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 시작될때의 굵은 글자는 화자입니다. 화자가 바뀌면 굵은 글씨로 이름이 나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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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뭘까?

 

살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스킨쉽을 당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내게 목욕탕에서 성추행을 시도하다가 아버지께 잡혀서 경찰에게 잡혀간 늙은이.

 

고등학교 때 기가 많다며 내게 말을 걸며 내 손을 덥석 잡은 젊은 여성.

 

대학교 때 괜찮은 남자 같다며 덜썩 팔짱 꼈다가 내 무덤덤한 반응에 놀란 대학생.

 

그리고 지금.

 

내가 무척이나 따르던 선생님이 소개해준 학생.

 

내가 20살이고, 저 친구가 18살이니...

 

나보다 2살이나 어린 미성년자가 나와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어 나의 볼을 쓰다듬고,

 

‘만나보고 싶다’라고 말을 하고 있다.

 

뭐지.

 

미투야.

 

김태환: “환영 인사가 특이하구나?”

 

서가원: “아, 선생님은 저를 모르시죠? 저 혼자 신나서 그랬네요. 죄송해요.”

 

김태환: “내 볼은 그만 만지는 게 좋지 않겠니?”

 

서가원: “아... 무례했죠? 죄송해요, 선생님.”

 

내 말을 듣고 흠칫 놀란 서가원은 손을 내 볼에서 땠다.

 

기침 소리를 몇 번 내고는 표정을 고쳤다.

 

김태환: “아니야. 그래서 어디서 수업하면 될까?”

 

서가원: “서재가 있으니, 거기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김태환: “그래.”

 

서가원은 일어서서 서재를 향해 걸었다.

 

긴 복도를 지나 도착한 서재.

 

책장들로 방이 가득 차 있고 중앙에는 책상이 하나 있었다.

 

나와 가원은 책상을 중앙에 둔 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김태환: “그래, 반갑다.”

 

서가원: “그래도 되게 덤덤하시네요.”

 

김태환: “뭐가?”

 

서가원: “저의 행동에 당황하시질 않으셔서...”

 

김태환: “날 알고 있었니?”

 

생각해보니.

 

이상하기는 했다.

 

요즘 너무나도 여유롭고 외로웠던 탓에 일만 있다는 이야기에 미쳤던 것 같다.

 

일 시작한다는 거 하나에 미쳐서 고딩 애가 내 볼을 쓰다듬어도 신경을 쓰지를 않다니...

 

그리고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

 

정말로 요즘 상태가 이상한가 보다.

 

서가원: “제가 선생님께 관심이 많거든요.”

 

김태환: “아무리 관심이 있다고 남 볼을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시니?”

 

서가원: “제가 입맛까지 다셨나요?”

 

김태환: “당당하구나?”

 

서가원: “나름 선생님을 생각해서 한 행동인데요?”

 

김태환: “뭐라고?”

 

서가원: “후후후. 무슨 말인지 곧 아실 거예요.”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내가 들어주고 있는 거지?

 

나가야 하나.

 

그렇다고 난 일을 줄이고 싶지 않다.

 

여유가 너무 넘치는 지금은 내게 너무 힘든 상황이다.

 

다른 과외를 찾아봐야 하나.

 

아니 신 선생님은 이런 미친놈을 왜 내게 소개해줬지?

 

서가원: “선생님?”

 

김태환: “응?”

 

서가원: “황당하시죠?”


김태환: “어...당연하지.”

 

서가원: “그래도 저랑 있으면 무척이나 즐거울걸요?”

 

김태환: “무슨 소리야?”

 

서가원: “선생님은 요즘 되게 힘드시지 않았어요?”

 

김태환: “뭐?”

 

서가원: “일이 없으시면 곤란하신 것도 알아요.”

 

김태환: “그걸 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뭐야.

 

얘는 도대체 뭔데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거지?

 

머리가 돌아간다.

 

고 3 이후 전혀 사용하지 않던 머리가...

 

돌아간다.

 

지끈거린다.

 

서가원.

 

내 주변에 서 씨가 있나?

 

있다 해도 이런 집에 사는 애는 없었다.

 

가원이라는 이름도 살면서 처음 듣는다.

 

유빈이와 닮은 이 얼굴은 아무리 보아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박유빈인가?

 

박유빈이 날 놀리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나에 대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뒷조사를 당한 건가?

 

난 의자를 박치고 일어난다.

 

손이 떨린다.

