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누나가 한 명 있다. 


친구들은 누나가 있다면 부러워하는 눈치였지만, 현실적으로 자기 누나를 좋게 볼 수 있는 남매가 몇 이나 되겠는가. 

뭐, 우리 집도 다를 건 없다. 매일 싸우기를 반복하고, 별 시답잖은 일로 시비를 걸고 허구한 날 심부름이나 시키고. 

그런 흔하디 흔한 남매다. 


아니, 흔한 남매였었다. 

그 사고가 있기 전까지. 





*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착잡한 것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 수 있었다. 

그저 이 상황이 거짓말인가 싶었다. 아니,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사의 반응은 내게 쐐기를 박는 듯 했다. 

하기야, 그런 사고를 당했는데 멀쩡히 넘어간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정도니까.


고작 하루 전의 일이다. 


쇼핑에 어울려 달라던 누나의 부탁에 몇 번이고 거절했건만, 맛있는 걸 사주겠다던 누나의 말에 홀랑 넘어가 동행한 것이 시작이었다.


" 도대체 이 더운 날에 왜 걸어서 가자는 건데. " 


" 그러게. 그냥 택시 탈걸 그랬나. 그래도 오랜만에 누나랑 걸으니 좋지 않아? "


" 미쳤어? 좋기는 무슨 더워 죽겠다. "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며 걸어가던 우리는 어느덧 도착한 아울렛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다 초록불이 되어 걸음을 옮기던 내 귓가에 대뜸 누나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 야, 야!!!!! " 


한 순간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나는 엉덩방아를 찍으며 인도 끝자락에 넘어져 있었고, 내 시야 바로 앞에는 검은 승용차가 한대. 

그리고 조금 우측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누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같이 신호등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은 황급히 누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구급차를 부르는 듯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지만,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던 나는 그저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뒤늦게 밀려오는 공포. 다급히 누나에게 다가갔지만 머리맡에서 웅덩이지기 시작하는 피는 되려 나를 패닉상태로 몰고 갔다. 

얼마나 울부짖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 구급차가 왔고, 아직도 그 사이렌 소리가 선명히 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이후 병원에 실려오고, 타지에서 일하시는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일이 바빠 지금 올 수 없다는 부모님의 말이 내 죄책감을 한번 더 자극하는 것 같았다. 별 일 없겠지. 아무 일도 없겠지 하며 응급실에 실려간 누나를 그저 뒤에서 울며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지금, 겨우 수술을 마치고 의사와 얘기를 하고 있는 나는 실소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전생활건망이랬던가,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기억 상실증. 

상처는 다행히 봉합했지만 아무래도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까. 착잡했다. 

부모님께 전화로 상황을 알리고, 당장 주말에 내려오시겠다는 부모님께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개인 병실로 들어가자 온갖 의학 장치를 둘러보며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누나가 시선에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옆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고, 금방 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고맙다고 해야 할까. 

그때 누나가 날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지금 누워있는 것은 나였을 텐데. 

전부 내 잘못인데. 


" …… 누구세요? " 


그리고 들려온 그 한마디에, 참지 못하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평소처럼 장난기 가득하고, 싸가지 없던 누나가 아니라, 그저 초면인 상대를 바라봤을 때의 그 차가운 말투였다. 

가족끼리의 온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저 남을 보는 듯한 그 목소리. 


왜 우냐며 당황한 누나의 모습에도 나는 전혀 진정할 수 없었다. 아니, 되려 그 모습에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 지지가 않았다. 그게 사실이기에 더욱 그랬던 걸까. 


" 미안해… 내가 미안해 누나… . "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멀쩡한 사고를 하기에도 힘들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머리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감각에 나는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 … 울기는 왜 울어. "


이질적인 누나의 모습. 이토록 내게 진지한 언행을 꺼낸 것이 도대체 몇 년 만인가. 

그 어색한 손길에 한번 더 울음이 터져 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무어라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누나의 모습.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눈물이 번져있는 얼굴을 닦고 

문으로 걸어갔다. 


" 아, 보호자 분이시구나.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 


알았다며 나는 고갤 돌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누나를 한번 흘기고 로비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일상 생활에는 분명 지장이 없다 했던가. 1주일 정도면 문제 없이 퇴원할 수 있다고 했으니 조금 지켜봐야 할까. 

