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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과 동화는 다르다.

   

   

   

   

-저벅, 저벅.

   

   

테라 켈리듐이 기거하는 마탑의 최상층으로 가는 길에 두 사람의 발소리가 울러 퍼지기 시작했다. 

   

마탑의 최상층은 켈리듐의 제자 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나, 지금 들어오는 두 사람은 아무런 제지도 없이 이 곳에 들어오고 있었다.

   

“마탑의 최상층으로 가는 통로는 오랜만에 와보는 거 같네. 주기적으로 색이 바뀌는 것도 같고.”

   

“그러게 말이에요. 시간만 많았다면 마탑을 구경했을텐데,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아쉽네요.”

   

당연하다. 지금 최상층을 방문하고자 하는 두 사람은 이 시대를 살아간다면 모를 리가 없는 사람이며, 이 마탑의 주인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테라는 이제 좀 괜찮아졌을까?”

   

“제자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저희가 찾아올 것도 알고 계셨으니.

   

“하긴,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면 곤란하지.”

   

그렇게 대화도 잠시, 그들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고. 그 막다른 벽에서 마법진이 생겨나 공간을 왜곡되며 누군가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형상 쪽에서 미약한 마나의 유동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야, 다들.」

   

“…스텔라. 3년전에 우리가 마나를 억제하는 구속구를 테라에게 입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어?”

   

「구속구는 아직도 차고 있어, 그래도. 이렇게 말도 못 전하면 아크메이지 자격이 없지. 3년동안이나 묶여있어서 조금 마나가 있다고?」

   

“…대신 대답해줘서 고마워, 테라. 아크메이지는 역시 다르구나.”

   

「후후, 별말씀을. 대신, 계속 그렇게 멀리 있으면 대화가 힘들 거야. 일레시아, 스텔라. 얼른 와주지 않을래? 슬슬 이렇게 말하는 것도 힘들어. 렌이 차와 다과도 준비해놨더라고?」

   

“그래? 금방 갈게. 테라.”

   

그렇게 말하는 두 사람은, 왜곡된 공간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현자에 관한 조금 긴 대화를 위해.

   

* * *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녀들의 대화에는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왜 이 사슬을 풀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야? 이해하기 힘든 말인 거 알지?”

   

“그거야 당연하지 않아? 지금의 넌 정상이 아니야 테라.”

   

그래. 테라의 이야기는 조금 어긋나있었다. 대화 끝에 우리 전부가 현자를 좋아하겠다는 것을 눈치챘을 텐데,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현자를, 혼자만 독차지하겠다고?”

 

-덜컥.

   

그런 말과 함께, 일레시아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았고. 그 행동은 조금 큰 소리를 동반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조금 무례할지도 모르는 그녀의 행동을 오랫동안 봐온 사이라면 ‘자신이 화가 났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임을 모를 리 없으리라.

   

그런 행동에 숨겨진 뜻을 알고있음에도 테라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걸 말했는데, 왜 정상이 아니라고 할까? 정상이 아니라 말하는 것도 일레시아 그녀만의 주장일 뿐이다.

   

“그렇지만 현자는 너무 멋져서 혼자 가지고 싶은걸. 나는 원하는 것이 생긴다면 그걸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고. 너희도 알고 있잖아?”

   

테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찻잔을 들어 올리고, 차를 음미하고, 찻잔을 다시 내리는 일련의 과정에서는 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 누가 보아도 품위 있고 절도있는 동작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 말은 그냥 지나가기 힘든 말입니다. 테라.”

   

“스텔라, 너도 반대하는 거야?”

   

“당연합니다. 현자님을 포기하기엔 테라 말처럼 너무나도 멋지지 않습니까.”

   

당당하게 말하는 스텔라에 말에, 테라는 웃으면서 답했다.

   

“하긴, 현자가 참 멋지긴 하지. 그런데 어쩐지 조금만 덜 멋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네.”

   

‘그랬다면 나만 현자를 사랑했을 텐데.’ 입고리가 조금 내려간 테라의 말에, 마탑의 최상층의 분위기는 점점 차가워져만 간다. 그런 분위기에 일레시아가 테라에게 말을 꺼냈다.

   

“있잖아 테라. 내가 왜 중혼을 생각하고 있던 건지 알아?”

   

그렇게 말하는 일레시아의 표정에는 웃음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너희와의 여정이 매우 즐거웠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 거였거든. 나도 현자를 독점하고 싶은데 겨우겨우 참고 있고있던 거야.”

   

“그리고, 용사의 수명은 매우 길다? 너희가 죽어도 나는 살아있을 거란 소리지. 현자가 죽으면 의미가 없긴 하지만, 나의 수명을 현자에게 공유하면 해결될 문제야.”

   

“그래, 너희들이 죽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현자의 사랑과 관심은 나만을 향하게 되겠지.”

   

‘첫날밤과 결혼 순서도 내가 먼저고.’ 라는 말은 더욱더 분위기를 냉각시키는데 충분했다. 당연하다. 저런 말이 어떻게 이 분위기를 진정시키게 만들겠는가?

   

“일레시아, 테라. 둘 다 지금 생각 없이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조금 이따 이야기…”

   

“그럼, 스텔라는 달라?”

   

“…그게 무슨 소리죠?”

   

“스텔라는 현자를 독차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거지?”

