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쓰다보니까 전보다 더 길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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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 자식이 감히 이 고루시 님을 물로 보는 건가?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가만히 놔두니까 자기 멋대로 누굴 까내리고 있는 거냐?


분노가 치솟는 것과는 반대로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만 간다. 저 앞에 있는 머릿속이 텅 비어있고 뭣도 모르는 신입 트레이너를 죽인다, 라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채워간다. 저 자식을 우마무스메인 내가 때린다면 타박상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이성이 속삭이지만... 이성? 애초에 이 고루시 님은 이성 따위의 같잖은 거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아아, 아무리 하위권의 트레이너라고 해도 담당이니까, 열 받겠지? 미안, 사과할께. 그런데 말이야. 이봐, 선배. 그렇다고 담당 우마무스메 뒤에 숨는 꼴은 남자로서 좀 아니지 않아? 나라면 한심해서 죽을 거 같은데.”


계속 참고 참았지만, 이제는 할 수 밖에 없는 건가. 나는 저 싸가지 없는 트레이너에게 한 방... 아니, 그 이상을 날려야지 분이 풀릴, 까? 다시 내 머릿속의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이성에 의해 다시 사고가 돌아간다. 아, 그래. 진짜 죽지 않을 정도까지만 패면 될 거다. 물론 그 뒤의 정신적 상해라던지 장래라던지 고루시 쨩은 신경쓸 이유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이제는 나도 주체하지 못하는 살기를 담아 신입 트레이너를 노려본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지 파악하지 못한 채로 계속 저 주둥이를 나불거리고 있다. 아아, 치기 딱 좋은 날씨네.


그때, 오른쪽 손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나보다 작은 크기의 손이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얽혀왔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 얽혀 쥔 오른쪽 손의 힘을 더욱 주었지만 금세 익숙한 체온과 체향이 느껴지는 걸 느끼고 힘을 풀었다. 내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트레이너가 손을 잡아 옆에 선 모양이다. 고작 이런 걸로 고루시 쨩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풀릴 리가, 있지. 하지만 저 싸가지는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는 듯이 계속해서 내 성질을 자극시켰다.


“뭔가요? 그 마지막 인사같은 행동은. 본인도 자신의 부족을 이제야 인정하는 겁니까. 흐음, 그래도 이제와서라도 인정했다는 거에 점수를 줄까...요?”


결국 나는 분노를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 죽일 생각으로 살의를 담아 왼쪽 주먹을 내질렀다. 마침 내 거리에 저 싸가지가 들어와 있었기도 했고, 이 거리에서 우마무스메의 움직임을 인간이 인지할 수 없을 거다.


걸리적거리는 놈을 처리할 수 있게 되어 기분이 풀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주먹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마치 내 행동을 예측하기라도 한 듯이 내 주먹 앞에는 트레이너의 손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쯤 하면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 이상은 위험할 거 같으니까 그만 두지 않을래?”


트레이너도 정말, 상냥하다니까♥ 놔뒀으면 방해되는 걸 처리할 수 있었는데 굳이 저딴 쓰레기를 감싸주다니...


“...막지 않았어도 됐는데 말이야.”


“그럼 네가 위험할 걸. 아직 시니어 레이스도 끝내지도 못하고 우마무스메로서의 길을 그만 두게 될 거야.”


하아... 그렇게까지 고루시 쨩을 생각해주면... 나, 더 이상 못 참게 될 거 같아...♥


전신을 감싸는 황홀함과 행복에 얼굴이 풀어질 것만 같다. 그렇지만 트레이너가 내 바로 옆에 있어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기에, 트레이너가 내 표정을 보지 못하게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꼬리가 제멋대로 트레이너의 허리를 감싸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너무 기쁘지만, 아직 방해물이 앞에 건재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겠지. 어떻게 해서든 저걸 보내버리지 않으면 기분이 완전히 풀리지 않을 거 같다. 트레이너가 그렇게까지 걱정해주니 폭력은 쓰지 못할 테고...


