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하고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청소가 먼지를 빨아들이는것과 비슷하다. 내 영혼은 그렇게 몸을 벗어났다.


신기하게도 죽음의 첫번째 감각은 나른함이었다. 열대의 섬에 누워 햇볕을 쬐는 그런 기분좋은 무력감이 찾아왔다. 두둥실,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느낌과 무거운 족쇄를 풀듯 가벼워진 몸의 감각을 아직 기억한다. 단잠에 빠진 고양이처럼 기분좋은 숨을 내쉬었다.


그게 일단 첫번째 감각. 두번째로 찾아온건 불교에서 말하는 공과도 비슷하다. 사실 이걸 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시간도, 공간도 전부 멈추고 사라진 상태다. 그러나 확실한건 그때의 나는 그 어느때보다 철저히 나라는것. 나라는 존재를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는것. 그러니 어찌 본다면 감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것이다. 그때 내가 느꼈던 나는, 살아있을때는 느낄 수 없던 새로운 경험이었으니까.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내몸에 어떤 큰 변화가 생긴거구나.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삶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나의 유년시절과 가족, 학창생활, 처음으로 가진 직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긴 생머리에 조그만 어꺠를 가진 여자. 아, 그러고보니 나는 그 여자에게 잘 해준적이 없었구나. 서로 사랑해야하는걸 나는 받아먹기만 했구나. 그 여자가 사랑하는만큼 보답을 못 했구나. 그래. 오늘만해도 우리는 싸우지 않았었냐. 오랜만에 한 데이트인데, 나는 화가나서 먼저 집으로 갔지. 너는 화가 난 내 뒤를 졸졸 따라댕기고. 그러다 이렇게 됐을거야.


나는 눈을 감았다. 그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왜 이럴때 기억이 안 나는걸까. 나를 죽을만큼 사랑한 여자, 그 여자의 이름이..


"으허어엉 안돼 얀붕아!!"


다시 눈을 떴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몸을 뒤집었다. 허공에 떠 있는건, 물 속을 부유하는것과 비슷했다. 범퍼에 피가 묻은 갈로파 짚차 뒤로 스키드 마크가 이어졌다. 범퍼로부터 5미터정도 핏자국이 이어지고 그 끝에는 긴 생머리 여자가 팔다리가 축 늘어진 남자를 껴안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모여있었다. 여자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 놓아 울었다.


"얀붕아 내가 잘못했어, 죽지마."


여자는 얼굴을 남자의 몸에 비벼댔다. 치덕치덕 피가 묻어났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나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여자. 눈을 깜빡였다.


" 죽으면 안돼.."


얀순이?


--


나는 죽은 사람이다. 생각보다 간단해서 놀랐다. 영화에서 유체이탈을 하는 장면과 비슷했다. 나는 지상에서 3~4미터 떨어져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남들은 그걸 보지 못 한다. 이게 나름 이상한 기분을 준다. 나는 엠뷸런스에 실려가는 내 시체를 보았다. 창백한 얼굴을 가리려고 구급대원이 하얀천을 덮어두었다.


얀순이는 멍한 얼굴로 엠뷸런스 구석에 앉아있었다. 내 얼굴을 덮은 흰 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보이지않는 무언가가 있다는듯이.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간단한 사인을 말했다. 목뼈가 부러져서 즉사했을거다. 고통 없이 한번에 사망했다. 얀순이는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의사가 말 실수를 눈치채고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장례는 치러야할 일이다.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발부해줬다. 얀순이의 손에서 종이가 구겨졌다.


