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0자 장문 주의








내 이름은 김얀붕, 평범한 유부남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옥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해 5시까지 뼈빠지게 일하다, 가끔 야근도 하고 회식도 하다 늦으면 마누라에게 바가지도 좀 긁히고....


그러다가도 하나뿐인 딸내미 얼굴 한번 보면 힘이 팍 하고 나는, 그런 평범한 남자


뭐, 대한민국 남자라면 거의 이렇게 살고 있지 않겠는가? 



그날도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일하다가 퇴근시간 되서 퇴근하던 와중,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야 얀붕아! 오랜만이다!"


"김성식.....? 네가 어쩐 일이냐, 너 외국가고나서 연락도 안되더만 이새끼...."


"다 사정이 있어 임마~ 야, 그나저나 우리 술이나 한잔 하자 지금 한국 술 졸라마시고싶어."


"어? 지금? 나 오늘 마누라한테 집 바로 들어간다고 그랬는데....."


"야이씨 너는 오랜만에 한국 온 친구한테 그정도도 못해주냐? 네 딸내미가 지금 누구 덕분에 멀쩡하게 돌아다니는데 임마!!!"


"어휴, 알았다 알았어, 마누라한테 전화하고 들어갈테니까, 우리 옛날에 마시던 거기서 기다려라."


"오케이~ 얼른와~!"



나는 성식이의 전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내 아내인 얀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얀진아, 얀희는 자?"


".......바꿔줄게요."


"아빠!"


"아이구~ 우리 얀희! 잘 있었어!"


"아빠! 언제 와! 나 졸린데 아빠랑 같이 잘라구 참고있단 말이야!"


"이거 어떡하지? 아빠가 올 가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거릴 거 같은데...."

"싫어! 아빠 빨리 오란말이야! 지금 안오면 평생 아빠랑 안놀아!"


"미안해~ 그러면 아빠가 내일 쉬는날이니까, 같이 동물원 갈까?"


"동물원? 진짜?"


"그럼~ 당연히 진짜지~ 아빠가 내일 동물원도 같이 가고, 맛있는 것도 사줄테니까, 아빠 한번만 봐줘, 알았지 우리 딸?"


"와 신난다! 알았어! 그럼 나 일찍 자고있을테니까~ 아빠도 빨리 들어와 알겠지?"


""알았어~ 사랑해 우리 딸~"

"사랑해요 아빠!"



"....여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늘 늦게 들어온다니...?
"

"어....그.....내친구 성식이 알지?"


"저 출산 도와준 김성식 선생님이요? 잘 알죠, 그런데 왜요?"


"오늘 성식이가 ㅅ..."


"안돼요."


"....."


"여보.....제가 결혼할 때 뭐라고 했었죠....?"


".....가장 중요한 건....부부의 시간...."


"결혼할 때 분명 그렇게 약속했죠....? 그러니까 아무리 은혜를 입은 친구분이라도 안돼요."


"아니 얀진아....그래도 네가 얀희 임신할 수 있던 것도 성식이 덕분이고....걔가 우리 태교부터 산후조리까지 거의 공짜로 다 도와줬는데....걔 아니었으면 당신 출산할때 제왕절개도 제대로 못해서 큰일날수도 있었잖아....그런데 걔가 바로 외국 나가버리는 바람에 아직 인사도 제대로 못했고...그러니까—"


"인사는 나중에 따로 같이 하고요, 오늘은 집에 와요."


"아니...그...그래도....."


"오늘 왜이렇게 말을 안듣죠......? 여보......"


"하아.......너 또..."


"친구핑계대고 여자 만나러 가시나요....?"


"아니 내가 언제 한번이라도 바람핀 적 있냐고! 야! 넌 왜 항상 레퍼토리가 이런식이냐? 그냥 신세좀 진 친구 술이나 사주겠다는 거잖아!!!!"


"제가 그 말을 믿을 거 같아요? 당신이
집에 들어올 때 모르는 여자 냄새를 몸에 묻혀온게 한두번인가요? 심지어는 신혼여행때도 그랬잖아요. 내가 그런데 당신을 어떻게 믿죠....?"


"야!!!! 그래서 내가 네가 원하는대로 휴대폰에 위치 추적 어플도 설치하고, 어디 갈때마다 너한테 문자해서 언제 어디서 멀마나 있었는지 사진 첨부해서 문자로 보고하고! 출장 때문에 외박할때는  애완동물용 카메라로 내가 자는 모습 생중계까지 하잖아!!! 그래서 네가 따져봤을때 한번이라도 내가 바람핀 적 있었냐고!!!"


"그럼 왜 항상 그럴 때마다 몸에서 똑같은 향수 냄새가 나는 건데요? 그리고, 정말 바람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나요? 당신 고등학생때....."



나는 그냥 얀진이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염병.....13년전 일을 도대체 언제까지 물고늘어지는 거야?"



그리고 그때 일은.....


네가 잘못한 거잖아........


모르겠다. 성식이랑 술이나 한잔 하면서 이 울적한 기분을 달래야겠다.



"얀붕아 여기!"


"졸라 오랜만이다 이새끼야."


"큭큭 잘 지냈냐?"


"말도 마. 방금도 마누라가 친구핑계대고 여자만나는거 아니냐고 바가지긁는거 무시하고 그냥 왔어, 집에가면 난 뒤졌다."


"어후...어떻게 니 형수님은 변하지를 않냐? 사람이 일관되서 좋긴 하겠다 야."


"옘병 사람이 좋은쪽으로 일관적이어야지........에휴.....야, 그나저나 너는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는거야? 아무리 외국을 나가있어도 그렇지."


"얌마 너는 그걸 알아야돼~ 내가 얼마나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인지 알어? 해외 학회에서 강의 한번씩만 뛰어도 시간이 남아나질 않아."


"니 똥 굵다 이새끼야."


"흐흐............야."


"왜."


"얀희는 좀 어때."

