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리 캡은 과묵한 우마무스메였다. 그것은 타고난 성정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해나간 처세술에 가까웠다.


평소엔 세상 그 누구보다 오구리를 아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 종종 난폭해지던 어머니, 집안 형편 때문에 눈코뜰 새 없이 바빠 대화조차 제대로 나눠보지 못했던 아버지.


불안한 주변환경이란 건 한 사람의 성격을 뒤바꿔놓기엔 충분한 것이라서, 또래의 아이들처럼 활기차고 발랄하던 오구리가 말을 아끼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오구리의 어머니는 수다스러운 우마무스메였다. 허나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은퇴한 지방의 우마무스메가 흔히 그렇듯 말상대가 없었기에, 오구리는 그녀의 속내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평상시 함께 잠자리에 들 때 그녀를 꼭 껴안아주며 들려주던 애정 어린 말들과, 오구리의 요청으로 레이스를 보러 간 뒤 새벽녘 마지막 전차를 탔던 날 잠이 들 때 했던 날이 선 말들.


'하나뿐인 선물', '소중한 내 딸', '혹덩이', '식탐만 많은 년' 


지나가는 생각으로만 흩어져버릴 것들이었을텐데. 입 밖으로 내뱉어지니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하고 무거운 짐이 되어 자신의 마음 속에 얹혀지지 않았는가.


오구리는 그때부터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내보내는 것에 인색해졌다. 어머니에게 드러내면 안돼.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지방 학교의 먼지투성이 트랙을 달린 뒤면 느끼던 후련한 감정들, 레이스를 보며 느끼던 경쟁심, 틈만 나면 느껴지던 허기와 식사를 할 때 느끼는 즐거운 감정들.


오구리가 과묵하고 무던해질 수록 어머니는 '어른스러워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만족했고, 식비에 대한 걱정과 오구리에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에 그녀는 오구리가 생각하던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로 돌아왔다.


이후 두각을 드러낸 오구리가 유소년 레이스에 출주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벌어들인 그녀의 돈으로 식사나 레이스를 보러 가는 교통비를 해결하게 된 뒤로 그녀가 바라던 모든 것들은 다시 돌아왔지만, 과묵한 성격 하나만큼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뒤로 오구리가 세상을 보는 시선은 다소 편협해져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그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할 법한 일이다. 그마저도 나중에선 약점이 될 뿐이다…


처음 받아본 팬레터에 답장을 쓰기 전까진, 그녀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또 2마신 차… 돌아삐겠네."


"2착으로 들어온 타마모의 기록도 저번 병주보다 단축됐어. 1600m를 달려서 어쩔 수 없는 차이라지만, 오구리도 장거리를 대비해 증량 중이었을 텐데…"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바닥에 드러누워버린 타마모 크로스와, 그녀의 옆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르는 오구리. 기록을 적던 교관은 그런 둘을 보며 솔직한 감탄을 드러냈다.


"굉장했어. 오구리는 마일 레이스라면 G2 레이스 1착에도 도전해볼 수 있겠구나."


"어디서 이런 녀석이 튀나와가지곤. 오버 페이스로 달렸다고 또 한소리 듣겠구마… 오구리, 먼저 간대이."


분한 듯한 표정을 짓던 타마모는 교관이 건넨 기록지를 받아들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구리도 무언가 생각난 듯 교관 쪽을 돌아보았다.


"교관. 내 것도 기록지로 남겨줘."


"음? 오구리 너도 레이스 분석에 흥미가 생긴 건가?"


"아니. 나도 곧 담당 트레이너가 생길 것 같아."


"하아ㅡ?! 어떤 놈팽이가! 그노마가 뭐라 캤노!" 


교관은 물론이고, 발걸음을 옮기던 타마모마저 놀라선 오구리를 바라보았다. 한 술 더해 타마모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짤짤짤 흔들어대기까지 했으니, 아아아아ㅡ 하고 선풍기 앞에 선 아이같은 소리를 내던 오구리는 놈팽이란 대목에서 어깨를 붙든 팔을 떼내고 고개를 저었다.


"내 팬. 음식 같은 이유로 담당 트레이너를 정하진 않아."


"그캐도… 팬이랍시고 매달리던 나부랭이들이 한 트럭인데, 갑자기 대뜸 정했다카니 니라믄 안 놀라겠나. 게다가 '같아?' 그럴 것 같다고 했나?"


"응. 신입 연수 기간이라 한 달 뒤에 내 담당이 되어주겠다고 했어."


"하이고. 생판 신입? 안되겠다. 금마 어데고. 앞장서라!"




⏰




"안녕. 그러니까, 이름이."


"타마모 크로스!"


팔짱까지 낀 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짱딸막한 우마무스메와, 내 옆에 앉아 뚫어져라 날 쳐다보고 있는 오구리. 보통 이런 경우에는 내 반대편에 둘이 앉는게 정상이지 않나. 오구리는 왜 여기 앉아있는 거지? 아무튼간에.