그녀는 병원을 떠났다. 장례식장을 알아보려면 며칠이 걸릴것이다. 나는 그 동안 시체안치소에서 지냈다. 그곳은 거대한 냉동창고였다. 얼음틀처럼 네모난 사각공간 하나에 시체 하나가 들어간다. 캡슐호텔과 비슷하다. 예상하겠지만 한없이 지루하고, 또 한없이 고요한 공간이다. 다른이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어둠을 응시했다. 몸을 떠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불가능했다. 줄이 묶인 풍선처럼 내 몸이 그걸 거부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죽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건가? 내 장례는 누가 치러주지? 우리 엄마 아빠는 진작에 사라졌고, 친척들과도 연이 끊겼는데. 설마 얀순이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장례가 한 두푼 드는것도 아니고 말이지. 하지만 만약 장례를 안 치러준다면? 그럼 나는 영원히 이 어둠속에 갇혀야하는건가?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다 한 순간, 내 영혼이 쑥 어딘가로 빨려들어간다. 죽었을떄의 느낌과 비슷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밖으로 나와있었다. 몸도 떠다니지 않고 두 다리로 서 있다.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녀가 서 있었다. 증권투자자 같은 깐깐한 인상이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인사를 했다. 나도 얼떨결에 허리를 숙인다. 남자는 들고 있는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많이 놀라셨죠? 저희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아뇨 저도 잘.."


그때 남자가 들고 있던 장부를 닫았다. 탁. 하는 소리가 안치소 내부에 울린다.


"김얀붕 맞으신가? 죽은지 3일 지나셨습니다. 이제부터 저희가 맡죠."


그의 말투는 재산을 압류하는 집행원이나 냉혹한 검사에 가까웠다. 여자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남자를 곁눈질한다. 이런 태도가 한 두번이 아닌듯했다. 그것보다. 내가 제일 놀란건 따로 있었다.


"3일이요?"


시간이 그렇게 지났던가?


--


둘은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대부분 여자가 말하고 남자는 입을 꾹 다문채 서 있었다. 얼추 정리가 되자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저승사자 비슷한거죠?"


여자가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네, 맞아요. 저희는 얀붕님의 영혼을 인도하러 왔습니다!"


그때 남자가 말했다.


"저승사자가 아니라 차사입니다. 저승사자는 다른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고."


"아하하..."


여자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남자를 곁눈질한다. 그는 눈도 깜짝 안한다. 그의 표정은 차갑고 무심하다. 여기 시체안치소의 배경으로 남아도 어색하지 않을것 같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계속 말한다.


"어쨌든, 당신이 죽은지 3일이 지났으니 이제 명단에 올라왔습니다. 자세한건 가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장례는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 했다. 남자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게..저도..잘.."


"모른다고?"


"....."


남자는 흠. 하는 소리를 내고는 다시 장부를 펼쳤다. 그 사이에 여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얀붕씨, 아주 중요한거에요. 정말로 모르세요? 일단 장례를 해야만 저희가 저승으로 인도해드릴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정말 모르겠습니다."


"혹시 다른 가족분들은 없으세요? 아니면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게..."


"네, 최대한 말씀해주세..."


"아니 됐어"


남자가 장부에 눈을 고정한채로 말했다. 


"어릴적에 부모한테 버려졌군. 그 뒤로는 아무 연고도 없고 말이야. 최소한 보육원에서 자랐으면 후견인이 한명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깨끗하네. 언제부턴가 연락을 끊었나보지?"


"이봐요! 당신 무슨 말을..!"


순간 발끈했다. 그래, 나는 이승에서 가까운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는 처지다. 아니 단 한명도 없을거다. 보육원은 뛰쳐나와서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하고 살았다. 남자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죽은 사람을 인도하는게 내 일이지. 그렇게 화 낼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다 의미없는거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내 눈을 마주쳤다. 생전. 아니, 죽고 난 후에도 그런 눈빛은 처음봤다. 남자의 눈은 이미 죽어버린 무언가를 연상시켰다. 거대한 나무가 이쑤시개처럼 말라비틀어지고, 높다란 산맥이 바람에 깎여 앙상하게 변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망자들을 인도해주는 그는 죽음이 익숙할것이다. 그 눈빛에는 죽음 외에는 다른 무엇도 없었다. 잠깐 몸을 움찔했다.


"한번 길을 떠나면 이승에서의 일은 전부 잊을겁니다. 오히려 그게 더 편하지. 잊지 못 하면 영원히 떠돌아야할테니까. 장례라는게 사실 그런 의미입니다. 미련을 버리는 과정이에요.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그러니 중요한겁니다, 기분 나빠하지 마시오"


"그럼 장례를 치르지 못 하면 어떻게 되는겁니까?"


