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있으면 낮과 밤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특히 행성 궤도를 도는 우주 기지 같은 경우에는 행성과 주성(主星) 사이에 있을 경우에는 낮이고, 행성 뒷면에 있을때는밤이다.


내가 탄 우주선도 행성 표면 위 한점 위에 고정되어 돌고 있는 정지궤도에 있고 놀랍게도 지구와 비슷한 자전 속도 덕에나는 12시간 밤과 12시간의 낮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안타깝게도 여기에 갇혔고 빠져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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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전 지구에서 출발한 나는 이름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제1식민행성을 거쳐 내가 지금있는 이 거대한 행성을 탐사하는팀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행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상한 기상현상을 관측하기 위함이었다.


이 기상현상을 관측하여 그 비밀을 풀기만하면 또다른 우주의 진리를 하나 더 알 수 있는 셈이었다.


전 애인이었지만 연구소 동료로서의 관계는 유지하고 있던 얀진의 만류에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었지만 


나는 얀진과 사귀던 시절 95%만 서로에게 솔직해지자는 말을 지켜서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못했다. 거대한 행성은 종전 관측된 수치보다 수백배에서 수천배에 달하는 방사능을 내뿜기시작했고 우리의 우주선은 많은 부분이 고장나고 말았다. 


내부 선실은 차폐가 잘된 덕에 피폭된 대원들은 없었지만 작동하는 부분은 고작 컴퓨터로 통제하지 않는 산소 조절기와수동 조절 엔진이었다.


근육뇌인 군인 대원들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과학자 네다섯명은 남은 연료로 복귀할 수 있을지 계산하기 시작했고 다행히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단, 한명은 빼고 말이다. 



연료 자체는 이 행성의 궤도를 탈출하기에는 부족했고 결국 작용 반작용 원리를 이용해 선실에 부착된 소형 폭탄을 터뜨려 후미를 사출시키면서 그 반동을 더해 날아가야 했다.


제비뽑기를 통해 누가 후미에 남을지 결정하기로 했고 하필이면 내가 뽑을 때 불이 꺼진 탓에 원래 뽑으려 했던 제비를 뽑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그래도 대원중에는 나 혼자 가족이 없으니까 그걸로 위안을 삼으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모두들 행성궤도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고 나는 이 행성궤도 안에 꼼짝 못하고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미안하네 얀붕군. 이게 마지막 통신이 될 것 같네. 이제 상부의 지시대로 모든 통신을 끊어야해. 자네는 우리 모두를 구한거야. 그것에 대해 우리 대원 전원이 말로 다 못할 감사를 표하네.” 



얀진에게 마지막 전언을 대원들에게 전했다.


그 후에 대장의 통신이 끊기자 나는 이제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대장이 맛있는 음식 몇달치 전부를 남겨주고 갔지만 몇달이 지나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애초에 몇달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속에서 난 잠에 들었고 바다에서 헤엄치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 




다행히 산소와 물은 충분했고 음식도 전체의 수십분의 일 정도로 많이 남아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일에 치이던 삶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유일한 장난감이라고 할 수 있었던 통신기기를 고치는데 성공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조 신호를 송출해보기도 했고 ‘개새끼들아’, ‘병신들아’ 같은 쌍욕을, 유언장 아닌 유언장을 작성해서 송출하기도 했다.




공허한 우주에서 나는 커다란 행성을 어느새 열바퀴를 넘게 돌고 있었다.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계속 살고 싶다는 모순된 집념이 밀려왔다.



변기위에 앉아 내 분변을 우주 공간으로 내보낼 때마다 


“똥이나 처먹어 개새끼들아!” 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립되고 한달이 조금 넘자 나는 다시 통신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진지한 유언장을 써내려갔다. 


사실 유언장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내 인생을 돌아보는 수기, 전기에 가까웠다.


첫사랑에 실패한 일, 대학에서 점수를 낮게 준 교수를 찾아가 분필을 던졌던 일,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이 두차례나 까였던일, 남편이 있던 작부를 몇번이고 따먹었던 일...


사실 내 인생에 있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내가 했던 강의를 떠올려 아무렇게나 송출하기도 했다.



두달째가 되어서도 식량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난 여전히 아무도 듣지 않는 혼잣말을 해댔고 매일 허탈감에 지쳐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하지만 어느날, 잠에 든지 4시간쯤 되었을까 수신기가 울렸다.


난 꿈이라는 것을 알았고 목이멘채로 수신기를 켜 내용물을 받았다. 



그런데 꿈이 아니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 b c d f g h j k l n m p q r s t v w x y z’


‘ a e i o u’



각각 한글과 라틴문자의 자음과 모음이 수신기 화면에 박혀있었다.


문자가 수신되었다니!


주변을 지나는 사람이 내 글을 읽은 것이 틀림없다!


나는 살 수도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어 구조 신호를 보냈다.



‘살려주세요! Save Me!’ 



하지만 돌아온 내용은 



‘ㅅㄹㄹㅈㅅㅇ s v m’


‘ㅏㅕㅜ ㅓ ㅣ ㅛ a e e’



또다시 자음과 모음이 해체된 채로 답신이 돌아왔다.


나는 절망했다. 


누군가 나의 절박한 메세지로 장난치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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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천체!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얀데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