"야 말도마라. 이번에 얘가 있잖아? 글쎄 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타왔지 뭐냐? 얘가 학교 처음 들어갈때부터 일기도 불평 한마디 없이 맞춤법도 하나도 안틀리면서 꼬박꼬박 쓰는걸 봐서 글쓰는데 재능이 있는줄은 알았는데 백일장에서 상을 타왔어! 심지어 반이 아니라 전교에서! 너 전교가 어떤 의미인줄 알지? 그 학교 학생이 대략 800명정도 되는데 그중에서 1등이라는거잖아 1등~ 너 이게 얼마나 대단한건줄 알아? 모르지? 하긴 자식도 없는놈이 뭘알겠냐~ 우리 딸은 정말 생긴것도 이쁘고 머리도좋고 심지어 글도 잘쓰는게 못하는게 없어! 내가 우리 얀희덕분에 그 미친년이랑 붙어살면서도 버티는거 아니겠냐? 그리고 저번에는 심지어...."


"그런거 말고."


"그럼 뭐."


"형수님.....그......아직도 그러냐?"


"뭘."


"아직도 너네 딸한테........"


"........"


"아직도 그러나보네......."


"씨발 나도 미치겠다......나는 이 여편네가.....아니 아무리그래도 자기 딸을 질투하는게 말이....!"


"야야, 목소리 낮춰. 너 흥분했어."


"넌 진짜 안 겪어뵈서 모른다.... 퇴근하고 들어왔더니 자는 애 앞에서 식칼들고 서있는거 본 적 있냐? 난 그때 진짜 미치는줄 알았어."


"지금도 그래?"


"하아....평소에는 괜찮은데......내가 애랑 둘이 붙어있거나, 애하고만 손잡고있으면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뭐, 그정도?"


"그래도 많이 나아졌네, 예전에 애가 걸어다니지도 못할땐 자기한테 신경 안쓰고 애한테만 신경쓴다고 그 갓난아기한테......"


"그때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라, 기억하기도 싫다. 옘병 애초에 애도 지가 낳자고해서 스물 네살에 속도위반으로 낳은 건데....."


"그래, 야 그래도 딸하고 둘만 있을때 사고 안치는게 어디냐?"


"그러게.....지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라고 또 챙길때는 잘 챙기고 엄마 노릇도 잘 하긴 해. 본인 말로는 나랑 자기 유전자가 섞였는데 어떻게 예뻐하지 않을 수 있냐고 하더라."


"야, 그래도 넌 복받은거야~ 어? 그렇게 이쁜 마누라한테 사랑도 받고 딸도 낳고, 세상에 그것도 제대로 못하는 앰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어?"


"남일이라고 말은.....야! 그러는 너는 내 마음을 알아?! 하루종일 일하다가 집에 오면 미친년한테 들들 볶이고! 딸내미하고 포옹 한번 할때마다 부부싸움나고! 별 감흥도 없는 섹스를 새벽 세시까지 하고! 매가 진짜 우리 얀희땨문레 같이 사는거지, 우리 얀희만 아니었으면 벌써 야반도주를 하고도 남았어!"


"크크, 아무튼, 아무리그래도 너도 오늘처럼 한번씩 풀어줘야 힘내서 형수님 비위도 맞추고 애도 놀아주고 하지, 야! 마셔!"


"씨....그래! 오늘 내가 딱 두시간만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간다!!!!!!"





***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탁!



"여보세요? 네 회장님, 준비 되었습니다. 네, 맨처음 보내드린 주소로 사람 보내시면 될겁니다. 알겠습니다."







"..........."



"미안하다 얀붕아."






***






으음........


너무 마셨나.....필름이 제대로 끊겨버렸다.


목도 좀 답답한데.....숙취 때문인가?


분명 성식이하고 마시다가.....엎어지고서는.....


그나저나....여긴 어디지? 모르는 곳인데...... 성식이가 여관에라도 대려다 준 건가?


집에 대려다주지 왜 이런곳에.....


일단 일어나서 나가봐야—



'쩔그럭'




"응?"



이...이게 뭐야.....사슬? 이게 왜 내 목에.....


크윽....아무리 당겨도...빠지질 않아....!


뭐지...? 내 주변에 나한테 이런 일을 할 사람은......


얀진이밖에 없는데.......


....아무리 외박을 했다고 해도 그렇지....! 이 여편네가 진짜!


이건 너무 심하잖아! 


하아....어떡하지....진짜 화났나보네.....


이번엔 얼마나 쥐어짜려는 걸까....일주일? 아니면 2주?


....어쩌면, 얀희는 장모님 댁에 맡겨두고 한달 내내 할 지도 몰라.....


에휴.....모르겠다....일단 방이나 좀 둘러볼까...여기가 어디지?


창문도 다 막혀있어서 알 수가 없네...


사슬이 못움직일 정도로 짧은 거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방문을 열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길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묶여있는 침대랑.....바로 앞에 TV가 있네, 화면도 큰게 꽤 좋아보이는걸...


옆쪽 벽엔 전신거울, 그 위에는 시계 하나. 그리고 장롱 하나가 있네, 한번 열어볼까?



나는 장롱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이...이런 미친! 이게 뭐야?!"


장롱 안은 평범한 장롱보다 안쪽으로 훨씬 넓은 구조였다.



또한 평범한 장롱처럼 옷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장과 벽, 심지어 바닥까지 전부 내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이 미친년! 아직도 이런 짓거리 하고 있었던거야?"


근데...매일 얼굴 보면서 사는데 왜 이런 짓을?



생각해 보면 얀진이가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는데.....



근데 그렇다고 얀진이 말고 이런 짓을 할 사람도 모르겠고......



도대체 누가—



(~♪ ~♪)

'푸쉬이이이—'



뭐야 이 음악은?


그리고 왜 공기가 이렇게 탁해지는거지?



잠깐만.... 이건...... 가스? 도대체 이게 무슨—



'털썩'



'쿵'




'저벅 저벅'




"......."



'스윽—'



".....!!"


"마침내....!"






***





아으 머리야......


뭐야, 어느새 침대로 온거지? 누가 옮겨놓은건가?


그나저나 아까 그건 뭐지? 수면 가스? 그런게 어디서 나온 거야?


그보다 얀진이가 이런 짓을 한 게 맞는거야? 도대체 뭐지......


위이잉—



뭐지? TV가 갑자기 혼자 켜졌잖아?



저건.....나? 여기 CCTV도 있었어?



....... 저 여자는 누구지? 얀진이는 아닌데....



