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가장 큰 비밀이 뭐야?”


이것은 내가 상대가 최면이 걸렸는지 확인

할 때 하는 질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질문을 받은 사람은 보통

대답하기를 거부하거나 적당히 말해도 되는

비밀을 가르쳐준다. 그것도 아니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되묻거나.


하지만 최면에 걸린 사람은 이런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기 마련이었다.


“음, 내 가장 큰 비밀은.”


그녀가 씩 웃었고.


“나 사실, 사람을 잡아먹는 구미호야.”


나는, 웃지 못했다.






이런 능력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생긴 것 같았다. 어쩌면 그보다도 전에.


최면.


일반적으로, 최면은 사람의 정신적인 

록(lock)을 느슨하게 만들거나, 그 자신도

떠올리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이 능력, 이건 달랐다.

말이 최면이지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정신 조종에 가깝다. 그야말로 엄청난 힘을

가진 능력……이지만…….


‘문제는 나도 이걸 통제하기 힘들다는 거.’


탁, 타닥……나는 수학 선생이 칠판에 뭐라

쓰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창문 밖을 보았다.


오늘은 날씨가 흐리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아도, 왠지 모르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날씨였다. 


‘이걸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최면은 만능이 아니다. 오히려 이건 양날의

검에 가까운, 리스크가 큰 능력이었다.


먼저 이 최면을 거는 데에 조건이 따르고,

거는 데 성공해도 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리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쓸 수 있는 건 하루에 한 명, 게다가 이건

한 번 걸면 다신 풀 수 없어. 이미 걸린

사람에게 다른 최면은 통하지 않고, 최면의

내용을 해석하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막강한 능력이지만 제한도 많다. 그래서 난

이 능력을 최대한 감추고, 조심해서 썼다.


예로,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나를 괴롭히던

아이에게 최면을 걸어 두 번 다시는 내게

다가오지 말라고 했었다.


그 결과 그 아이는 나를 볼 때마다 공황에

빠져 도망쳤고, 그걸 버티지 못해 나중엔

전학을 가고야 말았다.


이런 능력이다. 이건. 내가 명령한 것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적용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더더욱 조심해야만 한다.


‘하지만……써보고 싶다.’


나는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녀를 흘깃

훔쳐보았다.


유미호.


지금껏 내가 만난 여자 중에서 가장 예쁘고

상냥한 아이. 이 교실, 아니 이 학교에서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자애들은 수두룩하게

많았다. 아마 못해도 20명은 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조심스레 추측했다.


다른 여자애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키,

뽀얀 피부, 짙은 속눈썹,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무엇보다도 이게 정말 나랑

동갑인가 싶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색기가

풍기는 여자아이였다.


“음? 왜 그렇게 봐? 뽀뽀하고 싶어서?”


“읏, 아, 극, 아니, 그게 아니라.”


“뭐야, 난 또 그런 건 줄 알았네.”


부끄러워……!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래, 솔직히 인정하겠다. 나 또한 숱하게

많은 짝사랑 클럽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이 클럽이 공식적으로 설립된 적도

없고, 멤버가 몇 명인지도 모르지만, 아마

클럽을 만들 정도의 인원은 될 것이다.


진짜 볼 때마다 새롭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이런 애랑 사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게 정말 옳은 걸까?’


난 쫄보에 겁쟁이다. 이런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도 평생 이걸 쓴 적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마저도 어릴 적에 뭘 모를 때나 썼지,

지금에 이르러선 아무에게도 이걸 쓰지

않았다. 이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내 멋대로 남의

인생을 조종하는 게 꺼림칙하게 느껴져서.


“……흐응……뭔가 하고 싶은 말 있어?

아까 전부터 나를 힐끔힐끔 훔쳐보는데.”


그녀가 앞을 보며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데이트 신청하고 싶어서? 혹시 그런 거면

얼른 해. 나한테 데이트 신청하는 애들이

너만 있는 건 아니거든.”


……역시 많구나, 그런 애들.

