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해... 그것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어"

여자는 읽던 책을 덮어놓고, 책장 너머 머나먼 곳을 쳐다본다.


여자의 남자친구가 사라진지. 일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인정한다.

평소에 여자가 좀 까탈스럽게 굴긴 했다.


잠시라도 연락이라도 안되면 될 때까지 전전긍긍.

데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도, 얼굴은 꼭 매일 보아야 했으며.

다른 여자와 신체를 접촉하는 것은 물론,  말을 섞는 것도 불쾌해 했다.


여느 젊은 커플에게서 보일 법 한 귀여운 질투.

과한 면이 있긴 했지만

남자도 제 눈에 콩깍지 인건지, 그러한 여자를 받아들이고, 사랑했다.


여자의 모든 요구사항을 들어주는건, 

남자도 사람인지라 무리였다.


하지만, 삐치고 화난 여자를 어르고 달래주는건,

여자의 남자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남자가, 일 년 전부터 연락이 닫지 않는다.

단순히 헤어졌다 거나

잠수이별을 통보받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남자와 연락이 끊기기 바로 수시간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남자와 전화를 주고받고 있었으니까.


전날에 있던 데이트에서 다른 여성과 부딪치고 사과를 하는 남자에게 짜증을 내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다음날 까지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저녁에 얼굴을 보러 오겠다는 남자친구를 내심 집에서 기다리며

침대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헤어진다고 말을 할 것이였다면 충분히 기회가 있었다.

전화로 통보를 하든

그날 저녁, 얼굴을 마주보며 직접 이야기 하든

아니면.. 단순히 문자로 이별을 고하든.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자는 연인으로서의 신뢰가 있었다.

자신이 남자를 사랑하는 만큼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일 년이라면 제법 긴 시간임에도, 여자가 남자를 찾아다니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믿음 때문이었다.


잠수이별 이라기에도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다.

남자의 존재가, 완전히 감추어진듯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직장, 집, 본가, 자주 가는 당구장, 친구 등등 주요 동선에서 남자를 기다려보았지만

남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수소문을 해보아도 남자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남자의 자취방으로 직접 쳐들어갔지만,

가구도 없는 빈 방이 여자를 맞이해줄 뿐이였다.


실종신고를 해보았지만, 경찰은 사건을 접수해주지 않는다.

확실히,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경찰들은 건장한 젊은 남성의 실종에 대해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조심스레 여자에게 정신과에 가보라고 권유한다.

여자는 자신이 남자친구에 대해 예민한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겨우 그런 것을 가지고 병원 운운하는 저 경찰이 너무 무례하단 생각이 든다.


심부름센터에 사람을 찾는 의뢰를 해보기도 했지만,

시원찮은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처음엔 자신감이 넘치던 센터의 소장도

의뢰를 실패하자, 석연찮은 웃음을 지으며 포기를 선언했다.


혹여나, 외국으로 도망갔나 싶었지만,

출입국 관리사무소에는 남자의 출국기록이 잡히지 않는다.

...심부름센터에 조금 비싼 돈을 들인 보람이 있다.

약간의 불법적인 일도, 거리낌 없이 조사해준다.

적어도 탐색할 범위가 국내로 줄어든다.


제주도나 울릉도, 혹은 신안군처럼 섬지역에 있는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여나. 염전노예로 잡혀있는건 아닐까 싶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떨어진다.


적어도, 남자가 마지막에 여자와 통화한 지점은 퇴근하고 여자의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시내였으며

CCTV에 그런 특이사항이 잡혔다면, 심부름센터는 고사하고 경찰부터 수사에 착수했을 것이다.


온갖 물리적, 논리적,  과학적인 방법을 모두 동원했지만

남자의 흔적을 찾아낼 수 없었다.


여자의 핸드폰엔 분명 남자의 사진이 찍혀있고, 음성이 저장되어 있다.

아직, 지우지 못한 남자의 핸드폰번호가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었다.


경찰의 말처럼 지금까지의 연애가, 여자의 정신병으로 인한 착각이였다면

지금 당장 여자의 핸드폰에 있는 이 자료들을 설명할 수 없다.


인정한다.

남자가 사라진지 6개월 즈음에

심신이 지친 나머지 종교적 방법을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영험하다는 무당.

구마의식에 뛰어나고 영감이 좋은 신부님.

산속의 암자에 위치한 고승.


