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트


사람은 누울 곳이 중요하다. 고급 시트와 매트리스 아니면 폭신한 베개 ㅡ기왕이면 껴안을 수 있음 더욱이 좋다. ㅡ같은 게 중요하다


아니면 옆에 있는 사람


“오빠, 잠이 안 와?”


“아니.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런 걸 보고 잠이 안 온다고 하는 거야.”


여동생의 뒤척임에 낡은 매트리스에서의 은은한 곰팡내가 희미해진다.


“그렇네, 잠이 안 온다 이걸 어쩌지"


“나 참, 내일 학교도 가야 하는 사람이 잠이 안 오는데 실실 웃고 있어?"


“어차피 일교시 공강이야”


“내가 일교시 강의 있잖아. 태워줄 거지?"


“물론이지 졸음 운전자가 무섭지 않다면야"


“그럼 내 목숨을 위해서라도 더더욱 빨리 재워야겠네. 자, 여기 베개 돌려줄 테니까 푹~ 주무세요"


“...”


“왜 그래? 뚫어지게 쳐다보고"


“아니 베개 맘에 들면 이번에 하나 더 살까 해서"


“아니 괜찮아, 그렇게 큰 베개 두 개나 둘 자리도 없고"


“네 명이 딱 안정감 있는데…”


“오빠…”


“아니다. 잘자"


“응.. 잘자"


베개는 껴안는 편이 안정감이 있어 좋다.


둘도 좋지만 넷이라는 숫자가 안정감이 있어서 좋다.


시트는 깨끗한 게 좋지만


매트리스에서 곰팡내가 있어야 안정감이 들어 좋다.


옆에 사람이 있어야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좋다 그 이상의 것일지도 모른다.


“오빠, 잠 안 오지"


“눈 감고 잘도 아는구나”


“한두 번 같이 잔 것도 아니고 오빠 잠버릇 나쁘거든."


“난 너랑 한두 번 잔 것도 아니지만 방금 처음 알았어.”


“괜찮아 심한 것도 아니구."


“다행이다. 그래도 미안하네.. 좋다 내가 내일 밥 함 산다!”


“오빠"


“응? 사실 이번 달은 좀 후달려서 비싼 건…”


“나만으로는 부족할까?”


“...”


“나도 이제 알 만큼 알아. 사실 철들 때부터 알고 있었어 게다가 자랑스럽게도 우린 철이 빨리 들어버렸지?”


“그런가. 나는 철이 든 지 모르겠어."


“우리 오빠가 철부지긴 하지.”


“야.”


“오빠 나도 다 알아"

“오빠가 왜 잠을 못 자는지”

“오빠가 왜 그 베개를 좋아하는지"

“오빠가 왜 굳이 나랑 같이 자는지"

“오빠가 왜 그렇게 넷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지"

“오빠가 왜 곰팡내 나는 오래된 매트리스를 시트만 갈아서 쓰는지"


“그럼 다음 내가 할 말도 알지?”


“... 잘까?”


“응. 잘자"


“오빠.”


“응?”


“한 번만 쓰다듬어주라.”


“응.”


“오빠.”


“응?”



“난 어디 안 가니까. 그 베개처럼"


“너도 사실 껴안는 베개 가지고 싶은 거지?”


“아니, 나는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없어도 없는 대로 좋은데?”


“솔직해져도 좋은데"


“솔직하게 말하고 있어. 나는 엄마나 아빠처럼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고"


“아이고 우리 동생 언제 이렇게 컸대? 이왕 날 생각한다면 자립해주는 편이 더 기쁠 텐데"


“그러게 오빠? 내가 누굴 닮아서 옆에 누가 없음 불안하거든."


“난 아닌 듯?”


“그건 그렇네 오빠? 옆에 누가 없다고 불안하면 대학 생활을 자발적 아싸로 보내진 않겠지?”


“글쎄다 동생아, 내가 누굴 닮아서 옆에 누가 있음 불안하거든."


“난 아닌 듯?”


우리가 정말 닮았다면 우린 누가 옆에 있으면 불안하고 없어도 불안한 게 되는 건가.


““....””


“야.”


“왜 아싸 오빠"


“나 여친 생겼음"


“뜬금없네”


“놀라지도 않네"


“놀랐어 뜬금없이 갑자기 그런 말 꺼내서"


“니가 내 걱정 많이 하는 것 같아서… 그냥 그 뭣이냐 걱정하지 말라고"


“괜히 나쁜 꽃뱀한테 물린 거 아닐까 더 걱정되는데?”


