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와마테 아카데미답게도, 첫 날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암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들켰으니까 은밀하지는 않지만 어쨌건.

 그리고... 나는 이 사태가 어째서 벌어졌는지 알 것 같다.

 1회차 플레이어를 암살한 2회차 플레이어가, 지금 운동장에서 교장에게 최후의 훈화를 듣고 있었으니까.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정확하게는 모른다. 

 다만, 모종의 사유로 1회차 플레이어에게 2회차 플레이어가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암살을 벌였다는 것은 3회차 플레이어의 관찰 기록에서 나와 있는 바였다.

 그리고, 2회차의 주인공이 튜토리얼에서 부여받은 역할은 '권모술수가 실패하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적나라한 연출로 보여주는 것이다.

 모략가는 무덤을 두 개 파두어야 한다는 격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권모술수란 기본적으로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경쟁자를 제거하는데 성공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대박이지만, 그 사실이 들통나는 순간 그 회차는 망했다고 봐야 한다. 

 바로 이런 식으로.

 교장이 손짓으로 지시하자 교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운동장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장작을 잔뜩 쌓아두고는 기름을 뿌린다.

 2회차의 주인공은, 그 속에 던져지고, 그 위로 교장이 손수 불을 붙였다.

 "꺄아아아아악!!!!"

 뭔가 비명을 지르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불길에 휩쌓인 성대로 인해 금세 끊어진다. 마법이라도 사용했는지 파란 불꽃이 이 학생을 잿더미로 바꾸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하필이면 연단 바로 앞에 서 있던 내 옆으로, 노릇노릇한 고기 냄새가 퍼져온다.

 ...아무래도 오늘은 채식을 해야 할 듯 싶다.

 "아침부터 이런 불장난이라니, 볼 거리가 풍성한 입학식이네!"

 "오물은 소독이다! 하하하! 형편 없는 놈 같으니!"

 입학식 날부터 화려한 불쇼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이에 열광했다. 과거에는 범죄자 처형이 민중의 구경거리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직접 체감하니 어딘가 초현실적인 기분마저도 느껴지는 것 같다.

 이 세상 사람들의 윤리관은 21세기의 현대와는 상당히 다른 면도 있을 뿐더러, 이 세계관 자체가 지극히 막장이었다. 애당초 정상적인 세계였으면 암살자가 판치는 학교가 나올 일도 없었겠지만.

 ...사실 게임이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하여튼, 와마테 아카데미의 입학식은 시작부터 시체 2구를 남기는 기록을 세웠다.

 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말정말 기대되는데.

 * * * 

 나는 학생증을 쳐다보았다.

 "아니 시발, 사람 이름이 어떻게 ABC...."

 그렇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관뒀다.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어차피 글렀으니.

 대충 아무렇게나 적었던 이름인데, 이렇게 빙의할 줄 알았으면 그나마 사람 이름 같이 보이기라도 하는 걸로 지을 걸 그랬지.


 이걸 ㄱㄱㄱㄱ이나 ああああ보다는 낫다고 정신승리라도 해야 하나.

 아, 이런.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네.

 하지만 이건 내 탓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사람이 스테이크 되는 꼴을 직관했으면 이 정도로 끝난 게 어디일까.

 돌이켜 보자면, 아마 100번째 캐릭터의 스텟을 분배할 때 '정신력'을 몰빵했던 탓인 것 같다.

 하도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다보니, 게임에서 '정신력'이 0 이하로 떨어진다면 캐릭터는 정신병에 걸리게 되어 그 이전의 모든 계획을 파탄내버린다.

 그냥 평범하게 수업을 듣다가 정신병이 도져서 교사를 보고는 현세에 재림한 마왕이라며 돌격을 시도하다가 얻어 터진 적도 있었고, 학생회장과 토론 중에 정신병이 도져서 '나가 뒤져라 이 잡것아'라고 하는 바람에 숙청당하기도 했다.