그리고 아마 나는 그런 애 중에서도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는 이 능력 빼면 보잘것없는 남자다.

키도 얼굴도 평범하고, 성격도 소심하다.

잘하는 거라곤 인기 없는 FPS 게임이나

책을 빨리 읽는 것 정도고, 패션이니 뭐니

그런 것도 잘 모른다.


즉, 난 흔히 말하는 아웃사이더, 아싸다.

이런 날 좋아해 줄 여자는 그리 많지 않을

테고, 미호가 날 좋아할 가능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낮았다.


‘정공법은 안 먹힌다. 나도 알아, 안다고.’


앞으로 평생 내가 미호 같은 여자애를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나처럼 그리

별 볼 일 없는 남자애한테마저 이렇게나

상냥하게 대해주는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


“미, 미호야.”


“응? 왜? 데이트 신청하고 싶어서?”


“그게 아니라……그, 수업 끝나고 잠깐만

시간 내줄 수 있어? 아주 잠깐이면 돼.”


“흐음……난 바쁜 사람이지만……너의

부탁이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일단……된 건가…….


‘제발 일이 잘 풀리기를.’


해석이 뒤틀리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나는 오늘 저녁, 그녀에게 최면을 건다.






온종일 어떻게 최면을 걸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결전의 시간이 되었다.


무대는 저녁노을이 지는 교실, 청소 당번도

이미 집에 갔고 학교엔 선생님만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 교실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 있어서 부른 거지?

시시한 거면 나 화낼 거야?”


한다. 지금, 나는 최면을 건다.


준비물은 지포 라이터 하나뿐.


“이걸 봐.”


딸칵! 나는 라이터를 켜고 그녀의 눈앞에

갖다 댔다.


“오! 혹시 마술 보여주려고? 그런 거면

다른 애들한테도 보여주지 그랬어~”


“부, 부끄러워서. 너한테만 살짝 보여주고

싶었어.”


“그래? 아무튼, 재미있겠네. 얼른 해봐!”


중요한 건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

그리고 상대가 내게 경계심을 품지 않고,

적개심을 가지거나 나를 믿고 있을 것.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면을 걸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예 안 걸리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

경우 내가 건 최면이 왜곡되고 만다.


“지금부터 당신은 제가 셋을 세는 순간,

의식을 잃습니다.”


“으음…….”


미호가 라이터의 불꽃을 빤히 보았다.

좋아, 먹히고 있다. 확실하다.


“하나, 둘, 셋.”


딸칵! 내가 라이터의 불꽃을 끄는 순간,

미호가 눈을 감고 휘청거렸다.


물론 넘어지진 않는다. 지금 그녀의 상태는

아주 가볍게 의식이 멍해진 수준이니까.


“당신은 지금부터 제 명령에 따릅니다.”


이제 여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어떤 명령을 내리느냐에 따라, 최면의

효과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당신은 저에게 강한 애정을 가지며, 절대

저를 해치거나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또

저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게 내가 생각한 최선의 명령이었다.

만에 하나 최면이 잘못 적용되더라도 이제

그녀는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다.


또한, 어디까지나 애정을 품게 된 것뿐

인격에 영향을 크게 주진 않았다. 단지

감정의 방향을 바꾼 것뿐이다.


“셋을 외치는 순간 당신은 깨어납니다.

하나, 둘, 셋.”


짝! 내가 손뼉을 치는 순간, 미호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하흡!? 어……방금 뭐였어!? 와! 나 잠깐

잠들었어! 이게 그 유명한 최면인가?”


“뭐 비슷한 거야. 그럼 내가 지금부터

질문을 하나 할게.”


최면이 적용됐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다.


“너의 가장 큰 비밀이 뭐야?”


그녀는 내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또,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런 질문에

대답할 리가 없다. 대답하더라도 적당히

얼버무리겠지. 최면에 걸렸는지 테스트하기

가장 좋은 질문이다.


“음, 내 가장 큰 비밀은.”


그녀가 씩 웃었고.


“나 사실, 사람을 잡아먹는 구미호야.”


