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를 것 같았다. 수많은 오퍼레이터들을 상대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올랐고 어떻게 하면 상처를 안 줄지 돌려말하는 법도 배웠으나, 이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어떻게 돌려서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난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짧은 생각 끝에 내린 간단하고 확고한 대답이었다.


"그렇지 않아. 박사도 기억을 잃었잖아? 나도 기억이 뒤섞이고, 박사도 기억을 읽어서 서로 기억을 못한 것 뿐이야."


 수르트가 하는 이야기가 영화에서 나온 내용이 짬뽕 되어있는 것이다. 좋은 영향이 가지 않을까? 하던 추측은 여느 실험과 비슷하게 '실패'의 결과를 내놓았다.


 그렇기에 그녀의 기억이 '틀렸다.'라고 알려주려고 하나, 아무리 틀린 것이라도 그것을 굳게 믿고 있던 사람이 그것이 틀렸다는 진실을 알려주어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부정'이다. 지금도 수르트는 박사가 말하는 진실을 외면하고 고개를 저으면서 자신이 믿고 있는 '망상'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말이야! 우리는 시에스타에서 수영을 하고 파티도 같이 갔고, 동국 옆, 염국 아래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먹거리 투어도 했단 말이야! 그리고 빅토리아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야경을 보면서 키, 키스도 했고!"

"아니, 사랑을 하나 나누자고 세계일주를 했다고?"  


 수르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나, 박사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믿지 않는 게 당연했다.

 켈시가 넌 아직 때가 아니다. 라며 답답하게 이야기를 안 해주고, 그나마 아미야나 박사 아래에서 일하고 협조하는 박사를 알던 몇몇 오퍼레이터들에게 과거를 조금씩 알아가던 중인이었다. 모두 그다지 좋지 못한 과거를 알려줘서 기분이 참 찝찝한데, '과거의 나와 넌 애인이었어!' 이러면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부정적인 것' 속에서 긍정적인 것은 워낙에 달콤한 것이기에 많은 이들이 쉽게 넘어가나 박사는 그런 달콤함에 넘어가지는 않았다. 


"수르트, 미안하지만 그 기억은 연애물을 너무 봐서 그런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내 기억이 맞아! 너와 나는..." 

"그렇게 되면 여기서 활동하는 오퍼레이터들 중에서 과거에 날 기억하는 애들은 뭔데?"


 부정하는 수르트에게 과거의 박사를 알고 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지 않으면 수르트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


"과거에 나를 알고 지내던 인물 중에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애들은 얼마 없어. 그런데 그 사이에서 너와 내가 연인 사이였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던 애들이 있던?"

"그건...!"


 곧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녀의 논리가 틀렸음을 증명해준다. 수르트도 생각이 없지는 않다. 그녀가 생각해도 이것은 뭔가 잘못 되었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박사는 한숨을 내쉰다. 

 꽤 유감스러운 상황이었다. 뭔가 해결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곧 바로 다시 생겨버렸다. 수르트에게는 미안하지만, 현실은 본래 잔인한 법.


"...우리를 방해하는 거야..."


 자신이 믿었던 기억이 부정당할 때부터 눈동자가 흔들렸는데, 지금은 흔들림이 멈추었으나, 불길한 느낌이 들 정도로 어둡게 변해 있었다. 빛을 잃은 수정구슬 같은 눈을 한 상태로 혼자서 중얼거리더니 뜬금없이 검을 뽑아드는 것이었다.

 위험함을 직감한 박사는 수르트가 사고를 치기 전에 행동에 나섰다.


"잠깐, 수르트. 칼은 집어넣어."

"박사. 그 년이 방해한 거지...? 하얀 머리에 폭탄 던지면서 깔깔거리던 미친 년?"


 W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둘다 같은 살카즈 종족이지만, 서로 관심조차 가지지 않아서 알기는 할까? 했지만, 완전히 모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만날 박사의 과거를 들먹이면서 상처만 주는 년인데... 그렇구나... 그런 식으로 해서 매질을 한 다음 당근을 주려는 거구나..."

"수르트. 미리 말하는데, 네가 생각하는 거 다 틀렸거든?"

"죽여야 해."


 수르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고정된 눈동자와 반대로 심하게 떨리는 두 손이, 당장에라도 누군가 칼로 썰어버릴 것 같은 위험이 느껴졌다.


"그 년을 죽여서 나와 박사의 인연을 지켜야 해..."

"잠깐, 잠깐만 수르트."


 어째서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일까. 수르트의 손을 붙잡고 그녀가 말한 계획을 실행시키지 못하게 붙잡고 있던 박사가 느끼는 것이다. 이러다가 수르트가 로도스 내에서 정말 대형사고를 칠 수 있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르트를 막으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 까?


