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읍, 후..

폐를 한바퀴 돌고 뿜어져 나오는 짙은 담배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당장 돈이 급했고, 20 중반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까지도 건강한 몸뚱이 말고는 스펙이랄 것도 없는.. 말 그대로 인생이 날백수 그 자체인 인간이 바로 나라는 인간이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적당히 구인구직 사이트를 둘러보던 와중에 눈에 띈 알바가 바로 선별진료소 알바.

시급 준수, 점심 제공에 교통비도 지급.

근무시간도 보니 짧지도, 그렇다고 너무 길지도 않은 딱 적당한 수준인게 꽤나 괜찮은 알바로 보였다.


'모집 올라온 날짜가... 으엑, 올린지 일주일이나 됐는데 아직도 사람이 안구해졌다고?'


어쩐지 느낌이 안좋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니 과연, 얼마전까지만 해도 병동 하나가 집단 감염때문에 통째로 격리당했니 뭐니 이런저런 구설수가 많은 병원이었다.


'하긴 이러니까 이 조건에도 사람이 올 리가 있나.'


누구든 돈도 중요하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기 마련이니.

그렇게 생각하며 미련없이 뒤로가기를 누르고 다른 일자리를 뒤적거리기를 한참..


-딸깍, 딸깍 딸깍.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지랄맞은 병원에 벌써 일주일 째 출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후..

한숨과 함께 회상을 마친 난 폐부를 가득 채우던 독한 연기가 빠져나가는 후련한 감각과 함께 슬슬 담뱃불이 필터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보고 담배를 옥상 난간에 짓이겨 꺼버렸다.

시계를 보자 지금 시각은 1시 10분, 점심시간은 1시 30분까지니 아직 시간은 여유로웠다.


"그럼 느긋하니 편의점이라도 가볼ㄲ..."


그 때였다.


-내가 그대~를 만~났다~는건~

-선별 진료소 과장


"..아니 쉬는시간에 이 인간은 왜 전화를.. 에휴, 여보세요?"

[아, 얀붕 씨. 쉬는시간에 미안하지만 일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예에, 말씀하시지요."

[그 오전에 검사하는데 쓴 검사 키트들 있죠? 그걸 검사실에 옮겨야했는데 내가 깜빡해서 말이야. 그것 좀 검사실로 옮겨줘요.]

"지금 당장이요?"

[어.. 오후엔 오후 일도 있으니까, 가능하면 지금 바로 해주면 좋겠는데.]

"..알겠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얀붕 씨. 그럼 부탁좀 할게요?]


-뚜루룹!


쓰읍, 후...

이럴 때일수록 심호흡을 하는거다 김얀붕.

황금같이 귀한 쉬는시간 20분이 쌩으로 날아가게 생겼어도 돈 급하고 사정 급한 놈이 참아야지 뭘 어쩌겠냐.

까라면 까야지, 염병!


"에라이, 오늘 커피는 물건너 갔네."


생각해보면 돈도 없으면서 커피 사먹을 돈은 꾸역꾸역 나오는 것도 웃긴 얘기지.

이참에 잘 됐네. 담배는 못끊어도 커피정도는 한동안 끊고 살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옥상 계단 문을 열고 내려가려던 때였다.


"얀순 씨, 환자분한테 그딴식으로 하면 병원 소문이 어떻게 날지는 생각이나 하고 일 저지르는거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환자분이 제 엉덩이를.."

"엉덩이에 손 좀 닿을 수도 있지 그렇다고 환자분한테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냐고요! 심지어 팔 골절돼서 들어온 환자분이 헛손질 좀 할 수도 있지 그걸 그렇게 표독스럽게 반응하면, 나중에 병원 평점이라도 떨어지면 어떻게, 얀순 씨가 책임질거야?"

"아니.. 그..."

"됐고, 얼굴 좀 예쁘다고 환자분들이며 의사선생님들이며 다들 하나같이 오구오구 잘해주니까 자기가 간호산지 뭔지도 까먹을 것 같은 모양인데 앞으로 처신 똑바로 해요. 알겠어요?"

"..네..."


바로 한 층 밑에서 들려오는 날카롭게 쪼아대는 목소리, 그리고 그와 정 반대로 축 처진 채 힘없이 네, 네, 대답만 하기 바쁜 목소리까지..

아마 간호사로 보이는 두 여자의 말소리에 질려버린 나는 괜히 저 상황에 끼어들었다간 인생이 피곤해지리라는 확신과 동시에 혹시나 숨소리 하나라도 밑에 새어나갈까 싶어 숨을 꾹 참고 옥상 층계참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있어야 했다.


'아 씨.. 점심시간도 다 끝나가는데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렇게 속으로 투덜대던 것도 잠시.

또각, 또각, 하고 점점 멀어지는 날카로운 발걸음 소리에 후, 하고 짧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이제야 끝났구나! 하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야.. 그나저나 저게 그 간호사들끼리 있는 태움..이라고 하던가? 갈구는 수준 장난아니ㄴ..'


"흐윽.."


'..아, 그러고보면 나가는 발소리는 하나뿐이었구나.'


곤란했다. 정말이지 곤란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멈추고 선 내 시선 끝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 주저앉아 울고있는 한 간호사의 모습이 눈에 비춰지고 있었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자니 뒤가 찝찝하고, 그렇다고 뭘 하자니 내가 해주긴 뭘 해줘? 라는 생각밖에 안드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좋을까..


'에라 모르겠다. 이거라도 주고 튀지 뭐.'


이놈의 구내식당엔 무슨 냅킨도 없냐, 하고 편의점에서 적당히 사서 주머니에 박아뒀던 티슈가 손에 잡혔다.


"저기.."

"..흑, 네에?"

"저, 초면에 실례지만 이걸로 눈물이라도 좀 닦으세요."

"어, 어어.."

"무슨 일인진 몰라도 어.. 음.. 일단 힘내시고요. 그럼 전 이만.."


됐다. 이걸로 됐겠지?

티슈를 대충 간호사의 손에 쥐여 준 난 갑작스레 덮쳐오는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뻘쭘함과 묘한 기분에 서둘러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딱히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긴 해도 코앞에서 우는 사람을 무시하기엔 이래저래 찝찝했으니까.

이정도면 된거다 그래. 난 할만큼 했다고.

저 간호사 입장에선 난데없이 모르는 사람이 티슈를 주니 좀 황당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뭐 나만 안찝찝하면 된거지 뭐 별거 있나.

그렇게 애써 자기합리화를 끝마친 나는 습관적으로 시계를 확인했고..


-1:28 p.m.


"아.. 씨... X됐네..."


과장놈에게 까이기 싫으면 서둘러야했다.

아니, 까이는건 확정사항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뭐라고 2분만에 진료소-검사실-진료소 왕복에 방진복 환복까지 가능하겠냐!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까이려면 서두르는 수 밖에 없지..

거 참 빌어먹을 인생이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난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자마자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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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일단 여기까지 대충 싸질러보긴 했는데 괜찮..음?

괜찮으면 계속 써볼까 싶은데 의견!


2편 : 방주에 간호사 얀데레 보고 싸질러보는 글 - 02 - 얀데레 채널 (arc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