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 똑딱, 시간이 흐르는 걸 알려주는 구식 시계의 진자 운동 소리가 들린다. 잘그락 거리는 금속조각 맞부딫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눈 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의 사랑이 들끓어 오르는 태양과도 같다면 나는 그녀를 차게 식은 냉장고 안의 피자 한 조각처럼 여길 뿐이다.


사랑은 서로가 맺어지는 가장 숭고하고 뜨거운 것일텐데, 인간의 감정은 그렇게 원칙에 충실하지 않아서 스스로 타오르고 스스로 귀결하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쉬어 코 끝을 찌르는 타인의 분 내를 맡았다. 그녀는 내게 잘 보이고 싶어서, 내게 사랑받고 싶어서 한땀 한땀 정성을 들여 스스로를 꾸몄다.


"얀붕아, 나...어때?"


"아름다워."


백색 도자기 위에 화가가 그려넣은 연분홍빛 벚나무는 화사하게 피어오른 봄과도 같았다. 그녀는 달큰하게 웃으며 작게 웃고 부끄럽다는 듯 제 몸을 틀었다. 그러나 그 감상이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 나왔다기 보다는, 차라리 기계적인 결과값 입력에 가깝다고 평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었다. 내 손목을 내려보니 그녀가 채운 수갑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이게 왜 걸려 있더라? 그녀는 내가 그녀의 고백을 받지 않아서 이런 수를 쓸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다. 내가 그녀를 봐주지 않아서, 내가 그녀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그녀가 일방적으로 쏟아부은 감정에 보답을 해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사랑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느냐고 부르짖지는 않았다. 


기이하고 뒤틀린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내적 완결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녀는 나를 매개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은 것이지 진정으로 나라는 사람을 바라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감정은 더욱 침전하고 생각은 더욱 차가워졌다. 온 몸에 서늘한 감각이 돌아 어느새 나는 죽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얀순아, 나 추워."


"...어? 추, 추워? 다, 담요 같은 건 안 챙겨왔는데..."


허둥지둥, 혼자만의 낭만적인 동화에 취해 있던 이는 불현듯 현실로 불려나와 제가 사랑하는 존재의 추위에 당혹스러워 했다. 그녀는 일반적인 대응을 모르고 일반적인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보통의 상식선이라는 게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고백의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고 이렇게 사람을 납치하지도 않았겠지.


"그렇다면 안아줘. 추워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니까."


그녀가 얼어붙는다. 그 눈이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날 바라본다. 어째서 그렇게 구는 것일까? 나는 오히려 그녀가 원하는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셈일텐데. 그녀는 망설이고 떨고 심지어 주눅이 든 것처럼 느껴졌다. 수갑에 묶인 두 손을 들어 그녀에게 뻗는다. 그녀의 멱살을 붙잡고 억지로 당겨서 그녀가 내 곁으로 보다 가까이 오게 만든다.


더 짙게 느껴지는 분 내는 달콤하고, 그 살갗은 부드럽고, 피부는 따스했다. 수갑을 채워서, 안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자 얀순이는 결국 제가 먼저 와락 나를 끌어안고 정말로 사랑한다고,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고 혼자서 고백을 늘어놓았다. 그래, 그래, 맞장구치고 그녀의 온기를 취하는 데 집중하니 흥분한 얀순이도 점차 가라앉아 잠깐의 침묵을 지켰다.


"...나...미워하지 않을 거지...?"


그녀의 질문은 이 지하실을 울리지도 못했다. 그녀가 원하는 게 이런 거라면 그 장단에 어울려 줄 수 있다. 그녀와의 거리는 무척 가까워 코 끝이 닿았다. 머뭇거리는 그녀를 대신하여 고개를 숙이니 망가진 사랑을 노래하던 이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차라리 그게 낫다. 


입술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복숭아 향기가 맴돌았다. 그걸 멋대로 맛보았다고, 내 죄가 되지는 않겠지. 그녀가 바란 건 이런 것이었을 것이고, 나는, 나는 그냥 그 장단에 어울려줄 뿐이니까. 그런 걸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