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편 : https://arca.live/b/yandere/54475603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 동안 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오라버니가 없어도 열심히 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솔직히 4일 만에 피 터지게 연습한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깨어난 오라버니 앞에서 처참하게 패배하는 꼴을 보여줄 순 없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빡세게!

열심히!

뛸 걸!


안일했다.


사실 이번 레이스 따위 지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오라버니가 깨어나지 않았으니까.

오라버니가 내 곁에 있지 않으니까.

오라버니가 내 트레이닝을 봐줄 수 없으니까.


오라버니는 알고 있을까?

남들이 행복하게 전속 트레이너와 같이 트랙을 달리며

트레이닝 하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 지 말이야.


하지만 이젠 괜찮아.


앞으로 그런 날들이 많을 거니까.

앞으로 오라버니와 함께 이 빈 트랙에 내 발자국으로 그림을 그려나갈 거니까.


그러니 똑똑히 봐 줘.


나, 라이스 샤워.

오라버니가 있어야만 강해질 수 있다는 걸!



****



"왜 자꾸 나보고 잊으려고 하는 거야...!"


내게 안긴 채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

그녀의 체중 때문에 온 몸이 살려달라고 노래를 부르지만

난 그저 그녀의 찰랑거리는 검은 생머리를 손으로 쓰담으며.


"나 따위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랬거든...."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 라는 걸림돌이 너의 찬란한 미래를 막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기에

날 하루라도 빨리 잊길 바랬다고.


그래서 칼 맞은 그 순간에도 무섭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때 무서웠던 것이 있었다면.


"나를 잊지... 못 하고... 네 꿈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어....

나는... 나 없어도... 관중들 앞에서... 멋지게 달리는 라이스 샤워가... 보고 싶었거든...."

너무 오랜만에 말해서 그런 걸까.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성대를 찢어놓는 거처럼 목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라이스 샤워에게 '부재'라는 큰 상처를 줬으니까


가장 중요할 때에 곁에 있어주지 못 했으니까.


"괜찮아! 나도 오라버니 맘 다 이해해! 더 이상 말 하지 마!

내가 고통스러워 한다는 걸 느낀 걸까.

그녀는 조그만한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그 때 느꼈다.

나는 라이스 샤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걸.

아직 라이스 샤워의 곁을 떠나기엔 너무나 멀었다는 걸.


"그리고 다시는 잊어달라고 하지 마.

나는 오라버니를 잊을 생각, 떠날 생각 죽어도 없으니까.

그러니 오라버니도 다시 나를 떠나지 말아줘.

다시 말도 안 통하는 버러지 같은 놈들이랑 싸우지 말아줘.




오라버니가 없으면 내 꿈도 의미가 없으니까."



나는 다시 조그만한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녀에겐 이 행동이


'알았다. 네 곁에 있어주겠다.'


라는 행동으로 알아들길 바라며.




****



"굉장히 지쳐보입니다. 라이스 샤워씨."


승부복으로 갈아입는 라이스 샤워씨에게 살짝 도발을 걸어보았다.


너무 처참하게 패배하는 것이 걱정되서.

아슬아슬한 차이로 내가 1착을 해야 내가 더 부각되기 때문에.


"메지로 맥퀸씨. 시덥잖은 말은 그만 하시죠."


하지만 그녀는 차갑게 말할 뿐이었다.

오히려 그게 더 재밌다는 것도 모르는 채.


"트레이너가 당신에게 부탁하던가요?

저, 메지로 맥퀸을 멋지게 격파하라고요?"


"....우리 오라버니는 승부에 미친 놈이 아니야."


승부에 미친 놈이 아니라고?

그런 트레이너는 존재하지 않아!


다들 자기의 실적을 위해, 자기의 승진을 위해 자기 우마무스메가 1착에 집착하기 마련이야!


그런 기본적인 거 조차 모르다니 세상을 얼마나 쉽게 산 거야?

아니면 알고 있는데 트레이너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회피하는 걸까?


"4일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트레이닝하던데 정말로 트레이너의 부탁이 아닌 건가요?"


"내가 열심히 한 건 티비로 보고 있는 트레이너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야."


"트레이너가 당신이 1착한 모습을 좋아하니까요?"


드디어 화가 난 것일까.

나에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가오기 시작한다.


나를 때릴 생각인 거 마냥.


두렵냐고? 아니!

때리면 그대로 나락 보내줄 생각이다.

나를 구타했다는 명목으로


다시는 이 트레센 학교에 발을 디디지 못 하게 만들 생각이었지만


까치발을 들어 내 귀에 입을 가까이 하는 게 아닌가!


"메지로 맥퀸씨. 어설픈 도발은 그만두고 솔직히 말하십시오."


두렵다고.


두려워? 내가 너를? 왜?



"날개를 얻은 호랑이만큼 무서운 게 없기 때문이죠."


난 아무 말없이 대기실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만 쳐다보았다.


그녀가 말한 날개가 과연 짐짝일지,

부스터일지 궁금해졌기 때문에.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지 않은 게 있다.
















나도 그 시간을 헛으로 보내지 않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