뭐야? 저 여자. 왜 슬금슬금 내가 누워있는 곳으로 오는 거지?



.....어? 옷은 왜 벗는 거지?



내 옷은 또 왜 벗기는거야?



.....안돼.


아니야.


그러지 마.


제발.....


이게 사실일리 없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야....얀진이가 이 사실을 알면....!


우...우리 딸 얀희.....! 안돼....!


아아....안돼! 누가 꿈이라고 말해줘....제발.....


우리 딸....우리 딸만은....! 



"우리 얀희만큼은!!!!!! 그 미친년한테 고통받게 할 수 없다고!!!!!!"


"씨발 너 누구야!!!!!! 너 뭐하는 년이야!!!!! 너 내가 죽여버릴거야 씨발!!!!!!!!"


"나와!!!!! 이 좆같은 영상 그만 틀고 내 앞에 튀어나오라고 씨바아아아아알!!!!!!!"



영상 속 여자는 잠들어있는 내 몸 위에서 거사를 마치고 내려온 후, 카메라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는, 입이 찢어질듯한 미소를 보이더니, 이내 TV가 꺼졌다.



"미친년!!!!! 미친년아!!!!!! 너 만약에 이게 얀진이한테 알려져서 우리 얀희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죽여버릴거야 개같은년아!!!!!!!!!"



(~♪ ~♪)

'푸쉬이이이—'



"아....으아아...! 우리 얀희...얀희야.....내새끼......미안해.....아빠가 미안해......"



"아빠가........미안.......해.............."







***







".....하아아♡"


"자는 모습도, 화내는 모습도, 울부짖는 모습도.....♡"


"정말 미칠듯이 사랑스러워......."


"그러니까, 이젠 놓치지 않아."


"넌 영원히 내거야 얀붕아♡"






***







102일.



이 정체모를 장소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채 갇혀있었던 시간이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소에 대해 나름대로 알아낸 것이 있다.



(~♪ ~♪)
 
멜로디가 들리면,

'푸쉬이이이—'

가스가 나온다.



가스가 나오면, 잠이 든다.



잠에서 깨면, 몸에 자국이 생긴다.


어디에 자국이 생기는가는 그때그때 다르다.


어떤 날은 가슴팍에, 어떤 날엔 쇄골에, 어떤 날에는 목에.



아마도, 그 여자가 남기고 간 것이랴.



식사는 하루 세 번.



아침 8시에 한 끼. 오후 12시 30분에 한 끼. 저녁 7시 30분에 한 끼. 메뉴는 나름 영양밸런스가 잘 갖춰서 나오는 편이다.



그리고 식후 30분이면, 가스가 나온다......






이 방은 그다지 많은 걸 말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어지르고 깽판을 쳐도, 가스 때문에 잠들고 난 후 일어나면 멀쩡히 정리되어있다.



방은 언제나 먼지 한 톨 안남기고 청소되어있다. 



흔적이 남는 건, 오로지 내 몸 뿐.



이것도 많은 걸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냥, 날 가둔 이 여자가 치열이 참 고르다는 것 만은 알 수 있을 거 같다.



그래도 가장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역시 저 장롱 속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은, 역시 이상하다.


얀진이와 나는 중학교 3학년부터 사귀기 시작했다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잠시 헤어지고, 고등학교 3학년때 그녀가 전학을 오면서 다시 반강제로 사귀게 되었다.


그러니 그녀가 날 스토킹했다면 사진을 찍은 것도 그녀가 날 만나지 못했던 고등학교 1학녀과 2학년 쯤일텐데.....


이 사진들은, 전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사진들, 즉, 얀진이가 더이상 찍을 필요가 없는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 사진들의 주인은......매번 TV에 나오는 그 여자겠지.....


누구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얀진이와 사귀기 전엔 모태솔로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엔 얀진이에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애가 생겨 결혼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날 좋아하게 되었거나, 아니면 고등학교땐 나를 직접 볼 수 있었기에  스토킹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날 수 없언던 때를 제외하면 얀진이는 내 여자관계를 철저히 관리하였기 때문에 전자의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저 영상 속 미친년도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뜻일까....?


(~♪ ~♪)

'푸쉬이이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제발, 이번엔 뭐라도 좀 남기고 가라.


.....우리 딸 얀희, 잘 지내고 있을까......너무 보고싶다...우리 딸....


우리 딸은 내가 얀진이와의 결혼생활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다. 밤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짜여지는 삶을 살았어도, 나는 얀희의 웃는 얼굴만 보면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런 우리 딸, 혹시 엄마한테 무슨 짓이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어떻게든 여기서 나갈게.....



****




.....이번에는 무슨 증거라도 남았으려나.


제발, 뭐라도 좋으니까 제발 하나라도 남—




"깼어요?"


"......?!"


"직접 나오라고 소리치더니, 막상 진짜로 보니까 말이 없네요?"


"....누구냐, 너."


"......아하, 거기서부터?"


"날, 왜 가둔거냐."


"........사랑하니까."


"나를 알아?"


"당신을, 아냐고요?"


"난 네 얼굴도 본 적이 없어, 네가 나한테 이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제—"


"푸흐흣!"


".....?"


"풋...큭....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당신을 아냐고요? 그럼요, 잘 알죠.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을거야 얀붕아 아니, 얀희 아빠라고 불러줘야 하나?"


".......!"


"난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어요."

"...."


"물론, 당신뿐만 아니라 그 언급하기도 싫은 여자도, 그리고 얀희도, 잘 알구요."


"정체가 뭐야 너......."


"흐음...뭐, 처음엔 날 기억해 주지 못해서 좀 실망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날 알려고 해주니까, 조금...설레기도 하네요?"


"....이거 풀어줘, 너, 잘 안다고 했잖아. 지금 우리 딸이—"


"걱정 마세요, 당신은 지금 교통 사고를 당한 걸로 되있으니까." 


"뭐?"


"친구와 술을 먹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30대 가장, 교통 사고에 휘말려 폭발한 버스에서 화상을 입고 전치 15주, 화상 치료를 위해 전신에 붕대를 감아 알아볼 수 없음, 환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방지와 치료 중 절대 안정을 위해 필수 의료진을 제외한 모든 인원 접근 제한."


