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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린(28세)

영환기업 재벌가의 막내 딸

영환건설의 전무이사


최시리(??세)

박준성의 수호령


.

.

.


유채린과 최시리.

당장에라도 분노를 폭발하며 부딪힐 기세인 두 사람이

어두운 공간에서 빛나는 서로의 눈동자만을 주시하며

기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당신... 스스로 욕심쟁이라는 생각 안 하나요?"


첫 발을 내딛은 쪽은 유채린이었다.


"생전에 이루지 못 한 평범한 삶?"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 하고 고통받은 운명?"

"당신이 뭐라고 그 모든 한을 다 풀겠다고 그러죠?"

"그것도 자기 능력이 아닌, 다른 사람 몸으로."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넌 이미 나보다 많은 욕심을 부렸잖아.]

[준성이 의사도 안 묻고 방송국 사건을 일으키고...]

[죄 없는 김석훈을 죽음으로 몰았잖아.]

[나까지 없앨려고 했고.]

[네가 먼저 선을 넘지 않았으면,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었어.]


"제가 말했었죠? 제 행동은 욕심이 아니라 자격이라고."

"돈, 권력, 매력까지 전부 다..."

"내 남자를 완벽하게 보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저."

"그 자격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안 한다면, 그게 멍청이죠."

"당신도 그런 나의 가치를 알잖아요?"

"그래서 내 자리를 탐냈잖아요... 아니에요?"


[...뭐 그래, 반은 인정할게.]

[하지만... 네 정신머리는 인정 못 해.]

[사람 의사나 목숨을 함부로 생각하면서... ]

[자격이라는 말을 지껄이는 네 정신말이야.]

[그러니 인과응보라고 생각해.]

[나도 네 의사는 관심 없어.]

[그리고, 내가 네 몸을 빼앗으면...] 

[너보다 더 완벽하게 준성이를 보필할 수 있어.]

[자기가 벌인 사고에 뒤처리도 제대로 못 했잖아, 너.]

[그 사고에서 준성이의 목숨을 구한 사람은 나야, 네가 아니라.]

[여러모로... 너보다는 내가 자격이 있는 사람이지.]

[자격이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멍청이라며?]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잖아요."

"이미 죽었는데 자격이니 뭐니 자꾸 사람이 할 소리를 하네?"

"그러니까 내가 어이가 없지..."

"그리고, 내가 말했죠?"

"당신이 내 흉내를 하면서 준성이 옆에 있으면..."

"그게 사랑이야? 그냥 연극이지."

"당신은 그런 가면놀이 견딜 자신 있어요?"


[...후훗.]


무표정한 얼굴로 말싸움을 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갑자기 최시리가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노골적으로 비웃음을 흘리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뭐야, 아줌마?"

"...왜 그렇게 웃죠?"


순간적인 변화에 말리고 싶지 않은 유채린은

최시리의 외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도발했다.


[너도 나도 준성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겠지.]

[근데 아니야, 알면 알수록 대단하고 매력적인 남자야.]

[너라는 가면을 쓴 나를... 꿰뚫어서 제대로 봐준 사람이니까.]

[네 모습을 한 나를 보고, 내 이름을 똑똑히 불렀어.]


"...뭐?"


유채린의 도발은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안으며 여운에 잠긴 최시리의 태도가

유채린의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그림자 속에서 숨은 내 이름을 불러 줬어.]

[암흑 속에 묻힌 내 눈을 똑바로 봐 줬어.]


최시리는 잔뜩 상기된 얼굴과 목소리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유채린을 내려다보는 듯

당당하게 몸을 폈다.


[이제 나에게 그딴 이간질은 안 통해.]

[되도 않는 욕심이니 자격이니 하는 말들...]

[다 필요없어, 준성이가 날 제대로 봐줬으니까.]

[너에게만 보여줬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모습들...]

[그걸 나에게도 똑같이 보여주었어.]

[그 모습을 본 이상 난 이제 망설이지 않을 생각이야.]


"..."


최시리의 페이스에 말린 유채린의 눈동자가

거센 바람에 휘둘리 듯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최시리는 놓치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너에게 물을게.]

[나를 쫓아내고, 네 몸을 온전히 되찾는다고 해도...]

[준성이가 너까지 다 꿰뚫어보고 있다면...]

[그럼 너는 감당할 수 있겠어?]


"..."


유채린이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최시리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방송국 일이야 뭐...]

[준성이가 워낙 착하니까 넘길 수도 있지.]

[근데 네가 사람 목숨으로 장난친 일은 어떨끼?]

[준성이가 용서할 수 있을까?]


입에서 나오는 공기를 억지로 삼키느라

몸을 심하게 떨고 있는 유채린.


[뭐야? 이제와서 무서워?]

[뻔뻔하고 태연하게 굴더니...]

[준성이가 알게 되는 건 무서운거야?]

[그 정도의 죄의식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최시리가 까치발을 들고

유채린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했다.


[얌전히... 나에게 넘겨.]


유채린의 정신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자

최시리가 깊은 최면의 쐐기를 박음으로써

몸의 주도권을 위한 싸움에 끝을 내려...


"크흡!"


[...뭐야?]


"크흡... 큽...!"


갑작스럽게 웃음 폭탄이 터진 유채린.

입을 막은 양손의 틈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최시리를 벙찌게 만들었다.


"크흐흡... 아~ 귀엽네... 귀여워."


[...뭐?]


"우리 애송이 꼬마귀신 정말..."

"태어나기만 빨리 태어났지, 너무 애송이다."


유채린이 자세를 살짝 낮추면서

최시리를 어린아이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기분 나쁘라고 던진 말은 맞는데..."

