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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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여줄까? "


" …됐어요. 말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죠. "


어느새 비어버린 찻잔을 들고 다시 부엌으로 걸어갔다. 

어디 한 나라의 공주라도 되는걸까? 

신변이 노출되면 위험하다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꼭꼭 자신을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혹시 나를 노리는 암살자 라던가? 

그리기엔 나는 이제 은퇴한지 3년 가까이 지나선 잊혀진 사람일 텐데. 이건 아니겠다.


근방에 서식하는 마물의 외피로 만들어진 외투를 걸치고, 문 앞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 저는 마을에 갈건데. 여기 계실겁니까? "


생기 하나 없는 눈동자로 나를 지그시 쳐다보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아무 말도 안하는구나. 곧장 내 옆으로 다가와선 나를 올려다본다. 


" … 그래요. 갑시다. " 


이참에 마을에 데려다 주고, 돌아올때는 혼자서 돌아오자 빌었다. 

붙임성도 없고, 귀염성도 없는 여성을 집에 들여두기에도 여간 뭣하니 말이다.

문을 열고 한차례 바람이 내 살갗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곤 고갤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내뱉었다.


" 마법을 써서 갈건데,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어요. 꽉 잡아요. "


그 말에 묘하게 그녀의 표정이 움찔거린 것 같았다. 

전이 마법은 싫어하는 편인가? 그게 아니라면 마법 자체를 몸에 받아들일 수 없는 신체라던가. 

이후 몇 초간 계속 그녀를 바라봤지만, 부정을 표하는 의사는 보이질 않았기에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 손을 잡은 것에 불쾌감은 일절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주문을 읊고 목적지를 투영했다. 


눈을 떴을 땐 집에서 제일 가까운 마을의 광장이었고, 뒤에는 사치스러운 분수가 밝은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고갤 돌려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려니, 나는 곧장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어딜 간거지? 


분명, 이전에 모험가 활동을 했을때도 단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마법이다.

아무리 고위 마법이라고 한들 실패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마법이라 생각했는데. 

연달아서 사용하기엔 뇌에 심각한 고통이 따르기에,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관뒀다. 

졸지에 그녀를 놔두고 홀로 버리고 간 셈이 된게 아닌가. 

한숨이나 푸욱 내쉬고, 다시 걸음을 돌렸다. 


목적지는 이 마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모험가 길드였다. 

매일 의뢰를 수주하러 오는 모험가들이나, 어쩌면 그 첫 번째 여정을 위해 모험가 등록을 오러 한 사람들이 즐비했다.

문을 열어 얼굴을 비추자 마자, 시선이 집중되었고 몇몇 익숙한 얼굴들은 내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래도 아직 내 얼굴이 잊혀지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은퇴한 전 모험가 길드장. 그것이 내 수식어다. 


카운터에서 날 바라보며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안내원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었고,

나는 길드 뒷편 연습장으로 곧장 걸어갔다. 

마도구가 가득한 이곳은 길드 공식 훈련장 으로도 불리며

개인적으로 1대1 전담 코치를 해주는 상위티어 모험가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스쳐 지나가며 제일 구석에 위치한 검은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문을 열자 곧장 내 시야를 가득 메운 그 인영. 

샛노랗게 빛나고 있던 저 동공에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 너 내가 그딴식으로 능력을 쓰지 말라고 했었는데? "


이 세상을 통틀어서 열 손가락이 채 되지 않는다는 마안의 소유자. 

능력을 사용하면 상대방에 대한 모든 것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말이 그렇지, 사용시 고통이 엄청나서 자주 쓰지 못한다고 들었건만. 

고작 내 위치를 확인하려 그것을 썼다니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 그야 오늘은, 아저씨 조금 늦었는 걸. " 


" 집에 불청객이 찾아와서 말이야. " 


" 불청객? 아저씨 집 주변엔 몬스터밖에 없는데? 뭐 괴물이라도 온거야? "


" … 그런건 아닌데. 왠 여자애가 재워달래서. " 


" 헐, 아저씨 그런 취향이었어? " 


" 닥쳐. 하라는 건 다 했냐? "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아저씨라고 불러댄다. 이름은 리아. 어쩌다 던전 입구에 쓰러져 있던 아이를 구했더니, 

왠걸 마안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내가 은퇴한 이후로도 관심을 가지며 키우고 있는 아이다. 