"그게 무슨....."


"한마디로, 15주동안, 아니, 102일이 지났으니까....3일이네요? 그 기간동안 당신은 자유에요."


"여기 묶여있는데 그딴게 무슨 소용이야?"


"걱정 마세요, 안그래도 풀어주려고 온 거니까."


"......?!"




'철컥'




"뭐, 자유라고는 해도 완벽한 자유는 아니에요, 당신은 주어진 3일동안 나랑 게임을 해야 하거든."


"게임?"


"간단한 게임이에요. 3일안에 내 정체를 알아내면 당신의 승리, 아니면 내 승리. "


"내가 그딴 걸 왜 해야 하는데? 이대로 그냥 가족한테 돌아갈 수도 있는데? 아내한테는 나도 강간당한거라고 사실대로 말하면 되고 말이야."


"어머.....그런가요?"


"그래, 그 여자가 아무리 미친년이라지만—"


"뭐, 됐고요, 이거, 들어주실래요?"



'삑'



"[남일이라고 말은.....야! 그러는 너는 내 마음을 알아?! 하루종일 일하다가 집에 오면 미친년한테 들들 볶이고! 딸내미하고 포옹 한번 할때마다 부부싸움나고! 별 감흥도 없는 섹스를 새벽 세시까지 하고! 내가 진짜 우리 얀희 때문에 같이 사는거지, 우리 얀희만 아니었으면 벌써 야반도주를 하고도 남았어!]"



"너......너...그....그걸 어떻게....!"


"어머....이걸 어쩌죠? 이 녹음 파일, 아내분께서 들으시면 꽤나 섭섭해하실 것 같은데.....화도 좀 나실 거 같고요? 그런데.....화내야될 남편은 다쳐서 건드리지도 못하구.....그럼, 그 화살이 누구한테 갈까요?"


"....!"


"우후후후....귀여우셔라. 참고로 제 심장이 멈춰도 바로 이 녹음파일이 전송되게 되어 있고, 당신이 질 경우에도....아시죠?"


"너.....너 내가 가만 안둬....내가 너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거야 이 씨발!"


"그런 쪽 취향이신건가요? 전 뭐든 좋아요♡"


"미친년."


"당신 스마트폰에 내 연락처를 남겨둘게요. 내 종체를 알아내면 연락해요."



"........"



"그럼 시작할까요? 한숨 자고 일어나면, 구속구가 풀려있을 거에요. 열심히 노력해 봐요? 아,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죠."


"......?"


"항상 잊지 말아요. 과연, 누가 [진짜] 인지."


"그게 무슨...."



(~♪ ~♪)

'푸쉬이이이—'



노래와 가스가 나오고, 그 여자는 등을 돌린 채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이내 내 의식도 점차 흐려져만 갔다......









***






정신을 차렸을 땐, 내가 누워있던 바로 그 침대 위였다.


나는 침대 옆의 책상에 놓여진 내 소지품을 ㅊ확인했다.


옷은 내가 납치당하기 전에 입고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내 스마트폰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지금 얀진이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겠지, 분명 그 여자가 도청기를 설치해 놓았을 테니까...


업자를 찾아가 제거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괜히 그 여자의 심기를 거슬러봤자 좋을 것도 없을 거 같다.


그리고 내 지갑엔, 어째서인지 수표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길래 이런 일을 저지르고 이정도의 돈을 넣어둘 정도의 재력이 있는 거지...?


나는 소지품을 모두 챙기고, 서둘러 내가 갇혀있던곳의 출구를 찾아 문을 열었지만....


100일만에 보는 태양의 자연광은 내겐 너무 밝았고, 그 자리에서 눈을 가린 채 한시간을 웅크리고 있었던 후에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나무가 빽빽한 산 한가운데였고, 내가 갇혀있던 건물은 깔끔하고 세련된 내부와는 달리 겉은 누가봐도 사람이 없을 거 같은 폐가였다.


게다가 내려가는 길도 없어서, 산 밑으로 내려가는데 시간이 매우 많이 걸렸다. 벌써 노을이 지고 있으니까.....


벌써 하루를 낭비해버렸다. 어떡하지? 4일 안에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까?


산을 내려오고 사람들이 많은 시내로 들어왔다. 내가 살던 곳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였다.


그래, 우선 내 고등학교 앨범부터 뒤져보아야 한다. 그 여자는 분명 내가 졸업하기 전까진 나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을 테니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택시를 타고 도착하기 전까지 잠시 눈을 붙였다.


한숨 자고나니 어느새 택시를 타고 학교 근처까지 온 나는, 바로 학교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학교의 경비 시스템에 걸리면 골치아파질 것 같았기에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아침에 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나는 어째서 이런 일에 휘말린 걸까....


학창시절부터 김얀진이라는 미친년한테 걸려 고등학교 내내 시달리다가 졸업하자마자 아이가 생겼다.


육아와 대학생활, 그리고 취업준비까지 동시에 하며 부모님 속도 많이 썩였지만, 그래도 내 딸만큼은 나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해주기 위해 이악물고 밤 1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다.


나를 졸업하자마자 딸을 임신시킨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장인어른은, 얀진이만 신경쓰고 나는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으며, 얀희의 육아도 전부 내가 부담하게 했다.


심지어는 얀진이가 학업에 열즁해야 한다며, 그녀의 의견조차 무시한 채, 나와 그녀를 대학교 졸업할 때 까지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딱 두시간 말고는 만나지도 못하게 했다.


부당한 처사였지만, 유명한 폭력조직을 이끌고 있었던 장인어른이 무서워 울며 겨자먹기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은 경찰에 체포되어 교도소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게 힘들고 아픈 삶만 살아온 나에게,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긴 걸까?


얀희는 잘 지내고 있을까?


얼굴을 보러 가고 싶지만, 그랬다간 얀희만 더 위험해질 뿐이다.


난....무슨 일이 있어도 딸에게 돌아가고 말거다...










다음날 아침,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 앨범을 찾기 위해 일찍 학교로 방문하였다.


고등학교, 내 인생의 시련이 시작된 비극의 시발점이자, 내 모든 트라우마를 만들어낸 곳.