잘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시간이 지나 나는 다시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고, 의료기기 몇 가지가 사라져 있었고, 옷을 갈아입은 누나에게 다가가 목소릴 흘렸다. 일단은 얼마 만큼의 기억이 남아있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 누나. 어디까지 기억나? " 


" 글쎄. 그건 어떤 의미야? " 


" 일단 내가 누군지 기억나? " 


" …… . " 


머리에 붕대를 차고 있는 것과, 평소와 조금 분위기가 다른 것만 빼면 분명히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친누나였다. 

하지만, 이후 들려온 대답에 그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어버렸다. 


" … 미안. 잘 모르겠네. 내 남자친구일까? 누나라고 부르는 걸 보니 동생인 걸까. " 


이 순간이 거짓이었으면 했다. 당장에 이건 지나치게 현실적인 꿈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저 지금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 누나 동생이야… 그런 것 까지 잊어버리면 어떡해. " 


" …… 푸흐. 그렇구나. 미안해. 기억 못해주는 누나라서. " 


헛웃음이 흘러나왔나. 

평소의 누나였다면 분명 장난이나 던지며 웃으며 날 한대 때렸을텐데. 


" 아 맞아. 나 언제 퇴원할 수 있대? " 


" … 누나, 사실 괜찮은 거 아니야? 다친 사람 맞아? " 


" 아핫. 그냥, 네가 너무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사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 


옅은 미소와 함께 상체를 들어 올려 앞으로 기지개를 키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 일주일 내로 퇴원할 수 있을 거래. 적어도 머리에 그 붕대는 풀고 가야 하지 않겠어? " 


"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 이쁜 누님이 이러고 돌아다닐 순 없잖니? " 


" … 이게 어딜 봐서 다친 사람이냐고. 사실 나도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니야? " 


" …… 그러게. " 


해맑게 웃다가도, 그러한 내 질문 한번에 씁쓸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 그래 뭐. 당분간은 이렇게 두자. 평소에 티격태격 하던 관계가 갑작스레 평화로워 지니 상당히 어색하긴 했지만 나쁘진 않다는 느낌이 든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었구나. 비록 일방적으로 한 명이 기억을 잃고 다시 쌓는 중이라고 해도 말이다. 


" 어쨌든, 이따 자세한 건 의사한테 듣고, 부모님은 기억 나? " 


" … 으음, 얼굴 보면 기억 할지도 모르지? " 


이 와중에도 장난스런 미소를 띄우던 누나에게서 평소의 모습을 덧씌우는 내가 미웠다. 

당장 내일이라도 평소의 누나로 돌아와 줄 것 같아서. 내일이 되면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하며 왜 그랬냐고 물었으면 하면서. 


" 저 가방 누나꺼니까, 안에 핸드폰 있을 거야. 심심하면 전화 하고. " 


" 어래, 아픈 사람 두고 어디가? " 


" … 이렇게 괜찮아 보이는데 내가 있을 필요가 있어? 나도 알바는 가야지. 하루 빼 먹었으니까. " 


" 뭐 알았어. 진짜 걱정 하나 안 해주는 거 보니 친동생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서운하기도 하네? " 


" 장난 칠 시간에 좀 쉬어. " 


자리에서 일어나고, 누나가 나를 붙잡는 일은 없었다. 나도 그러길 바랬다. 

지금은 이 죄책감을 떨쳐내고 싶었으니까. 


한 여름의 해는 6시를 넘어가는 지금에도 질 생각이 없었다. 조금 늦어버려 알바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느릿이 걸어갔다. 

거리는 조금 있었지만, 급하게 가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으니까. 

이렇게 하면 조금은 생각이 정리될 줄 알았건만, 결국 알바 하는 곳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아 뒤죽박죽이었다.





*





부모님이 상태를 보러 왔다 가시고, 내게 별 일 없는 것 같으니 다행이라며 말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씁쓸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으셨다. 괜찮은 것 같으니 그저 다행이라고. 

나 또한 별 다른 것은 묻지 않았다. 아마 부모님도 착잡하실 거라 생각했으니까. 

비는 시간엔 늘 병실로 가 누나와 말동무를 해 주었고, 평소 내가 알던 누나 같으면서도 아닌 그 모습이 싫어도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퇴원해도 괜찮다는 말이 나왔고, 내가 가져다 준 옷으로 갈아입은 누나를 데리고 택시를 타 집으로 돌아왔다. 


" 집은 기억하지? " 


" 응? 뭐 한번 봤으니 괜찮겠지. " 


늘 기억에 관한 질문을 꺼내면 애매한 답변을 꺼내던 누나는 어딘가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걸까. 