 

도대체 날 어디서부터 뒷조사 한 거지?

 

이건 일이고 뭐고의 문제가 아니다.

 

공포다.

 

그 순간 가원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두 눈을 응시한 체.

 

씩 웃는다.

 

그러고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온다.

 

서가원: “선생님?”

 

김태환: “너... 도대체 뭐 하는 애야?”

 

내가 일에 미쳐 사는 거는 알 수도 있다.

 

워낙 내가 그런 거로 유명하니까.

 

근데 내가 고향에 다녀와서 엄청 힘들어한 거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내 기억 속에서는 그 누구도 몰라야 한다.

 

하지만 저년은 알고 있다.

 

수많은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에서 오고 가면서 공포감이 내 머리를 지배한다.

 

애를 쳐야 나?

 

하지만...

 

여자애다.

 

다리가 내 팔보다 얇은 그냥 연약한 여자애다.

 

내가 한 대만 후려도 나가떨어질.

 

살짝만 밀치고, 가방을 챙겨서 빠져나오면 된다.

 

그렇지만...

 

얘는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다.

 

내가 여길 떠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까.

 

가원은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계속 내게 온다.

 

정신 차리자, 김태환.

 

김태환: “다가오지 마.”

 

서가원: “궁금하시죠, 어떻게 알았는지?”

 

서가원은 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더욱 다가왔다.

 

난 뒷걸음질을 치다가 결국 뒤의 책장에 난 막혔다.

 

서가원: “여고생 한 명에게 겁을 먹으신 거예요? 그래도 용케 도망을 안 가시네요?”

 

김태환: “어떻게 알아낸 거야?”

 

서가원: “후후.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서가원은 자신의 여린 몸을 내게 밀착했다.

 

나보다 키가 작아 머리를 들어 올려 내 두 눈을 응시하면서 계속 입을 연다.

 

서가원: “최근에 이렇게까지 머리 쓰신 적 있으세요?”

 

무슨 말...

 

맞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난 최근 머리를 사용한 적이 별로 없다.

 

고등학생 시절 워커홀릭이 되어 과학고에서 사용하는 대학교 교재들을 외우다시피 공부에 몰두했기에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할 게 없었다.

 

막상 3, 4학년 것을 공부하고자 하니 그때 돼서도 할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까지 겨우겨우 일들을 만들어 지냈지만, 결국 여유는 많았고, 나의 감정은 폭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

 

생존욕.

 

공포.

 

아드레날린.

 

수많은 요소가 나의 머리를 옥죄고 고독감이라는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가원은 점점 몸을 밀착해왔다.

 

정신이 또렷해진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다.

 

그제야 느꼈다.

 

맞다, 내 앞에서 몸을 비비고 있는 애는 여자지.

 

자신의 몸에 딱 맞는 교복이라 그런가.

 

가원의 볼록한 가슴과 부드러운 피부가 느껴진다.

 

공포감과 성욕, 그리고 이 일에 대한 호기심.

 

감정들이 섞인다.

 

김태환: “일단은 좀 거리를 두는 게 어떨까?”

 

서가원: “얼굴이 빨개지셨어요? 이럴수록 머리가 더욱 잘 돌아가지 않아요?”

 

서가원: “빨리 머리를 굴려보세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쉬운 질문이잖아요.”

 

답을 해주기 전까지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듯이 가원은 아예 손으로 내 허리를 둘렀다.

 

김태환: “도청이나 스토킹했겠지.”

 

서가원은 나의 답에 만족했는지 씩 웃으며 내 허리를 두른 손을 풀었다.

 

냉철해지자.

 

난 지금 서울 한복판에 대형 주택에 사는 여고생에게 도청을 당했거나 스토킹 당했다.

 

그런 얘가 나의 은사를 이용해 자신의 집까지 유인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나가는 건 금방이다.

 

하지만...

 

최소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해결할 수 있다.

 

어차피 얘는 지금 날 죽이거나 할 수 없다.

 

차분하게 얘와 장단을 맞춰주다가

 

난 서가원을 밀쳐 내고 거리를 띄웠다.

 

김태환: “도대체 뭐 하는 짓거리야 이게?”

 

서가원: “재밌지 않아요? 이런 일?”

 

김태환: “씨발, 뭐가 재밌어!”

 

이성의 끈을 겨우 붙잡고 있던 나는 재미지 않았냐는 말에 결국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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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원

 

흥분했구나.

 

후후.

 

그렇겠지.

