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어떤 여자가 울면서 나를 껴안은 꿈

 

꿈속의 여자가 누구인지 떠올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흐릿한 얼굴을 선명하게 만들고 싶어도 방법은 없었다.

 

결국, 꿈속의 여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걸 포기한 체 침대 밖으로 나왔다. 자는 사이 완충된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았다.

 

시간은 아침 6시.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겨우 10분이란 걸 생각하면 무척이나 일찍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에는 모두 사정이 있었다. 바로 나와 함께 사는 동거인의 존재 때문이었다.

 

동거인은 다름 아닌 이모. 이야기로 풀어놓기엔 그때의 난 어려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날 버렸고 얼떨결에 이모에게 오게 됐다는 것만 언뜻 들어서 알고 있을 뿐.

 

이불 밖으로 나오자 서늘해진 아침 공기 때문에 꿈에 대한 잡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벌써 봄이지만 꽃샘추위라 그런지 체감상 겨울이나 다름없었다.

 

마음 같아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게 게으른 이모는 내가 깨우지 않는 이상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얇은 후리스를 하나 덧입고 주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우선 두 명분의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프라이팬을 꺼내 언제나처럼 그 위에 달걀을 터뜨렸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달걀이 익어가는 냄새가 날 자극하자 굶주린 배가 꼬르륵 소리를 냈다. 아침은 항상 간단하게 하다 보니 준비는 금방 끝났다.

 

다만, 아침 한정으로 원수 같은 이모가 문제가 돼서 아침 식사는 항상 늦어진다.

 

처음에는 이모의 방에 들어가기 전 노크를 했지만. 어차피 자고 있어서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그냥 벌컥 열고 들어갔다.

 

침대 위에는 역시나 이불이란 고치에 둘러싸인 커다란 번데기 하나가 있었다.

 

“이모 얼른 일어나. 밥 먹고 출근 준비해야지.”

 

번데기 미동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들려오는 대답은 중학생이 엄마에게 하는 칭얼거림이나 다름없었다.

 

“우응... 춥고 졸려니까 10분만 더 잘래...”

 

“10분 뒤에 와도 또 똑같이 말할 거잖아. 안돼. 지금 일어나.”

 

이런 식으로 하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걸 학습했기에 이모를 둘러싼 이불을 확 거뒀다. 그러자 얇은 잠옷 차림을 한 이모가 빼앗긴 이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추워... 이불 돌려줘~”

 

정녕 저게 올해 30에 접어든 어른이 하는 짓인가 의문이 들었다. 외할머니가 이모를 키울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조카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아? 그렇게 해서 어떻게 결... 으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의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모가 날 잡고는 침대로 끌어들였다. 

 

평범한 남자라면 저항이라도 해보겠지만, 이상하게도 또래 애들보다 몸집이 작은 나는 그대로 제대로 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이거 놔! 이러다 지각한단 말이야!”

 

어떻게든 이모의 품속에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그럴수록 파리지옥처럼 이모는 더 강하게 날 껴안았다.

 

“어허. 누나 말 들어야지? 헤헤. 따듯해서 기분 좋아~”

 

뭐가 좋은지 감긴 눈을 하고선 헤실헤실 거리는 이모의 얼굴을 보자 속에서 열불이 올랐다.

 

거기다 나도 이제는 고등학생이다. 어릴 때야 마냥 이모의 품이 좋았지만, 아무리 이모라도 여자의 품에 안겨 있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거기다 버둥거릴수록 이모 특유의 달달한 체취로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 썼으나 그 전에 비루한 내 체력이 먼저 닳아버릴 거 같았다.

 

“누나는 무슨! 지금 안 놓으면 오늘 저녁 가지 볶음이랑 오이볶음만 먹게 될 줄 알아!”

 

“으... 이러고 있고 싶은데 그건 싫어.”

 

어린 애에게나 먹힐만한 반찬 협박은 이모에게도 잘 먹혀들어갔다. 도저히 풀릴 거 같지 않은 팔이 겨우 풀려 이모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음에도 또 이러면 그때는 삼시세끼 다 이모가 싫어하는 것만 할 줄 알아.”

 

“네이네이. 다음부터 조심하겠습니다.”

 

이모는 마치 내가 그러지 않으리란 걸 아는 거처럼 건성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 같아선 진짜로 가지 볶음만 매끼 만들고 싶었지만, 이모에게 얹혀사는 처지라 도저히 그럴 순 없었다.

