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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https://arca.live/b/yandere/2195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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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킹데크와 선실 사이에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빛이 흘러나오며 그곳에서는 이상한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나왔다.


우주복은 지구와는 다르게 좀 더 거의 바디수트 같이 날렵했다.


“얀순이...예요?”


그는 헬멧을 벗어던졌다.


놀랍게도, 그는 인간 여성과 완전히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당황하며 어쩔줄 모르던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나의 입술을 거칠게 탐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선명한 감각에 순간적으로 나는 그녀를 밀쳐냈고 풍만한 가슴에 손바닥이 잠깐 닿았다가 떨어졌다.


“얀붕, 왜 그러는가? 키스라고 부르는 것, 싫은가?”


얀순이 입을 열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크게 떴다가 감았다를 반복했다.


그녀의 외모는 분명히 지구인이었고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여성보다도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내 타입’에 가장 걸맞았다고 할 수 있었다.


얀순의 외모는 이전에 꿈속에서 보았던 여자도, 옛 애인 얀진이도, 술집 작부와도 완전히 달랐지만 묘한 기시감과 매력을 불러일으켰다.


우주선이 한번 뱅글뱅글 돌아가며 햇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칠때마다 나는 드디어 이것이 꿈속이라고 자각했고 꿈속에서나마 얀순을 만나 기뻤다.


“얀순아, 얀순…”


나는 울먹이며 얀순을 껴안았다. 이것이 꿈이라면 차라리 이곳에 남아 죽음을 기다리던 설움, 다시는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슬픔을 모두 꿈속에 내려놓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왔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이 부분에 털이 자라나있지 않았다. 무슨일 있었나?”


얀순이 내 뺨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지난번에? 이건 자각몽이다. 그녀는 내가 의도한대로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별로 상관이 없었다.


“응, 면도날이 무뎌져서 깎을 수가 없었어.”


“난 그대가 여기에 털이 덥수룩한게 키스, 할때 기분 나빠서 싫다. 이걸로 깎아라.”


얀순이 내 앞에 손을 펴보이자 내것과 똑같지만 완전히 새로운 면도기가 있었다.


“깎아라. 지금. 여기서.”


“화장실에서 깎으면 안될까?”


“여기서.”


“거, 거울은?”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데에는 분명히 없었던 거울이 있었다.


“깎아라.”


얀순의 고압적인 요구에 난 바로 거울을 마주보고 수염을 깎았다.


그러나 수염은 신기하게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 분명히 사라졌다.


나는 수염을 깎아야 한다는 무의식속의 욕망이 이렇게 표현된 것일까하고 생각했다. 현실에서의 면도날은 무뎌져 면도를 할 수 없지만 꿈속의 면도날은 정말 잘 들었으니까.


“다 깎았나.”


“어. 다 깎았… 읍! 우읍!”


말을 채 끝나기도 무섭게 얀순이 나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혀로 내 입안과 혀를 끈적하게 더듬었고 양손으로 얼굴을 잡았다. 게다가 내가 벗어나지 못하게 벽쪽으로 자신의 온몸을 이용해 나를 밀어붙였고 오른쪽 다리를 내 다리 사이로 집어넣었다.


진한 키스가 끝난뒤 그녀는 곧바로 나를 이불 위로 넘어뜨렸고 우주복을 벗어던졌다.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 없었던 아름답지만 터질듯한 가슴, 잘록한 허리. 그리고 나와 입을 맞추고 있는 이 입술까지. 그녀는 쉴틈없이 농후하게 뿜어져나오는 매력을 내 몸 곳곳에 새기려하는 듯 했다.


“벗어라. 그대와 이런 것을 하고 싶었다.”


나는 말없이 끄덕이며 그녀가 관계를 맺자는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꿈이니까.


그렇게 나는 꿈속의 외계인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 


누구인지도 모를 외계인은 인간의 성감대와 내가 특이하게 민감한 부위를 기가막히게 알고 있는듯이 그녀는 누구든 흥분시킬만한 농염한 몸매를 갖고 조금 서투른듯 하면서도 정열적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일을 치른후 그녀는 나를 꼭 껴안았다.


“그대를 처음본 날부터 이렇게 안고 싶었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그대를…”


다른 누군가를 품에 다시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것도 이 망망대해나 다름없는 거대한 우주에서 몇주동안이나 혼자였던 내가 다른 사람을 품에 안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돌았다.