"꽤 신경 쓰였나 봐, 우리 꼬마?"

"준성이의 진심이 많이 신경 쓰였구나?"


유채린이 최시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준성이가 널 제대로 봤어?"

"경사네~ 아주 경사야, 우리 최시리씨."

"그래서 이제 자신만만한가?"

"내가 꾸몄던 일과 너의 존재까지..."

"그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 준성이는 날 미워하고..."

"그러면 네가 더 준성이 옆에 어울린다고?"


최시리가 유채린의 손을 격한 몸짓으로 쳐냈다.

유채린은 그런 최시리의 행동마저도 

귀여운 아이의 투정처럼 여유롭게 넘겼다.


"하하, 애송이 최시리씨... 똑똑히 들어."


유채린은 최시리의 얼굴을 부여잡고

자신의 얼굴 쪽으로 확 잡아당겼다.


"준성이가 날 싫어할 일은 없어."


웃음이 싹 사라진 유채린이

최시리의 얼굴을 잡아먹을 기세로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 생각이거든."

"제일 중요한... 단 하나의 진실은..."

"박준성이 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거야."

"내 생에 의미는 이제 그 사람뿐이야..."

"그 사람이 외로운 내 삶에 유일한 동반자고,"

"그 남자가 썩어 문들어진 내 마음의 유일한 구원자야."

"내가 그렇게 정했어, 나에겐 그거 하나면 충분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남자는 내 옆에 있게 만들거야."


유채린의 섬뜩한 눈빛이 최시리의 눈썹에 닿기 직전이었다.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 나 뿐이 아니야?"

"너도 그와 특별한 감정을 교류했다고?"

"여기서 너를 짓밟으면 그만이야."


"내 이런 모습에 환멸을 해?"

"상관없어, 어떻게든 내 옆에 있으면 그만이야."

"약간의 시간과... 내 노력이 해결해주겠지."

"그러니까... 계속 어줍잖은 말놀림으로 날 꺾을 생각은 마."


- 짜악!


유채린의 살벌한 선언이 결국

최시리의 손으로 하여금 분노를 표하게 만들었다. 


[미친 계집...]

[미쳐도 정말... 단단히 미쳤어, 너.]


유채린이 화끈거리는 자신의 뺨을 쓰다듬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너도 나만큼 추하잖아?"

"첫 만남 때부터 날 해치려 했으면서..."

"너도 준성이 옆에 다른 여자들이 꼴보기 싫어서 나섰으면서..."

"분노에 사로잡혀서 김실장 그 새끼를 아주 곤죽으로 만들었으면서..."

"너는 무슨 완전무결하니 뭐니... 어줍잖게 깨끗한 척 하지 마!"


심야의 호수처럼 캄캄한 공간에

두 사람의 몸이 거칠게 부딪히면서 파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뺨을 거세게 치는 소리,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

큰 충격을 받은 누군가가 무심코 숨을 크게 삼키는 소리...

그 생생하고도 살벌한 배경음 속에서

지독하게도 울음이나 비명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백금발의 머리카락 한 줌이 바람에 휘날리더니

이윽고 흑갈색의 머리카락도 한 웅큼 바닥으로 떨어졌다.


굽이 부러진 채로, 바닥에 널브러진 구두에서 

검붉은 줄기가 뚝뚝 흘러내렸고

그 옆에는 밑창이 터진 고무신 하나가

검은 몸체 곳곳에 시뻘건 점들을 새로 장식한 참이었다.


어둠도 이곳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보기가 껄끄러웠는지

주변의 연기를 더욱 진하게 만들며, 그 둘을 꽁꽁 숨기려 하던 순간...


"으엇!?"


"꺄앗!"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어떠한 상처가 나도 신음소리조차 뱉지 않았던 두 여인은

긴 꿈에서 헤매다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꼴처럼

어느 낡은 방의 바닥으로 사이좋게 몸이 던져졌다.


"아... 씨, 뭐야?"

"...응? 왜 멀쩡하지?"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을 둘러보면서

자신의 코와 머리 등등 여러 곳을 쓰다듬는 유채린.

바로 옆에서, 최시리도 자신의 몸을 살피며 일어났다.


"아쉽네, 그 여우같은 얼굴... 방금처럼 망가진 게 보기 좋았는데."


"...네 그 촌스러운 머리카락, 이번엔 전부 뽑아줄까?"

"너도 그 머리 별로 안 좋아하잖아?"


급변한 분위기가 무색하게, 다시 서로에게 살기를 내뿜는 두 여인.


- 벌컥


그런데, 갑자기 둘만 있는 방의 문이 열리면서


"..."


울적한 표정을 지은 한 남자가 여인들의 눈치를 보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 어떻게... 네가?"


최시리가 당황하며 눈을 크게 뜨고

유채린은 너무 놀란 나머지 뒷걸음까지 쳤다.


"그만하자... 얘들아."


남자... 박준성의 입에서 나온 말에는


"너희... 이런 애들이 아니었잖아."

"나 때문에 너희끼리 이럴 이유가 없어."

"이제 제발... 그만해."


이루 말할 수 없을 슬픔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

.

.


오늘 결말까지 다 올리기로 다짐했지만

또 못 지켰다.

(항상 이유는 실력 부족... 연재 소설 안 끊기고 탁탁 잘 쓰는 능력자들 너무 대단...)

(자세한 변명 = 글 쓰면서 느낀 고민은, 별로 안 궁금한 사람이 많을테니 후기에 일기장 느낌으로 쓸 생각.)

근데 진짜 한 발자국 남은 거라서

빠르면 내일, 늦으면 목요일 진짜진짜 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