고 '슬레지 살려줘..엄마가 보고싶어..엄마가 보고싶어..'라고 하면서 날 불렀어..하지만 난! 시발! 아무것도 할수없었어..흐..흑..그저..그저 잘려나간 걔의 팔다리를 찾아서 붙일려고했어..흐..흑....근데 그녀석은 죽고 말았어.."


"또 다른 녀석은 어떻게 됬는줄알아? 그녀석은 나랑 잡혀서 결국엔 실험실로 끌려갔어. 그리곤 가스실에서 온몸이 녹아가며 죽었어..그런데도 난 아무것도 할수 없었어.."


"45..난 최악이야..난..동료도 못지키고, 연인조차도 지키지못했어..난 어쩌면 쟤네 말대로 죽는게 나을지도 몰라.."


"그리고 M4..! 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재교육과정에서 상냥하게 대해줬던 그녀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수없어..하지만 그녀는 날 버렸어.."


"난 아직도 M4를 사랑해..하지만 이제 그녀는 돌아오지않아..."

45는 그런말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날 계속 끌어안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 45..난 정말 쓰레기야..지금 내앞에 너가 있는데도 M4얘기를 하다니..난 정말쓰레기야.."


"아니야..슬레지. 오히려 기쁜걸..? 이건 오히려 너가 날 이제 단순한 '인형'이 아닌 특별한 존재로 너의 안에서 인식된다는 뜻이잖아..? 오히려 기쁘네..사과해야할쪽은 오히려 내쪽인데.."


"45..정말 염치없지만..나도 널 사랑해. 혹시..나랑 같이 도망가지않을래..?"


"좋아..내게서 도망치는건 용서할수는 없지만..같이 도망치는건 허락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