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yandere/11397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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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악질적인 장난을 치는 놈의 면상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면상은 커녕 이딴 장난을 치는 녀석이 영상통신을 연결해줄 턱이 없었다.


다만 이런 장난을 치는 놈이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쌍욕을 박았다. 


그러나 그 쌍욕도 자음과 모음으로 해체되어 돌아올뿐. 


두시간을 아무글이나 송신해보았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것은 자음과 모음으로 해체된 메세지 뿐이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신호가 발신되는 위치를 찾으려고 했으나 역추적은 불가능했다.


신호가 특정 위치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방향으로부터 신호가 수신되고 있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구조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산산조각나면서 아무도 도와주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이제 죽음에 대한 확신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게 10분이 넘게 울었을까 절망속에서도 나는 이 신기한 현상을 기록해야겠다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방에서 신호가, 그것도 문자가 자모로 분해되어 수신된다는건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과학자로서의 마지막 탐구를 시작하기 위해 통신기 앞에 앉았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메세지가 수신되어 있었다.


‘m ㅠ ㅣ i s ㄹ m ㅠ ㅣ i s ㄹ ㅇ o ㅇ ㅇ o ㅇ’


단순히 자모로 분리된 메세지가 아니라 모음과 자음이 불규칙적이지만 반복적으로 나타난 메세지였다.


게다가 서로 형태가 유사한 것끼리 짝지어져 있었다. 


방금전의 절망은 이 신기한 현상의 목격 이후로 완전히 소화되어 흥분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중력이라는 것을 처음 기술한 뉴턴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나는 이 메세지를 보내는 존재가 신호를 해석하여 재구성할 수 있고 적어도 ‘시각’이라는 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한 이 주위를 지나는 어떤 인간이 이런 악질 장난을 칠 수 없다는 것 또한 확신했는데 우선 이 행성계는 미개척지였고 송신-수신에 걸린 시간이 불과 10초에서 20분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살기위한 집념에 눈이 멀어 이런 점을 간과했고 헛된 희망을 품었던 것이다.


이 존재가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니 이제는 문자 음성 신호를 각각 나누어 함께 송신해보기로 했다.


나는 우선 한글의 자음을 적어 송신했고 그 다음 내 목소리로 이것을 읽은 소리를 녹음해서 보냈다.


이번에는 1시간 뒤에야 답신이 왔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날로그 음성을 디지털화한 부호가 돌아왔다. 이것을 복호화하고 인공지능 목소리를 이용해 출력하니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라고 똑똑히 말하고 있었다. 


소름과 동시에 전율이 일었다.


다만 이것으로 이 존재가 청각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어떻게 해도 그 존재가 청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측정하기는 어려워서 나는 라틴 문자와 한글의 발음 유사성을 표시한 문자와 부호로 표시한 내용, 그리고 음성 신호를 보냈다.


‘ga, na, da, ra, ma, ba, sa...’

‘ga = 가’


다시 1시간 정도 후에 답신이 돌아왔다.


음성 신호는 내가 보낸 것과 유사하게 돌아왔으나 문자로 쓰인 답신은 달랐다.


라틴문자로 보낸 메세지가 한글로 쓰여 돌아온 것이다. 


‘가, 나, 다, 라, 마, 바, 사...’

‘a = ㅏ’


이 존재는 발음과 문자의 관계, 부호의 의미, 라틴 문자와 한글의 관계성을 깨달은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나는 이 행성계에서 인간이 아닌 지성체와 교신에 성공한 것이 틀림 없었다.


나는 잠도 자지 않은채 이틀을 할애하여 이 존재에게 한국어와 영어의 음운을 가르쳤고 그가 음운에 대한 것을 깨우쳤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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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은 머리 아픈 내용만 있어서 미안

빌드업 쌓기 힘들다...


그런데 앞으로 몇화는 더 이런 내용일거야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