 이딴 세상에 빙의 된 이상, 정신력은 그 어느 능력치보다 소중해진 셈이니 최악은 면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딱 그것 뿐이다. 애당초 이딴 세상에 빙의한 것 자체가 최악인 건 둘째 치고서라도....

 내가 한숨을 내쉬자, 거울 속의 나도 한숨을 내쉬었다. 100회차 정도 되면 외형을 설정하기도 귀찮아서 랜덤으로 나오는 생김새를 리셋도 없이 그냥 쓰고는 했는데, 그나마 기본 외형치고는 볼 만한 꼴인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아, 거울 속의 눈동자가 빨갛다. 이는 필시 혁명을 상징하는 색일 터, 이 아카데미를 교사의 피로 물들이고 혁명을....

 아니 내가 뭐라는거야.

 어쨌건, 교실에 들어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고민은 그냥 구석에 집어 던지기로 했다.

 교실로 가는 길목은 이리저리 사각지대가 많아, 매복에 유리한 구성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문은 특히나 방어력을 위해 불괴 속성의 특수합금으로 되어 있으며, 교실 내부에는 무기로 쓸만한 이런 저런 것들이 있는데, 이건 교실 공성전을 대비한 시설이다.

 다른 아카데미물에서는 학급 대항전이라고 하면 각 반의 대표끼리 싸우는 운동회의 개념인데, 여기서는 서로의 성적을 걸고 상대의 교실을 목표로 공성전을 벌여댄다.

 생전부지의 사람과 현피를 뜰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젠장.

 마우스로 클릭할 때는 그냥 재밌었는데.


 * * *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막장이 되었는지를 따지고 보자면, 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이런 저런 요인이 있겠지만, 간략히 말해서 이쪽 세상 사람들이 품은 세계관의 근간은 사회진화론이다.


 즉슨,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것은 '상식'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사회진화론에 대한 광신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몰라도, 하극상은 당하는 놈이 병신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하극상에 당한다는 것은, 기존의 약자와 강자의 입장이 뒤바뀌는 것 뿐이라던가.


 그렇다보니 권력자들은 아랫것들이 자신의 지위를 탐낸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당장 자기들도 그렇게 올라오지 않았는가?


 지금 황제부터가 민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전대 황제를 참살한 군인황제인 판국이니.


 그렇기에 이들의 자제는 아카데미에서 일찍이, 권모술수를 배운다.


 아랫 것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뭐, 그렇게 애써봤자 세월이 흐르면 풍비박산나는 가문이 한 둘이 아니다만.


 * * *


 아카데미물의 첫 시간 국룰은 당연히 능력측정이지만, 여기서는 그럴 일이 없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아카데미답게도, 옆에 있는 동급생은 결코 친구가 아니다.


 오히려 언제고 암살을 날릴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적에 불과하지.


 그런 적에게 능력이 대단함을 뽐내봤자 뭐하겠는가?


 위험분자로 찍혀서 암살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의 능력을 측정하지 않는다.


 굳이 능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나중에 개별로 찾아오란다.


 이용료는 자기부담으로.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뭐, 그래서 설명했다시피 능력은 자기가 알아서 측정해라. 그럼 이제 와마테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도록 하마."


 학생들이 일제히 긴장했음이 느껴진다.


 '살아남기'란다.


 평범한 학교 같았으면 과장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선 그냥 순도 100%의 진실이다. 수틀렸다간 시체로 결정☆되는 곳이니까.

 "그럼 일단 안내문을 읽도록 하마. 어디 보자.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와마테 아카데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

 선생이 주의사항을 하나 하나 읽어내려갈 때마다 주위에서 경악의 오케스트라가 개최된다. 대충 경악 교향곡이라고 이름 붙이면 되려나.

 그만큼 선생의 발언 하나 하나가 충격적이었다.

 불타 죽는 학생을 보고 비웃던 녀석조차, '최소한의 허용 가능한 안전기준' 따위의 소리가 나오자 질색을 하고 있다.

