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ㅡㅡㅡ


필멸의 시대 268년



"에릭! 생일 축하해!"


그런 축하의 말과 함께 집안이 시끌벅적 해진다.


전체적으론 잘 정돈되어 있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엔 먼지가 쌓여 있고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는 흔하디 흔한 가정집.


내 생일로 인하여 지금 파티가 한창이였다.

남들이 보기엔 딱히 특별한거 하나 없는 작은 잔치 일지라도 나한테 만큼은 어느 저택의 파티보다도 화려하고 신나는 분위기로 느껴졌다.


"벌써 성인이 되었구나, 짜식! 세월이 이렇게나 빠를 줄이야!"


그런 아버지의 장난끼 섞인 말투와 함께 내게 잘 포장되어 있는 상자를 건네 준다.


오늘부터 나도 15살인가.... 


어렸을땐 그저 멀기만하고 입에 담을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던 단어는 금세 시간이 지나고 내게 다가왔다.


똑똑똑


"앗, 내가 나가볼게!"


누군가 현관을 두드리자 어머니는 식탁에 먹음짓 스러운 음식을 올려놓고는 현관으로 나가는 뒤로 돌기전 엄마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뭔가 불안했다.


"자 들어오렴!"


현관 문을 열자 보이는 사람은....


"아... 안녕..? 새... 생일 축하해..!"


뭔가 많이 부끄러워하면서 작으만한 선물 상자를 들고 있는 에리카였다.


"에리카...? 낮에 올거냐고 물어볼땐 그런건 가족이랑 보내는 거라면서 거절해놓고 왜 온거야?"


"오면 안돼?! 내가 오겠다는데 뭔 상관이야!"


오늘따라 유난히 더 까칠하게 대하는것 같은 그녀....


옆집에 사는 에리카는 나보다 한살 많은 누나로 어렸을적부터 같이 지내왔다.

어렸을적엔 정말 친하게 지내왔는데.... 어느세 부턴가 조금 까칠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래도 나쁜 사이는 아니기 때문에 조금 튀격태격해도 친한 누나로 생각하며 함께 자라왔다.


"상관은 없는데.... 생일 파티는 가족이랑만 보내야 좋다고 했지 않았어?"


그런 나의 의문을 답하듯 엄마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에리카가 너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뜻이잖니?! 다시말해서 너와 결.혼 하고 싶다는 말 아니겠어?"


"아... 아주머니!! 그런 뜻이 절대 아니에요!!"


장난끼 섞인 미소로 이유를 설명하는 어머니와 얼굴을 잔뜩 붉히며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에리카에 의해서 분위기는 더욱 시끄러워졌다.


"아무튼! 자 이거나 받아!"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조금만한 상자를 내게 건넨다.


"부끄러우니까 나중에나 열어봐...!"


아까부터 나를 봐라볼려하지 않고 계속 초점을 내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향해 있었다.


"고마워, 솔직히 이렇게 선물을 준비해주다니 감동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며 웃어보이자 그녀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ㅡㅡㅡ


"우아..... 배부르다..."


간만에 과식해버렸다.


"으음..... 아무리 그래도 조금 많이 먹어버렸나.... 먹고 바로 누우면 건강에 안좋은데.... 조금 졸리네...."


침대에 눈을 감고 편한히 누워있자니 의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천천히 수면 아래로 잠기듯이 가라 앉고있었다.


"조금 일르지만 그냥 잘까...?"


그런 생각을 하자니 조금이라도 저항하고 내 정신은 순식간에 끈을 놓아버렸다.







"음......"


정신을 차렸을땐 어느 이름 모를 장소에 홀로 서있었다.


"여긴.... 어디지...?"


그런 혼잣말을 내뱉으며 주변을 광경을 돌아보자 뭔가 신비한 느낌이 몸을 감싸 안기 시작 했다.


마치 황금 처럼 빛나고 어느것보다 순수하고 더렵혀지지 않는 광활한 노을, 그리고 그 노을 빛에서 느껴지는 따스함과 포근함이 왕도 전체를 뒤덮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장관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나로 하여금 경이로운 감각까지 들게 만든다.


그런데 뭔가 묘한 느낌이 들게 되었다.


무언가 이 장소가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그리우면서도 생소하다는 여러 감정이 섞여 아이러니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뭔가 서러워하면서도 쓸쓸히 노을 빛을 봐라보며 홀로 앉아 있는 한 여인....