아니... 심지어 사이비로 통하는 신천지라던가, 재림예수라던가 하는 사람들까지 찾아가서

남자를 찾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를 돌이켜본다면

여자는 뭐에 씌웠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곳에서도 구원을 찾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여자는, 혼자서 남자를 찾고자 했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파악되었던 위치를 특정하고.

평소에 다녔던 동선, 

그날의 기상조건

주변에 있던 특별한 사건들

사라지기 전 후로 나왔던 뉴스 기사들.

비슷한 방법으로 갑자기 사라져버린 다른 사람들의 사례들...


도서관에서 이잡듯이 뒤져보았다.


그리고, 한 오래된 서적에서

여자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세계 전생"

말로 내뱉으면서도 웃기다고 생각한다.

이런 만화같은 일을 믿어야 하는 것인가.


영어로는 멀티버스라고 한다.

일년 전의 자신이였다면 여자는 코웃음을 치고 무시햇을 가설이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조사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합리적 추론을 끌어낸 결과.

이것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왜 경찰이 자신에게 정신과를 안내했을까

멀티버스, 이세계 전생으로 인해 남자의 인과가 뒤틀렸을 테니까.

인연이 가장 가까운 자신정도만이 남자의 이변을 눈치챌 수 있었겠지.

없는 사람을 찾아내라고 하면, 경찰이 말해줄 수 있는건 병원 뿐인게 사실이다.


오히려 이런 면에서 일말의 실마리라도 잡고 있을 법 한 종교쟁이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여자는 그들이 죄다 사이비에, 땡중에, 파면받아야 할 사기꾼들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들였던 돈이 수천만원을 넘어갔지만,

돈을 아까워하기보다, 몆개월의 시간을 들여 쓸데없는 선택지를 줄였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책의 목차보다도 앞부분을 살핀다.

저자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한다.

외국에 거주하는 저자에게 막무가내로 이메일을 보냈다.


'당신의 글을 감명깊게 읽었다.'

'특히, 이세계나 전생에 관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나의 남자친구도, 급작스럽게 행방불명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멀티버스를 관측하고, 이동할 수 있을 것인가?'


되지도 않는 영어로, 번역어플까지 써가며 문의를 구했다.

여차하면, 위키피디아에 떠 있는 저자의 거주지로 날아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지만..

이외로 책의 저자에게서 답변은 금방 돌아왔다.


'저술한지 오래된 책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라는 문장으로 저자의 이메일은 시작되었다.


저자의 가설을 그러했다.

이세계, 멀티버스는 존재한다.


관측가능한 우주만으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기엔 모자른 부분이 많다.

빅뱅 이전의 상태를 설명할 수 없고

암흑물질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고

블랙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 현대의 과학기술로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 하더라도 

이세계와 소통, 나아가 전이를 하는데에 있어서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통신하는 이 인터넷의 구조를 알지 못해도

사용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연결되는 것 처럼.


이세계로 넘어간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이 행했던 '방법론'을 돌이켜보라는게 저자의 조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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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고 돌고 돌아서.

여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남자와 마지막으로 연락 했던 날이 딱 1년전이다.

남자가 퇴근했을 무렵의 시간을 맞추어 남자의 이전 직장 앞에 서있다.


전화기를 들고, 

남자와 통화했던 음성을 재생한다.


몇번이고 보아왔던 CCTV고

몆번이고 들어왔던 음성녹음이다.

여자는, 남자의 말을 외운 듯, 핸드폰에서 나오는 말들을 그대로 따라한다.


"자기. 내가 정말 잘못 했다니까. 절대 그 여자한테 마음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였어"

"자기. 내가 정말 잘못 했다니까. 절대 그 여자한테 마음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였어"


"그러지 말고, 오늘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이야기하자"

"그러지 말고, 오늘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이야기하자"


남자의 보폭을 맞추어 걷고

남자가 했던 대사를 같은 속도로 말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멀티버스로 넘어가기 위한 키(key)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의미없는 행위들 속에, 분명 열쇠가 있을 것이다.


횡단보도는, 항상 같은 시간에 점등된다.

남자와 보폭을 맞추어 걷는 일은, 사뭇 힘든일이다.


문제가 되는건 ....


"꺄악. 당신 뭐야?"

남자의 동선에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할 거 아냐?"

여자는, 자신이 밀어버린 사람에게 일말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별의 위치나, 행성의 움직임, 시간, 기상조건등을 고려했을 때'

내년의 같은 시간대라고 해서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여기서 실패한다면

다음 기회는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10년 후가 될지 모른다.


"야!, 내가 우스워?"

다행히, 횡단보도가 파란불로 점등된다.

