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 시작될때의 굵은 글자는 화자입니다. 화자가 바뀌면 굵은 글씨로 이름이 나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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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집을 샅샅이 뒤졌다.

 

누군가에게 도청을 당해본 적은 없지만, 무언가 의심된다 싶은 것들을 다 찾아보았다.

 

벽지를 다 눌러보며 무언가 느껴지는지 살폈으며, 몇 없는 가구들을 다 들처냈다.

 

그렇게 찾은 총 5개의 도청기.

 

천천히 생각했다.

 

설치할 시간은 충분했다.

 

언제와 어떻게가 중요하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할까?

 

근처 CCTV를 뒤져야 하나?

 

‘웅.’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중 폰이 울렸다.

 

서가원: [도청기를 벌써 없애버리셨네요?]

 

김태환: [그걸 빨리 제거 안 하는 게 미친 게 아닐까?]

 

서가원: [한동안 선생님 목소리를 못 듣는다니 아쉽네요.]

 

김태환: [미친년]

 

서가원: [그러면 다음에는 뭘 할까요?]

 

김태환: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서가원: [심심하거든요. 재밌는 일을 벌여보려고요.]

 

김태환: [무슨...]

 

서가원: [도청 장치 찾으신 거는 잘하셨어요. 다음 게임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어제는 감정에 복받쳐서 하겠다고 했지만...

 

정말로 해도 되는 건가?

 

현타가 씨게 오고 난 폰을 바닥에 툭 던지고 들어누웠다.

 

김태환: “씨발...”

 

나에게 전혀 좋은...

 

게 없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를 스토킹하던 자와 거래를 하는 게 좋은 걸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렇지만 난 이 일을 거절할 수 없다.

 

내게 이 일마저 사라진다면 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딴 일을 구할까.

 

그렇지만 방금 이 방에 들어와서 느꼈던,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런 기분을 다시 느낀다면 미쳐 죽을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내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해줄 게 있을까?

 

공부도 질렸다.

 

운동은 슬슬 육체적 한계에 도달했다.

 

리포트나, 조별 과제들도 이제는 그냥 하는 과제가 되었다.

 

그 무엇도 내게 재미를 줄 수 없다.

 

궁지에 몰린 기분이다.

 

정녕 이걸 받아들여야 할까?

 

난 결국 마음을 다잡고 폰을 다시 들었다.

 

김태환: [그래. 뭔데?]

 

서가원: [제가 어디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맞다.

 

이 년 우리 집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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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원

 

선생님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모텔의 최상층.

 

여기가 나의 위치야.

 

선생님이 집에서 뭘 하는지는 몰라도, 집에서 나오는지 아닌지는 바로 알아챌 수 있지.

 

어디 한 번 구경해볼까.

 

쌍안경을 꺼내어 현관을 바라보았어.

 

곧 문을 열고 나오겠지?

 

날 찾아보라고, 김태환.

 

어디 한 번 계속 놀려볼까.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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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씨발.

 

도대체 뭐야.

 

난 카톡을 보자마자 바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하...

 

그래.

 

내 집 창문에 귀대고 있을 리는 없겠지.

 

그러면...

 

어딘가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저기다.

 

적당한 곳은 모텔이겠지.

 

저기서면 내 자취방 현관문부터 근처 거리가 다 보이니 내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쉬울 거야.

 

난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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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원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바로 찾아오네.

 

나도 슬슬 자리를 옮겨볼까?

 

짐들은 대충 정리하고 문을 열고 나갔어.

 

층수까지 바로 맞출 수 있을까?

 

점원에게는 층수를 맞추면 키카드를 주라고 이야기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살펴봤어.

 

오.

 

올라오고 있네.

 

최고층일 거라고 직감한 건가.

 

그럼 난 내려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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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탁. 탁. 탁.’

 

죽어라 뛰었다.

 

하...

 

계단을 10층까지 뛴 건 오랜만이다.

 

바로 비상구를 걷어차서 연 다음 엘리베이터를 확인한다.

 

김태환: “씨발 1층으로 이미 내려갔구나.”

 

이제는 죽어라 내려갈 일만 남았다.

 

처음 모텔에 도착했을 때 생각했다.

 

내가 모텔에 온 것도 알고 있을 것 아닌가?

 

그러면 내가 올라가도 곧 내려와서 날 유인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영원히 밑에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올라오는지 확인할 것이다, 아마.

 

그렇다면...

 

엘리베이터는 위로 보내고, 계단으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온다면 아마 그년도 엘리베이터로는 못 내려올 것이다.

 

바로 내려온다면 계단일 것이다.

 

하지만 계단에 없다면...

 

엘리베이터로 내려오겠지.

 

그렇다면 내가 더 빨리 내려가면 된다.

 

존나게 뛰어야지, 씨발.

 

그렇게 10층을 꼬박 달려서 올라가고 다시 내려왔다.

 

씨발.

 

내가 생각해도 병신같은 대처이긴 하지만...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최고층에서 한 층씩 내려오고 있다.

