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얀붕이는 어제는 악몽을 꾸었다. 요 며칠간 악몽을 꾸지 않았었기 때문에 다시 악몽을 꾸는 건 신기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악몽의 내용은 여태까지의 악몽과 같았다. 숲에서 놀고 있는 남자애와 여자애

남자애는 여자애에게 과시하고 싶은지 위험한 외나무다리 위를 건넌다.

그리고 여자애는 위태롭게 남자애를 따라가다 다리에서 떨어지고 만다.


얀붕이는 여자애를 구하려고  다가가려 노력하지만 얀붕이의 다리는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언제나 와 같은 악몽이 끝나고 얀붕이는 눈을 떴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본인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고 얀붕이는 땀에 전 몸을 일으켰다.


2.

아침 식사를 마치고 얀붕이는 소꿉친구 얀순이의 집으로 향했다.


얀순이는 다리에서 떨어진 사고로 인해서 왼쪽 다리의 신경과 근육을 다치게 되었고, 다행히 걷지 못하게 된 건 아니지만 왼쪽 다리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얀붕이는 얀순이가 퇴원해서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자, 얀붕이는 매일 아침 얀순이의 집 앞으로가 얀순이의 등교와 하교를 도와주었다.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 얀붕이는 남자 고등학교로, 얀순이는 공학으로,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떨어지게 되었지만 얀붕이는 변함없이 얀순이의 등하교를 도와주었다.

언제나처럼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얀순이를 만난 얀붕이는 그렇게 학교로 같이 길을 나섰다.


3.

고등학교의 하교 종이 울리고 얀붕이는 가방을 쌌다. 기다리고 있을 얀순이를 위해서 빠르게 학교를 나서려고 했을 때,

“너 오늘은 나랑 상담 좀 하자, 선생님이 학교 전문 상담 선생님인거 알지?”

얀붕이의 담임선생님인 얀진 선생님이 얀붕이를 불러 세웠다.

“선생님, 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알아, 너 엄청 유명해, 매일 똑같이 여자친구 만나러 가잖아.”

“여자친구가 아니라요…”


“나도 그 친구랑 너 사정은 아는데, 그래도 내가 너 담임이고, 진로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상담도 해야 하고, 그리고 너도 맨날 학교 끝나면 바로 나가 버리니 방과 후에 하는 활동도 하나도 안 하고 말이야.”

얀진은 얀붕이를 답답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말을 이어갔다.


“오늘은 그 친구한테 못 간다고 연락하고 나랑 상담실에서 상담 좀 하자, 그 친구도 하루쯤은 이해해 줄 수 있겠지.”

얀붕이는 반 억지로 상담실로 끌려가면서 얀순이에게 오늘은 상담 때문에 힘들 것 같다고, 네가 오늘은 다른 친구랑 가야 할 것 같다고 카톡을 보냈지만 얀순이의 답장은 ‘?’ 하나였다.


상담실에 들어가자 얀붕이의 휴대폰은 미친 듯이 울려오기 시작했고 얀붕이는 핸드폰으로 연락을하려 했지만 얀진선생은

“선생님이랑 상담할 때는 휴대폰을 놓고 상담에 집중해야지?”라면서 얀붕이의 핸드폰을 빼앗고 전원을 끈 뒤 서랍에 넣었다.

“자 우리 얀붕이, 뭐가 문제일까?”


4.

1시간 반의 하나 마나 한 상담을 마치고 나서 얀붕이는 하굣길에 나섰다. 결국 상담 내용은 얀붕이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 것 같았다.

‘죄책감을 덜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라고 해도…’

‘그렇게 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얀진 선생은 얀붕이의 자세한 사정을 듣고 그런 식의 두루뭉술한 조언만 해주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얀붕이의 머리는 해결되지 않은 고민으로 가득 차 버렸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집과 얀순이네 학교로 갈리는 갈림길에 도착한 얀붕이의 머릿속에서 문득 미친 듯이 울렸던 핸드폰이 생각났다.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다는 걸로 다시 공황이 와버린 얀붕이. 얀붕이는 허겁지겁 꺼진 핸드폰을 켜서 부재중 메시지를 확인하려 했다.

얀붕이의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64통, 카톡이 126개가 와있었고 얀순이의 마지막 카톡 메시지는 ‘뭐해뭐해뭐해뭐해뭐해뭐해뭐해’였었다.


당황한 얀붕이는 휴대전화를 잡고 얀순이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하려고 했지만, 얀붕이의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뭐 했어?’ 라고 얀순이가 말을 걸었다.

“대답해야지? 얀붕아?” 얀순이는 무언가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미미미미안! 학교 선생님이랑 상담…” 얀붕이의 말은 얀순이가 앞으로 쾅 소리를 내면서 왼발로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끊겼다.

“그 멍청하게 생긴 년이랑 노닥거리면서 나를 버려놓은 거라고?”

“얀순아, 너 왼 다리가…”

“아, 정말 짜증 나네!” 얀순이는 반쯤은 화가 난 채로, 반쯤은 어이없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다리가 뭐? 너는 아직도 나보다 내 다리가 더 중요하니?”

“애초에, 그 의사한테 최대한 심각하게 진단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멋대로 부풀려 놓아서 연기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말이야. 무슨 근육이랑 신경을 건드려? 나원 참나.”

“그그그그러면…?”

“그러면?”

“무엇 때문에…”

“우리 순진한 얀붕이…” 전까지 화난 표정의 얀순이의 얼굴에 아주 살짝 미소가 보였다.

“애초에 네가 나쁜 거라고, 같이 공학 고등학교로 오지 않았어도 매일 데리러 와주는 거로 참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른 여자랑 이야기하느라 날 버려놓으면… 나도 못 참아.”

말을 마친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진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얀붕이의 반응은 늦었고 그렇게 얀순이는 얀붕이의 얼굴에 미리 약을 발라놓은 수건을 덮는 데 성공했다.


“일어나서 보자. 얀붕아?”


처음 써보는데.. 힘드네...

진짜 작가들 존경한다... 짧은거 쓰기도 정말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