내가 이후의 일로 머릿속에 꽃밭을 피웠을 무렵, 저쪽은 반대인 것 같았다.


신입 트레이너는 자신이 맞을 뻔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자각하고는 성을 내기 시작하더니, 미간이 주름이 생기고 얼굴이 빨개진 끝에는 격분했다.


“골드 쉽... 역시 세간의 평가가 맞았어. 저런 통제 불가능한 지랄마라면 이쪽에서 거절하지! 그렇게 떠들고 있었는데 이런 걸 알아채지 못하다니...! 젠장, 내 눈이 잘못 본 건가? 새로 떠오르는 우수하고 인기성 있는 멋진 우마무스메는 개뿔이...! 이딴 난폭하고 고집 세기만 한 우마무스메를 육성하려고 하다니,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어.”


싸가지가 뭐라고 길게 주절거리는 것 같았는데. 뭐, 상관없으려나. 그대로 물러나주기만 한다면 오히려 이쪽이 고맙지! 후후, 저게 사라지기만 하면 우리 트레이너를 어떻게 할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기분 좋고 행복한 것들만 떠올라 살짝 흥분됐다.


차라리 우리가 이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여기는 싸가지가 난동을 피워서 다른 암캐년들의 주의도 이쪽으로 돌려버렸고, 트레이너의 기숙사로 가는게 더 좋을 지도 모른다.


“잡종년이 도대체 중앙에는 어떻게 온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여전히 나불대는 싸가지를 무시하고 트레이너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봤지만 타이밍이 안 좋았던 것 같다.


“트레이너, 그냥 우리가———”


한순간 시간감각이 느려지는 걸 느꼈다. 트레이너를 바라본 순간, 그의 얼굴은 표정이 사라진 무표정이었다. 그렇지만 흥분으로 인해 열린 동공과 수축된 눈동자, 평소보다 크게 뜬 눈과 그에게서 나오는 분노의 냄새.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이 평소의 모습은 사라지고 악귀나찰의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딴 생각을 하느라 정신이 산만해진 나는 순간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트레이너를 붙잡지 못했고, 그 결과 ‘잡종년’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트레이너가 싸가지에게 달려들어 마구잡이로 패고 있었다.


저런 트레이너의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내가 장난쳐도 받아주고 내 자신도 선을 넘었다고 생각되는 장난도 쓴웃음을 지으며 넘기는 화를 잘 내지 않던 트레이너가, 내가 비하를 당했다는 이유로, 욕설을 당했다는 이유로 저렇게 분노하다니... 알 수 없는 충족감에 전신이 뜨거워진다. 감정이 고양되며 하복부가 뜨거워진다. 이건 그도 나를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까. 트레이너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까.


주변의 소음에 점점 깊게 빠지던 정신이 깨어나,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트레이너를 말리기로 했다.


몸을 움직여 트레이너를 붙잡으려는 찰나, 동시에 맥퀸이 트레이너에게 다가가는 광경을 보고 갑작스럽게 고양되던 감정이 이전에 느꼈던 가라앉고 어둡고 질척거리는 감정이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감정에게 몸을 내주어,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맥퀸, 그 이상 다가가지 마.”


“……골드 쉽, 당신. 지금 저에게 질투같은 거나 하면서 저를 막을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요.”


맥퀸의 앞으로 달려가 그녀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트레이너에게서 떨어져. 더 접근하지 마.”


“장난같은 게 아니에요. 빨리 트레이너를 막아야 한다고요!!”


“그는 내 꺼야. 내 꺼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다시 한번 말할게. 꺼져, 맥퀸.”


흘러넘치는 살기를 맥퀸에게로 시선을 돌려 쏘았다. 내 살기를 몸으로 받은 맥퀸이 오싹함에 몸을 작게 떨었다. 그녀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 곧바로 몸을 돌려 트레이너에게 다가갔다.


