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 -


또각 -


그렇게 일을 다 끝마친 후, 아리스는 날 도울 수 없다는게 아쉽다는 말을 남기며 부실로 돌아갔고, 나와 유우카는 학생회의실에 남은 서류를 마저 정돈한 뒤.. 카페에 가기 위해 밀레니엄의 기나긴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중이였다.



"아리스양은 먼저 가버렸네요."


"그러게. 우리 연기에 속아줘서 다행이지."


"... 대체 아리스양과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는 얘기도 사실대로 말 못할 정도로 아리스양의 눈치를 보는건가요..?"


"유우카. 너는 저번에 나에게 '아리스는 외로움을 잘 타는것 같다' 라고 얘기했지."


"...저에게 질투를 곧 잘 한다는거네요. 맞죠?"


"뭐야, 눈치챘구나?"


"아니.. 눈치 못 채는게 더 이상하잖아요! 최근들어 아리스양은 뭐랄까, 틈만나면 선생님을 쓰다듬어들려하고, 반대로 자기가 선생님에게 쓰다듬을 받으려 하질 않나.. 마치 시도 때도없이 주인에게 관심을 요구하는 강아지처럼 행동하니까요. 무엇보다 -"


그 순간 유우카는, 뭔가 살짝 겁에 질린듯한 눈을 하고있었다.


"...가끔식 절 무서운 눈으로 노려 보고는 하니까.."


"....."


"그 아이는 아마.. 제가 평소 선생님의 옆에서 보좌하는게 부러워서, 저를 질투하는 거겠죠?"


"아마 그렇게 되겠지..."


"...이제 알려주세요. 선생님. 최근 아리스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귀엽고도 세상 천진난만한 아이가 한순간에 무서워진건지 말이에요."


"어.. 아리스가 처음으로 내 업무를 도와주러 회의실로 달려왔던 날을 기억해? 그것도 마침 너와 내가 본방을 들어가기 전에.."


"자, 잠깐! 갑자기 그런 낯뜨거운 얘기 하지말라구요!"


유우카는 다급히 내 말을 끊고는, 부끄러움에 볼을 붉게 물들였다.


"그래. 아무튼.. 그날 저녁, 아리스가 나보고 막 무슨말을 했었어. 최근들어 날 보면 이상한 감정이 느껴진다더라."


"...."


"내가 자기 시야에 안보이면 불안하고, 내 옆에 누군가가 붙어있는걸 보면 가슴이 아파온다는거야."


"그건 아마 연모와 질투... 아리스양이라면 선생님을 그냥 친구정도로 여기며 좋아할 줄 알았는데, 좀 의외네요? 그런 감정을 느낄 정도면 아예 선생님을 직접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여자의 심리에 대해 잘 아네, 유우카? 평소 계산과 효율에만 관심을 두는줄 알았는데... 이런 소녀같은 감성도 지니고 있었을줄이야."


"으..선생님! 지금 저 놀리시는거죠!!"


유우카는 그 앙증맞은 손으로 주먹을 쥐더니, 살짝 분풀이를 하듯 내 어깨를 약하게 두드렸다.


내가 지금 한 말은 자칫하면 유우카에게 장난을 넘어 상처수준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서로에 대해 깊숙히 잘 알고있는 나와  유우카는 이게 그냥 농담으로 하는 소리라는걸  잘 알고있기에 괜찮으리라.


"아하하.. 미안.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아리스는 그 감정들을 스스로도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었어. 버그나 오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정도로 말이지. 그래서 나에게 이 감정들이 뭐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뭐라 답하셨나요?"


"평범하다고. 그냥 아리스가 날 좋아하기에 생기는 당연한 감정이라고 대답했지."


"꿀발린 입으로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어휴.."


"아니, 이건 어쩔 수 없었어. 그렇다고 사실대로 '아리스, 너는 내 옆에 있는 학생들을 보고 질투하고 있는거야, 날 독점하려 드는거라고 -' 라고 말하기에는 뭐하잖아."


"...하아."


유우카는 날 못말리는 짱구를 보는 눈빛으로 응시하더니, 이내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날은 그렇게 넘어갔고.. 그 다음날은 아리스가 내 일을 도와준 덕분에, 오후 2시라는 이른 시간에 조기퇴근을 할 수 있었지. 근데 아리스가 자기 덕분에 일을 끝냈으니 보상을 달라는거야."



원래대로라면 이 얘기 말고도,


아리스가 몰래 내 숙소에 들어와 같이 밤을 새가며 게임을 했던거랑, 그래서 내가 그 다음날에 피곤해서 일을 못하고 졸고 있을 때 아리스가 나 대신 업무를 모두 처리해준 것도 있지만...


이것들까지 전부 얘기하면 유우카에게 크나큰 오해를 사고, 엄청나게 혼날지도 모르니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거 아마..'데이트' 였죠?"


"..어떻게 맞췄어?"


"그 날 아리스는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굳이 누가 말 안해도 상황이 어찌된건지 다 보이더라고요."