……뭐?

잠깐, 뭐라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한……?


‘최면이 안 걸렸나? 아니면 왜곡됐나?

혹시 지금 나를 놀리고 있는 건가?’


확인을, 확인해야 한다.


“네……네가 나한테 잘해준 이유는?”


“그야 당연히.”


너무나도 순수한, 해맑은 미소였다.

그래서 더더욱 무서웠다.


“널 잡아먹고 싶어서 그랬지.”


장난이 아니다. 농담은 더더욱 아니다.

이건 사실이다. 지금 그녀는, 내게 솔직한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그게 사실이라면……증거를…….”


“보여 달라고? 알겠어.”


팔락, 그 순간 그녀의 모습이 변했다.

꼬리가 있었다. 귀가 있었다. 인간에게는

없어야 할 것이 분명히 있었다.


여우의 꼬리와 귀가, 거기에 있었다.


“이걸로 믿을 수 있겠어?”


“허, 허억……헉…….”


최면도 판타지라고 생각했는데, 구미호?

이건 진짜 판타지잖아. 이딴 게 현실일 리

없어. 최, 최면이 잘못된 거다. 틀림없다.


“원래, 난 이 자리에서 널 잡아먹으려고

했어. 아무도 보지 않을 때……슬쩍.”


어느새 그녀의 손톱이 내 코끝을 찌르고

있었다. 아주 예리하고 날카로운 손톱이

노을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근데 계획이 바뀌었어!”


미호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나 있지, 아무래도 널 좋아하는 거 같아!

그러니까, 있지, 우리……사귈래?”


미쳤냐?


너 같으면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랑, 심지어

방금 날 잡아먹으려고 한 식인귀랑 연애를

하겠냐?


하지만 난 그 말을 입에 담지 못했다.

날 해치지 못한다고 해서, 아예 내게 손도

대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내 가족이나 지인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근데 누가 같은 반 여자애가 사람 잡는

괴물이라고 생각했겠어!’


“있지, 나랑 안 사귈 거면―”


그녀가 혀를 날름거렸다.


“―네 입을 다물게 할 수밖에 없는데.”


대체 무슨 수로?

아니, 묻지 말자. 궁금하지도 않다.

알아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주의 깊게.

나는 내뱉을 단어를 속으로 골랐다.


“조금만, 시간을 주지 않을래?”


“무슨 시간 말이야?”


“너― 널 좀 더 깊이 알고 싶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사귀면, 그게, 그러니까,

조금 그렇지 않나 싶어서…….”


“아아……너 그런 타입이구나?”


미호가 배시시 웃으며 내 옆을 지나쳤다.


“좋아! 그럼 여사친부터 시작하는 거지?

어차피 잠깐일 테니까 괜찮아! 너도 금방

날 좋아하게 될걸?”


그리고 그녀가 교실을 떠났다.

나만 두고, 떠나버렸다.


“내가……내가 왜 이런 짓을…….”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어째서인지, 그런 말이 떠올랐다.






잠을 못 잤다. 정확히는 자다 깨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잠드는 걸 포기했다.


꿈속에서 나는 미호에게 쫓기다가, 끝내

도망치지 못하고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런 꿈을 10번 정도 꾸다 보니 이젠 그냥

다 포기하고 자살할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날 좋아한다고?

이게 게임이나 드라마였으면 꽤 흥미로운

설정이었을 테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구역질이 나와서 참을 수가 없다.


“좋은 아침~”


그때, 미호가 내 책상에 걸터앉았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다, 라고 생각한

순간 그녀의 고백이 떠올랐다.


‘나 사실, 사람을 잡아먹는 구미호야.’


닭살이 오도독 올라왔다. 현기증마저

일어나 눈앞이 순간 일그러졌다.


“괜찮아? 컨디션 나쁘면 양호실에 조금

쉬고 오는 게 어때? 혹시 열이 있나?”


“읏!”


그 순간, 미호가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댔다.


“음, 열은 없어! 다행이다, 그치?”


“그, 그러게…….”