트레이너는 싸가지의 위에 올라타 마운트를 걸고, 계속해서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하고 있었다. 아직 늦지는 않았기에 그에게 다가가 어깨 아래로 팔을 넣고 그대로 팔을 접어 단단히 붙잡았다. 트레이너 딴에는 힘껏 발버둥을 치고 있겠지만 단단히 붙잡혀 다리를 버둥거리는 것 빼고는 움직일 수 없었다.


우마무스메에 비해 연약한 트레이너를 보니 다시 하복부가 뜨거워졌다. 이성을 힘들게 붙잡고 정신을 차려 싸가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얕게 숨을 쉬고 있는 걸로 봐서는 아직 살아있었다. 문제는 얼굴이었다.


입술이 터지고, 피멍이 들거나 살갗은 찢어지고, 광대뼈는 금이 가거나 무너졌는지, 거의 얼굴을 죽순으로 만들어놨다.


“사람이 때려도 이렇게 변하는 구나.”


“윽, 으읏...!”


“트레이너?”


아무래도 계속 발버둥을 치다가 힘이 빠진 건지, 가만히 늘어져 있던 트레이너가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아쉬워라... 조금만 더 그대로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근처에 모여 에워싼 음탕한 암캐년들에게 계속 견제를 하며, 하는 수 없이 나는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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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면 골드 쉽이 내 양 팔을 잡아서 움직이게 못한 채로 있었다. 눈 앞에는 조금 곤죽 비슷하게 성형된 신입이 있었다. 약간의 케찹은 봐주려나. 결국 사고 쳤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니, 좁아진 시야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건의 가해자는 나, 피해자는 저 앞의 곤죽. 피해자는 하야카와 씨가 부축을 해주어 이 자리에서 옮겨지고 있었고, 주변에서 소란에 몰려든 우마무스메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으며, 아키카와 이사장은 충격! 이라고 써져있는 부채를 펼친 채로 가만히 있었다.


“으음... 충격, 자네가 이런 일을 저지를 줄이야.”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이제 됐으니까 내려줘, 고루시.”


내 말에 천천히 팔을 놓는 고루시. 아아, 진짜로. 저질러버렸어. 앞으로 어떻게 일이 흘러가게 되려나.


“아마, 징계를 받게 되겠죠?”


“그렇다네. 이런 불상사를 일으켜버린 이상은, 징계를 피할 수는 없겠지. 우선은 이 일에 대한 처리는 사태가 수습된 이후에 하도록 하는게 나을 거라 판단했네.”


“고루시의 트레이닝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추후 다른 트레이너에게 임시 배정이 될 거라네. 그 후의 일은...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을거 같아 유감이네.”


마음이 착잡하다. 아직 방금의 일이 당황스러웠는지, 얼을 타고 있는 골드 쉽을 보니 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 URA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끝까지 같이 가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이다.


사실 도중에 한 번 정도는 일이 터질 것 같아 각오를 했다. 그로 인해서 징계를 먹거나 하면 골드 쉽의 레이스 생활을 위해 트레이너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직접 일이 터지고, 겪어 보니 트레이너를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겠다. 이건 나의 미련일까. 억지로 그녀의 옆에 있어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트레이너, 나도 같이...!”


“아니야, 괜찮아. 오늘 트레이닝은 여기까지만 하자. 나머지는 돌아가서 쉬거나 자율 트레이닝을 하거나, 놀고 싶으면 놀아도 돼.”


나와 같이 이사장실로 따라가겠다는 골드 쉽을 힘들게 만류하고 아키카와 이사장이 나를 이사장실로 데려갔다. 잠시 사건에 대해서 아키카와 이사장에게 말하고 있으니, 뒷마무리를 마치고 온 하야카와 씨가 차를 준비해 내어줬다.


타는 목을 애써 차를 마셔서 달래보았지만 계속해서 입 안은 말라갔다. 한동안의 침묵이 조용히 이사장실에 내려앉았다. 그 침묵을 깨고 아키카와 이사장이 내게 내릴 징계를 결정했는지, 입을 열었다.