"그럼 타마모라 부르면 될까?"


"그래!"


이사장실을 나서서 느긋하게 교정을 산책하고 있자니 마주치게 되었다. '야가 가가?'라는 의미 모를 말을 뱉은 타마모는 오구리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어느 새 빈 부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듣기론 팬이라카믄서, 오구리가 뛰는 레이스 본 적은 있나?"


스카웃을 할 때 팬이라고 이야기했던가? 단순히 첫 눈에… 아니, 이것도 좀 이상한가. 아무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 임마 아무리 봐도 뱀이다 뱀! 팬이라면서 레이스 한 번 안 찾아봤다는 게 말이 되나!"


조용히 말하려는 듯하지만 오구리가 내 옆에 앉아있는 탓에 그대로 들려오고 있었다. 아니, 들으라고 이러는 건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본 적 있어."


타마모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번갈아보았다.


"처음엔 헷갈렸지만, 못 알아볼 리가 없으니까."


타마모는 그쯤에서 놀란 듯 오구리를 보다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마자 한숨을 푹 쉬었다.


"야가 간갑네. 그라모 나는 됐다. 느작 없는 년이 껴들어서 죄송했습디다. 일 보소."


타마모는 혀를 차며 부실 밖으로 나서버렸고, 졸지에 둘만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옆에 앉아 내 쪽을 바라보던 오구리는 제 옷소매를 내 코 쪽으로 가져다댔다.


"… 옷만 갈아입고 왔어. 냄새 안 나지?"


흙냄새가 난다. 방향제 냄새로 가릴 수 없는 체취도. 솔직히 답할까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야. 연수는 아직도 1달 남은 건가?"


"아마. 그래도 네가 좀만 기다려준다면…"


"그래. 계약서는 편한대로 작성해서 가져와줘."


나는 놀라서 오구리 쪽을 바라보았다. 이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우마무스메가 아직 담당이 없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라서, 내심 교육을 받는 한 달을 기다려줄 리 없다 생각했으니까.


"정말 괜찮은 거야?"


"그래. 그 때 했던 말을 다시 해주겠어?"


"어… 그러니까, 네게서 강한 인상을 느꼈어. 네가 만약 원한다면, 세계 최고의 우마무스메가 되는 것도 꿈이 아닐 거야. 부디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게 해주지 않을래?"


역시 맨정신으로 하기엔 좀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오구리는 잠잠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낯부끄럽네."


역시 이건 무리수였나? 좌절하려는 찰나, 오구리는 내 옆으로 좀 더 가까이 붙어앉았다. 지근거리에 달라붙어 뚫어질 듯 쏘아보내는 시선이 내게 꽂히고 있었다.


"그래. 내게서 강한 인상을 느꼈다 했지?"


오구리는 슬쩍 입꼬리를 올려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트레이너의 레이스에서 얼마나 많은 1착을 독점할 수 있을 지 궁금해."


"오구리…!"


감동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오구리 쪽을 보자,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래. 오구리 캡이다. 잘 부탁해."


꽉.


내 손을 붙든 오구리의 오른손은 미노루처럼 강한 악력이 깃들어있진 않았지만, 땀을 흘렸던 탓에 조금은 축축해 끈적거리고 내 손 전체를 휘어감아 단단히 붙들고 있었기에, 어쩐지 나를 더 강하게 얽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세계 최고의 우마무스메인가. 그때와 변함이 없네.'


교관에게 넘겨받았던 펄롱 타임 기록지를 보여준 뒤, 앞으로의 트레이닝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효용성에 대한 것은 잘 모르지만, 지금 자신의 레이스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그라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무미건조하게 이어지던 레이스. 애써 외면하던 부조리함들을 느낄 때 자신을 끌어올려줬던 건 그의 팬레터였다. 아무 기반도 없는 어린 우마무스메에게 팬레터를 보내고, 넌 세계 최고의 우마무스메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장담하던 그의 존재는 처음엔 장난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허나 관중석 앞에서 이름을 연호하고, 구색만 맞춘 위닝 라이브에 나섰던 때도 끝까지 자신만을 지켜봐주는 열정에 이내 오구리의 마음도 차츰 뜨거워졌다.


이후 찾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는 주변을 수소문해가며 1년 넘게 그의 행방을 찾을 정도였지만, 이름도 모르는 인간 남성을 찾기엔 무리였다. 이후 오구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그를 직접 찾기보단, 그녀가 유명해져 다시금 자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트레이너가 되어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나다니. 심지어 자신의 담당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며 다가오다니. 상상치도 못한 일이라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목표 삼은 이상적인 우마무스메가 누구던간에. 가령ㅡ 홀연 사라져버린 환상의 우마무스메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그의 마음 속에는 오구리 캡이라는 우마무스메가 제일이어야 했기에, 정면으로 승부해 이겨낸다. 


그녀는 그럴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