사실, 이 장소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얀희를 키우면서 겨우겨우 잊었던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하니까. 하지만, 딸을 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놀랍게도, 15년전 나를 담당했던 담임선생님이 여전히 근무하고 계셨기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 나세요?"


"어~ 졸업하자마자 사고친 얀붕이 아냐?"


"아...아하하...."


"뭘 쑥쓰러워해 자식아, 졸업하기 전에 사고친것보단 났지. 아무튼, 갑자기 여긴 왜왔어?"

"아 다름이 아니라 제가 졸업앨범이 아무리 찾아도 안보여서 그런데, 혹시 여기서 좀 볼 수 있을까요?"


"졸업앨범? 그래 봐. 저기 아래쪽 서랍에  모아져 있다."


"감사합니다."



나는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뒤, 내가 졸업한 년도의 졸업앨범을 찾아 살펴보기 시작했다.


졸업앨범을 열심히 살펴봤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날 좋아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얀진이가 전학온 첫날부터 교실에서 날 끌어안으며 선전포고를 해 버렸고, 그녀가 오기 전엔......


잠깐, 한명 있다. 나를 좋아할 만한 사람. 아직도, 내게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그 사람.


분명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나와 서로 사귀기 직전까지 갔던 그 애...


그런데.....그 애는 전학을 갔을 테니, 우리 졸업앨범에선 찾을 수 없다.


아무래도 선생님께 여쭤봐야 할 것 같다.



"선생님."

"어? 왜."

"혹시 얀순이는 어느 학교로 전학갔는지 아세요?"

"어? 얀순이? 어.....알....긴 알지.....그런데....알아도 소용 없을걸.....?"

"네? 왜요?"

"..........얀순이.....죽었어."

".......네?


얀순.


그녀와 나는 1,2학년 내내 같은 반이었고, 서로 좋은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사귀라는 말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었다.


하지만, 얀진이 전학온 이후 그녀는 바로 학교의 일진이 되었고, 나와 얀순이가 사이가 좋다는 걸 알게 되자, 그녀를 끔찍할 정도로 괴롭혔다....


그녀를 학교에서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매일 구타를 자행해 온몸에 심한 멍이 들게 만들고, 금품을 갈취하고, 강제로 옷을 벗긴 뒤 사진을 찍는데다, 심지어 그녀의 앞에서 나를 강제로.....


.....그런 차마 말도 못할 정도로 심한 괴롭힘을 당했었다.


그리고 나는.....그런 얀순이를 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얀진이가 나와 그녀의 성관계 동영상을 가지고 있었기에....나는 그녀에게 반항할 수 없었다.


지금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그녀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리던 내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결국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얀순이는 전학을 가고 말았고, 나는 다시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그런 그녀가.....죽었다고.....?



"야....얀순이가 죽었다고요....? 언제요....?"


"....13년전 성수대교 버스 폭발 참사, 뉴스에서 들어본 적 있지?"



그 사건이라면 나도 뉴스에서 몇번 본 적 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사건이었으니까.


성수대교 위에서 교통사고로 시내버스 하나가 전복되었는데, 충격으로 전선이 끊어져 거기서 튄 스파크가 엔진에서 새어버린기름에 튀어  폭발이 일어나 버스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던 대사건이었다.



"나도 최근에야 알았는데, 얀순이가 그 사건 일어났던 버스에 타고 있었다고 그러더라."


"....."


"....나도 처음에 듣고 많이 놀랐어, 너도 얀순이 부모님이나 한번 찾아가 봐라.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래도 아직 위로가 필요하실 거야."


".....네."





***





얀순이가 죽었다니....그럼 그 여자는 누구지...?


분명 그때와 얼굴이 완전히 다르긴 했지만......성형 수술을 했거니 했는데.....


....우선 성수대교 버스 폭발 참사, 그 사건에 대해 조사해 보아야 겠다.


나는 PC방에 들어가 그 사건에 대해 닥치는 대로 조사하였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아침 7시 50분쯤이었고, 버스 안에는 17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생존자는 없.....



나는 그 순간, 비교적 최근에 나온 기사의 제목을 보았다.


....유일한 생존자 1명....?


나는 바로 그 기사를 클릭했다.


"[17명의 승객 중, 폭발 지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얀챈그룹 회장의 딸인 얀세진 양(17) 만이 살아있는채로 발견되었다.]"

"[허나, 숨은 붙어 있었지만 전신에 3도 이상의 화상을 입었고, 얼굴뼈에 파편이 튀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에, 머지않아 숨이 끊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당시 언론은 전원이 사망자였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부친인 얀경영씨의 딸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세계 최고수준의 의료진이 20시간의 대수술을 통해 목숨을 살려냈으며, 1년 9개월에 걸친 성형 수술과 피부 이식 수술 등을 통해 딸의 사고 전 외형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유일한 생존자인 얀세진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고, 나는 그 사진을 본 순간 온 몸이 굳어버렸다.


그 사진속엔.....


날 가둬두고 강간한 그 여자가 환자복을 입고 앉아있었으니까.......







***







"항상 잊지 말아요. 과연, 누가 [진짜] 인지."

그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그 말,


이 사건과 그 말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누가....진짜....?


진짜...


누가 진짜.........라니......


......


순간, 내 머릿속에 말도안되는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폭발한 버스에서 화상을 입고 전치 15주, 화상 치료를 위해 전신에 붕대를 감아 알아볼 수 없음]"



분명히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어째서인지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이 가설이 진짜라는 확신을 주고 있었다.


.....알아보는 수 밖에.....



우선 나는 내가 감금당했던 바로 그 장소를 다시 한번 찾아갔다.


이곳에 '그것' 이 없다면, 이 가설을 증명하는건 불가능하니까.


3읽음 분을 뒤진 끝에 간신히 '그것'을 찾아낸 나는, 이번엔 꽃다발 하나를 산 뒤, 선생님에게 여쭈어 어느 장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나를 납치한 그 여자의 정체를 빍혀 줄 '어떤 것' 을 획보한 나는, 확보한 두 가지 물건을 통해, 내 가설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드디어 그 여자의 정체를 밝혀냈다.


나는 각오를 다진 후에, 그 여자가 찍어주었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결판을 내자.]"