" 누나 회사에는 나랑 부모님이 연락해뒀어. 좀 괜찮아졌다 싶으면 누나가 직접 전화하고. 정 못하겠다 싶으면 못하겠다 말해. " 


" 응. 알았어. " 


그간 병원에 쌓아두었던 짐을 내려두고 집을 한 차례 둘러보다 내 방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그 모습에 나는 황급히 누나를 불러 세웠다. 


" 방도 기억 못해? 거기 내 방이잖아. " 


" 까칠하긴, 그게 환자한테 할 말이야? "


" 꼭 누나 하는 것 보면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 


" 나 자연스러워? 어때? 당장에 친구들 만나고 놀아도 괜찮겠지? "


" … 그건 참아. " 


알았다며 주변을 더 둘러보다 이번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뭐, 그래봐야 집에 방은 셋 밖에 없고, 방 하나는 장롱이 있어 문을 떼버렸으니 금방 알 수 있었겠지. 


" 아 맞아.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오랜만에 병원에서 나왔고, 회사도 안 가잖아? " 


" 그러게. 그럼 누나랑 데이트해줄래? " 


" …… 동생이랑 그런 게 하고 싶어? " 


" 왜? 뭐가 어때서. 설마 그거 하나 못해줘? " 


" 아 알았으니까. 언제 갈 건데? " 


" 으음, 오늘은 조금 피곤하니까 내일 어때? 주말이니까 너도 알바 안 가잖아? " 


" 알았어. 오늘은 쉬어 그럼. " 


짐을 정리하고, 부엌으로 가며 문득 든 의문에 뒤로 고개를 돌렸다. 


" 근데 누나 내가 쉬는 날인 건 어떻게 알아? " 


" 응? 평일엔 저녁에 없다가, 주말엔 저녁에 있었잖아? 그럼 없는 거 아니야? " 


" … 그건 그런데. " 


누나가 이렇게 똑똑했던가. 아니, 동생으로써 할 생각은 아닌가? 너무 무시하고 있는 건가. 

뭐 됐다. 평소의 일상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런 것 정도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 저녁은 어쩔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 


" 고기 먹자! 병원 밥 맛없었어. 고기가 좋아. " 


" 고작 2주 전까지만 해도 다이어트 하겠다던 누나는 어디에 있나 싶다. " 


한숨을 내쉬면서도 다시 현관으로 걸어갔다. 뭐 가끔은 내가 배려해도 괜찮겠지. 평소 같았으면 귀찮다고 서로 떠넘겼을 텐데. 


" 그럼 다녀올게. " 


" 응. 다녀와! " 


저렇게 해맑았나 싶기도 하고, 원래 저렇게 귀염성이 붙어 있나 싶기도 하고. 

싸가지 없던 누나가 저렇게 변하니 한 켠으론 불편하기도 하다. 아무렴 뭐… 전보다는 낫지만 말이다. 





*





" 아 맞아. 그거 기억 나? 누나가 맨날 나 어릴 땐 귀엽다고 잘 놀아줬는데. " 


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들른 것이 한 시간 정도 전의 일이다. 문득 핸드폰에 진동이 울려 전화를 받으니 술도 사오라는 누나의 말에 

지금 상황이… . 


" 응? 지금도 충분히 귀여운데? 왜애, 조금 더 어리광 부려도 괜찮은데? " 


" … 진짜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싶다. 누나도 이제 반 오십이라고. " 


" 치사하게 나이 얘기 꺼내기야? 그래서 누나라 싫어? " 


" 아니… 뭐, 용돈도 주고 좋기는 한데. 평소에 쌓인 게 많아서 말이야. " 


플라스틱 소주 컵이 소리 없이 부딪히고, 다른 한 켠에선 조용히 TV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늘 집에서 입던 반 쯤 헐렁한 나시를 입은 누나의 모습이 오늘 따라 여러 감정이 들게 한다. 

단 둘 이서 이렇게 술을 마신 것이 얼마만 일까. 하얀 나시 겉으로 검은 속옷 끈이 보이는 것이 자꾸만 내 시선을 피하게 한다. 


" 너 뭘 자꾸 힐끔거려? 설마, 누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거야? " 


" 케헥, 켁, 내가?! 미쳤다고 누나를 그런 눈으로 봐? " 


대뜸 웃음을 터뜨리며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오는 누나 탓에 조금 옆으로 몸을 옮겼다. 