일년전, 남자는 여자친구를 보기위해 이 때 쯤부터 뛰기 시작했다.


여자도, 자신이 밀어 넘어뜨린 사람을 내버려둔 채

일년 전, 남자와 같은 보폭으로 뛰기 시작한다.


"허억. 허억. 10분만 기다려 10분만"

"허억. 허억. 10분만 기다려 10분만" 


남자가, 생각보다 꽤나 빠른 속도로 뛰어왔구나.

그날, 투정부리지 말고 내가 회사앞으로 마중나갈걸.


그랬으면, 지금처럼 헤어질 일도 없었을까?


여자는 사뭇 번뇌에 빠지다. 다음 남자의 대사를 왼다.

지금은. 과거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남자를 찾아야 할 때다.

후회는, 지금 하는 일이 실패한 다음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 편의점 주변 사거리야"

"지금 편의점 주변 사거리야"


남자와 자주 들렀던 편의점.

여자의 집에서 데이트를 출발하기 전에 생수를 사기도 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자와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기 위한 물품을 사기도 했던 그런 편의점


알바생이 여럿 바뀌었지만,

항상 여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기에

결제는 언제나 여자의 몫이였다.


설령 물건만 사는 단순한 행위이더라도.

남자가 다른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걸 용납할 수 없었다.


저자는 이메일에서 이야기했다.

'세상의 많은 동식물들이 유성생식을 주요 번식방법으로 택한 것은,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생물들이 빛으로 관측하고, 진동으로 듣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도,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곳에 생물이 존재한다면, 기술의 발전정도는 달라도, 비슷한 동식물군이 있을것이다'

....


그렇단 소린

지금 자신의 남자친구의 곁에 다른 암컷이 붙어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자는 빨라지려는 걸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가장 빠른 길은, 되돌아가는 길이다.



....

"거의 다 왔어, 창문 열어볼래?"

"거의 다 왔어, 창문 열어볼래?"


여자는 남자의 대사를 기억한다.

오피스텔의 위치는 삼거리 가운데 4층,

남자가 조금 있다 보일 코너를 꺾는다면

여자가 있는 오피스텔 창문에서, 남자가 뛰어오는 게 보일 것이다.


언제나 있는 퇴근길에서,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게 여자의 하루 일과였다.


그때 생각엔, 이쯤되면 동거를 하는것도 괜찮이 않을까 생각했지만

남자는 이외로 그런 면에 있어서 보수적이였다.

.... 남자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 여자였다.



자신이 지금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전날 남자가 조심 했으면 싸울 일도 없었을텐데.

내 성격 알면서 굳이 조신하게 다니지 못하고......


'반짝'

코너를 목전에 놓아두고

여자의 시야에, 별안간 밝은 빛이 쏟아진다.


뜀박질을 하던 여자는, 시야에 비치는 거대하고도 밟은 빛에 손으로 눈을 가린다.

...아차!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에, 남자가 하는 행동이 이와 같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만약, 지금 나온 행동이 멀티버스를 여는 열쇠와 다른 행동이면?

...

...

..


다행히 빛은 사라지지 않고

여자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찰나의 순간.

여자는 직감했다.

책에서 쓰여있던 이세계 전생

멀티버스

남자가 사라진 정황

모든게 이 밝은 빛과 일치한다.


지금이라도 이 빛을 피해서 도망간다면 현생에 남아 있을 수 있겠지만

남자가 없는 세계따위, 더이상의 미련은 없다.

여자는 망설임 없이. 빛을 향해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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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어!"

"정말, 날 두고 어딜 간거야 도대체!"

"내가 얼마나 당신을 찾아다녔는지 알아?"

"나 없다고.. 그새 바람피고 다닌건 아니지?"

"아직도... 나 사랑해?"

"정말? 기뻐. 나도 당신 많이 사랑해!"

"너무."

"너무너무 보고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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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뉴스입니다.

어젯 밤 9시 xx동에서 걸어가던 행인이 공사장을 출입하려던 화물트럭에 받히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길을 지나가던 20대 여성 한명이 끝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희 기자들이 취재한 결과, 해당 공사장에선 1년 전 같은 날,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여

20대 남성 한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유도수등 안전관리를 위한 인원은 배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사항을 현장에 나와있는 저희 특파원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세현기자. 나와주세요


네 저는 현장에 나와있는 유세현기자입니다.

지금 이곳이 참혹한 사고가 벌어졌던 사고현장입니다.

공사 관계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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