 

자신이 스토킹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소름이 끼치겠지.

 

게다가 그 여자애가 방금까지 자신을 껴안고는 몸을 비벼댔으니...

 

내가 너무 심했나?

 

좀 말려야겠네.

 

서가원: “선생님.”

 

김태환: “씨발, 원하는 게 뭐야!”

 

선생님은 겨우 화를 참으면서 내게 달려드는 것만큼은 멈추고 계신 것 같아.

 

여기까지만 놀려야겠지.

 

서가원: “진정해보세요, 선생님. 저는 제안을 하려고 했을 뿐이에요.”

 

김태환: “뭐?”

 

서가원: “저는 저와 놀아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마침 신 선생님께서 잘 아는 워커홀릭이 있다고 하셨지요.”

 

서가원: “하기 싫으시면 안 해도 돼요. 그렇지만 선생님... 요즘 외롭지 않아요?”

 

김태환: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서가원: “저와 게임을 하는 거지요.”

 

김태환: “무슨...?”

 

서가원: “선생님은 지금 일이 없으시잖아요. 있어도 재미없고. 그렇지요?”

 

김태환: “그래, 그건 맞지.”

서가원: “그렇다면 저와 게임을 하는 거예요. 지금도 머리 잘 돌아가시잖아요?”

 

서가원: “물론 스토킹하고 도청 같은 거야 너무 쉬운 추리죠. 그렇죠?”

 

서가원: “선생님이 싫다고 하시면 바로 모든 걸 그만둘게요.”

 

서가원: “하지만 선생님... 최근에 이렇게 감정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잖아요?”

 

거절할 리 없어.

 

난 저 사람이 방에서 통곡하는 걸 다 들었어.

 

고독감에 미쳐 절규하는 그의 모습을 보기도 했고.

 

선생님은 1년간 자신을 고독감에서 벗어나게 해줄 혹독한 과제가 없었어.

 

내가 제시한 탈출구에서 도망갈 수 있을까?

 

김태환: “씨발...지랄하지마!”

 

선생님은 짐을 챙기더니 문을 박차고 나갔어.

 

후후.

 

곧 다시 내게 올 텐데.

 

나말고 놀아줄 사람이 어딨다고?

 

그 많은 여자가 1주일도 못 가서 헤어졌는데.

 

친구들은 그냥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는 정도면서.

 

나말고는 만족 못 할거야.

 

선생님.

 

곧 연락하겠지.

 

재밌을 거야. 김태환.

 

기대하라고, 너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두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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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씨발.

 

씨발.

 

미친 듯이 달렸다.

 

정신이 혼미하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어디로 가야 할까.

 

자취방은 안전할까.

 

그녀는 나의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그녀는 정말로 나와 놀고 싶은 걸까?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내게 원하는 게 정말 그런 걸까?

 

공포심과 일말의 호기심이 뒤섞여 당황한 채 난 결국 자취방에 도착했다.

 

김태환: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기는 하지...”

 

결국에는 난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하지만 날 반기는 거는 덩그러니 놓인 빈방이었다.

 

아.

 

아아.

 

정말로 그 미친년의 말이 맞는 건가.

 

아아.

 

일을 하든.

 

운동을 하든.

 

게임을 하든.

 

그 무엇이라도 해서 난 고등학생 때부터 혼자서 지내보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뭐든지 한계가 있었다.

 

공부에도 적당한 선이 있었다.

 

운동에도 내 체력의 한계가 왔다.

 

게임들은 너무나도 빨리 질렸다.

 

날 이해해줄 사람 하나 없는 이 세상.

 

그렇지만 난 죽기에는 너무나도 무섭다.

 

이 고독감에서 벗어나고자 못 부림을 쳐왔건만...

 

난 낙심한 체 바닥에 드러눕고 소리쳤다.

 

김태환: “야. 들리지.”

 

김태환: “내가 뭘 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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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원

 

헤드폰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어.

 

결국에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무력한 목소리.

 

하아.

 

너무나도 들어보고 싶었어.

 

어디든지 항상 천재 소리를 들어오던 사람이 사실은 저렇게 무너져있음을 증명하는...

 

이 무력한 목소리.

 

결국에는 나의 게임에 수락했어.

 

후후.

 

재밌을거야.

 

무척이나.

 

선생님.

 

아아.

 

선생님의 그 인간관계에 돋친 가시들을 다 들어내고,

 

선생님의 속살을 맛보게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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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