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사 레이나의 이야기

레이나 아 무레베.

중소귀족의 딸로 태어나 몇년전까지만 해도 기사직을 수여받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평범한 여기사로서 살고 있었던, 아니 살았을 나의 운명이 바뀐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3년 전 정의감과 기사도에 심취했던 나는 새로이 발탁된 용사님의 토벌대에 지원했다.

신에 대한 믿음과 정의를 행해야한다는 신념이 나를 움직였고, 나의 운명은 그 순간부터 소용돌이에 빠졌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처럼 보였다. 가려뽑고 엄선된 동료들은 강력했고 용사님은 처음에는 부족했지만 얼마안가 용사라는 직책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번 토벌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은 국경 근처의 란트빌 마을에서의 방어전에서 더욱 굳어졌다.

수비대의 규모의 몇배가 넘는 마왕군의 기습. 갑작스런 기습에 놀란 소리와 잔혹하게 죽은 자들의 비명. 그리고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는 사람들의 울음소리에 아비규환이 된 도시.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모습. 나를 독려하고 질책하여 나를 일으켜세운 모습. 병사들을 지휘하여 방어벽을 재정비하고 고립된 이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결사대를 이끌어 퇴로를 열고 그대로 본진으로 돌격해 다크 나이트의 목을 베어 저들을 퇴각시키는 모습까지.

마치 옛 전설 속에 나온 백기사의 모습이 현상되던 모습에서 용사님은 어째서 자신이 여신의 선택을 받았는지 증명했다.

그 모습에서 동경과 연정을 느끼며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토벌이 끝나고 수줍게 고백하려던 나의 꿈은...

단순히 꿈으로 끝났다. 마왕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용사님도 몇합 대등하게 싸우다 무너지는 게 전부였고 나 또한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꼴사납게도 인질로 사로잡힌 나는 결국 용사님의 희생으로 터덜터덜 수도로 돌아갔다.

왕성에서 보고를 마치고 독방에서 틀어박힌 나는 끝없는 눈물을 흘리며 자문했다.

어째서 패배했을까?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동시에 내가 신봉했던 기사도에도 의문이 들었다.

믿고 따랐던 기사도에 의해 무엇이 좋아졌는가? 명예를 지켰나? 사랑을 지켰나? 무엇이 좋아졌나?

그리고 슬픔을 떨치고 방밖에서 나왔을 땐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기사도건, 명예건 이제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내 사랑을 지킬 거고 내 걸로 만들었다. 마왕을 죽이고 용사님을 구출하고 내 사랑을 이룰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리 생각하며 바퀴벌레처럼 바닥을 기어다니고 쥐마냥 어둠에 숨어 들키지 않게 마왕성 근처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마왕성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정원에서 나는 용사님을 볼 수 있었다.

구속구로 보이는 초크를 찬 상태에서 마왕의 앞에 태워져 수많은 병사들의 포위 속에 있는 용사님을.

비록 먼 거리였지만 나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용사님의 초췌한 안색을 그러면서도 끝끝내 의지가 죽지 않은 용사님의 눈을. 내가 돌아오길 그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럴 것이다.

즉석에서 짜여진 구출 계획은 간단했다. 기습 공격을 가해 최대한의 피해를 주고 지원군이 당도하기 전 마왕을 죽이고 용사님을 데리고 퇴각하는 것. 만약 여의치 않다면 용사님만이라도 데려오는 것.

그리고 단번에 적들을 베어나가 용사님께 다가갔다.

나는 용사님의 앞에, 그리고 용사님을 앞에 태운 마왕의 앞에 섰다.

\"용사님.\"

나는 말했다.

\"구하러 왔습니다.\"

그 순간, 용사님의 칠흑같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후기-원래 짧게 쓸려고 했는데 엄청 길게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