" 으으응, 귀찮은데. 굳이 그런 걸 해야해? " 


간단한 마법이라도 알려주려 했건만, 자신의 능력을 너무나도 신뢰하고 있는 것인지 도통 말을 따라주지 않는다. 

신체에 보유한 마나를 소모하는 것과 고통에 비례하는 수명을 거래하는 마안의 능력은 너무도 위험하다고 

도대체 몇 번을 일러줘야 이 아이는 내 말을 들을까. 


" 계속 그러면 버린다? " 


" 허어, 아저씨 너무해. 기껏 여기까지 키워주고는 이제 필요 없다고 버리는 거야? " 


참으로 성가신 아이를 구했다고 생각한다. 

몇 년전 까지만 해도 이렇게 까지 생기있던 아이는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활발해 지던 아이가 이렇게 까지 자라버리니 참 기분이 묘하다. 


" 너 또 다른사람 마법 훔쳤지. " 


" 아- 역시 아저씨는 알아보는 구나. 응. 여기 길드 내부 사람들한테는 이제 흥미가 떨어졌는걸. " 


말도 안되는 능력이라 생각한다. 

남들이 몇 년, 아니 몇십 년을 가꾸어서 얻은 상위 스킬이라고 할 지라도, 수명과 거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니.

터무니 없지 않은가. 그래서 모두에게는 비밀로 하고 내가 감시역으로 있던 것인데. 

이젠 다 물거품이다 싶었다.


" 너 계속 그러다가, 진짜 당장에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니까? "


" 어디 마왕이라도 만나서 소생 이라던가, 연명 이라던가? 그런 걸 훔치면 되지 않을까? " 


" 말이 쉽지. 미쳤냐? 가는 길에 죽을 거다. " 


어쩌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녀의 능력은 나를 훨씬 웃돌고 있을 테니까.

문제는 이렇게 능력을 남발해서야 남은 수명이 얼마나 될지. 그게 문제지만. 


" 야. 또 사람 마음 속 염탐하지 마라. " 


그녀의 눈빛이 노랗게 발광하고 있었다.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 헐, 아저씨 어쩌면 진짜 내가 세계를 정복할지도 모른단 거네? "


" … 그 작고 귀엽던 아이가 그립다. " 


" 흐응, 나도 이제 충분히 컸다고 생각하는데? " 


그러면서 자신의 가슴골에 내 팔을 파묻으려 하는데, 아이고. 아직 넌 덜컸구나. 

말캉한 것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뭐 그렇다. 


" 아 아저씨! 또 이상한 생각하지! " 


" 제발 능력좀 그런 곳에 쓰지 말라고… . " 


한번 더 노랗게 빛나는 안광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진짜 그러다 일찍 죽을거다 넌. 




그날은 조금 서둘렀다. 

길드에서 홀로 지내는 그녀를 놔두고 간다는 것은 참으로 미안한 일 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 그 손님? 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하니까.

혹시 모른다. 그대로 질려서 다시 돌아갔을지도. 언제 한번 리아를 데리고 가서 뭐하는 사람인지 물어볼까. 

아니, 그전에 돌려보내자. 뭘 숨기고 있는지는 굉장히 궁금하지만 나름의 프라이빗일 테니까. 


벌써 가냐며 온갖 욕설을 퍼붓는 리아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고 나는 다시 공간전이를 시전했다.

목적지는 집. 제발 돌아갔기를 빌며 말이다. 

저 시야 한켠에서 나에게 중지를 날려오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너는 내일 내가 정신교육을 다시 해주마. 




집으로 다시 돌아오자, 곧장 시야에 내비추는 잿빛의 머리칼을 가진 여성.

… 아직 돌아가지 않았나. 


" … 미안해요. 실패한 적은 없었는데. 홀로 두고 떠나버린 격이 되었네요. " 


그런데, 분명히 아까 치워두었던 찻잔을 가져와 홀짝이던 그녀의 모습에 잠시 의문을 품었다.

그걸 잠깐 지켜본 사이에 외워두었다가 차를 우려내었다고? 

도대체 누가 손님인지 이제 알 수가 없을 정도다. 


" …… 괜찮아. 다 알고 있었는걸. " 


"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


" 인간의 마법은 인간끼리만 통해. 그것도 모르고 그런 마법을 쓴거야? "


두 눈을 깜빡였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과거로 돌아간 기억을 되짚어도, 나는 단 한번도 마법을 실패한 적이 없었으며 그녀가 내뱉은 말도 당연히 사실 이었다.

그렇다면, 진짜로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고?