"그러면... 그 날 나한테 아리스에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라 귀띔해줬던 이유도..?"


"네. 아리스양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고 잘 놀다오라는 소리였어요. 뭐..그렇게나 질투심이 많은 아이일줄은 전혀 예상 못했지만."


"알면서 배려해준거구나. 고마워, 유우카."


"..이, 이런 사소한걸로 고맙다는 말을 해도, 상 같은건 없다구요.."


유우카는 퉁명스럽다는 듯이 그리 말했지만, 어느덧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리며 내 시선을 피하고 있는게 보였다.


...그 사소한 감사인사 조차에도 수줍움을 타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유우카의 행동이, 왜 이렇게나 사랑스럽게 느껴지는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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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간에, 그렇게 데이트를 끝냈는데... 아리스가 내게 질문 하나를 하더라고,"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요."


"그 불길한 예감이 맞아. 유우카.  아리스가 나에게  '특별히 좋아하는 학생이 있냐' 고  물어봤거든."


"어..난감한 질문이기는 하다만... 선생님이라면 분명 '없다' 라고 대답하셨겠죠? 이게 선생인 자로써의 가장 무난한 대답이잖아요."


"그래.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않았어."


"어..어째서인가요?!"


"무난하지만 재미없는 대답이니까."


"정말이지...가끔식 선생님이 어른인지 애인지 구분이 안간다는거, 스스로도 자각하고 계시긴 하나요? 무슨 애도 아니고 재미타령을.."


"하하.."


유우카의 팩트에 그만, 나는 뻘쭘한 채 멋쩍은 웃음만을 지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뭐라 답하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난 유우카 너 말고 연애대상으로 여기거나 사랑하는 학생이 단 한명도 없어."


"그..래요오..? 흥.."


유우카는 내 말을 듣고 몸을 떨거나 말을 흐리는 등, 무지막지하게 기뻐하는 티가 났지만.. 애써 기쁨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퉁명스레 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리스 앞에서 네 이름을 얘기했다가는...알지?"


"..그래서 제 이름이 아니라 설마 - "


"응. 그 설마야. 아리스라고 말했어."


"못 살아요, 정말!"


"...미안. 하지만 양다리나 그런건 아니라는거.. 너도 알고있지?"


"뭐, 충분히 이해는 가요. 선생님이 무슨 페도필리아라도 되서 아리스양을 진짜로 사랑하는건 아닐테고, 아리스양의 기분을 맞춰주기위해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 정도는요. 그러니 전 딱히 아무렇지 않지만... 아리스양은요?"


"......"


"아리스양은 그 대답을 곧이 곧대로 믿었을텐데, 선생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소리를 듣고 엄청나게 기뻐했을텐데..."


"..내가 나쁜 놈이야."


"맞아요. 이번 건은 선생님의 잘못이라구요. 순진한 어린아이의 마음에 거짓말을 불어넣다니.."


"..이제와서 사실대로 말해주기엔 늦은거겠지?"


"그런것 같네요. 아리스양이 왜 오늘 대낮부터 자기가 정실이니 뭐니 떠들면서 선생님에게 들러붙어 있나 했더니, 선생님의 그 말을 듣곤.."


"....."


"그래도.. 아리스양은 착하니까. 일단은 이대로 지내보는 수 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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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유우카는 그 후,  카페에 가고 드라이브를 하는 등,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만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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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으...선생님과 헤어진지 고작 5분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부터 아리스는 선생님이 보고싶습니다...]


아리스도 선생님이 바쁘신 분이라는건 잘 알고있습니다.



비록 선생님은 힘이 쎄거나 튼튼한 용사는 아니지만...


항상 모두를 지휘하고 이끌어주며,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마스코트와도 같기에..수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있다는걸 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항상 아리스의 곁에 있을 수는 없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그럼에도 슬픈건 어째서일까요.



[선생님이...아리스만을 소중히 여기는건..]


[..역시 무리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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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선생님께선 밀레니엄의 안보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다 하셨던가요?


아무튼 선생님이란 직책은 참으로 힘든 것 같습니다.


HP가 만땅이던 딸피이던 간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한다니..



[..부디 힘내세요. 필멸자여!]



비록 지금 아리스의 옆에 선생님이 계시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게임 속 성녀가 파티원들의 회복을 위해 기도를 올리듯이, 아리스도 눈을 감고 양손을 모으며,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는 심정으로 혼잣말을 외쳐봅니다.


..선생님에게는 이런 아리스의 기도가 닿았을까요? 기왕이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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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지금처럼 선생님이 아리스의 곁에 없더라도, 아리스가 선생님이 무슨 행동을 하고있는지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요..?]


아리스가 부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어가며 선생님에 대해 고민하던 그 때 였을까요. 



"저기..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아리스양."


[어라..?]


복도 맞은편에서 - 약간 서툰듯한 목소리에, 베이지색의 머리를 하고있는 한 학생분이 아리스에게 인사를 건네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