진실을 몰랐다면 가슴이 두근거릴 일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한다. 근데 그게 얘를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래서 학교 끝나고 뭐하러 갈래?”


“네?”


“네는 무슨, 왜 이렇게 얼어붙었어? 쿠후,

왜? 내가 너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아니, 그건 아니다. 잡아먹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얘가 안 무서운 건 절대

아니다. 수틀리면 다른 수로도 얼마든지

나를 압박할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생각해보니까, 최면이 안 걸렸으면

나는 지금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그, 그러고 보니까 원래 날 거기서

잡아먹을 생각이라고 했던가?


“어디 가서 놀까? 카페? 아니면 노래방?

PC방은 어때? 나 이래 봬도 게임 잘한다?

뭐……원래는 사냥감 찾으려고 시작한 건데

의외로 재미있더라고!”


“아, 그, 그래?”


“아니면……너희 집에 가서 놀까?”


그건 안 된다.

내 가족들은, 만약 일이 틀어져서 얘가

날뛰기라도 하면…….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고,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경찰에 신고했다간 나만 미친놈 취급

받겠지.


여보세요, 제가 사실 최면술사인데 어쩌다

사람 잡아먹는 구미호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서 제가 지금 죽게 생겼습니다.

네? 여보세요? 정신병원에 가보라고요?


딱 이렇게 되겠지. 나라도 안 믿겠다.


“그……오늘 숙제가 있어서……아마 끝나고

학교에 남아서 좀 하고 가야 할 것 같아.”


“아, 진짜? 어쩔 수 없네, 흠.”


좋아, 다행이다. 이번엔 어떻게든―


“그럼 내가 도와줄게!”


“엑.”


“나 공부 잘하는 거 몰랐어? 아마 너보다

평균 30점은 높을걸? 즉, 내가 도와주면

숙제 같은 건 금방 끝내고 놀러 갈 수도

있다는 뜻이지!”


아, 안 도와줘도 되는데.

숙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얘랑 단둘이 붙어서 숙제를 하라니?


“싫어?”


순간, 나는 미호의 서늘한 표정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아닙니다. 완전 좋습니다.”


“그럼 수업 끝나고 보자~”


미호가 제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랑 숙제를 하라니.


이게 뭔 개떡같은 상황인지 모르겠다.






방과 후, 모두가 돌아간 시간이지만 나는

미호와 단 둘이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한국사는 쉽지? 근대 독립운동 쪽이 조금

어렵기는 해도, 외우기만 하면 되잖아.”


“뭐 그렇기는 하지…….”


근데 의외로, 미호는 정말로 공부를 잘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뭘 물어봐도 그 자리에서

술술 대답이 나왔다. 


얼굴도 예쁜데 공부까지 잘하다니.

사람만 안 잡아먹었어도 이 상황에 그저

감사하며 기뻐했을 텐데.


“그, 근데 너 말이야.”


“음?”


“사람……잡아먹어 본 적 있는 거야?”


“아, 그거. 그렇지. 벌써 여럿 먹었지.”


“몇 명 정도?”


미호가 나를 보며 눈만 깜빡거렸다.


“아하하, 누가 밥 먹으면서 몇 끼나 먹었나

세? 너 혹시 밥 먹을 때마다 그래?”


“그렇지는……않지……응……그러네.”


그러니까 셀 수도 없이 잡아먹고 다녔다

이 말이로군. 좋아, 미호에 대한 내 평가가

한층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근데 왜 사람을 먹는 거야? 다른 것도

많잖아? 돼지나 소, 닭이라던가…….”


“그런 것들도 당연히 먹지! 근데 사람은,

음, 특식 같은 거야. 너도 가끔 비싼 음식

먹으러 가지 않아? 스테이크나 오마카세

뭐 그런 거. 그런 거랑 똑같아.”


……그러니까 나는 얘한테 스테이크 같은

존재라는 거로군.


아니, 미호에겐 마주치는 모든 인간이 그리

보일 것이다. 걸어 다니는 오마카세라…….