“자네의 처우에 대해서 결정했다. 같은 트레이너에게 심할 정도의 상해를 입혔지만, 자네가 그동안에 골드 쉽과 준수한 성적을 꾸준히 내는 성과도 있어 정상참작을 해 두었네. 그럼에도 그 죄는 무겁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


“침묵은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이지.”


차를 한 모금 마신 아키카와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결론! 자네는... 1달 정도 담당 트레이너 자격을 빼앗기게 될 거라네. 그 1달 동안 고루시와의 담당 계약은 해지되고, 자네는 다른 트레이너의 서브 트레이너로 들어가서 그들을 돕게 될 거라네.”


“고루시... 골드 쉽은 어떻게 됩니까.”


“골드 쉽은 자네가 속한 트레이너에게 1달 동안 임시 트레이닝을 받을 거니 걱정하지 말고 자네의 죄를 빠르게 청산하면 된다. 솔직히, 징계도 표면상의 이유일 뿐이다. 그렇게 골드 쉽을 데리고 안정적으로 트레이닝시키고 성적을 낸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니.”


“괜찮은 겁니까, 그거.”


“으흠, 승낙! 골드 쉽은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주의 대상 우마무스메이긴 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썩힐 수는 없지. 더군다나 그녀가 잘 따르고, 그녀와 잘 맞는 트레이너를 구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닌 이유로...”


꽤나 현실적인 이유였다.


그렇게 징계는 다른 트레이너의 잡일을 돕는 걸로 마무리가 되고, 나 역시 아무런 문제 없이 계속 벌이란 이름으로 사회봉사를 계속했다. 그 결과, 원래 이 사회봉사가 끝날 예정인 1달이란 기간보다 조금 더 빠르게 끝났다. 그 원인이 골드 쉽의 기행을 버티지 못한 트레이너가 그녀를 데리고 자신의 담당 우마무스메까지 둘의 트레이닝을 하기 힘들다는 말 못할 것이라는 건, 비밀이었다.


징계가 끝난 이후는 더욱 바빠졌다. 골드 쉽이 얌전히 트레이닝을 받을 리가 없었고, 나 역시 그녀의 장난을 받아주느라 제대로 트레이닝을 받지도 못한 채로 텐노(가을)상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남은 한 달 동안 골드 쉽의 장난을 중심으로 한 트레이닝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는 무시 못할 일도 벌이며 트레이닝을 빈틈없이 열심히 했다.


그 때문에 전보다 더욱 체계화된 장난을 쳤을 뿐인 골드 쉽이 뜻 밖의 능력 상승이 발생해, 텐노(가을)상에서 1착이라는 트레이닝 기간에 비해 높은 성적을 거뒀다. 고마워, 이름모를 신입 트레이너였던... 누구씨!


어쨌거나 골드 쉽의 노력에 보상을 주기 위해 나는 어째서인지 나의 과거를 얘기하게 되었다.


어째서...


“그러니까 어째서...”


“자꾸 나그랑 티만 입는 붉은 머리의 소년 흉내내지 말고 빨리!”


“나는 ‘여자애가 싸우는 거 아니야’같은 말 한 적도 없다고!”


“텐노상 1착한 보상으로 뭐든 들어준다고 했잖아, 트레이너. 자꾸 그러면...”


느낌이 안 좋다. 정조의 위기를 느낀 나는 재빠르게 방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역시나 인간은 우마무스메를 이길 수 없었다.


순식간에 나를 바닥으로 제압해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한 골드 쉽이, 눈의 생기를 없애고 어두운 기운을 풍기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제로 우마뾰이해버린다, 트레이너?”


“히이익———!!”


“랄까나, 트레이너. 아무리 고루시 쨩이라고 해도 그런 반응 보이면 상처받는다고? 마음이 연약한 고루시는 상처받기 쉬워~”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서 웃어보이는 골드 쉽. 하지만, 나는 분명히 저 눈빛에서 위험한 것을 봤다. 그렇기에 굳이 그것을 집어말하지 않고, 순순히 과거사를 꺼내기로 했다. 아직 골드 쉽의 구속은 풀리지 않았지만.