" 그래도 다 큰 남자애가 부끄러워하긴. 동생한테는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 


" 진짜 미쳤나 봐. 머리 다치더니 인격까지 변한 거야? " 


" 아 왜 그러지 말구. 내 눈에는 너도 동생보다는 남자로 보이는데? " 


" … 진짜 그러다가 큰일 난다. " 


" 응? 무슨 일 나는데? 뭔데 뭔데? " 


내 옆으로 딱 달라붙어 내 양 어깨 위로 팔을 올려 목을 감싸는 탓에 등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감각에 황급히 몸을 떼어냈다. 

아무리 사고가 나서 기억이 온전치 못하다고 해도, 이건 죄책감이 심하게 든다. 

가뜩이나 술이 들어가 멀쩡한 사고가 힘든 마당에 너무 자극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 튕기긴. 너도 좋으면서. " 


" 도대체 이걸 좋아할 사람이 어딨다고 그래? 23년을 봤다고. 누나가 여자로 보일 리가 없잖아? " 


" 에이, 그러면 오히려 괜찮은 거 아니야? " 


" … 제발 개소리 좀 그만해. 내가 치울 테니 잠이나 자. " 


어지러운 시야를 겨우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 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많이도 마셨구나. 둘 이서 5병이면 절반 씩 마셨다고 해도 내 평균 주량은 아득히 넘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소파에 등을 기대고 날 지그시 바라보던 누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 있잖아. 너한테 누나는 어떤 사람이었어? " 


" 갑자기 뭔데 그게? 원수지 원수. " 


식기를 싱크대에 내려두고,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는지 재차 들려오는 목소리. 


" 아 그러지 말고, 어떤 누나였는데? " 


술김인지, 괜히 장난기가 돌아버린 것인지. 

나는 양치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가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 뭐든 해 달라는 거 다해주고, 날 좋아해주는 누나. " 


내가 말하고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정반대의 모습이다. 

뭐 하나 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 댓가를 요구하고, 내 주변 인간관계에 온갖 핀잔을 주며 간섭하려 들고, 심지어 여자친구가 있을 때엔 집에서 놀겠다고 잠깐 집을 비워 달라 부탁하니 알았다고 말하더니 집 거실에서 반 쯤 옷을 벗고 있지를 않나. 


뭐 이것저것 많았지. 덕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여자친구에게 오해를 사고 괜찮아 지나 싶었다만 시도 때도 없이 데이트 중에 누나가 전화를 건 탓에 다른 여자냐며 의심을 받고 이런 저런 일이 있어 헤어지기도 하고. 

어째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 혹여 지금이라면 내가 부탁을 하면 납득하는 거 아니야? 


" 진짜? 근데 그게 다야? " 


양치를 하고 있던 탓에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뭐 믿거나 말거나, 어차피 자기 성격 그대로 돌아갈 텐데 그게 지금 중요한가? 

세면대를 바라보며 이빨을 닦고 있으니, 거울 한 켠에서 비틀거리며 내게 걸어오는 누나의 모습이 비추는 것이 아닌가. 

당황해 뒤를 돌아보니, 내게 업히듯 몸을 늘어뜨리고, 손을 파닥파닥 거리기 시작했다. 


" 뭐 하는 건데? " 


" 칫솔. "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내 어깨 너머로 튀어나온 누나의 손에 칫솔을 쥐어주고 치약까지 짜 주니 그제서야 내 몸에서 떨어졌다.


" 만약 내가 그런 누나였으면, 너도 분명 날 좋아했겠네? " 


아무 말 없이 이를 닦고, 입 안을 헹궈냈다. 

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비웃듯 내뱉었다. 


" 그런 누나였으면 분명 동생도 좋아했겠지. " 


느긋이 거실 소파로 가 앉으니 조금 시간이 지나서 양치를 끝냈는지 내 옆으로 누나가 다가와 앉았다. 


" 뭐야, 그럼 아니었다는 소리야? " 


" 아니었지. 누나 덕분에 여친 하고 헤어진 거 알아?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 


눈 앞의 tv 스크린에선 몇 번이고 채널이 돌아갔다. 마땅히 볼 것도 없었다. 

방에 들어가서 잠이나 잘까. 아무래도 술 김에 슬 졸음이 밀려오고 있었으니까. 