“근데 어떻게 안 걸린 거야?”


그렇게 사람을 잡아먹고 다녔다면 진작

경찰이 쫓아다녔을 텐데. 한국에서 유명한

연쇄살인마들도 10, 20명씩 죽이긴 했어도

결국엔 잡혔다. 한국 치안은 그리 만만치

않다. CCTV도 많고.


“아~ 그거? 아, 이거 영업비밀인데. 엄마가

알면 혼나는데……에이! 너한테는 말해도

괜찮겠지! 우리 사이 알잖아, 그치?”


“그, 그치.”


우리 사이가 뭔데.

얘는 뭐, 벌써 나랑 약혼이라도 했던가?


“구미호가 먹은 인간은 존재가 지워져.”


“뭐?”


“한마디로 말하자면 없었던 사람이 되는

거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떠올리지도

못해. 그 사람이 남긴 무언가를 봐도 누구

것인지도 몰라. 그런 원리야.”


“그, 그런…….”


“난 벌써 이 학교에서 20명 넘게 잡아먹고

다녔는데, 봐. 아무도 모르잖아?”


20명.

숫자로 들으니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내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쩌면 나랑

친했을지도 모르는 사람 20명이 죽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너무 대놓고 그러면 안 되니까……

너처럼 단 둘이 만나자고 하는 애들만 

잡아먹었어! 나 제법 똑똑하지?”


“……그러게, 똑똑하네.”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다.

20명. 20명……그리고 나는 어제, 21명이

될 뻔했다. 내 능력이 없었다면 분명히

그리됐겠지.


‘경찰한테 신고하는 건 진짜 불가능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죽였다고 어떻게 처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불가능하다.

결국 이 문제는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


“그보다 이런 재미없는 거 말고~”


그때, 미호가 내게 다가와 무릎에 앉았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


“숙제 그만하고 놀러 가자, 응? 생각해보니

나 아직 네 취미도 모르네. 뭐 좋아해?”


“게임이나……책 읽는 거…….”


“아, 참고로 난 널 좋아해.”


순간 설렜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 남자는

누구든 미인이 이런 말을 하면 설렘을 

느끼고 만다. 본능이라 그런 거다.


“얼굴 새빨갛게 익었네~ 귀여워~”


“노, 놀리지 마.”“화났어? 화내지 마, 응? 

뽀뽀해줄 테니까 화 풀어, 아니면……

다른 것도 해줄까?”


다……다른 거……?

아주 잠깐이지만 ‘다른 거’를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품에 안겨있는 이

여자애의 정체가 무엇인지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다 이런 식으로 당했겠지.’


쾌활하고, 상냥하고, 살짝 짓궂은 여자애.

누구나 좋아할 법하고, 어딜 봐도 무해한

소녀. 아무도 의심할 수 없었으리라.


“넌……다른 애들한테도 이런 거야?”


“음? 아, 지금 질투하는 거?”


미호가 큭큭 웃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이젠 너한테만 해줄 테니까 화 풀어.”


“그, 그게 아니라…….”


“참고로 섹스까진 안 해봤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거든, 남자애들은 손만 잡아도

홀라당 넘어오니까……쿠후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자애들은 보통 이런 것도 가르쳐주던가?


“그보다 우리 언제부터 사귀는 거야?”


“뭐?”


“난 빨리 너랑 꽁냥꽁냥 놀고 싶은데~

야한 것도 하고, 엄마한테 소개도 해주고

싶고……하고 싶은 게 잔뜩 있단 말이야!

그냥 오늘부터 사귀는 거로 하자, 응?

뭐든지 해줄 테니까, 빨리~”


넘어가지 말자.

내 무릎 위에 앉아 애교를 떨고 있는 이건

인간이 아니다. 식인 괴물이다.


나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얘를 좋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살인마랑 연애하라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미안…….”


“……흠.”


순식간에 미호가 표정을 바꾸었다.

아까 그것도 연기였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도, 감정 표현을 속이는 건 가능한가?