***







얀붕이 결판을 내자고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 후, 그가 피시방에서 나오자마자,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누군가에게 습격당했고, 약에 젖은 손수건을 얼굴에 덮어써버린 그는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어느새 그는 고급스러운 펜트하우스에 올라와 있었고, 그를 납치했던 그 여자가, 목욕가운 하나만 걸친 채 얀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와인잔 하나를 들고 미소를 띄거니, 이내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키고 얀붕에게 말했다.



"그래도 어찌저찌 3일만에 알아 냈네요? 하긴, 문제가 좀 쉽기는 했어. 그래서, 내 정체가 뭔지, 이제 말해볼래요?"


"......그래,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말해주지."



"우선 너는 날 가둬놓았던 장소에 내 사진을 붙여놓았어, 하지만 그 사진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사진들만 붙어있었지, 거기서 네가 내 동창일 거라는 정보를 추측해 냈다."

"그래서, 동창들 중에 날 좋아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졸업앨범을 뒤져봤다. 그런데, 날 좋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건 딱 한명인데, 그 사람은 이미 죽었었지....."

"그래서 그 사람이 죽었을 때 일어났던 사건을 뒤져봤어. 거기서, 지금 네 얼굴이 찍힌 기사를 찾아냈다."

"그런데, 네가 마지막에 해준 그 말 덕분에, 나는 거기서 놀라운 가설을 하나 추리해 낼 수 있었어."


"그리고....이게 그 가설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는 증거다."



얀붕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서류를 두 장 던졌다.


서류의 내용은 친자 확인 증명서, 두 장 모두 검사 결과 대상들이 가족일 확률은 99.99%라고 적혀 있었다.



"사실 이건 위험한 도박이었어, 네가 나한테 그 짓을 했던 장소에 네 '머리카락' 이 남아있을 확률은 적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침대 구석에서 길다란 여자 머리카락을 찾아낼 수 있었지."


"그리고는 네 부모님에 집에 찾아갔어, 꽃다발을 들고 고등학교 친구를 조문하러 왔다고 하니까 금방 들여보내 주셨지, 그 집에서 너희 어머니와 아버지의 머리카락도 구했다."

"그리고 센테에 의뢰해서 네 머리카락과 너희 어머니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감식했지.....검사 결과가 5~6시간이면 나오더군."

"....내가 너한테 한 행동은 분명히 옳지 못한 거였지, 하지만, 이미 13년이나 지났잖아....이제와서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응? 얀순아........."



"........얀순.....그 이름은 오랜만에 들어보네....."









—13년 전—













분하다.


미칠듯이 분하다.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창밖을 보며 울분을 삭인다.


난 너무 약해서, 그 쓰레기같은 얀진에게서 결국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좋아하는 얀붕이를 두고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년의 괴롭힘을 모두 견뎌냈지만, 내게 무릎꿇고 울면서 전학가자고 호소하는 엄마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비록 얀붕이는 날 도와주지 않았지만.....나는 안다. 얀붕이도 분명 얀진에게 무언가 약점을 잡혔겠지....


비록 지금은 내가 이렇게 도망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크게 성공한 뒤, 언젠가 그 쓰레기같은 년한테서 얀붕이를 되찾아 올거다.



"아 아빠! 왜오늘은 버스타고 가라고 하는거야! 김기사는 어디갔는데! 뭐? 아파서 쉰다고?! 그럼 김기사가 안나와서 버스타고 걸어가느라 힘들어질 나는 생각 안해? 몰라! 다 짜증나! 끊어!"



.....그런데 옆자리가 좀 많이 시끄럽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애는, 온몸에 명품을 두른 걸 보아하니 잘사는 집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부자인 애 같은데, 전용 승용차가 아니라 버스를 타고 등교하게 된 것이 굉장히 불만인가 보다.


저 애는 마음 편히 원하는건 다 하며 살겠지....


부럽다. 나도 저 애만큼 힘이 있었다면 얀붕이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하며, 나는 앞좌석에 쿵 하고 몸을 부딪히고 말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여러분~ 오늘따라 브레이크가 왜이러지......"



나는 머리가 아파 눈을 질끈 감고 잠시 관자놀이를 문지른 뒤, 다시 눈을 떴다.


바닥에 옆자리에 앉은 애가 쓰던 핸드폰이 떨어진 것이 보였다.

 
나는 핸드폰을 주운 뒤, 옆자리 애한테 건네주었다.



"네 거, 떨어졌어."


".........하."



그 애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내게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야, 내가 너같은 찐따가 챙겨줘야할정도로 허접한 년으로 보이니?"


"어....어?"


"하 진짜 어이없어.....아빠는 학교에 버스나 타고 가라고하고.....버스는 그와중에 운전도 거지같고....거기다가 이젠 이름도 모르는 찐따한테.....아 짜증나 진짜."


"아니....나는 그냥....."


"야, 시끄럽고, 그 폰은 너 가지던가 해, 난 더 좋은거 살거니까. 진짜 짜증나....."



그 애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떨어졌던 휴대폰을 내게 남긴 채로.....


마침 얀진이 그년한테 괴롭힘당할때 휴대폰도 부서졌었는데, 어쩌면 잘 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가 그 애가 남기고 간 폰을 이리저리 만져보던 중—




끼익—!


콰아앙!!!!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과 함께,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봐!] 거기 조심해! 한번 더 폭발할 수도 있어!"

"[다른 사람은 다 필요 없어!! 아가씨부터 찾아!]"

"[잠깐, 이 휴대폰.....아가씨 휴대폰이다!!! 여기 아가씨 휴대폰을 들고있어!!! 아가씨를 찾았다!!!]"

"[아직 살아 있어?!!!]"

"[살아 있어!!! 들것 갖고와 어서!!!!..]"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병실에 누워 있었다.


생전 처음보는 아저씨 아줌마가 눈물을 흘리며 내가 살아있어 다행이라고 울부짖었고, 드라마에서나봤던  의사들이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말이 나오지 않아 대답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미루어 보건대, 아마 그 애와 나를 햇갈려서 잘못 데려온 듯 하다......



"우리 딸, 걱정하지 마, 아빠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전에 우리 세진이 예쁜 모습 그대로 돌려놔줄테니까, 그냥 의사선생님 말만 잘 듣자, 알았지? 아빠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다음부터 절대로 버스 타라고 안할게...."