 

8층.

 

7층.

 

6층.

 

5층.

 

4층.

 

3층.

 

2층.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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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원

 

서가원: “이걸 이렇게 써먹어 보네.”

 

난 가슴팍에 묶여있는 밴드를 한 번 더 쪼였어.

 

서가원: “슬슬 내려가볼까.”


토요일의 늦은 밤.

 

난 모텔 10층의 외벽에 메달려 있어.

 

완강기.

 

꽤 쓸만하지.

 

줄을 밖으로 던지고 난 바로 창문 밖으로 나와 내려오기 시작했어.

 

지금쯤이면 10층까지 뛰어올라왔겠지.

 

다시 내려오면 좀 서글프겠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을 텐데.

 

모텔방에 남겨둔 쪽지는 읽겠지.

 

벽을 짚으며 한 층, 한 층 내려왔어. 

 

모텔 구석의 골목에 안착하고는 줄을 풀었지.

 

좀 있으면 선생님도 다 내려오시겠지.

 

어디보자.

 

난 휴대폰을 꺼내고 카톡을 켰어.

 

서가원: [선생님, 미친 사람을 잡으려면 더욱 미쳐야 해요.]

 

후후.

 

얼빠진 얼굴을 보고 싶지만...

 

도망쳐줘야지...

 

나만을 바라보며 쫓아올 선생님을 생각하니 너무 흥분되는걸.

 

그럼 계획한 장소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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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김태환: “씨발.”

 

완강기 앞에서 욕지거리를 한 번 하고 나니 그나마 분이 풀린다.

 

모텔 10층.

 

완강기가 설치된 체 열려있는 창문을 보니 어이가 없다.

 

씨발, 도대체 뭐 하는 년이길래 완강기를 타고 나를 골려 먹을까.

 

쪽지에는 의미없는 말이다.

 

‘달빛이 제일 잘 드는 곳으로 와주세요.’

 

하...

 

‘우웅. 우웅.’

 

폰의 진동음이 울린다.

 

김태환: “여보세요.”

 

서가원: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김태환: “몰라.”

 

서가원: “흠... 선생님 제게 궁금한 게 많지 않아요?”

 

김태환: “그래서?”

 

서가원: “1시간 안에 절 잡으면 저에 대하여 3가지를 알려드릴게요.”

 

김태환: “잡지 못한다면?”

 

서가원: “흠... 제 소원이나 하나 들어주실래요?”

 

김태환: “무슨 소원?”

 

서가원: “미리 말하면 재미없지요.”

 

서가원: “빨리 오세요.”

 

‘툭.’

 

전화는 끊겼다.

 

달.

 

달이라.

 

오늘은 구름도 껴서 달도 뜨지 않았다.

 

달빛이 제일 잘 드는 곳.

 

굴러가라 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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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원

 

‘헉. 헉.’

 

평소에 운동을 좀 했지만, 생각보다 가파른 걸.

 

간단하게 힌트를 주었는데.

 

뭐.

 

복잡하게 문제를 내는 것보다 간단하게 문제를 내서 내게 안절부절못하며 오는 것을 보고 싶어.

 

얼마나 걸릴까?

 

1시간은 주었으니, 30분이면 되겠지.

 

랄랄라.

 

소원을 빌어보고 싶지만...

 

선생님과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

 

그래도...

 

참아야겠지.

 

몇 달을 기다렸지만...

 

내 아버지가 그러셨어.

 

‘뭐든지 이룰 때에는 때가 있고 거기에 맞춰 이뤄야 결실을 제대로 얻을 수 있단다.’

 

내가 어릴 적 월반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아버지는 내게 말해주셨지.

 

돌아보니 맞는 말이야.

 

내가 월반해버렸다면...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겠네.

 

선생님은 지금 여러 감정이 섞여있을 거야.

 

미지에 대한 공포.

 

범죄에 대한 분노.

 

여자에 대한 성욕.

 

나에 대한 호기심.

 

이런 불안정한 선생님을 덮치는 건 아무래도 아니야.

 

자칫 잘못하면 나를 영영 떠날수도 있어.

 

그건 안 되지.

 

선생님은 내 곁에 있어야 한다고.

 

그러니 지금까지면 충분히 쪼았어.

 

이제 슬슬 상을 줄 때라고.

 

내개서 도망가지 않은 상.

 

그러니 선생님 의문을 좀 풀어줘야겠지.

 

그 3개의 힌트는 다음 게임이 될거야.

 

나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까, 선생님?

 

선생님의 능력을 믿어.

 

나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알아내겠지.

 

그러면 더욱, 더욱, 더욱 나에 대하여 궁금할거야.

 

그래서?

 

왜?

 

그러면?

 

어째서?

 

무엇이?

 

수많은 물음들이 문제를 풀 때마다 따라오겠지.

 

그때 조금 선생님을 쪼여주면 다시 답을 얻기 위해 내게 매달릴거고.

