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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맑음


아침에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빌린 우산을 챙기고 학교로 가니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어제 우산을 빌려준 아이였다.


이름은 얀붕 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인사를 하고 우산을 돌려주었다.


일찍 온 이유를 물어보자 밤새워서 게임을 하느라 그렇다고 했다.


원래 책상에 엎어져 잠을 자려고 했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이질적이고 불안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불가사의한 느낌이 느껴졌다.


교복을 뚫고 느껴지던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이 온기를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다가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내 모습은 너와 어울리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니 어딘가 씁쓸했다.


천진난만하게 이야기를 하는 얀붕이를 보니 죄책감이 들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교과서를 펴고 들여다보았다.


이미 몇 번이고 독파한 교과서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책이라도 몇 권 가져와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을 보았다.


멍하니 그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손에 비추었다.


이곳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보는 선명한 색깔이었다.


악의를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푸르름이.


손을 안는 따스한 온기가.


분명 매일 보고 느끼는 것이었음에도 오늘은 그 느낌이 달랐다.


눈을 감고 그 축복을 느꼈다.


그렇게 가만히 있던 도중 얀붕이가 나를 깨웠다.


잘 거면 엎드려서 자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순진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이내 내 자리로 누군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쳐다보자 말문이 막혔다.


내가 학교에 오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지속적인 괴롭힘 때문이었고.


그 중심이었던 얀진이가 내 앞에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거부감에 멀미가 났다.


그녀는 얀붕이에게 말을 걸었다.


"얀붕아 혹시 점심시간에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응 괜찮아."


그리고 얀진이는 잠시 나를 째려본 뒤 자리를 떠났다.


점심시간이 되자 신경이 쓰여 몰래 얀붕이의 뒤를 밟았다.


보이지 않을 곳에 숨어서 귀를 기울이자 둘의 대화 내용을 엿들을 수 있었다.


"얀붕아 너 혹시 얀순이랑 친하니?"


"아직 친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괜찮은 애인것 같아."


"전학와서 네가 얀순이를 잘 모르는구나. 사실 얀순이 걔가 소문이 좀 안좋거든."


"어떤 소문인데?"


"걔가 외국에서 전학을 온 애인데.. 오자마자 물건을 훔치거나 다른 애들을 때리거나 하면서 애들을 되게 못살게 굴었어."


"그리고?"


"걔가 정학먹어서 학교 안나오고 있었는데. 근데 그동안 질이 안좋은 애들이랑 술 담배 같은 것도 하고 다니고 누구는 어떤 아저씨랑 모텔에서 나오는 것도 봤다고 하더라."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뭔데?"


"너도 얀순이랑 같이 다니다가 안 좋은 영향 받을 수 있으니까 좀 떨어져서 지내는게 좋을 것 같아."


"진짜? 조언 고마워. 참고할게."


숨죽여 대화를 들으면서 가슴이 찢기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라는 것 자체가 잘못일지도 모른다.


자괴감이 나를 물어 뜯는 동안 그 고통에 눈물을 흘렸다.


나는 교실로 가서 가방도 챙기지 않고 조퇴를 했다.


집에 들어와서 교복도 벗지 않은 채로 침대에 쓰러졌다.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에 괴로워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나는 이 고통에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에서는 쓴맛이 났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심호흡을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눈을 뜨자 해는 저물어 창백한 달빛이 방을 채우고 있었고.


누워있던 자리는 눈물로 축축해져 있었다.


말 없이 학교에 가지 않고 싶었지만 이제 무단결과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옷을 입은 채로 샤워기 아래에 섰다.


찬물을 틀자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세차게 나왔다.


머리가 찌릿찌릿 하고 뒤이어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몸 상태가 나빠지는지 몰라 두 시간을 그렇게 있었다.


물을 끄고 나와서 옷을 갈아입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가만히 있어도 몸이 떨렸다.


내일 몸 상태가 정말 안 좋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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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맑음


오늘은 하루종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근처 서점으로 가서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머리가 어지러워서 영 읽을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아쉬운 대로 책을 몇 권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어려워 나는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누가 내 장례식에 와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