“알겠어, 조급할 필요는 없지. 어찌 됐든

너는 내 거니까, 도망칠 수도 없을 테고.”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정체를 알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미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 지었다.


“특히 엄마는 널 절대 살려두지 않으려고

할 거야. 엄마는 우리 가문의 정체가 밖에

드러나는 걸 제일 무서워하거든. 네가 

사위가 되면 괜찮겠지만……아니면…….”


그러고 보니까, 나를 해칠 수 없는 건

어디까지나 미호 한 명뿐이다.

미호의 어머니나, 미호의 자매들은 나를

죽일 수 있다. 그것도 언제든지.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엄마한테

잘 말해둘 테니까, 그럼 괜찮아. 근데 혹시

싶어서 말하는 거지만, 입 다물고 있어.”


“내가 만약 말하면―”


“…….”


미호가 말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네. 오늘은

엄마가 다 같이 먹는 날이라고 했으니까

가야겠다. 특식을 놓칠 수는 없잖아?”


“특식이라고.”


폴짝, 미호가 내 무릎에서 일어섰다.


“그럼 내일 보자! 아, 밤에 톡하는 거

괜찮지? 내가 톡하면 씹지 말고 5분 안에

대답해줘야 해! 알겠지?”


“넵.”


그리고 그녀가 교실을 떠났다.


“나……결혼까지 해야 하는 거야?”


미치겠네 진짜.






“너 요즘 표정이 썩었다? 차였냐?”


“아니……차라리 차인 거면 좋겠어…….”


점심시간, 나는 슬쩍 자리를 떠나 5반에

있는 내 여사친, 진이를 찾아갔다.

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래저래 악연으로

엮인 사이였지만, 그래도 믿을 순 있었다.


“자세히는 말 못 하는데……일이 많이

꼬였어. 그것도 좀 심각하게.”


“워우, 너 지금 개좆됐다 이거지? 와씨,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보통 일이

아닌데. 뭐 경찰서라도 갈 일이야?”


그런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감방을

한 번 갔다 오고 말지. 사람 잡아먹는 애랑

결혼을 하게 생겼다고요 지금.


“……그거다.”


“뭐?”


“너, 요즘 돈 필요하다고 했지?”


마침 게임기를 사려고 돈을 조금 모아둔

게 있었다. 엄청 큰돈은 아니지만, 부탁

하나 들어달라고 하면서 주기엔 적당한

돈이었다.


“뭔데 씨발, 말을 해 인마.”


“너 하루만 내 여친 행세 좀 해줘라.”


“뭐?! 아이 씨, 드러워서 썅. 미쳤냐?

내가 너랑 그런 걸 왜? 아, 염병 진짜.

상상만으로도 닭살이 돋는다 씨팔.”


그 정도로 싫었나? 아니 좀 너무한데?


“40만 원 줄게.”


“좋아, 맡겨만 줘. 내가 중학교 시절

별명이 안드리 햅번이었다 안 하냐.”


“지라……이 아니라, 진짜 해줄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이거 좀 위험할 수도 있어.”


“여친 행세하는 게 뭐 위험하다고, 새끼.

겁은 많아서……야! 누나가 눈 딱 감고

도와줄게. 인심 썼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뭔진 몰라도 고생이 많다 야. 으휴,

40만원 다 안 받을게. 불쌍한 짜식.”


얘가 입이 험해서 그렇지 진짜 착하다니까.


아무튼 작전은 간단하다.

사실 나는 진이랑 사귀고 있는 사이였고,

그래서 미호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다고.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갈 거고, 죽어서도

말하지 않겠다고 하고,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설득한다. 지금으로썬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하여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미호를

무시하고 진이와 함께 하교했다.


팔짱도 끼고, 서로 어색하게나마 애칭으로

부르고, 아무튼 이것저것 다 했다.


“와씨, 오글거려 죽겠네.”


“쉿! 듣고 있을지도 몰라.”


“누가 듣는다고? 어휴, 겁쟁이 새끼.