" 누나가 해줄까? " 


" … 뭐를? "


" 여친. " 


리모컨을 누르던 손가락이 멈추고, 고개가 자연스레 옆으로 돌아갔다. 

두 다리를 비스듬히 올리고 앉아 날 또렷이 바라보고 있던 그 눈동자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 미쳤냐고. 남매끼리 그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 


" 왜? 책임지려면 이 방법밖에 없지 않아? 너가 책임지라매. " 


" 보통은 누나 친구들을 소개 시켜 주던가 하겠지. 그게 정상적인 사고냐고. " 


" 으으으응 그치만 아깝잖아. 난 우리 동생이 좋은데 내 친구한테 넘기라니. "


" 미쳤나봐 진짜. 술도 잘 마시는 양반이 왜 이래? 들어가서 잠이나 자. " 


" 헐. 설마 그거야? 나 자고 있는 틈에 조용히 들어와- 우브브븝 " 


" 아 좀 닥치라고. 도대체 자기 누나를 여자로 보는 미친놈이랑 동생을 남자로 보는 미친년이 어딨어? " 


입을 손으로 막고, 한숨까지 푸욱 내쉬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내 방으로 도망치듯 걸어왔고, 침대에 몸을 던져 천장에 시선을 돌렸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급하게 마셨던 술이 깨기는 커녕 이제 와서 더 취기를 물고 오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정말 멀쩡한 사고를 하지 못할 것 같았기에 눈을 감고 잠이나 청하려 했으나, 어째 맘처럼 되는 일이 없다. 


" …… 뭐해? " 


" 응? 뭐가? " 


" 그러니까 왜 내 침대에 같이 누워 있냐고. " 


" 그러니까 이게 뭐가? "


" …… . " 


고개만 옆으로 돌리자 좁은 침대 탓에 몸을 쪼그리고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 누나 진짜 그러면 덮쳐버린다. " 


이 정도까지 했으면 화들짝 놀라 나가겠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어째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어 고개를 돌리니, 여전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뜩이나 변해버린 모습과 더불어 술기운에 그 미친년 같던 누나가 여자로 보일 지경이건만 이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 …… 누나? " 


" 난 괜찮은데. " 


" …… . " 


천천히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와중에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날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에 이게 꿈인가 싶었다. 

조용히 걸음을 옮겨 방에서 나왔고,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소파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날 따라오기라도 하는 듯이 내 옆에 앉는 모습에 이젠 짜증이 몰려왔다. 


" 왜 그러는데 도대체. 내일 아침 되면 배게 던지면서 후회할 짓 하지 말고 곱게 가서 자. "


" 나 지금 술 다 깼는데. 애초에 취한 적도 없고. " 


" … 아까 비틀거리던 사람이 할 말이야? " 


" 아 왜. 취한 척 했는데 안 받아준 너가 잘못한 거야. " 


"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우리 가족이라고. " 


" 몰라. 난 그런 기억 없는데 자꾸 너가 우기는 거잖아. " 


" … 하. " 


인내심의 한계였다. 되려 누구 말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당연히 우문을 꺼내는 것은 누나인 것을 알면서도 술에 찌든 내 몸은

자꾸만 다가오는 누나를 거부하기 어려워 하고 있는 것에 화가 밀려왔다. 

그래. 차라리 질러버리고 나면 당황해 그만두겠지 싶어 손을 뻗어 헐렁한 누나의 나시티 바깥으로 가슴을 살짝 움켜쥐니, 

옅은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되려 내가 당황해 고개를 돌려보니 술기운인지, 이 상황 탓인지 빨갛게 달아오른 볼. 그리고 야릇하게 날 쳐다보는 시선이 날 마주하고 있었다. 


" … 누나? " 


" …… 누나 말고. " 


" …… 지금 뭐 하는 거야? " 


" 누나 말고 이름으로 불러줘. 그리고, 만지고 있는 건 너잖아? " 


한번 더 움켜쥐자 야릇히 흘러나오는 신음에 손을 떼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친누나라고. 기억을 잃어 멀쩡한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 … 안 하는 거야? " 


" 당연한 걸 물어. 아무리 내가 동정이라도 누나를 상대로 발정하지는 않지. "


" …… . " 


이제 서야 정신을 차린 것인지, 말이 없는 누나를 내버려두고 나는 방으로 걸어와 혹시나 해서 방문까지 잠궜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다. 절대로 여자로 봐선 안될 상대에게 손을 뻗은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침이 되면 뺨이라도 맞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겠지. 