“길게 말하지는 않을 거야.”


“상관없다고~! 난 그저 트레이너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되니까.”


“그래, 알았다.”


얘기하기 싫었지만, 나의 정조를 위해서라면 이런 것 쯤은 버릴 수 있었다.


지금의 성격과는 다르게 나는 중학교를 다닐 무렵, 상당한 문제아로 낙인 찍혀 있었다. 그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주먹질을 하는 흔히 말하는 불량아였다. 그런 생활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계속해서 입학식 첫날부터 모두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입학식 날, 자꾸 귀찮게 하는 선배들이 있길래 때려버렸다. 그러더니 그 선배들의 친구들로 보이는 선배들이 와서 더 귀찮게 굴길래 모두 때려눕혔다. 30명 언저리었나, 하는 학생들을 모두 병원행으로 보냈기에, 선생님들에게도 반 친구들에게도 두려움을 받았다.


선생님들이 나를 퇴학시킬려고 여러 번 수를 썼지만 나는 성적이 중상위 정도 되는 준수한 편이었고, 더군다나 육상부로 들어가서 대회마다 1, 2등을 수상했다. 그들이 나를 퇴학시키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나는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조용한 편이었고, 대부분의 일 모두 먼저 시비를 걸어와서 대응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성적이 괜찮고, 육상부 대회의 성적도 좋았고, 건드리지만 않으면 조용했던 나를 선생님들은 모두 포기했다.


그러던 3학년으로 진급하기만을 기다리던 때, 우리 학교에 은퇴한 우마무스메가 육상부 코치로 왔다. 우마무스메에 관심도, 본 적도 없고 교과서로 알고 있던 게 다였기에, 나는 계속 잘난 듯한 말투로 내게 참견하는 그녀에게 덤볐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참패. 인생에서 처음 겪은 패배에 더욱 대들 법도 했지만, 나를 이기고 내게 손을 내밀던 그 우마무스메의 모습에 나는 매료되었었다.


그 이후 개심해서 성격을 바꾸고, 그녀가 추천했던 것도 있어서 트레이너를 지망하고 진로를 이쪽으로 정해서 결국 트레센에 왔다는 게 나의 과거다.


“그래서, 이제 만족했냐. 만족했으면 이제 그만 이것좀 풀, 으윽?!”


갑자기 내 손목을 붙잡은 골드 쉽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얘가 왜 이러나 싶어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묵묵부답.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해하면서도 계속 가해져오는 손목의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고루시, 제발 손목 좀...!”


“트레이너. 그래서 그 우마무스메가 누구야.”


“그건 왜, 으윽... 나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너랑 같은 느낌의 회색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설마 고루시 이 녀석... 그 사람한테까지 질투를 하는 건가? 많이 심한 편 아닌가, 이 정도면... 그렇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고루시랑 비슷한 느낌이 많이 났었지, 그 사람. 아, 이름을 몰랐었네.


은사같은 개념인 그 우마무스메에 대해서 떠올리고 있으니, 골드 쉽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이때 최대한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서 구속을 풀려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금은 네가 먼저니까 안심해. 너 두고 어디 갈 일도 없으니까... 말이야.”


“그럼 됐어. 흐핫, 고루시 쨩도 많이 변했구만.”


“그러게. 처음에는 진짜 4차원이라서 신기했는데 지금은, 다른 점도 많이 보이니까.”


“낯간지럽게 뭐야, 갑자기. 너도 많이 이상했던 거 아냐? 아니, 그래서 잘 맞은 거일 테니까 좋은 건... 가. 있잖아, 트레이너.”


다시 또 골드 쉽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얀데레도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하던데... 지극정성인 사랑이라고 하는 쪽도 있고... 난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지. 그렇게 순간순간 떠오르는 잡념들로 애써 현실도피를 해보지만, 무리였다.


