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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현재


"여기 앉으세요."


쇼파로 안내받는 얀붕이.


얀붕이는 마치 가시방석을 앉는 듯 착석했다.


"커피 타올테니까 잠시 기다려주세요."


"아 괜찮습니다, 안마셔도 됩니다."


"기다려주세요."


"진짜 괜찮은ㄷ..."


"기다려."


"... 네."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얀붕이를 죄여오는 압박감은 여전했다.



... 전에는 정말 애교 넘쳤는데 지금은 많이 차가워졌네.


이쪽 일을 하면 역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변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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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마시세요."


"감사합니다."


평범하고 단 맛이 강한 믹스커피.


... 내가 제일 자주 마시고, 제일 좋아하는 커피.


후루룹-


"얀붕 씨는 꽤 여러 회사를 오가셨나보네요. 신입이라면 이정도 이력서는 안나오는데..."


"여러 회사를 다니긴 했는데... 그때그때마다 일찍 관뒀거든요."


"아... 픕...  크크 ...그렇군요. 아, 미안해요. 사례가 들려서."


"...그래서 절 여기로 부른 이유가 뭡니까?"


"그래... 그게 본론이죠. 얀붕 씨, 오늘부터 제 비서 하세요."


"...예? 비서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력서만으로 합격한 것도 놀라운데 한 기업의 회장의 비서를 하라니?


"이상, 반론은 받지 않겠어요. 제 비서가 되면 생활을 편하게 해드릴게요. 가령 말하면... 금전적으로나, 아... 말을 아껴야지."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여튼 할건가요, 아니면 포기하실건가요?"


이건 둘도 없는 기회다.


나락 근처까지 떨어져 봤기에 찬 물 더운 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네. 하겠습니다."


"잘 선택하셨어요. 그럼... 잠시 쉬고 계세요."


"네, 감사하...ㅂ..."


털썩-.


"잠시... 쉬고있어... 얀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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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변덕일까, 아니면 미워서일까.


얀붕이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개입했다.


그리고 항상 그 곳에서 끄집어 냈다.


그 전에는, 악착같이 위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을 갈아넣었으며, 회장자리를 성취했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 그 망할 놈의 작자가 얀붕이에게 했던 말들을 들으면서.


그렇게 쓰레기의 자리를 단기간에 빼앗고 최상류층에 도달했다.


사실, 얀붕이가 언제 휴가를 나왔는지, 집에서 뭘 하는지, 샤워하는 모습, 밥먹는 모습, 자는 모습 등 모든 것을 도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경호원들을 집으로 보내 얀붕이를 죽도록 팬건 덤으로.


단지 얀붕이에게 약간의 '벌' 을 내린 것이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기에, 하지만 미워하지 못했다.


날 늪에서 구해준 왕자님인데, 내 삶에 빛을 내어준 은인인데 어떻게 감히 미워할 수가 있겠는가?


얀붕이가 내 회사에 입사 신청을 할 때까지 계속 괴롭혀왔다.


장기간에 걸쳐 계획을 시행하며 결국 그 계획을 달성했다.


한편으로는 행복한 마음이 끓어올랐지만 동시에 눈물이 고였다.


너무너무 보고싶은 얼굴이어서, 눈 앞에서 계속 담고싶은 얼굴이어서, 집 안에 가둬서 평생 나만을 바라보게 하는, 나만 생각하도록 하고 싶어서.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비서까지 시켜줬으니.


내 곁에서 항상 있어줘, 얀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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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어...?"


몇시간이 지난거지?


몸이 뜨겁기도 하고... 무슨 일이지?


"일어났어?"


"저, 저 얼마나 누워있었..."


입사 첫 날에 그것도 그녀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자고 있었던건가?


일개 신입 사원 주제에 뭐하는 짓인지 빠르게 회로가 돌아가자 섣불리 몸을 일으켰다.


"더 누워있어도 되는데... 이제 내 비사 할거니까 반말해도 되지?"


"네...편하신 대로..."


잠에서 깨어난 곳은 처음 봤던 쇼파가 아닌 침대.


침대...? 그럼 여긴 어디지?


"여긴 아래층이야. 꼭대기 층에서 10층 아래로는 비어있는 층이거든. "


"아..."


얀붕이는 대기업이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다 몇 층 정도는 사용안해도 감당된다는 말로 들었다.


얀붕이같은 서민이 넘보기조차 할 수 없는 규모...


그는 예전처럼 자책에 빠졌다.