.....어떡하지? 이 아저씨가 사실을 알면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사실 내가 잘못한건 하나도 없는데......내 말을 믿어주기는 할까?

얼굴은 다 타서 못알아보고, 골격은 비슷하다고 쳐도, 혈액형이나 유전자 검사 같은건 어떻게 된 거지....?



.....꼭, 사실을 말해야 할까?



이건.....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 무기력하고 약했던 내게 찾아온 기회.


얀붕이를 뺏어간 그 년에게 복수하고, 얀붕이를 되찾아오고,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기회.....



부모님은 내가 돌아가신 줄 아시겠지만.....지금 이 상황을 잘 이용하면 난 다시 얀붕이와 행복해질 수 있다.



이렇게 눈을 뜨고 살아있는걸 보면 수혈도 제대로 된 거 같고, 유전자검사는 사실 왠만해선 할 일이 없으니 모를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래, 이런 말도안되는 일이 일어난 건 운명이다. 나와 얀붕이가 맺어지는건 필연적인 일이었던 거다.



두고봐......얀진.



내 모든걸 걸고,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복수를 해 줄게......














*****












"....나도, 이런 일이 진짜 일어날 수 있을거란 생각은 못했어 얀순아. 하지만, 네가 마지막으로 했던 그 말, 그 말 덕분에 나는 네 진짜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어.....애초에 네가 위장한 교통사고 자체도 네 정체를 알아낼 힌트였고."



"......."



"물론, 나도 그때 널 좋아했었고, 그러면서도 너한테 사람으로서 해선 안되는 일을 한 건 알아....하지만.....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이래선....너 역시도 얀진이랑 다를 게 없잖아.....!"



"....."



"나도 잘못한 게 있으니까, 너한테 뭘 보상하라거나 사과하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건 그냥 조용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 처럼......."



".....하."



".....얀순아?"




얀순은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들고있던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냥....어이가 없어서요...아까부터....마치 당신이 이겼다는 듯이 말하고 있네?"



".....뭐?"



"당신이 말한 건 전부 사실이에요. 맞아요, 확실히 난 고등학교 때 당신이랑 섬씽이 있었던 그 얀순이라는 사람이죠, [과거에는.]"



".....그게 무슨........"



"당신이 알아낸 건, 내가 [과거] 에 누구였느냐지, [지금] 내가 누구인지 알아낸 게 아니잖아, 어?!"



"도대체 무슨 말을....그러니까 너는 지금 얀세진인 척 하는 얀순...."



"얀붕아."



"...........?"



"얀순이는 13년 전에 불에 타서 죽었어."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얀붕씨가 알아야 했던 건 내가 과거에 누구였는지가 아니야....


질문이 틀렸는데, 제대로 된 답이 나올리가 없잖아......어?


당신이 알아야 할건, 내가 과거에 누구였는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내야 했단 말이야아!!!!"





얀순은 그렇게 소리치고는, 주머니에서 레이저 포인터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얼굴에 띄운 옅은 미소와 함께, 그녀는 서서히 레이저 포인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이저 포인터에서 나온 붉은 빛은 방을 한번 스윽 훑으며 지나가다가, 이내 탁자 위에 있던 보라색에 삼각형 무늬가 그려진 선물상자로 향했다.



얀붕은 탁자 위로 다가가, 상자의 포장을 풀고는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상자 안에는 잠근 설정이 되어있지 않은 태블릿 pc 하나가 들어있었다. 태블릿을 열어보니, 안에는 다른건 아무것도 없이 동영상 재생 어플 하나만 있었다.



얀붕은 어플에 들어가, 두가지 동영상 파일 중 1번이라 써져 있는 동영상 파일을 클릭하였다.



그 동영상은 CCTV 촬영본이었다, 그리고 영상엔 얀순이 잠든 그를 범하는 동영상이 찍혀 있었다.



얀붕은 그가 최근에 납치당했을 때 찍힌 영상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 장소는 자신이 납치당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더구나, 오른쪽 밑에 나오는 날짜 표기가, 10년 전으로 되어있었다.




"...너, 이 짓을 한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나를......!"




얀순은 그 질문에 그저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동영상.



그리고, 동영상에서 나온 인물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성식이......?"



그의 친구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김성식, 동영상에는 그가 한 여자의 출산을 돕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를 돕던 간호사 한 명이 자리를 비우자, 동영상에 산모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뭐야?!"




산모의 정체는, 놀랍게도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여자와 동일한 인물이었다.



얀순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몇번인가 힘을 주더니, 끄으응 하는 신음과 함께, 한 아이를 출산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의사들을 엉덩이를 때려서 울게 하지도 않은 채 서둘러 어딘가로 옮겼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또 다른 분만실이었다.



분만실에는 한 여자가 누워있었는데, 이번에도 간호사에게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배는 제대로 갈랐다가 매꿨어?]"



"[네, 누가 봐도 제왕 절개 수술 자국으로 보일 겁니다.]"



"[좋아 그럼.....아기 울려.]"




간호사는 아이의 엉덩이를 때려 아기를 울렸고, 아이가 우는 소리에 맞춰 그들은 산모를 깨웠다.




"[축하드립니다. 건강한 딸입니다.]"




또 다른 산모는 배를 갈라서인지 고통스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를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 그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떨어뜨렸고, 태블릿을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자신이 낳은 아기가 아닌, 얀순이 낳은 아기를 받은 산모.



그녀는, 자신의 아내인 얀진이었다.




"[남편분, 이제 들어오셔도 됩니다.]"




떨어진 태블릿은, 아직도 재생이 멈추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동영상의 음성이 들려왔다.



"[얀붕아.... 이것 좀 봐......우리 딸이야....]"



"[수고했어 얀진아 수고했어.....! 우리 딸 정말 예쁘다....혹시....내가 안아봐도 될까...?]"



"[아빠분 머리 잘 받춰서 들어주시구요.]"



"[세상에...이 코 오똑한 것좀 봐......우리 딸 진짜 예쁘다...]"



"[얀붕아, 아기 이름은 뭐라고 지을 거야?]"



"[....얀희, 우리 딸 이름은 얀희야.]"




그리고, 동영상 재생은 끝났다.