저건 누나라기보단, 한 명의 여성으로써 날 보고 있는 게 틀림 없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안다면 당장이라도 호적에서 파버릴 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여러모로 당황스러운 일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애석하기만 하다. 


동시에 문이 달칵거리는 소리, 그리고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 


" 뭐야… 문까지 잠그고. " 

" 야 너 아직 안 자잖아. 열어봐. " 


애써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배게에 얼굴을 파 묻었다. 

내일부터 어떻게 누나를 봐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어차피 병원에 누나를 데리고 한 번 정도 들러야 했으니 가서 물어보자.

언제 기억이 돌아오고… 아니, 기억이 전부 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모르겠다. 문 좀 그만 달그락 거리면 좋겠는데. 

잠이나 자자. 술기운에 실수라도 할라. 





*





술만 마시면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쓰린 속은 덤이다. 

문을 열고 나오니,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방에서 잠이라도 자고 있겠지. 

해장이라도 하러 가자고 할까. 찬물을 들이키고 양치를 하니 그제서야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 잘 잤어? " 


" … 응. "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레 말을 걸어오는 저 모습이 신기했다. 아니, 필름이 끊긴 건가? 

오히려 그렇다면 다행일텐데. 


" 맞아. 펜션 예약해 놨어. 바다 가자 우리. " 


" …… 뭐라고?! " 


" 뭘 그리 놀라? 말 했잖아. 데이트하자고. " 


" …… . " 


" 어제 술 마시기 전에 급하게 예약했지. 밤 늦으면 전화도 안 받을 테니까. " 


뭐가 저리 치밀하단 말인가. 그건 그렇고 바다라니… 너무 갑작스레 짜여진 일정에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 체크인 몇 시 까진데? 짐은 다 챙겼어? "


" 응? 지금부터 챙기지 뭐. 3시까지만 가면 돼. " 


" 하 진짜… 어디 영화라도 볼 줄 알았더니 뭐야 이게. "


화장실 문을 닫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나갈 생각이었건만, 아무래도 아침부터 꽤 바빠질 것 같다. 

팬티만 남겨두고 입을 헹구니 갑작스레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내 입에선 묘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 으힉?! 문을 왜 열어?! " 


" 아 뭐야, 씻고 있었네. 나도 씻어야 되는데 같이 씻을까? "


" 나가라고! " 


" 부끄러워하긴. " 


피식 웃으며 문을 닫는 모습에 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얼마나 휘둘리는 걸까 나는. 차라리 예전의 누나가 더 편했는데. 





*





" 사람 꽤 많네. 없을 줄 알았는데. " 


" 여름이잖아 시국이 이래도. 그냥 집 근처로 가면 좋았을 것을… . " 


오랜만에 바다를 봐서 좋았다기보단, 착잡했다. 여자친구도 아니고 친누나를 데리고 펜션을 잡고 바닷가로 놀러 오다니 

이게 평범한 가족 사이인가 싶기도 하고… . 


" 아… 급하게 챙기느라 선크림을 안 가져 왔네. 해 지면 나갈까? " 


" 그럴 줄 알았다. 알아서 해. 난 안 나갈 거니까. " 


" 지금 누나 혼자 보내는 거야? 너무하네. "


" 나가서 헌팅을 당하던 뭘 하던 하라고. 그러고 보니까 누나는 남친 안 만들어? " 


" 뭐야 그게. 남친? 글쎄, 필요 없지 않을까. "


" 무슨 소리래 그건 또. 맨날 꾸미고 향수 뿌리는 것 치고는 설득력이 없잖아. " 


" … 너는 내가 남자친구가 생기길 원해? " 


짐을 풀어 놓고, 냉장고에 음료수와 술을 채워 넣던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왜 저런 눈으로 날 보고 있대? 


" 뭐 그런 걸 물어봐? 누나 자취할 돈도 충분히 모았잖아. 나중에 어디 멀리 가서 살겠다고 돈 모으지 않았어? " 


" 응 그랬었지. " 


" …… 그럼 남자 한 명 꼬셔서 잘 살던가. 나랑은 관계 없지. " 


고기를 냉장고에 넣고 문을 닫자, 여전히 누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 어라? 


" … 근데 누나. 내가 어릴 적에 누나 좋다고 따라다녔었잖아. " 


" 응. 그랬었지. " 


…… . 