항상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과 비교한다던가, 친구들은 자기가 원하는,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가며 각자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데, 그는 혼자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하니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심지어 그보다 훨씬 낮은 대학에 가서도 평범한 삶을 사는 친구들도 많은데 자신은 뭘 하고 있는걸까?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회복하기에는 세월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것, 목표의식을 가져도 항상 나락으로 빠지는 판에 원하는 공부도, 하고 싶었던 일도 땅 밑으로 고꾸라지는 것.


곁엔 아무도 없고, 자신은 나락으로 빠져 허우적대는게, 고작 대학을 졸업하고 2년 채 안된 그 시간이 그를 피가 말리도록 했다.


"얀붕아, 집에 가자."


"벌써요? 시간...보다 한게 없는데요..."


"입사 첫 날인데 할게 뭐 있다고. 가자, 내가 태워줄게."


"네... 알겠습니다."



"타, 얀붕아."


그녀가 타고 온 차는 제네시... 역시 부자는 다르다는건가.


"지하철 타고 가도되는데..."


"지금 지하철 끊기는 시간인데?"


"그럼 버스타고..."


"버스도 끊길 시간인데 말이야... 빨리 타."


"택시 타..."


"얀붕아, 빨리 타."


무언의 압박으로 그를 태웠다.


"어때? 승차감 졸지?"


"네... 좋네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승차감.


비싼 외제차는 다 이정도인가? 물론 그는 처음 타보는 비싼 차기에 알 리가 없었다.


"일 잘~하게 되면 이 차... 얀붕이에게 줄 수도? 난 이거 말고 다른 것도 많으니까~"


평생 벌어도 살 수 없는 차를 '공짜' 로...?


"안전벨트 매. 이제 갈게."



끼익-.


"도착했어."


"감사합니다. 그럼..."


"아, 얀붕아. 이제부터 매일 8시에 데리러 갈 테니까 혼자 가면 안 돼?"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정신없는 하루... 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나 정신적으로는 너무 피곤했다.


꼬르륵- 배꼽시계가 울렸다.


그러고보니 거기서 대체 몇시간을 잠든거지?


그는 얀순이에게 자취방의 위치를 알려준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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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첫 날 후, 조폭같은 사람들이 오는 더이상 없었고, 나락으로 빠지는 일도 없었다.


또, 비서가 되어서는 그녀 곁에 있는게 끝이었다.


같이 비싼 점심, 저녁을 먹고, 차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영화관에 노래방, 공원...


전형적으로 연인들이 갈 만한 코스였다.


이런 생활을 한 것도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저... 회장님."


그녀는 인상을 찌뿌리며,


"둘이 있을 때는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지?()"


"야...얀순아..."


"응, 왜? 얀붕아?"


"저... 아니 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래도 되는거야?"


"나랑 같이 있는게 일하는거야. 넌 내 곁에만 있으면 돼."


"그래도..."


"얀붕아. 내가 말했지? 내 곁에만 있어도 넌 비서로써 할 일을 다하는 거라고."


"...응."


"오늘 와인 한 잔 어때? 회사로 돌아가서 같이 마시자."


"어...네...아니 알았어."



"편하게 입었지?"


"네... 아 응. 참 이게 어색하네..."


"괜찮아, 응. 천천히 나아가면 되니까."


미소를 지어주는 얀순이.


여자도 홀리게 할 만한 웃음에 얀붕이는 홀린 채 바라봤다.


정말...예쁘다... 이런 사람의 비서가 고작 나라니, 이게 돼지목에 진주목걸이구나...


"타. 오늘 저녁은 즐겁게 보내자."



은은하게 비춰지는 조명, 그녀의 머리카락에 비춰지며 아름다운 은빛색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 침대 옆에 탁자, 그리고 샹들리에, 와인잔 2개와 여러 종류의 와인들.


"편하게 앉아."


짝-.


박수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카트들.


카르페, 참치, 치즈, 스테이크 등이 식탁에 차려진다.


"야...얀순아! 너무 비싼거 아니야?"


"돈 걱정은 말고 편하게 먹어~  넌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와인도 최소 1백만원 하는거니까... 그에 맞는 안주들도 필요하잖아?"


"고마워... 잘 먹을게. 나같은 사람들은 평생 먹어보기도 힘든건데..."


"나도 잘 먹을게..."


"응?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짠 하자!"


짠-!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올 때 즈음.


"얀붕아아아...나...정말 슬펐어...아버지라는 사람은 내 길을 가로막고...사랑하는 사람은...멀어지고..."


술김에 마음속으로 담아뒀던 말들을 꺼내는 얀순이.


