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나에게 요구한 일은 자신의 혼약자가 되라는 일이었다.


"하지만 공녀님 당신에게는 이미 공작님께서 정한 약혼자가 있지 않으십니까."


공녀에게는 이미 가문에서 정해진 약혼자가 있었다. 챈 제국에서 그 누구보다 고귀한 황제의 첫째 아들. 황태자가 바로 그였다.


"그래 나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지. 아버지가 정한 마치 족쇄와도 같은 관계가 말이야."


"그렇다면 어째서 저에게 그런 제안을 하시는겁니까. 저는 황태자 전하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합니다."


"맞아 감히 너 따위는 황태자와 비교할 수 조차 없지. 그는 이 제국의 정당한 후계자이자 미래 제국의 주인이니."


"하지만 그런 너이기에 제안하는거야. 왜냐하면 난 제국의 황후가 되고 싶지 않거든."


"제국에서 가장 존귀한 여성이 되는 것을 거부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알 수가 없군요. 제국의 황후라면 모든 영애들이 바라는 자리일텐데요. 당신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나는 이 남부의 지배자가 될거야."


"그렇다면 더욱 더 황태자의 약혼자가 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장난해? 내가 그의 약혼자가 된다면 나는 황궁에 끌려가서 두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 나에게 필요한건 나보다 잘난 약혼자가 아니야. 나와 이 남부를 이어줄 하찮은 동앗줄이지."


"공작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을겁니다."


"그래 허락하지 않으시겠지. 그럴 수 있으시다면."


나는 그 말이 그녀가 말한 공작가의 비밀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공작님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생각보다 눈치가 좋은걸? 흠 그 점은 좋지 않아. 공작가에 오기 전에 고쳐주길 바래."


"하지만 정답을 어느 정도 맞혔으니 대답해주지. 맞아 지금 아버지는 지병으로 인해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고 계시지. 아까 네게 아버지를 만나기는 힘들거 같다는 것도 그래서 그런거였어."


"공작님께서 그러하다면 약혼을 깰 수 없을겁니다."


"아니. 내가 약혼을 깨겠다고 하면 우리의 잘난 숙부님께서 어떤 이유든 만들어서 도와주실걸? 그는 내가 황태자와 이어지는걸 누구보다도 경계하거든."


남부의 지배자인 수넌 공작에게는 남동생이 한명 존재했다. 그는 공작가를 물려받지 못하는 대신 자작의 칭호를 받고 공작의 수하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설마 그자가 소공자님을 내쫒고 자신이 공작가의 주인이 될 생각을 갖고 있는겁니까?"


"맞아. 그는 내 동생을 몰아내고 남부의 지배자가 될 생각이지. 내가 황태자와 결혼한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매우 골치가 아플거야."


"그렇다면 더더욱 황태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공녀님이 황실과 맺어진다면 그자가 감히 엿보지도 못할 정도로 소공자님의 지위가 확고해질 겁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너는 참으로 눈치가 있는 듯하면서 중요한 걸 눈치채지 못하네."


"내가 말했잖아. 나는 남부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그녀의 야망은 내가 감히 생각한 것보다 더 거대했다.


"제국의 역사상 여성 가주가 존재했던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맞아. 현재로써는 그렇지. 하지만 내가 바꿀거야."


"황실의 조력 없이 정녕 당신이 남부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굳건한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했다.


"이 제안 거절할 수는 있는 겁니까?"


"아니 이미 비밀을 다 알았기 때문에 무리야."


나는 내가 그녀의 덫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비밀을 전부 들어버린 나는 이 덫에 더 깊숙이 들어가거나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두 가지 선택지만이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녀님께서는 자신의 사람들에게 잘해주십니까."


그녀는 내가 결정한 것을 깨달은 듯 했다.


"걱정마. 나는 내 애완동물에게 매우 마음을 주거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그 나이 대의 여자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밝았다.


"에시드 부룬 아니 이제는 에시드 수넌이라고 불러야하나? 환영해 수넌 공작가에 온걸."


그 전까지 부룬가의 삼남이었던 내가 수넌 공작가의 주인이자 남부의 지배자인 그녀의 애완동물이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