골드 쉽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더니, 전보다 더욱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트레이너.”


“으응?”


“후후, 어째서 너에게서 다른 우마무스메의 냄새가 나는 걸까?”


“무슨, 소리야? 난 딱히 너랑 밖에 같이 안 있었는, 데...”


잠깐만. 오늘 아침에 장보러 갔다 오는 길에 아침 트레이닝을 나온 맥퀸이랑 마주쳐서, 그 동안에 미안한 마음으로 스위츠를 사줘서 같이 먹었었지. 하지만, 그때 딱히 맥퀸이 가까이 붙지는 않았었는데?


짙고 탁한 어두운 자색의 눈동자가 천천히 다가온다. 그 바람에 사고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해 기억에 혼란이 온다. 도대체 누구지? 냄새가 밸 만큼 오래 있었거나 가까이 있던 우마무스메가 누구야! 누구였지?


“이건, 오랜만에 다시 벌을 받아야하지 않을까? 나는 계속 참고 있었는데, 너는 다른 년이랑 뒹굴고 오기나 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생각해내라, 나! 누구였던 건가. 위험을 감지하고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나의 머리는 점점 과열되는 듯했다.


“빨리 말해. 안 그러면...”


골드 쉽이 나의 와이셔츠를 물고 잡아뜯기 시작했다.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종이 찢듯이 찢어지는 와이셔츠. 골드 쉽은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흉터가 덧나게 해줄게. 빨리 말하고 고루시가 주는 상 받자, 트레이너♥


입을 벌려 물어뜯었던 쇄골을 약하게 덮듯이 문다. 서서히 힘이 더해지고 쇄골 위쪽의 피부가 당겨진다.


그러다 그제야 떠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고루시! 생각났어! 저번에 터프 트레이닝 코스에서 넘어졌을 때 그랬어!”


“흐응———, 거짓말이지?”


“아냐, 진짜야 고루시!”


“뭐, 정말로 다른 년들이랑 놀았으면 더욱 냄새가 진해서 찾기 쉬웠을 테니까. 이 정도로 봐줬다고, 트레이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여전히 골드 쉽의 속박은 그대로였다.


“저, 저기...?”


“아직 고루시 쨩의 상이 남았잖아? 금방 끝나 트레이너. 이대로 고루시 쨩의 거라고 확실하게 각인시켜줄게.”


그렇게 말하며 서서히 몸을 밀착해오는 골드 쉽. 좋은 체취가 그녀의 몸이 다가올 수록 진해진다. 그리고 특히나 부드러운 두개의 덩어리가 내 가슴에 닿고, 그녀는 이를 과시하듯 약하게 비비적거린다. 그 바람에 내 쪽에서도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골드 쉽은 허벅지 근처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시선을 돌려 그곳을 바라보고는,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더욱 몸을 밀착해왔다.


그에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몇 번이나 그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발버둥을 치지만,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행동이 골드 쉽의 기분을 더욱 고양시킬 뿐이었다. 내 행동으로 인해 달아오른 몸을 식히려는 듯이 약한 신음과 함께 달뜬 숨을 내쉰다.


“응읏, 트레이너... 그렇게 격하게 움직이면 안 돼애애…….”


“비켜줘 고루읍———”


다시 한번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며 골드 쉽이, 내게 새겨졌다. 이전보다 더욱 진하게, 지워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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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내게서 떨어지는 그녀. 골드 쉽은 완전히 내게서 떨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살짝 들어서 골드 쉽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생기 한 점 없는, 탁해진 자색의 눈동자. 이전에도 이런 눈을 할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해져 바라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깊은 곳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런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녀의 눈에서 땔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트레이너? 이 고루시 쨩의 어디가 부족해서?”


그녀를 이렇게 만든 건 나이기 때문이다.