“괜찮아 나 돈 없는 거 애들이 다 알거든."


“와 걱정 늘리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신가?”


“아무튼 그렇다고. 여친도 애들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들에게선 술냄새는 나더라도 지독한 향수내는 나지 않으니까 나쁜 사람은 아니다.


““....””


“오빠.”


“왜 아싸 동생"


“내가 말을 잘못한 거 같아서”


“뭔데"


“옆에 누가 없음 불안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


“그게 뭔 소리야"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소리. 남매가 쌍으로 철부지네, 우리 참 많이 닮았다. 그치?"


“글쎄다.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더 이상 내 입에서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자 여동생은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생각해봐도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서 나도 그녀를 등진 채로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낡은 매트에서 나는 냄새와 체온으로 덥힌 베개의 온기 덕분인지 나는 30분쯤 지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영락없는 철부지라니까”


쪼그려 앉아 잠에든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니 이처럼 철없는 아이가 또 있어?


키도 얼마 크지 않고, 해를 보지 못한 피부는 앳되어 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부드러울지 상상이 간다.


그런데 이것도 이제 나만 만지는 게 아니란다. 내 손 이외는 닿지 못한 불쌍한 머리카락도 이제 다른 주인을 찾는단다. 돈이 아깝다며 곧장 나한테만 기대던 오빠가 이젠 다른 사람에게 기댄단다.


딱 잘라 말하지 못할 감각이었다. 가슴이 쿵 가라앉은 거 같은데 오히려 숨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다랗다.


절대 평범한 가정의 남매라면 가질 수 없는 무언가이리라. 그건 이미 특별하다는 뜻 아닐까?


아무나 가질 수 없고 눈앞에 있지만 표현할 수도, 실재를 가질 수도 없는 무언가를 특별하다는 말 이외로 표현할 머리는 내게 없다.


“으음…”


“오빠? 잠버릇으로 무언가 잡는 버릇은 고치는 게 좋아?”


내 소매를 잡은 오빠의 집게손가락을 가벼이 쥐었다. 만화처럼 덥석 끌어안는 것보다 이렇게 소심케 잡는 것이 더 심장에 나빠


“가지 마…”


“... 안가”


먼저 떠나간 주제에,


이 지독한 잠버릇도

같은 매트에 눕는 것도

과거를 겹쳐보는 것도


이젠 나와 상관없게 만든 게 누군데


“비겁해”


 최대한의 앙심을 담아 아직 때 묻지 않은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흐트러진 머리 사이로는 나와 쏙 닮은 얼굴이 힐끗 보였다.


아빠가 떠난 뒤, 술집 일을 한 엄마가 비싼 옷과 음식을 가져왔던 것을 보면 우리 남매는 꽤나 먹혀주는 얼굴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많이 닮았는데, 역시 다르긴 한가 봐 오빠”


오빠는 누가 없으면 불안하고 누가 있으면 불안하다. 옆에 있어 줄 누구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분명하게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처음 아빠가 떠났을 때도, 엄마가 떠났을 때도 이렇게 불안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남은 가족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


“결국, 오빠도 가는 거야?”


날 위해 고생한 오빠가 행복해지겠다고 한다면 말릴 수 없겠지만, 이왕이면 같이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남을 위하는 행복이란 말이 사실이라면, 나와 오빠가 멀어지는 게 행복이라면 난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


그럼 같이 행복해지면 좋을 텐데

오빠만 행복하고 내가 불행한 것보단, 우리 둘 다 행복한 게 훨씬 좋잖아


헛소리도 뭣도 아닌 엉뚱한 생각을 제치고, 오빠의 머리카락을 제치고, 이제 임자가 생긴 입술을 제치고, 볼에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 댄다.


볼만큼은 내가 어릴 적부터 임자였으니 상관없지 않을까


“혹시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데리러 갈지도 몰라? 그러니까 반드시 행복해”


나는 다시 이불에 들어가 오빠의 등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오빠의 등에서 매트와 같은 냄새가 났다.


“가지 마…”


혹시 오빠가 날 닮지 않았을까 싶어 옷자락을 잡지만, 돌아오는 말이 없어 그대로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


후?회 섞어서 쓸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