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https://arca.live/b/yandere/35763354


-말라고? 거 뭐 별거 아닌데

 

얀호는 얀붕의 물음에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뭐 그게 좋은 건 아인데 나쁜 것도 아이다. 마 신경 안써도 된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상하지 않아? 매번 똑 같은 냄새에 소리에다…

 

얀호는 얀붕의 동기로, 외갓집에 있다던 신기를 어느 정도 타고 났다. 선녀보살로 유명한 이모 정도는 아니지만, 귀신을 볼 정도는 되었다. 어릴 적부터 귀신을 많이 보아서였을까, 얀붕은 호들갑스레 자신이 요즘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의 어깨 너머에 떠있는 노란 머리 여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얀붕을 내려볼 뿐, 언제나처럼 변함이 없었다.

 

아카대에 오기 전까지 얀붕의 삶은 결코 평범하다 할 수 없었다. 아주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이후 언제나 혼자였다. 사고라 알고 있었지만, 어른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서 그 사고란 우울증으로 인한 것. 아마 아버지의 바람기가 이 사단을 불렀으리라, 얀붕은 회상한다. 언제나 말없이 용돈만 식탁 위에 둔 채 입학식에도, 운동회에도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 얀붕은 그런 아버지에게 더 이상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마 그럼 니 외동이가?

-한때는 아니었는데, 이젠 맞아.

 

다들 어린이날이면 놀이공원을 갔네, 외식을 했네 하는 와중에 낯선 ‘이모’들을 맞이해오던 얀붕.지금 얀붕과 비슷한 나이대의, 향수가 아주 독했던 여자와 족제비를 닮고 맛있는 것을 많이 챙겨주던 아줌마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한다. 이제는 뼛가루마저 남지 않은 엄마를 본능만이 찾던 4학년 무렵, 화려한 미인을 새엄마라 불러야했고, 4살 위의 누나도 끼어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말하는 애미라는게 새엄마라고?

-응. 이젠 다 늙어서 이쁘지도 않아.

 

얀붕의 결벽증도 이 무렵부터 시작했다. 새엄마는 얀붕을 RPG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다루곤 했다. ‘왜 이번엔 시험 점수가 평균 2점이나 깎였냐’, ‘언제 입었던 옷이길래 아직 세탁기에 넣지도 않았냐’부터 버스 한 번 놓쳐 20분 늦었을 때는 40분이나 현관에 세워두었다고 한다. 일기장이나 문자 내역까지 마구 감시하는 새엄마에게서 애정에 대한 욕구는 자연히 4살 위의 누나에게도 옮겨졌다.

 

-병신.

 

애석하게도, 자식은 부모를 닮는 법이다. 아니, 보고 배운대로 하는 것뿐이다. 누나는 새엄마의 히스테리에 정면으로 맞섰다. 불러도 대꾸 없이 방으로 들어가 헤비메탈로 대답한다거나, 교칙 따위 보란듯이 무시하는 노란 머리에 화장, 핫팬츠의 기장에 비할 정도로 줄어든 치마 등은 그녀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님을 보였다.

 

-니도 보통은 아니네. 취향이 그 쪽이가?

-아니, 잘들어. 그 병신이라는 말에는 뭔가 설명하기 힘든 게 있어. 그 왜 ‘으이구 인간아~’하는 거랑 비슷한데…

-부산에서 가까운 아랫사람보고 ‘야 이 문디야~’ 이란다. 뭐 그런 거가?

- …그거랑 뉘앙스가 비슷하네.

 

 언제나 밤늦게 들어오고, 또 담배냄새로 사우나를 한 채 들어왔던 누나였지만, 그래도 얀붕에게는 싫지만은 않은 누나였다. 처음 버거리아에 갔을 때, 얀붕은 그 ‘병신’이라는 말에 담긴 뜻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쯤 치즈버거를 먹으러 버거리아로 가는 길은 꽤나 으슥한 골목을 지나야 했지만, 그래도 얀붕에겐 더 없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누나는 ‘얀챈동 할리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나쁜 형들이라며 새엄마가 얼씬도 못하게 했던 고등학생들. 얀붕이 현장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뒷골목은 마침 그 하이에나 무리가 점거하고 있었다. 그래도 꼴에 아비라고 용돈을 3만원 쥐어준 것이 도리어 화가 되었다. 얀붕은 돈을 꼭 쥐었지만, 어린아이의 힘으론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돌려주세요!

-들르즈스으~ 야, 오늘 치킨 각 아니냐?

 

그리고 그때, 집에서 익숙하게 맡아왔던 담배냄새가 지나가더니 둔탁한 소리 몇 번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놈들이 달아날 새도 없이 허연 부채꼴이 번뜩이더니 이내 땅에 떨어지는 쇳소리. 방금 전까지 눈물에 먼지로 범벅이 된 얀붕이 히죽 웃으며 누나라고 불렀고, 그런 얀붕을 가리키며 누나는 양아치에게 한마디 했다.

 

-이건 내거다.

 

교복에 묻은 담배냄새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달라붙는 동생에게 누나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었다.

 

-병신

 

-니는 그거 때문에 지금도 담배 핀다는거재?

-누나 생각나면.

 

누나는 얀붕에게 좀처럼 말이 없었고, 얀붕 역시 누나에게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이전까지는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했지만 오히려 거리낌 없이 어리광부렸다. 그에게 그 ‘병신’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칭찬이었을지도 모른다.

 

-…귀신도 말하는 거 듣냐?

-듣고 보고 다 한다. 와?

 

얀붕은 잠시 기다려보라며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끄적인 뒤 얀호에게 건넸다. 꼭 집에 가서 보라던 종이에는 목욕할 때면 서로 씻겨주느라 같이 들어갔고, 누나는 그럴 때면 곰인형을 끌어안듯이 안았다고 적혀 있었다.

 

-아무튼 잘 때도 새엄마 몰래 누나 방에서 같이 자다가 냄새 때문에 걸려서 혼난 적도 많아.

 

어른들의 손가락질을 받든, 되도 않는 것들의 추파를 받든 얀붕에게 누나란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가 15살이 되기 전까지는. 그 날은 새엄마의 히스테리가 없던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가끔 집에 모습을 보일 때면 런닝에 팬티바람이던 아버지께서 모처럼 검은 정장을 갖춘 채로 얀붕을 불렀다.

 

-…가자.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가던 얀붕은 액자 앞에 들어서서야 모든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새엄마는 미친 것처럼 나쁜 형들에게 뺨을 후려갈겼고, 어째서인지 그렇게 사납게 굴던 일진들은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맞고만 있었다. 오토바이 사고였다. 쓸데없이 끼부린다며 거칠게 꺾은 핸들은 오토바이를 투석기로 만들었고, 뒷자리에 앉았던 누나는 당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얀붕은 가끔 가위를 눌린다고 한다.

가위라고 했지만,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저 버거리아에서 들었던, 익숙한 손톱 튕기는 소리와 담배냄새에 잠시 깨는 것이 전부였다. 의사는 사춘기에 죽음을 경험한 충격 때문일 것이라는 말을 했을 뿐, 건강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근데 얀진이 있잖아.

-가는 또 말라고?

-내가 걔하고 연애할 때 이야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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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기까지. 시간 나면 나머지 만들어 오겠습니다. 당분간 교생실습 때문에 고생길 오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