" 아, 나 잠깐 편의점 좀 다녀올게. 선크림 사다 줄까? "


" 응? 같이 갈까? "


" 아냐, 금방 갔다 올게. 나 담배 한 대만 피고 오게. " 


" 너 담배 안 피잖아. " 


심장이 미칠 듯이 뛰고 있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차갑게 날 바라보는 누나의 눈빛이 금방 이라도 날 얼려버릴 것 같았다. 왜? 어째서?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멋대로 판단했던 걸까? 

부모님은 기억을 잃었다는 말에도 슬퍼하는 모습은 커녕 누나의 모습을 보고도 괜찮다며 웃으며 대답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핸드폰을 쓰는 누나의 핸드폰은 홍채, 지문, 얼굴 인식이 아닌 비밀번호로 되어 있을 것이다. 

회사에 관한 질문도 무엇 하나 하지 않았다. 

누나 때문에 여친과 헤어졌다는 말에도 무엇 하나 의문이나 부정이 없었다. 

과거에 돈을 모은 이유를 내뱉으니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게 답을 했다. 

내 어릴 적 철없던 시절 누나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담배를 안 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한 거지? 그렇게 흔적이 많았는데? 

아니, 그것보다 어째서 과거의 기억을 전부 잃은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던 거지? 

그렇다면 어젯 밤 그 일들은 전부 뭔데? 어째서? 


" … 누나? " 


어느덧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내 텅 빈 동공 사이로 누나의 얼굴이 들어왔다. 

내 양 쪽 얼굴을 손으로 잡은 누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옅게 웃으며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 왜 그래 갑자기? 멍 때리고. " 


" 아 뭘 까먹고 왔나 해서. 급하게 나와 가지고. " 


" 그러게. 다음부터는 좀 계획을 짜고 나와야 할까. " 


콧노래를 부르며 빙글 몸을 돌려 자신의 가방을 확인하던 누나는 수영복을 꺼내 들었다. 


" 이거 어때? 괜찮지 않아? " 


" 어? 어… 응. " 


" 뭐야 그 반응은. 재미없어. "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나는 황급히 주머니를 손으로 더듬거렸고, 핸드폰이 있는 걸 확인하자 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무어라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보이던 누나였지만 대충 볼일인가 싶어 넘어가는 눈치였다. 

나는 다급히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인 채 내뱉었다. 


" 아빠. 누나가 아빠나 엄마 얼굴 보고 바로 기억했어? " 


" 넌 뭘 갑자기 그런 걸 묻냐? 당연하지. 의사한테 들어보니까 사고 난 당일 기억만 잃었다고 하더만. "


" …… 아, 응 알았어. 일 힘내. " 


" 갑자기 애가 웬 전화를 하나 했더니, 알았다. 누나 잘 챙겨줘라. " 


끊긴 통화. 동시에 끊어진 내 사고 회로. 

그리고 천천히 화장실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 안 잠갔구나. 


" …… 뭐… 금방 들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 


" 그, 그러게 누나. 다행이네 난 또 괜히 걱정했잖아? " 


" …… . " 


말 없이 내게 다가와 화장실 한 가운데에 서 있던 나는 자연스레 말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차가운 눈빛으로 내게 걸어오는 누나의 모습에 뒷걸음질 치다, 욕실 구석에 등이 부딪히고 말았다. 


" 있잖아. 너는 누나가 싫어? " 


" 응?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 


무서웠다. 공포의 원인을 몰랐다. 왜 내가 지금 눈 앞에 있는 누나를 무서워해야 하는 것인지 단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누나는 거짓말을 쳤을까? 왜 내게 솔직히 대답해주지 않았을까? 왜 나는 그때 의사에게 정확한 것을 묻지 않았을까? 


왜 누나는 그런 연기를 했던 걸까? 


" … 실수했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했어야 했는데. 부모님한테도 그렇고… . "


" 그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누나? " 


" 차라리 완전히 기억을 잃었으면 널 동생이 아닌 남편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 


심장이 철렁 내리 앉았다. 

눈 앞에 있는 여성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도통 머릿속에서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것도 친누나가, 남편?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데? 


" 뭐… 상관 없겠지. 있잖아? 난 네가 좋아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넌 아무래도 날 가족으로 보고 있는 것 같네. " 


" 그게 당연한 거잖아? 제발 정신 좀 차려 누나… 지금 이게 무슨. "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코 앞까지 닿아 있었다. 바로 앞에 비추고 있는 누나의 눈동자를 도저히 마주 볼 수 없었다. 