하지만 나는 얀순과 주고받았던 메세지의 내역과 죽어가는 나의 모습은 꿈속의 얀순과 껴안고 있는 이곳이 아니라 현실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얀순은 알몸이 된채로 일어나 마주앉았다.


“있잖아, 이건 전부 내 꿈이란 걸 알지만 너를 만나서 기뻤어.”


나는 북받쳐오르는 슬픔을 꾹꾹 누르며 어렵게 운을 뗐다.


“무슨소리인가? 꿈이라니?”


얀순의 그 차가운 무표정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이건 꿈이야. 난 곧 깨어나야 할거고. 너가 오지 않았던 두달이 다 되어가는 시간동안 난… 너가 오기를 바랬어. 하지만 그 기대는 완전히 꺾였고 나는 우주선의 모든 스위치를 내리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 지금 내가 꾸는 꿈은 그 갈망과 기대의 발현인거야.”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이건 꿈같은게 아니다! 내가 그대와 입맞추고 성관계까지 맺은 것이 꿈이라고 생각하는가?”


얀순이 격정적인 투로 말했다.


“그래. 이건 꿈이야. 나는 영원히 이 꿈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 이런 말을 하는거야. 그래도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뻐.”


난 마른침을 삼킨뒤 다시 입을 열었다.


“기호로 간신히 대화하던 너가 그렇게 유창하게 한국어로 말하는 것도, 너가 갑자기 그런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는 것도 현실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지. 하하하, 무엇보다 너가 쓰는 말투는 내가 소설속에서 읽은 후로 왠지 모르게 좋아하는 말투거든. 너의 그 말투가 내가 원하는 대로 지금 이 상황이 조정되고 있다는 증거야.”


“아니다! 정말 꿈이 아니다! 나도 그대가 너무 신기해서, 그대와 만나고 싶어서 힘들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잠시 앉아라. 그대가 품고 있는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하겠다.”


“미안해, 꿈속의 얀순. 난 의문같은건 더이상 품고 있지 않아. 너라는 존재를 직접 만난적은 없지만 너가 내 무의식 안에서 그렇게 확고한 자아를 구축해나가고 있는지는 나도 몰랐어.”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내가 얀순을 바라보았을때 얀순 또한 나를 바라보았고 아까전의 감정적인 표정과는 달리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듯한 무표정을 하고있었다.


“안되겠군. 그대 종족에서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는 그대도 그 편집증적 망상에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하는구나. 이 방법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지만 용서하게, 그대.”


얀순이 일어섰고 내가 얀순을 향해 돌아보았을 때 어느새 그녀는 아까 자신의 우주복을 입은채로 서있었다. 


그리고, 우주선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선내 기압 저하, 선내 기압 저하. 모든 승무원들은 비상 호흡 장치를 착용하십시오.’


“커… 커허억… 크허억…”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나는 순식간에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크허어억… 대...체…”


“묻겠다. 지금 이 순간도 꿈인가.”


“흐으어어억…”


“다시 묻겠다. 그대는 이것도 꿈이라고 생각하는가.”


질식했던 단 몇초가 몇분처럼 길었다.


다행히도 정신을 잃기 직전 피시식 거리는 소리가 나며 기압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허억… 허어억… 쿨럭! 쿨럭!”


“이게, 정말, 꿈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얀순을 쳐다보았다. 얀순은 아까의 무표정과는 다른 묘한 웃음을 입가에 띠고 있었다.


“꿈이, 아니야?”


“나는 질문을 했다.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하지 않는다. 이것은 꿈인가? 그대가 숨을 못쉬며 고통받았던 순간은 현실이 아닌가?”


“아니야… 어떻게…”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흠. 꿈이 아니라는건 안 것 같군. 하지만 난 대답을 원한다. 꿈이다, 꿈이 아니다. 둘중 하나로 대답해라.”


“꿈은 아니야! 확실히 아니야!”


“그래. 꿈이 아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꿈속이라고 생각하면서 멈춰있었던 현실감각이 돌아오고, 나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얀순을 안았다.


“보… 보고… 싶었어… 얀순아… 죽기 전에… 보고 싶었어… 으아앙…”


나는 아이처럼 서럽게 울며 엄마에게 안기듯 얀순의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그리고 얀순은 그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외로웠던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 얀순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과 여러 호기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 울다가 이러는건 웃기지만 난 지금 궁금한게 많아.”


얀순은 말없이 계속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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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부 생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