 역시나, 와마테 아카데미는 이쪽 세상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가히 인외마경인가.

 하여튼, 선생은 굉장히 사무적인 태도로, 딱 하라고 정해진 말만 하고 있었다.

 자기소개나 통성명?

 그런 건 당연히 없다.

 선생님 가라사대,

 "너희들이 내일 살아있을지 죽어있을지도 모르는데 서로 이름 알아서 어따 쓰라고?"

 라나...

 그 말을 들으니 세삼 바베큐가 되어버린 2회차 주인공이 생각난다.

 하여튼, 오리엔테이션인지 사망예고인지가 끝나고 나면 학생들끼리 탐색전이 시작된다.

 이 탐색전에서 기세를 제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다들 알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들이 무례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정중한 편이었지.


 이유는 간단하다.


 여기서 무례한 언동을 들은 피해자는 속으로 분을 삭히는 대신, 그 말을 한 놈을 불태울 수도 있으니까.

 결국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 최중요 사안이다.

 무엇 하나라도 명분을 주게 된다면, 아카데미 생활은 쫑난거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얼마나 깊은지도 알 수 없는 가면을 쓴 채 서로를 탐색한다. 

 위장과 가식, 기만 속에서 이들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좇고 있다. 하물며 그들 자신조차 썩 도움되는 편은 아니겠지...

 뭐, 나 역시 그렇지만.


 이 세상은 원작 지식이라는 게 있어봤자 별 의미도 없는 세상이라, 내가 저들보다 나은 면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부터 의문스럽다.


 하지만 뭐, 별 수 없이 해야지 어쩌겠나.


 구덩이에 묻혀 바베큐가 되는 것 만큼은 사양이니까.



 * * * 
 

 거짓과 기만, 위선과 가식을 두른 대화에 별다른 영양가가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몰랐던 사실을 하나 새로이 알 수는 있었다.


 "그런데, 저번에 화형당한 녀석은 대체 왜 암살을 시도했답니까?"


 "아, 그게... 그 둘이 사실 연인관계였는데, 남자 쪽에서 여자의 집착을 못 견디고 얼마 전에 해어졌다네요. 그리고 그 남자가 다른 여자한태 고백하는 모습을 보고는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는 그만..."


 와, 이런 미친. '개인적인 원한'이 저거였나.


 뭐, 내가 저 꼴이 날리는 없을태니 나이스 보트는 신경 꺼도 되겠다.


 하여튼, 지금 내가 설정한 ABC(...) 라는 캐릭터의 능력치를 보면, 혼자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유형이다.


 일종의 킹메이커, 2인자 포지션이라고 봐야지.


 물론 이런 포지션을 내가 원했을리는 없다.


 당연히 기연도 혼자서 독식하고 혼자 다 해쳐먹기를 원하지, 이 좋은 걸 왜 나누겠나?


 다만... 내가 만든 캐릭터에 빙의할 줄 몰랐다는 게 문제였을 뿐.


 내가 고인물 소리까지 할 정도로 겜창이었던 건 아니지만, 혼자 북 치고 장구치다 보면 결국은 질린다.


 '십자군 왕들'을 플레이 할 때도 황제보다는 가신이 더 꿀잼이었다.


 그 결과 이꼴이 났지만.


 하여튼, 나는 섬길 주군을 찾아야만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그러니 돌연사 하지 않을 정도로 암살 대처력이 있으면서 나를 내칠 생각은 못 할 정도로 정치력이 딸리거나 정에 약하고, 마법이건 검술이건 무력이 강하고 조직 활동에 적극적인 그런 맞춤형 주군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울리가 있나.


 결국 탐색전을 벌이면서 적당히 현실에 타협하고, 그나마 괜찮은 상사를 고르려던 중...


 '월척이다!'


 


 적당히 써먹을 법한 호구를 발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