야, 더 가까이 붙어. 딱 붙어 있어야 진짜

애인 사이 같지……쯧, 배고픈데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자.”


“내가 사줄게! 뭐든지 먹어!”


“뭐래. 야, 햄버거나 먹자.”


우린 엠페러 버거에 들어가, 각자 주문을

한 뒤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근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너 설마

나한테 관심있냐?”


“아니, 절대.”


“딱 잘라서 말하네 새끼……다행이기는

한데. 근데 진짜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너 누구한테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어?”


진이에겐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다.

말하는 순간, 진이도 위험해진다.


“미안, 아무것도 말―”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저 구석 자리에 앉아, 미호가 혼자서

버거를 먹으며 날 빤히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미행당했다? 근데 왜 몰랐지? 대체 어느

시점부터? 말도 안 돼, 계속 뒤를 확인하고

다녔는데. 


미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슥

눈길을 돌렸다. 다가오지도 않았고, 말을

걸지도 않았다. 묵묵히 버거만 먹어치웠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어야 한다.


제발.






일주일간, 미호는 내게 말도 걸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안 했다. 나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며 철저하게 무시했다.


좀 불안하기는 했지만, 나는 이게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한테 질린 게 틀림없어.’


자길 두고 다른 여자랑 바람이 났으니,

분명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정을 뗀 거겠지. 


그래야만 한다. 제발 그래야 할 텐데.


아무튼 불안과 불길함 속에서의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금요일이 찾아왔다.


「야, 너 지금 시간 있냐?」


하교하려던 그때, 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뜬금없이 문자라니. 얘는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그냥 찾아와서 하는 편인데.


「시간 나면 잠깐 창고로 와, 할 말 있어.」


……할 말?

설마 미호가 진이한테 협박이라도 했나?


나는 서둘러 창고로 향했다. 뭐가 됐든

확인을 해야만 했다.


창고 앞, 나는 문을 쾅쾅 두드렸다.


“진아! 너 여기 있어!?”


대답이 없다. 

……너무 조용했다.


“대체 뭐야?”


창고 문은……열려있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꺼져있어서 어두컴컴했고, 왠지 모를

비린내가 났다. 그리고 뭔가 쩝쩝거리는

소리도……누가 뭘 먹나?


“진아?”


딸칵!


불을 켠 순간.


나는.


나.


“어, 왔어?”


진이가 말했다.

아니, 잘려나간 진이의 머리가 말했다.

그것도 아니다. 진이의 머리 뒤에 있던

미호가 말한 것이다.


“이년이 너한테 꼬리 친 거지?”


“지, 지, 지, 잠깐, 진아?”


내장이, 피가, 사방에.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넘어졌다.


비명을 질러야 한다.

그런데 지를 수가 없다.

지르면 어떻게 될지 알 것만 같아서.


“괜찮아~ 수컷들은 다 그래, 여자가 좀만

잘해주면 헤벌레 하니까~ 네 잘못 아니야!

다 꼬리친 년들이 나쁜 거지.”


우걱우걱, 미호가 진이의 팔을 억지로

입에 쑤셔 넣었다.


“진이, 가, 문자, 문자를.”


“아 그거? 내가 보냈어. 너한테 꼭 보여줄

필요가 있었거든.”


보여줄 필요라고?

이런 끔찍한 걸, 대체 왜.


“앞으로 너한테 다가오는 년들은 전부

먹어 치워버릴 거야.”


쪼옥, 미호가 손가락에 묻은 피를 빨았다.


“네가 다가가도 마찬가지야. 너는 나만 봐.

나도 너만 볼 거니까. 공평하지?”


“아, 으, 으아, 아으아.”


“그렇게 감동받았어? 하긴, 요즘 시대에

나처럼 헌신적인 여자애가 드물기는 하지.”


미친년.


미친년, 미친년, 정신 나간 년.


이건 인간이 아니다.


이 녀석은, 이건.


“그럼, 오늘은 뭐하면서 놀래?”


유미호는.


너는 분명히, 괴물이었다.
















시어 하트 어택...

2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