"영원히 잊을 수 없지. 자기가 죽은곳, 자기 육신을 떠날 수가 없지. 이승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를 못해. 그러다보면 지박령이 되고 악귀로 변하는거요. 사람들이 많이 죽은 장소나 억울한 사연이 있는곳을 피하는 이유입니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사람, 이승에 남고 싶다는 사람은 많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들 견디질 못 해. 결국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거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같이 온 여자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것 같다. 남자는 조용히 장부를 읽어내렸다.


"뭐"


그는 다시 장부를 닫으며 말했다.


"걱정은 마시오. 아마 장례는 다른 사람이 치러줄테니까."


"무슨 말 입니까?"


"특이한 인연이 하나 있더군"


"...얀순이요?"


"뭐 이름은 그리 적혀있으니. 어쨌든 장례는 그 사람이 치러줄 것 같군. 근데...."


그가 혼잣말처럼 이었다.


"여자가 같이 안 죽은게 신기하군"


"네?"


"아니 아무것도, 만약 그 여자가 장례를 안 치러도 다른곳에서 해 줄거요.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말이야. 결론은, 너무 걱정은 마시게"


그는 돌아섰다. 여자는 눈치를 살피다가 종종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온다. 그녀가 소근거렸다.


"죄송해요...워낙 철저한분 이시라...차사일을 오래하셔서 무뚝뚝해요. 다음에 또 뵐게요 얀붕씨"


"이만 가지?"


남자가 재촉을 했다. 여자는 한번 딸꾹질을 하더니 서둘러 걸어갔다. 두 사람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리고 나는 그 지겨운 깡통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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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마 그 쯤일거라 예상한다.) 얀순이는 돌아왔다. 사람들이 나를 영헌백에 넣고 침대 위에 실어올렸다. 큰 병원에는 출입구가 세 종류 있다. 하나는 걸어서다니는 문. 통원환자나 문병객, 의사들은 이 문으로 오고간다. 또 하나는 누워서 다니는 문. 구급차에 실려오거나 응급상황의 환자는 여길 통해 오고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있는 문은 죽은 사람만이 오고 갈 수 있는 문이다. 이런 문은 보통 남들이 못 보는 뒤편이나 지하통로와 연결되어있다. 나는 그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 다음에 벌어진 일은 꽤나 충격적인데. 나도 충분히 놀랐다는 점,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었다는점을 말하고 싶다. 앞에 말한 문들에 뭔가 규칙 같은게 있다면 이런걸거다. 뒤쪽으로 갈 수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환자와 시체는 누가 도와줘야만 움직일 수 있다. 더군다나 시체는 눈을 뜨지도, 말을 하지도 못 한다.


그러니 얀순이가 나를 빼돌려 차에 실었을때도, 그녀가 트렁크의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을때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체는 다른 사람의 손에 저항하지 못 하니까. 그러자 어쩌면, 어쩌면 그녀가 여기 돌아왔다는건 뭔가 커다란 재앙의 시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말은 못 한다. 나는 시체니까.


엔진이 공회전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다 차가 출발한다. 트렁크에서 울리는 엔진소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그러자 동시에 어떤 강렬한 예감이 나를 강타한다. 이 차는 장례식장으로 가는게 아닐거다. 그녀는 자기 집으로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 나름대로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서일지도. 하지만 그 장례가 내가 아는것과 맞을까? 오히려 내가 떠나지 못하게 묶어두는 주술에 가까운게 아닐까? 나는 두려워졌다. 영원히 구천을 떠돌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건가? 얀순이 옆? 영원히? 시체안치소의 그 강철깡통처럼, 나도 얀순이의 집 한 구석에서 못 박힌채로 지내야하는건가? 그 남자가 말했었지. 결국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거라고. 그 말이 맞다. 나는 벌써부터 간절히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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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방금 쓴 것. 일 하러 가기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