"정말...정말 보고싶었는데...너무너무 좋아서...계획도 세우고..."


"그 계획이란 게 뭔데?"


"으응... 말...하면 안되는데..."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 그게 뭐야... 알려줘."


"얀붕이가아...가는 회사마다...압박넣고...너 못다니게 하고... 경호원 시켜서... 벌주고..."


"뭐? 뭐라고?"


그녀의 발언에 술김이 확 사라지는 얀붕이.


"어...어쩌고 어째? 날 나락으로 빠뜨린게 너...너였다고?"


"이렇게 안하면...나한테...떨어질거잖아...계속...그래서 그..."


"시끄러워."


울먹거리며 그녀가 말하지만, 얀붕이는 그녀가 역겨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정말 깼다.


"왜... 얀붕아...너가...너가... 이러면 안되잖아..."


"후... 됐다. 난 이만 가볼게."


"가지마. 가지마. 정말 가면 후회 할 거야. 정말이야. 진짜 가지마. 농담 아냐."


"다음에 얘기하자. 지금은 취해서 말이 안통하네."


일어나려는 찰나,


"가지마아아~~!! 내가...내가 잘못해쓰어어어... 가지마!!"


얀붕이의 다리에 매달리며 미친듯이 울어대는 그녀.


그는 마음이 약해지기라도 했는지, 다시 착석했다.


"후우... 그래."


"나랑 멀어지잖아...난 너밖에 없는데...너만 보고 살아왔는데...자꾸 멀어지려고 하잖아..."


"그렇다고 나를 나락으로 빠뜨려? 난 그 몇 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아?"


"응... 미안해... 내가 벌 받을게..."


갑자기 머리를 치켜 올리더니,


쾅!


미친듯이 머리를 땅바닥에 박았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야...야! 뭐하는 짓이야!"


얀붕이는 그녀를 빠르게 제지했지만 피는 이마에서 흐르고 있었다.


"휴지... 휴지 어딨어..."


탁자를 둘러보자 제일 먼저 티슈가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그녀의 이마를 지혈하며 말했다.


"이게 뭐야...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얀붕이 너랑...비교도 안되지만...너에게 준 고통...받으려고..."


그는 그녀가 정말 애처롭게 보였다.


자신이 그녀를 이렇게 망가지도록 한 가장 큰 이유일까, 자신을 나락으로 밀어넣은건 맞지만 너무도 불쌍해보였다.


눈물을 미친듯이 흘리며 가지말라며 나에게 매달리며, 내가 받은 고통을 받겠다며 머리까지 찧다니, 얀붕이는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 해. 내가 다 용서 해줄 테니까."


"응... 이젠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


픽-.


"어?"


몸이 갑자기 쓰려졌다.


왜? 어째서?


그런 얀붕이를 보며 울음을 뚝 그치더니  미소를 짓더니,


"사실... 마비약을 조금 넣었어..."


"이거 기억나지...?"


지지직-.



-... 다시 말해줘.-


-전역하기만 하면 뭐 다 해준다고?-


-응... 꼭 약속해. 어기지 마.-


-알았어. 약속할게.-


삑-.


-전역하기만 하면 뭐 다 해준다고?-


-응... 꼭 약속해. 어기지 마.-


-알았어. 약속할게.-


"헉...허억!"


"약속...지켜야지?"


눈물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얀순이.


"일단... 나랑 섹스하자."


"안...돼... 얀순아..."


"지금 너가 한 약속을 어기려는거야? 약속을 어기는 죄는 상당히 무거울거야."


"아으... 안되는...데..."


"괜찮아.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사실 나도, 너도 처음은 아니니까♥"


"무슨..."


"너와 처음 술 마실 때도, 너가 여기에 입사한 첫 날에도... 살짝 맛만 봤는데...오늘은 느긋하게 먹어볼게?"


얀붕이는 움직이지 못한 채로 침대에 끌려가, 무력하게 옷이 벗겨지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하아...정말 오랜만이야..."


그의 옷을 벗으며 함께 그녀의 옷도 벗었다.


야동 외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여자의 속살.


처음이지만 정말 아름다웠다는 것.


브레지어가 풀리며 큰 가슴은 축 쳐지지 않으며 볼륨감 있고, 남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쏙 들어간 허리와 육감적인 엉덩이와 허벅지.


그에 찰랑거리는 은빛색깔의 머리카락이 그녀에게서 나오는 섹시함을 극대화시켜주었다.


"오늘은 긴 밤 일거야. 함께 사랑을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