나는 무언가 이끌린듯 외로워보이는 소녀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이름 모를 여자에게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기분이 더욱 강해지며 한편으론 불쾌감을 자아내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그녀에게 다가가게 된다.


"저기...."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러보자 그녀는 이쪽으로 뒤돌아보기 시작 했다.


미인.... 그녀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만이 스쳐지나갔다.


금발이 휘날리며 노을진 배경과 어우러졌고 정말 연극과도 같은 연출감에 나도 모르게 감타하게 되버린다.


그리고 그 감탄은.... 그녀의 다음말에 당혹감으로 바뀌게 되었다.


깜짝 놀라하며 마치 내가 왜 여기있는지 물어보는듯이......


"에릭...? 너야....?"


내 이름을 외쳤다.


분명 초면일텐데.... 그녀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대체 어떻게 된것인가... 나는 왜 여깄고 내 앞에 있는 소녀는 왜 나를 알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듯 내 시야가 급격하게 어두워져만 갔다.






ㅡㅡㅡ


내가 다시 눈을 떴을땐 너무나도 친숙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꿈이였나....."


오늘도 어김 없이 침대에서 몸을일으키지만 지난 꿈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다소 편하지 못한 기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꿈을 생각 할 수록 여운이 잠기게 되고 뭔가 모르게 서글픈 감정에 무력감 마저 들게 되었다.


"에릭 일어났어? 아침 먹으러 내려와."


방문을 열고 반쯤만 모습을 보인 엄마가 그런 말을 툭 내뱉고는 다시 내려가 버렸다. 


하지만 내려간것도 잠시 다시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 한다.


"에리카...?"


"안녕 잘잤어?"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등장....


"너가 왜 여기에 왔어...?"


"왜냐하면 할 말있어서 왔어, 일단 아침 먹고 둘이서 어디 나가기로하자 조금 중요한 이야기라서..."


평소잡지 않게 느껴지는 엄숙함이 나로 하여감 긴장감을 몰려오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할려고 그렇게까지 진지한건지.....


"알았어..."


하지만 분위기가 워낙 진지해서 무언가 반박 할 수가 없었다.



ㅡㅡㅡ


"자 이 돈 받고 에리카랑 가서 이것저것 하다 오거라."


무슨 일이신지 같이 시간을 보내라고 돈까지 주시며 외출을 강요하시는 부모님....


아침 식사도 그녀뿐만이 아니라 엄마도 아빠도...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 여유로움이 없다 해야할지.....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무거운 편이였다.


하지만 그런 이질적인것도 잠시....


"자 에릭! 나 오늘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밖을 나오자 거짓말 처럼 분위기가 전환되어 나의 손을 이끌며 어디론가 향하는 에리카.


다시 평소처럼 환하게 웃으면서도 유난히 상냥함이 느껴지는 대우에 이끌릴 뿐이였다.




그 후 나와 에리카는 연극을 보거나 평소 잘 가보지 못했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도 하고 시장에서 이것저것 구경도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사기도 하는등 무언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가를 즐겼다.


그리고.... 슬슬 해가 질 무렵....


"에릭! 도착했어!"


찬란한 노을빛이 왕도를 주황빛으로 물들 시간.... 에리카는 내게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있다며 왕도 위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계단을 꽤 올라서 그런지 그녀도 나도 조금은 숨을 차고 있었다.


"내가 최근에 알게된 장소야.... 어때? 노을빛이 지는게 예쁘지 않아?"


그녀는 기대에 차있으면서도 살짝 불안해 하는 눈빛으로 나를 봐라보았다.


"예뻐....."


내가 그렇게 답하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래?! 그럼 같이 노을이 지는걸 구경하자' 하면서 밴치에 앉는다.


풍경이 정말 예쁘다..... 하지만 그런 감상도 잠시..... 암울하면서도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광경..... 절대 처음이 아니다.....


기억을 되새기며 이 풍경을 떠올릴려하자 나는 어렵지 않게 이 곳이 어디서 봤는지 기억하게 되었다.


"여긴 분명.... 꿈에서...."


"응? 에릭 뭐라고? 작게 말해서 잘 못들었어."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는지 에리카가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내게 귀를 기울일려 한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다시 노을빛을 봐라보며 내 어깨에 기대게 된다.


평소보다도 내게 거리를 좁히는 그녀.... 무언가 이상했다....


"에릭.... 이제 너도 나도 성인이지...?"