조용히 영창을 읊었다.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한다. 

이 여인이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단순히 몬스터에게 습격받은 것이 되어버리니까. 

결계를 펼치고, 고위 마법을 캐스팅 하려 했으나, 정신이 한번 끊김과 동시에 모든 것이 해제되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를 웃도는 캐스터가 있다고? 


" 꽤 똑똑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너, 바보야? "


여전히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렇게 읊조리던 그녀는 다시 찻잔에 입술을 가져다 대어 목을 축였다.

수년 간 몬스터와 자웅을 다투었으며, 생명의 위협도 여러번 느꼈다. 

그리고, 한참을 잊고있던 그 공포를 지금 이 자리에서 느낀 나는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머리가 어지러워 지기 시작했다.

한 순간에 대량의 마나를 소모한 것이 그 원인일 테며, 그것이 캐스팅에 실패하여 반발력이 내 몸을 뒤덮는 것이다.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신중했었더라면. 


" 당신, 뭐야? " 


" 말 했잖아? 용이라고. " 


머리가 어지럽다. 깨질듯한 두통이 나를 뒤덮는다. 

몸에 남아있던 마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였다. 

분명, 마법 실패에 대한 댓가는 방금 전에 치뤘을텐데? 

마나의 흐름을 느낀다. 제발, 도대체 원인이 뭔데? 


나는 경악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마나의 흐름을 따라가선 시선은 그녀에게 닿아있었다.

몸을 뒤덮고 있던 짙은 마나. 아니 마소. 

마물이자, 그 최상위 계층에 위치한 그것. 


분명히 '용' 이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아마 나는 마나를 전부 빼앗기고 자연회복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마 의식도, 신체의 자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 나는 죽어버리겠지. 저 옆에 있는 용에 의해. 


마지막으로 내 시야에 담긴 그녀의 표정엔, 그 무엇 하나 변화가 없었다. 

마치 처음 보았던 그 표정과 일관된, 새하얀 백지가 말이다.











 


"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야? 일어나. "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깨우는 목소리의 톤으로 봐서는… 그 용이다. 

왜 나를 살려두었을까. 왜 죽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나는 지금 몸에 마나가 가득 쌓여있는 것인가? 


천천히 눈을 뜨고,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에 들려진 찻잔. 며칠 만에 보는 광경인가. 


" 유흥이야? 단순한 오락? 왜 이곳에 온거지? "


" … 말했잖아? 산책이라고. "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터무니 없는 손님이 내 집에 찾아왔구나. 


아래로 푸욱 꺼져있던 시선을 다시 올리자, 익숙하디 익숙한 붉은 색 머리칼이 보인다. 

잠깐, 리아? 네가 왜 거기 쓰러져 있는 거지? 


" … 날 죽이던 말던, 그건 상관 없는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인데? "


" 저 여자애. 시끄러워. 그래서 잠시 재워 놨어. " 


저게 어딜 봐서 자고있는 건데? 하다못해 어디 소파에라도 눕혀두던가.

그러고 보니 난 왜 지금 침대에 눕혀있는 걸까. 

나를 옮겼다고? 이곳으로? 

마나를 다 빼앗고, 다시 주는 걸로도 모자라서 그 모순된 친절은 뭔데 도대체? 


대충 상황은 예상이 간다. 

아마 한동안 내가 길드에 얼굴을 비추지 않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왔던 것이겠지. 

그러다가 용을 발견했다 … 그리고 졌다. 이건가. 


이론상 거의 저 아이가 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거지? 


" 그리고 … 저 여자애 눈은 위험해.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어. " 


역시 그런가. 하긴 그렇게나 능력을 남발하는데. 수명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것이다.

그나저나, 의외로 걱정도 하고 온순한 성격이 아닌가? 

내가 아는 신화속 용은 마을을 부수고, 파괴하기를 좋아하는 난폭한 이야기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 … 돌아가줘 제발. 혹시 너를 해하려던 인간이라도 있던 거야? 그런게 있었다면- " 


내 말을 끊기라도 하듯, 검지를 내 입술에 가져다 댄다. 

마치 사람이 하는 행동과 똑같다. 용이 맞기는 한걸까? 


" 말했잖아. 산책이라고. 심심했거든. " 





그 터무니 없는 이유 때문에 내 일상은 180도 변해버렸다. 














빌드업 때문에 개화 과정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고 뭣보다 오래걸릴 것 같음 

채널에 취지에 맞지 않는 글이 한동안 될 것 같은데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