“있잖아. 대답해줘, 트레이너.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님 나한테 질린 거야? 하핫, 그럴 리는 없잖아. 왜냐면 난 너의 고루시인걸? 그러니까 어서 대답해줘. 왜 나를 떠나려고 하는 거야?”


“미안, 고루시.”


“나는 사과하는 걸 바라는 게 아니야. 질문을 했으면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해줘야지.”


골드 쉽이 내 양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나는 의자에 손발이 모두 묶여있었기에 그녀가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췄다.


“트레이너, 나는 잘 했지? 열심히 했지? 트레이너가 하라고 하는 대로 따라서 URA도 우승했잖아. 근데 왜 나를 떠난다는 거야?”


“아까도 말했잖아. 나는 너와 더 이상 같이 갈 수 어브읍—!”


또 다시 골드 쉽은 내게 키스했다. 10초, 20초, 30초. 내 의식이 멀어질 때 쯤이면 그녀는 키스를 멈추고 입을 뗀다. 그리고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한다.


“내가 질문을 다시 할 건데, 이번에도 거짓말하면 절대 안 놔줄 거야?”


이렇게 된 이유는, 내가 골드 쉽과의 계약을 계속하지 않고 트레이너를 그만두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URA 결승에서 5마신 차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1착으로 들어와 이긴 골드 쉽에게 할 말이 있다며 트레이너 기숙사의 내 방으로 같이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골드 쉽에게 트레이너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 골드 쉽은 전속 트레이너를 하겠다는 말로 이해했다. 하지만 내가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 다시 정확하게 그녀와의 계약을 이어가지 않고, 트레이너 생활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내게 달려들어서 움직일 수 없게 제압하고 의자에 앉혀둔 채로 손발을 묶었다.


여러 번 골드 쉽에게 덮쳐져서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또 그러려니 라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골드 쉽이 얀데레 모드로 변했고, 그녀가 던진 질문에 내가 지금처럼 대답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고, 그 결과가 보다시피 지금이다.


“트레이너, 정말로... 나를 떠나려는 이유가 뭐야?”


“고루시 너도 봤잖아. 1년 전에 있었던 걔. 그 자식들처럼 너에 대한 평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권모술수를 써가며 악착같이 너의 결점을 찾아내려는 기자들이 있어.”


“그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얘기야? 그런거 신경 안 쓰고 우리는 우리끼리 잘 하면 되잖아. 트레이너, 나 진짜로 화낼 거라고?”


또 다시 흥분해서 날뛰려는 골드 쉽을 막은 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말처럼 그게 쉬우면 나도 이런 얘기를 안 꺼냈겠지. 그렇지만 너도 내 과거를 들었으니까 알 거 아냐. 너의 트레이너라는, 나라는 존재는 너에게 있어서 발목을 잡을 뿐인 존재야. 네가 부진하는 날이라도 오면 날카로운 송곳니를 감췄던 기자들이 어떻게든 나의 과거에 대해서 알아내고 그걸 이용해서 너를 깎아내리겠지.”


실제로 트레이너가 우마무스메의 약점이 되어서 경주 생활을 계속하지 못하고 그만둔 사례들도 적지 않게 있다. 그리고 내 과거는 그런 골드 쉽에게 큰 타격을 줄 것이다.


골드 쉽, 그녀는 달리는 걸 좋아한다. 그저 이리저리로 튀는 성격때문에 그렇지, 달리기에 진심이며, 그 누구보다 좋아한다. 그런 그녀의 꿈을 나로 인해서 망가뜨릴 수는 없다. 그들이 무기를 잡게 놔두기 전에 내가 알아서 사라져주는 게 골드 쉽에게도 좋을 거다.


“넌 충분히 나 없이도 할 수 있어. 못 한다는 건, 장난을 받아주지 않아서라는 어린 아이같은 핑계잖아. 아이는 아이의 식대로, 어른은 어른의 식대로 해야지.”


“어른... 그렇구나. 트레이너, 내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어?”


“뭐든지. 뭐든지 해줄게.”


“나는 트레이너한테 아이야, 어른이야?”