 수르트는 현재, 과거의 자신과 박사는 서로 연인 사이였다고 굳게 믿는 중이다. 하지만 박사가 미쳤다고 그런 진실과는 백광년은 멀리 떨어진 것을 수긍하고 연인사이로 돌아갈 일은 없다. 박사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야했다.


"수르트, 진정해 봐."

"괜찮아. 내가 다 해결할 수 있어. 나와 너 사이에서 방해하는 녀석들을 모두 죽이면..."

"그런다고 내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

"...어...?"


 바로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니 효과 직빵이다. 수르트가 손을 놓기만 하면 당장에 달려갈 기세였으나, 박사의 말을 듣고 움직임을 멈춘다. 


"다른 사람들 죽여봤자 내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아. 생각 해 봐. 오히려 내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역효과가 날 수 있어. 네가 죽이려고 하는 애들은 내 진짜 과거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애들이란 말이야."

"...그러고보니..."


 수르트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도 말이 통하는 건 신에게 감사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대로 설명한다면 조용히 물러날지도 몰라. 무턱대고 죽이려 들면 오히려 반감이 생기겠지. 동시에 너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위험분자로 취급되어서 나에게 접근 금지 명령 떨어질 수도 있다고."

"...그건 싫어... 너랑 떨어지는 건... 더 이상..."


 박사의 이야기에 겁을 먹은 수르트의 얼굴이 사색이 되고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자세히보면 눈물도 찔끔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 위험한 짓을 함부로 하지마. 너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도. 

 수르트가 얌전히 있게 하려면 조금 강경한 방법을 택해야 했는데,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 그러면..."


 뜬금없이 손이 조이는 느낌이 들었는데, 수르트가 두 손으로 박사의 손을 꽉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르트가 들고 있는 검이 날은 얇아도 자신의 신장보다 더 큰 검인만큼 무게가 나가는데,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던 손이니 만큼 들어가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팠다.


"나랑... 계속 함께 있어줘..."

"자, 잠깐, 수르트, 소, 손이..."


 잘못하면 손이 우그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해 식은 땀이나고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수르트는 박사를 바라보며 그녀의 욕망을 표현할 뿐이었다.


"일하고 있어도, 쉬고 있어도, 밥을 먹고 있어도, 화장실에 갈 때도, 씻고 있을 때도, 옷 갈아입을 때도, 잘 때도, 일어날 때도... 계속... 쭉...쭉... 내 곁에 있어줘...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그런 년이랑 같이 붙어 있으면... 전부..."


 손아귀의 힘은 점점 더 들어갔다.

 

"수, 수르트! 이, 이거 좀 놓고..!!!"


 수르트는 박사가 알았다고 약속을 한 이후에야 손아귀 힘을 풀었다. 아파서 헛소리를 한 것에 대한 영향은 생각보다 강하게 돌아왔다.


"박사, 어째서 다른 애들과 이야기 한 거야? 나와 박사는 연인사이잖아?"


 박사가 다른 여성 오퍼레이터와 작전에 관한 짧은 대화를 하고 난 이후, 그 오퍼레이터가 떠나자 좋지 못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수르트.


"박사, 왜 멋대로 저 년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는 거야? 나와 박사는 연인사이잖아?"


 식당에서 굼이 만든 새로운 특제 요리라며 호기심이 생겨 먹었다. 맛은 있었는데 수르트가 좋지 못한 표정으로 박사를 내려다보며 당장에라도 굼의 요리를 내쳐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박사,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화장실을 간 거야? 그러다 나 없는 사이 다른 여자애를 만날려고? 나와 박사는 연인사이잖아?"


 켈시처럼 등 뒤의 정체모를 거인의 손으로 박사를 붙잡고 노려보면서 이야기하는 수르트. 이상한 소리하면 박사를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기세였다. 연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박사, 혼자서 자려고 한 거야? 밤중에 누가 찾아올줄도 모르고?"

"...아무리 그래도 잠 자는데는 혼자서 자게 해주라."


 박사의 침실에서, 혼자서 자면 충분하지만 둘이서 자려니 생각보다 좁게 느껴지는 침대 위에서 이불을 나란히 덮고 있자 지쳤다는 투로 박사가 하소연한다. 그런다고 떨어지지 않을 수르트지만 말이다.


"절대 놓지 않을 거야."


 박사를 꽉 끌어안은 채 하는 이야기였다. 박사는 잘못된 기억을 진짜라고 믿는 수르트에게 빨리 진실된 기억을 받아들이는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도 불편한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아수라장 엔딩이 아닌 소프트한 집착 엔딩.

용두사미 엔딩이라 아쉽기는 한데 얀데레라도 포근하게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