 

고독감에 묶여있다면 선생님은 내게 매달릴 수밖에 없을 거야.

 

그 누구도 나만큼 재미를 줄 수 없을걸?

 

후후후.

 

난 폰을 켜서 사진첩을 열었어.

 

빼곡한 선생님의 사진들.

 

항상 사진으로만 봐왔어.

 

사진으로만 봐오며 생각했지.

 

오랫동안.

 

직접 보고 싶었다고.

 

오늘 처음 만났을 때 너무 흥분해서 잠깐 몰아넣었지만...

 

나답지 않은 실수였어.

 

그래도 저렇게 잘 쫓아오니 다행이야.

 

계획 때문에 직접 만날 수도 만지고 맛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내 계획이 성공한다면...

 

선생님은 내게서 못 벗어날 거야.

 

지금의 나도 못 벗어나듯이 말이야.

 

나처럼 선생님도 나만 바라봐줘야 할 텐데...

 

내가 한창 상상에 겨워 행복해하고 있을 때 내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이 진동했어.

 

‘우웅... 우웅...’

 

서가원: “여보세요?”

 

김태환: “너... 거기 딱 기다려...”

 

서가원: “예?”

 

‘툭.’

 

전화가 끊기고 난 고개를 들어서 주변을 살폈어.

 

엇.

 

저 멀리서 광기와 분노에 찬 한 남자는 미친듯이 달려오고 있었어.

 

너무 여유 부렸나.

 

이거 꼼짝없이 잡히게 생겼는걸.

 

그래도...

 

내 예상을 뛰어넘다니!!!!!

 

짜릿해.

 

역시 선생님, 내 예상대로 날 즐겁게 해주는 구나.

 

그러면 나도 이제 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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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죽을 것 같다.

 

모텔에서 쪽지를 보고는 분노에 차 바로 뛰쳐나왔다.

 

정신없이 달렸다.

 

달.

 

달빛.

 

주변에서 달 관련한 거는 달동네 뿐이다.

 

생각보다 쉽게 문제를 낸다.

 

하지만 몸은 존나게 힘들다.

 

10층을 왔다리 갔다리 하고도 지금 분노에 의지한 체 몇백 미터를 뛴 것 같다.

 

나의 머리에서 답이 도출되고는 내 머리에 남은 건 단 한 문장이다.

 

‘저 년을 잡아서 뭔 일인지 알아내고 만다.’

 

그래서 난 미친 듯이 달렸다.

 

고 3 시절.

 

대학 입시가 끝나고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마라톤이었다.

 

기존에 내가 하던 운동이 달리기였기 때문이다.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한참을 달리니 슬슬 달동네의 구불구불한 골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빛이 제일 잘 드는 곳...

 

달동네의 꼭대기를 향해 미친듯이 달렸다.

 

잡는다.

 

저 씨발년.

 

무조건 잡는다.

 

내 다리의 근육들이 터질 것 만 같다.

 

폐는 타는 것만 같다.

 

발목은 돌아가 꺽인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광기와 분노는 내 몸의 상태 따위는 안중도 없다는 듯이, 나의 멱살을 잡고 끌었다.

 

정상으로.

 

정상으로.

 

그곳에 그년이 있다.

 

나의 성욕과 호기심은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었다.

 

정상으로.

 

정상으로.

 

그곳에 너에게 해답이 되어줄 존재가 있다.

 

그리고는 보였다.

 

달리면서 나는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서가원: “여보세요?”

 

김태환: “너... 거기 딱 기다려...”

 

서가원: “예?”

 

‘툭.’

 

서가원은 날 보더니 놀라더니, 웃으며 몸을 달려 달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빨랐다.

 

난 바로 몸을 날려 서가원을 덥쳤다.

 

‘털썩!’

 

김태환: “잡았다, 씨발.”

 

난 그대로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누웠다.

 

서가원은 나의 밑에서 빠져나오고는 입을 열었다.

 

서가원: “스토커를 스토킹하다니.”

 

김태환: “이게 무슨 스토킹이야.”

 

서가원: “후후. 그런가요. 언제나 봐도 아름다워요, 선생님은.”

 

서가원은 내 옆에 쭈그려 앉더니 쓰러진 내게 손을 뻗는다.

 

내 감정에는 공포와 분노가 얼룩져있지만...

 

유빈이와 닮은 그 손길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좋았다.

 

부정할 수 없었다.

 

서가원은 나의 볼을 쓰다듬으며 계속 말을 한다.

 

서가원: “그래도 별생각 안 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 아니었어요?”

 

서가원: “이제는 머리를 쓸 때에요. 3가지 들어야지요?”

 

아...

 

일부러 잡혀준거구나.

 

젠장.

 

내가 허탈해한 표정을 짓자, 서가원은 예상했다는 듯이 내게 황홀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의 볼을 계속 쓰다듬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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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원래가 더 좋을지 아니면 지금이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얀데레적인 여주를 계속 적으니까 나도 더 재밌게 적는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적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