   

그렇게 말하는 테라 역시, 표정에 웃음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갔으면 눈에 초점조차 사라졌으리라.

   

“그런 게 아니라면 스텔라는 빠져, 그럼 가끔은 현자의 얼굴을 보여주게 해줄게.”

   

“…테라. 제정신입니까?”

   

그런 무례한 말에는 친한 친우라 해도 성녀, 스텔라의 표정을 굳게 만드는 데엔 충분했다.

   

“저라고 현자님을 혼자 차지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끝은…”

   

그렇게 작게 말하는 스텔라의 말은 그 누구도 듣지 못했지만, 다른 두 사람을 자극하는데엔 충분했다.

   

“역시, 스텔라도 암캐였구나.”

   

“암캐라는 말은 취소해, 테라. 동료보고 암캐라니?”

   

그렇게 점점 냉각된 분위기는, 전혀 풀어지지 않을 듯했으나.

   

“다들, 현자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아?”

   

상황이 진전되지 않아 답답해지기 시작한 테라의 힐난에, 조금씩 분위기는 풀어질 기미가 보였다.

   

“한쪽 팔. 한쪽 팔만 구속 구를 풀어줘. 그럼, 현자의 행방을 보여줄 테니.”

   

“그 말을 어떻게 믿지. 테라?”

   

“일레시아의 말이 맞아요. 어떻게 그 말을 믿죠?”

   

“그런 말을 할 줄 알았어.”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 테라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이름, 테라 켈리듐에 대해서 맹세할게. 한쪽 팔만 구속구를 풀어준다면 현자의 행방을 보여주겠다고.”

“으음…”

   

“확실히…”

   

테라에 확언에, 두 사람은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하다. 마법사에게 자신의 이름은 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그걸 어긴다면, 너는 아크메이지가 아니게 되겠지.”

 

“맞아. 이 맹세를 어긴다면 내 전력은 평소의20~30% 즈음이 되겠지. 아크메이지 또한 아니게 될 거고. 그러니, 얼른 한쪽 팔만 풀어줘. 그 정도면 행방을 알 수 있으니깐.”

   

“그전에, 맹세가 먼저 아닐까?”

   

“…역시 안 통하네.”

   

그렇게 조금 찌푸리는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가는 테라는 푸른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나 테라 켈리듐의 이름을 걸고. 현자의 행방을 일레시아 피데스, 스텔라 베아트리스에게 알려주기로 맹세한다.」 

   

맹세로 인해 잠시 푸른 빛을 띠던 테라의 몸은, 맹세가 끝나자 다시 원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후… 이제 진짜 남은 마력이 없어. 그러니깐 빨리 구속구 풀어줘. 나도 현자 얼굴 보고 싶다고.”

   

“알겠어요. 테라.”

   

그렇게 말하며 구속구를 풀어주는 스텔라의 도움으로, 테라의 한쪽 팔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테라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야 마력이 돌아오기 시작하네. 그럼 이제, 현자의 행방을 알아볼까?”

   

그렇게 말하며 테라가 한 손으로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크메이지의 상징 중 하나, 무영창이다. 그리고 허공에 떠오른 것을 현자가 보았다면 상태창과 유사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렇게 보인 화면은.

   

「저, 저는 약혼자가 있어요!!!」

   

라며 말하는 붉은 표정의 여성과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현자가 있었으나. 세 사람에겐 현자의 표정은 중요하지 않다.

   

“…현자. 지금 우릴 버리고 무슨 짓을 하는 걸 까아?”

   

눈에 초점을 잃고,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일레시아와.

   

“또, 현자 주변에 암캐가…”

   

금방이라도 폭주할 듯한 테라 켈리듐과.

   

“현자님. 저건 또 누구예요?”

   

겉보기에는 무표정해서 가장 나아 보이나. 눈에는 심연이 담겨있는 스텔라 베아트리스까지.

   

“일단 다들. 현자님부터 잡고 뒷일을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야. 스텔라.”

   

“맞는 말이야, 스텔라. 지금 당장 잡으러 가자.”

   

그렇게 셋의 의견은 단결되었다.

   

독점하는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바람둥이의 기질을 보이는 현자를 잡으러 가자고.

   

…그렇게, 하루 동안의 긴 대화는 끝이 났다.

   

“현자님, 교육이 필요할 것 같네요…”

   

“각오해… 현자… 저항하면 이 검으로...”

   

“현자, 현자, 현자. 믿었는데, 믿었는데… 역시, 마법으로 어딘가에...”

   

   

* * * 

   


어린 양의 눈으로 이 재밌는 상황을 보고 있는 존재는 확신했다.

   

   

「μπουκάλι, θεέ.」 

   

현자는 처음부터 그녀들에게 달려갔어야 했다고.

   

「σεξ, πότε?」 

   

알 수 없는 존재는 현자의 고구마에 짜증을 내면서도 시청을 계속한다.


   

…현자의 고구마로 인해 시청을 포기하기엔, 어린 양의 치정극이 너무나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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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지적 환영.


+ 생각해보니 세 사람 외모 묘사를 넣은 적이 없어서 밑에 조금이라도 씀.


성녀, 은발, 벽안.


용사, 금발. 갈색 눈.


마법사, 흑발, 검은 눈.


+ 한 팔 -> 한쪽 팔로 수정.


일레시아의 대화를 조금 매끄럽게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