그녀도 지난 3년 간 잘 따라와줬다. 경주에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성장했다. 때로는 아이처럼 장난치며 놀기도 하지만, 어른같이 성숙한 행동을...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는,


“나한테는, 어른이지. 더 이상 나한테서 배울 필요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어. 나는 더 이상 너에게 배움을 줄 수 없는, 부족할 뿐인, 너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야.


골드 쉽은 내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는 네 눈으로 바라볼 때야. 더 이상 나한테 매어살지 않아도 돼.


“내가 아닌, 더욱 실력있는 트레이너에게서 너의 달리기를 계속해줬으면 좋겠어. 어른이니, 그 정도 선택은 할 수 있잖아.”


“그렇구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천천히 다가온 골드 쉽은 의자와 나를 묶는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내 무릎 위에 앉아, 나를 바라봤다.


“트레이너, 나는 너를 좋아해. 동경같은, 시시콜콜한 감정따위가 아닌, 연애적인 감정으로. 네가 없으면 텅 비어있는 것만 같고, 계속 네 생각이 나. 너한테서 떨어지고 싶지 않고, 계속 옆에서 사랑을 속삭여줬으면 해. 어른이니까, 아이가 아니니까, 나는 선택을 해야하지?”


“고루시...”


“역시, 난 네가 좋아.”


“지금 뭐하는?!”


골드 쉽은 갑자기 내 상의를 찢어 벗겼다. 단숨에 반나체가 된 나는 여전히 손발이 묶인 채로 당황에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은 골드 쉽을 더욱 자극시켰다.


“여전히 당황하면 발버둥치는 모습이 귀엽네, 트레이너? 있잖아, 이번엔 내가 너한테 질문을 할게.”


이전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나를 품에 안는 골드 쉽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너는 나를 좋아해?”


친구로서의 의미라면, 좋아한다. 동료같은 의미라면, 역시 좋아한다. 연애적인 의미라면...


“나는...”


“아, 나는 트레이너에게 선택권을 준 적이 없어. 트레이너는 그저 좋아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돼. 물어볼 때마다 대답을 안하면, 나 없이는 살 수 없게 팔다리를 부셔버릴거야♥


그렇게 말한 골드 쉽은 곧바로 오른쪽 다리를 편자로 강하게 찼다. 부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에 얼얼한 감각이 느껴지고,


“방금 꺼는 이미 대답 안 했으니까 그런 거야♪”


“흐윽, 아아아———응읍!


“시끄럽게 하는 나쁜 아이에게는 벌을 준다고 말했었지? 하읍———”


여전히 다리에 가해진 강렬한 고통해서 헤어나오지 못해 격렬하게 움직이는 나의 혀에 그녀의 혀가 얽혀들어온다. 고통이 잦아들어 비명을 멈추자, 골드 쉽은 입을 떼고 다시 물었다.


“고루시 쨩을 좋아해?”


그런 그녀의 질문에 나는, 역시나 좋아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좋아, 해.”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야?”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건, 진심이야.”


“좋아, 나도 사랑한다고 트레이너♥


그렇게 말하며 볼에 홍조를 띄운 골드 쉽은, 다시 나와 입을 맞췄다.


이전보다 더욱 끈적거리는 키스를 나누는 골드 쉽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나의 다리를 부러뜨렸음에도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자신이 있었다.


다시 입을 뗀 골드 쉽은 여전히 매혹적인 미소를 지은 채로 내게 물었다.


“역시, 너랑 만나서 인생이 재미있어졌어. 너도 그렇지?”


“으응. 네가 좋아.”


흐리멍텅한 의식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제대로인지도 모를 대답을 건넸고, 그녀는 다시 내게 키스를 하며 그녀의 타액인지 뭔지 모를 액체를 내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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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너무 못 썼는데... 이거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네. 그래서 내 딴에서는 그럴싸 하게 끝내봄. 진짜 단편 쓰시는 사람들 존경합니다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