또 아침 처럼 분위기가 조금 진중해지기 시작 했다.


"응.... 벌써 이런 나이가 되다니... 세월 참 빠른것같아...."


"있지.... 너는 몰랐겠지만 나 사실 너희 부모님이랑 줄곧 이야기 해왔던게 있어...."


"뭐...?"


중요한 할 말이 있다는듯 그 어느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봐라보았다.


"우리 부모님하고도 이미 이야기를 다 끝마친 상태야.... 있잖아 에릭..... 넌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


성인이 되었으니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건지에 대한 전망을 물어보는건가....


"글쎄.... 우리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한창 몸이 날렵할때 모험가로 일해보며 생계를 유지하다 가게를 물려받지 않을까...?"


"그렇구나..... 넌 어렸을적부터 강했으니까.... 실제로 꽤 강한 몬스터도 몇 마리 잡아봤잖아? 재능이 휼륭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 그녀의 본심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있지..... 우린 줄곧 함께 지내왔잖아....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며 때론 가족 처럼 지내왔지...?"


"그렇긴한데...."


얼굴을 서서히 붉히는 그녀의 표정이 나로 하여금 출처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주게 된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너희 부모님도 같이 지내던 다른 애들도 그렇고.... 우리보고 뭔가 연인갔다고도 했지?"


"응... 그런 말을 꽤 많이 듣기는한데...."


"에릭...."


뭔가 불안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다음 말이 인생의 갈림길에 스게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에리카....?"


"우리 약혼하자...."


갑자기 날아들어온 폭탄 발언.....


"뭐...?!"


"어렸을적부터 줄곧 너를 좋아했어.... 내가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까칠하게 대해주기도 했지만... 난 너를 사랑해왔어...."


갑작스러운 그녀의 프로포즈.... 


"너와 내 부모님하고는 이미 이야기를 맞춰놨어.... 아주 좋아하시던데? 너는 어때...?"


나의 손을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이 떨리는것이 느껴져 왔다.


그녀는 지금 인생 최대의 용기를 짜내어 내게 고백해준 것이다..... 눈가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지만 걱정과 두려움 마저 베어져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내 아내가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인생을 살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그게...."


난 왜 망설이고 있는 걸까...?


그 이유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에릭...? 너야....?'


꿈에서 만난 정체 모를 여자가 내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마치 있어선 안될 존재가 있는것 마냥 당황한 표정을 짓는 그녀가....


하지만 그 그런 당황스러운 표정안엔 감동과 그리움 그리고 간절함과 절실함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치 감동의 재회를 한 것처럼 눈가를 적시던 금발의 소녀의 모습이 나를 우유부단하게 만든다. 


"천천히 생각해도 괜찮아...."


기다려주겠다는듯 나의 손을 쓰다듬으며 어느때보다도 상냥하게 웃어주는 에리카....


그래... 나는 왜 망설이 있는걸까... 왜 꿈속의 여자를 생각하는걸까..... 안만날지도 모르는... 애초에 실존하는지도 모르는 여인을 왜 신경쓰는걸까....


결정했어.....



"에리카.... 나는....."


"어....?"


나의 말을 가로막듯 귓가를 울리는 얼빠진 소리를 낸것은 에리카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에리카 자신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조금 당황스러워 하는 기색이었다.


여기에 다른 누군가가 온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자 언제부터 왔는지 모를 한 소녀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에릭.....?"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녀.....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그녀와 처음 만났으면서도 이미 한번 만나봤었다.


마치 황금 비단과도 같은 금발에 어두운 분위기를 띄우는 검은 왕관을 쓴 소녀.....


"에릭.... 정말로 너야....?"


그런 분위기와는 다르게 나약한 소녀 처럼 목소리를 떨며 나를 부른다....


정말로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왜 여깄는지... 정말 실존하는 인물이였는지.... 모든것이 엉망이고 머리의 생각이 난잡해서 현기증이 날것만 같았다...


확실하다.....


"아아..... 너가 나를 떠난지 15년..... 지금 15살이라면 얼추 맞는건가...?"


내 나이까지 정확하게 맞추며 어느센가 부터 눈물을 쏟아낸다.


그녀의 눈동자는 의구심에서 점점 확신으로 바뀌더니 옅은 미소를 짓는다.


확실하다.... 꿈에서 만난 의문의 여인....



"정말 기뻐....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꿈속에서 만났던 그녀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