얀붕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그자리에서 주저앉은 채 얼어붙었다.



자신이 키워온 딸이 아내가 낳은 아이가 아닌, 눈 앞의 여자가 자신을 면간하여 낳은 아이라는 충격은, 그에겐 감당하기 버거운 충격이었다...




"얀붕씨....자기가 납치당하기 전에 누구랑 제일 마지막에 만났는지, 알죠?"



"성식이.....!"



"그럼 상식적으로, 그 사람을 찾아가서 자기가 어떻게 됐는지부터 물어보는게 가장 먼저 해야할 일 아닌가?"



".........!"



"당신이 김성식씨를 찾아가서 그 병원 진료 기록만 뒤져봤으면, 3일이 아니라 3시간만에 내 정체를 알아낼 수도 있었어......이 답답한 인간아."



"아.....아아......!"



"그거 알아요? 당신 친구인 김성식씨 덕분에, 당신 아내한테 약물을 써서 상상 임신 상태를 만들고, 내가 출산할 때에 맞춰서 그 여자도 산부인과에 오게 만들고, 지금 동영상에서 본 것처럼....가짜 제왕절개 수술도 할 수 있었다는거?"



"그....그런.....그....."



"정신 차려 얀붕아. 아직 안 끝났어."




그리고 얀순은, 리모콘을 누르고는 벽에 걸린 TV에 영상을 하나 띄웠다.



영상은 실시간 송출 화면이었다. TV에선 택배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방금 얀붕이 본 동영상이 든 태블릿이 들어있던, 보라색에 심각형 무늬 선물상자를 들고.....그의 아내와 딸 앞에 서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 안돼.....!!!! 안돼!!!!!!!!!!!!!!"




얀붕은 절규하며 소리치더니, 그대로 얀순에게 뛰어가,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얀순아 제발.....너...너도 알잖아.....응......? 저...저 미친년이.....얀희가 자기 딸 아닌거 알면.....우리 얀희...진짜 죽을지도 몰라......! 응.....? 얀순아.....제발.....! 우리 얀희.....응? 진짜 착한 애야.......아빠가 맨날 늦어도 항상 웃으면서 반겨주고.....놀러가자고 약속해놓고 일때문에 같이 못가줘도 화 한번 안내고.....응? 그런 애란 말이야........


얀순아 제발!!!!!! 응?! 얀희....네 배 아파서 낳은 네 자식이잖아.... 응? 네가...네가...좋아하는 내 자식이기도 하잖아아!!!!


얀순아아!!! 흡....제발.....우리 딸만은....우리 얀희만큼은 안돼.....! 나아.....얀진이 저 미친년한테 아무리 들들 볶여도오....우리 딸 하나만 바라보면서 버텼어.....응? 얀순아...제발...! 저 동영상 얀진이가 보면 안돼.....제발!! 우리 딸 살려줘 얀순아 제발.....


내가 정말 뭐든지 할게......내가!!! 니가 시키는건 뭐든지할게 제발......니가 개가 되라고 하면 멍멍 짖고, 니가 노예가 되라고 하면 구두도 핥으면서 모시고, 응?! 네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테니까....!!!! 제발...우리 딸.....우리....우리 얀희좀 살려주세요.......우리 얀희 좀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가 뭐든지 할게요 제발.....! 아...아아아아아아아!!!!!!!!!" 




얀붕은 통곡하며, 그녀의 다리를 붙잡으며 빌었다. 



딸을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발악, 얀붕은 그 스스로가 얼마나 추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딸을 살리기 위해, 계속 울고, 또 빌었다.



그에게 지었던 옅은 미소를 유지하던 얀순은,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그와 눈높이를 맞추곤, 손으로 그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얀붕아......정말....내가 시키는건 뭐든지 다 할거야....?"



"뭐든지.....뭐든지 다 할게요......그러니까....우리....우리 얀희 살려줘.....우리 얀희 살려줘......"



"흐흣!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얀순은 입을 틀어막고 웃다가, 이내 고개랄 치켜들고 광소를 내뱉고는, 다시 얀붕을 보며 말했다.




"그래....바로 그걸 원했어.....얀붕아....난 이제부터 그년이 가진 모든 걸 다 야금야금 뺏어올거야....너부터 시작해서, 그년이 키우고있는 우리 딸, 그년이 사는 집, 그년이 타는 차, 그년이 입는 옷, 그 년이 먹을 쌀 한톨까지 전부 다."



"......."



"우리 얀붕이.....내 말 잘들을거라고 했으니까.......나, 도와줄거지?"



"....네."













*****












"아빠!!!!"



"여보...."




얀붕의 퇴원날, 얀순이 준비해둔 가짜 처방전을 들고 병실을 나온 얀붕은, 자신을 마중나온 아내와 딸을 맞았다.




얀진은 얀붕의 어깨를 붙잡고, 그의 눈을 노려보며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저랑 얀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앞으로 술은 절대 금지에요. 외박도 절대 금지고, 회사도 때려 쳐요. 당신이 다음번에도 이렇게 다쳐서 나랑 이렇게 길게 떨어져 있는거, 난 납득 못해요. 그리고, 당신이 입원해있던 105일간 못했던 부부 관계도, 얀희 우리 어머니한테 보낸 다음 확실히 충당할 테니까....그렇게 아세요."



".....응."



"아빠!!!!!!"




그의 딸, 얀희가 얀붕을 두 팔로 안으며 말했다.



"아빠 괜찮아요? 이제 아픈데 없어요?"



"....응, 아빠.....아빠 이제 괜찮아......"



"많이 보고싶었어요 아빠......흡....흐아아아아아앙!"




얀붕은 우는 얀희를 안고는,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아빠 이제 안아프다 우리 얀희 뚝....좋은날 울긴 왜울어...."



"훌쩍....이제 아프면 안돼요 아빠."



"응 응....우리 얀희, 아빠 퇴원한 김에 맛있는거 먹으러 갈까?"



"정말요?"



"그럼, 우리 딸 오랜만에 봤으니까, 축하도 할 겸 맛있는거 먹자!"



"우와! 신난다!"




얀희는 언제 울었는지 모를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한번 얀붕을 끌어안고는 말했다.








"사랑해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