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와 얀순이는 소꿉친구였음


둘은 평범한 시골 소년 소녀였는데 어느 날


기사들이 마을로 찾아오면서 상황이 뒤집힘


이 마을에 성검을 쥘 용사가 있다는 거임


평소 용사를 동경하던 얀붕이는 두근두근하지만


결국 마을의 누구도 성검의 선택을 받지 못함


낙담한 얀붕이와 그런 얀붕이를 위로하는 얀순이


얀순이는 잠깐 잘못됐을 거라며 성검에게 다시 가보라 함


얀붕이는 망설이지만 결국 얀순이의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기사들이 잠든 밤을 타 성검에 접촉함


그리고 좀 전과 달리 성검은 얀붕이를 주인공으로 받아들임


용사가 되어 수도로 올라온 얀붕이


마왕부활까지는 아직 300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당시 용사는 정년퇴임이 보장되는 개꿀직장이었음


얀순이는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말했지만


얀붕이는 그녀를 매몰차게 내버리고 혼자 올라옴


그런데 수도로 오니까 뭔가 느낌이 쎄함


성검이 다시 얀붕이에게 반응하지 않는 거임


얀붕이는 용사 사칭으로 감옥에 갇히고


며칠 뒤 사형당하게 됨


사형집행 당일 얀붕이의 소식을 들은 얀순이가


수도로 허겁지겁 올라옴


그리고 얀붕이가 목이 잘리기 직전


주인보호 기능을 가진 성검이 왕궁에서부터 날아와 


사형을 저지하고 얀붕이는 다시 용사로 인정받음


이렇게 위기를 한 번 극복하긴 했지만 


얀붕이의 더러운 성격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음


얀붕이는 용사라는 명목 하에 방탕하게 지내며


옆에서 그런 얀붕이를 걱정하는 얀순이를 천대함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사건이 터짐


여느 때처럼 얀붕이의 탈선을 막기 위해 잔소리하는 얀순이


잔소리를 듣다가 얀붕이는 저도 모르게 얀순이의 뺨을 때림


순간적으로 욱한 일이라 얀붕이 본인도 당황하고


결국 사과도 못하고 어영부영 그 자리를 피함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끼던 얀붕이지만


곧 수도의 미녀와 술을 즐기며 얀순이는 금세 잊어버림


그리고 얀붕이에게 얻어맞고 홀로 남겨진 얀순이는


여신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이 성녀임을 자각하게 됨


그리고 다음 날, 성검을 차고 집을 나서던 얀붕이는


성검이 더 이상 자신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음


당황하는 얀붕이는 성검을 두고 길거리를 헤매다


평소와는 다른 시끄러운 소리에 대신전을 찾아감


때마침 대신전은 새로운 성녀를 맞이하여 축제 중이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얀붕이는 성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따라 수도로 올라온 소꿉친구, 얀순이임을 알게 됨


얀붕이를 알아본 얀순이는 대신전의 깊은 곳으로 데려가고


용사다운 품위를 지키라며 또 잔소리를 함


안 그래도 성검의 이상으로 정신이 혼란스러웠던 얀붕이는


후회했던 저번 일을 잊고 또 얀순이를 때리기 위해 손을 치켜듬


그러나, 그 손은 얀순이를 때리지 못하고 허무하게 막힘


성검의 가호를 받지 못하는 얀붕이는 일반인이나 다름없었고


일반인은 성녀의 신성력을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황하는 얀붕이에게 얀순이는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흔히 용사의 소꿉친구는 성녀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반대로, 성녀의 소꿉친구가 용사가 되는 것이라는


얀붕이에게는 치명적인 진실을 알려줌


잘난 것 하나 없이 용사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온갖 패악과 오만을 부린 얀붕이에게는 청천벽력이었음


결국 자신이 용사가 된 것은 잘나서, 선택받아서가 아니라


그저 운 좋게 성녀의 곁에 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기 때문임


절망하는 얀붕이에게 얀순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래도 어릴 적 얀붕이는 착했으니 달라질 수 있다고


내 말만 잘 들으면 된다고 이야기함


얀붕이는 선택권이 없었고 그녀의 말을 받아들임


그 날 이후로 망나니 용사는 개과천선했고


성검의 광채는 단 한 번도 빛을 잃지 않았음


얀순이의 철저한 내조, 혹은 조종으로 회개한 얀붕이


더 이상 망나니가 아닌 얀붕이는 신랑감 1등이었지만


얀순이의 철저한 가드로 이성과의 접촉 없이 지내고 있었음


하물며 얀순이는 성녀라 순결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던 어느 날 얀붕이는 무도회에서


이웃 나라에서 온 공주 얀진이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짐


얀진이는 좋게 말해 털털하고 나쁘게 말해 격식이 없는


드레스보다 검을 더 좋아하는 공주답지 않은 공주였지만


때마침 용사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훈련을 거듭하는


개과천선한 얀붕이와 비슷한 사람이었기 때문임


둘은 자연히 검술을 나누며 친해졌고


땀에 젖은 육체로 격렬한 싸움을 벌이다 보니


야릇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음


그렇지만 둘 모두 용사와 타국의 공주라는 지위가 있었고


무엇보다 얀순이의 견고한 실드 탓에 그 이상 나아가지는 못함


그러던 중, 어느 날 국왕이 얀붕이를 부름


국왕은 얀붕이에게 얀진이가 네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며


이웃 나라와의 화친을 위해 결혼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함


당연히 얀붕이 입장에서는 환영할 노릇


금세 용사와 이웃 나라의 공주가 결혼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어느 밤, 얀붕이의 방에 조용히 얀순이가 찾아옴


언제나 상냥하고 나긋하던 얀순이는 그 날 만큼은 화를 내며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애썼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전혀 성녀답지 못한 태도로 막말을 퍼부음


한결 어른스러워진 얀붕이는 그런 얀순이를 달래며


네 헌신과 희생에는 나도 감사한다


그러나 너는 성녀라 결혼을 할 수 없는 몸이고


나라 간의 화친을 위해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라는 말로 얀순이를 설득하고


얀순이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순순히 돌아감


그리고 결혼식 당일


두 나라의 사람들이 식장에 몰려들고


얀붕이는 스스로가 용사임을 증명하기 위해


주례에 앞서 자신의 성검을 뽑아듬


그러나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성검은 아무런 빛도 발하지 않음


당연히 결혼식은 파토나게 되고 


얀붕이는 가짜 용사라는 오명부터 


이 결혼은 신이 원하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듣게 됨


그리고 실의에 빠진 얀붕이에게 얀순이가 찾아옴


얀순이는 어느 때처럼 상냥하고 나긋하게 웃으며


결혼하고 싶으면 괜찮다고, 말리지 않는다고 말함


성검을 포기할 수 있다면, 용사라는 자리의 명예를 포기할 수 있다면, 권력의 힘으로 이제껏 감춰온 죄를 감당할 수 있다면, 가짜 용사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쓸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초래될 두 나라간의 갈등과 권력자에게 분노를 사도 상관없다면. 너를 믿었던 얀진이의 마음을 배신해도 괜찮다면.


네가 용사의 자리를 포기하겠다면,

신의 이름으로 너희의 결혼을 축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