" 부모님한테 부탁해서 도시로 올라와서 단 둘이 살고… 널 넘보려 한 불여시 같은 년은 다 처리했는데.  

  어째 너는…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나를 여자로 안보네. " 


당연하잖아. 친누나라고? 말이 되는 소리냐고. 그렇게 날 모질게 굴었으면서? 이제 와서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 하긴… 내가 봐도 너무 모질게 굴기는 했어.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가족끼리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냐고. 

  아니지, 어떻게 내가 널 사랑하겠어. 그래서 괴롭히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더라고. 오히려 넌 날 싫어하기만 하고. 

  그래서 차라리 잘됐다 싶었어. 사고가 나고 기억을 잃어 다시 너와 관계를 쌓아 나가면 괜찮아 질 거라 생각했는데… . "


누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옅게 흘러나오는 웃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행복에 겨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헛웃음과 비스므레한 웃음이라고. 


" 뭐, 20년 넘게 봤는데 그렇게 한 순간에 변할 리가 없지. 그래도 조금 실망했어. 

  난 널 가족으로써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이성으로써 사랑하고 있었는데 너는 전혀 아니라는 사실에. " 


" … 누나 제발. 이건 아니야… . " 


" 이미 다 눈치 챈 마당에 내가 물러설 필요는 없잖아? 너와 멀리 떨어져 살기 위해 돈도 모았어. 

  결혼은 못하지만… 애는 낳을 수 있잖아? 푸흐, 그러고 보니 이미 결정된 사실이지만 말이야. " 


" … 그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제발, 우린 가족이잖아… . "


" 있지. 같은 집에 살면서 예비 열쇠가 없을 거라 생각해? " 


동공이 빠른 속도로 흔들렸다.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과 누나의 목소리 하나 하나가 전부 거짓인 것만 같았다. 

오한에 몸을 떨어냈다. 분명 오늘 아침 방 문을 열고 나올 때, 분명 밤에 잠궜을 터인 문이 아무런 저항 없이 열렸으니까. 

동시에 테니스 스커트를 내리는 누나는 팬티마저 내려버렸고, 사타구니로 손을 내려 자그마한 로터를 꺼내 내게 보여주듯 흔들었다.

반들 반들한 윤기. 조금 시야를 아래로 내리자 허벅지 사이를 타고 흘러 내려오는 희멀건 액체. 


그대로 주저앉았다. 말도 안된다고. 다 거짓이라고. 

이게, 이게 현실일 리가 없다고. 


그럼에도 자세를 낮춰 쪼그려 앉아 나와 눈을 맞춰오는 누나의 시선을 피했지만, 내 턱을 손으로 쥐어 시선을 돌리는 모습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부정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짓이기를 바랬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누나는. 


" 사랑해. "


"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라고 누나 제발, 이건 아니야… . " 


좌절했다. 절규했다. 섬뜩한 악몽이길 바랬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내 앞에서 악마가 속삭이고 있는 듯한 상기된 목소리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널 위해서 지금까지 모아왔던 돈을 드디어 쓸 수 있겠네. 부모님 모르는 곳으로 가서 단 둘이 살자. 

  아니, 셋이서 살자. 도망치지는 말아줬으면 해.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감금하기는 싫은 걸… . 

  받아들이면 되잖아? 내가 널 사랑하고 있어. 너도 날 사랑해주면 돼. 그 뿐이잖아? 

  생각보다 간단해. 가족이기에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 그렇지만 사랑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잖아.  

  … 울지 마. "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의 이유는 뭘까. 

인생이 망가졌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 일까. 

확실히 누나를 밀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벌어진 지금 상황에 대한 죄책감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눈 앞에 있는 한 여성에 의한 공포일까.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혀로 쓸어가는 그 모습에 난 실성하고 말았다. 


그 누구보다 오래 봐온 가족이 이런 사람이었을 줄 상상도 못했다. 


천천히 내 바지를 벗기는 그 손길을 뿌리치지 못했다.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상식 밖의 상황에 멀쩡한 사고가 불가능했기에. 그저 몸을 떨어내고 있었으니까.





" … 아직도 날 가족으로 보고 있어?  





  괜찮아. 네 아기가 나오면… 읏. 





  너에게 있어 난 한 명의 여자가 될 테니까. "









 " 사랑해. 가족으로써의 감정이 아닌, 연인으로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