 

아침부터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뒤에 겨우 식탁에 앉을 수 있었다. 이모가 나이에 맞지도 않는 앙탈을 부린 덕분에 기껏 준비한 아침은 약간 식어있었다.

 

다시 데우기도 뭐하니 그냥 먹기로 하였다. 이모는 여전히 잠이 덜 깼는지 비몽사몽 한 채로 느릿느릿 빵에 잼을 발랐다.

 

“이모, 인제 그만 껴안는 것 좀 그만하면 안 돼?”

 

“으응? 왜?”

 

이모는 뭐가 잘못되는 걸 진짜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되물었다.

 

“그야 나도 이제 고등학생이고...”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부끄러워서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엄마와 다름없는 이모에게 욕정할 거 같다고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고등학생이라서 뭐? 다른 집에서는 다들 그렇게 하는걸?”

 

“아니, 그것도 어렸을 때나 그렇지 이모처럼 과하진 않잖아.”

 

“그래서 다운이는 누나가 싫어?”

 

또 자기를 누나라고 부르자 지적하려고 했지만, 눈꼬리를 내리며 울먹이는 이모를 보자 그럴 수도 없었다.

 

“싫은 게 아니라...”

 

“헤헤. 그럼 계속해도 된다는 거지?”

 

어떻게 방금 대화 속에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더 이야기해봤자 끝이 안 날 거 같으니 한 발짝 물러서는 건 결국 나였다.

 

“됐다. 그냥 밥이나 먹자.”

 

아침 식사 뒤로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이모는 출근 준비, 나는 등교 준비. 먼저 집을 나서는 건 이모였다.

 

“다운아, 차 조심하고 나쁜 사람 따라가지 말고. 또 학교에서 나쁜 친구 사귀면 안 된다?”

 

“무슨 유치원생도 아니고 얼른 가기나 해.”

 

“너무 차가워! 그러니까 잘 가요 뽀뽀해줘!”

 

얼른 뽀뽀해달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동상처럼 서 있는 이모의 모습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해주기 전까지는 정말 이대로 있을 거란 걸 이미 여러 번 겪어봤기에 하는 수 없이 입술 대신 볼에 입을 맞추었다.

 

“으으... 입술을 내밀었으면 입술에 해줘야지! 그래도 기분은 좋으니까 특별히 넘어가 줄게!”

 

선심 썼다는 듯 말하며 이모는 사라져버렸다. 아침부터 이러니 벌써 있는 진도 모두 빠져버렸다.

 

기운 없어진 걸음걸이로 나도 등교 준비를 마치고 학교로 떠났다.

 

등굣길에 오르니 길가에는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즐비했다. 대부분 친구와 왁자지껄 시끄럽게 이야기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엿듣고 싶지 않아도 얼마나 크게 떠드는지 그 내용까지 모두 들렸다. 어제 했던 게임 얘기부터 학교 가기 싫다는 푸념까지 그 주제는 다양하고도 영양가가 없었다.

 

항상 저런 풍경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었다. 나도 저 무리에 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거니와 처지를 생각한다면 사치에 불과했다.

 

돈만 축내는 식객에 불과한 나에게 친구를 사귀고 놀 시간 따위는 없었다. 차라리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불편함이 덜 했다.

 

하지만 학생이라면 공부만 하라며 이모가 아르바이트를 극구 반대한 탓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공부밖에 없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좋은 직장을 잡아 은혜를 갚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노는 건 그 뒤로 해도 늦지 않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 응어리는 들러붙어선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잊기 위해 단어장을 꺼내 읽으며 걸었다.

 

“잠시만요!”

 

갑작스레 앞에서 들려온 외침과 함께 발에서 무언가 밝히는 느낌이 들었다.

 

콰직!

 

발을 내딛는 순간 발밑의 무언가가 부서진 게 느껴졌다. 앞에서 소리를 질렀던 여자는 아연실색하고 나도 부서진 물체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일을 다물지 못했다.

 

안경이었다. 어째서 안경을 길거리 한복판에서 떨어뜨렸는지는 둘째 치고 만약 앞에 여자가 안경을 변상하라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이 싼 물건도 아닌데다가 무일푼 학생인 내가 이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서는 절대로 변상할 수가 없었다.

 

고민은 순간이었다.

 

두 눈 딱 감고 도망쳤다. 뒤에서 날 불러세우는 목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무작정 학교로 뛰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벌써 학교 정문까지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주변의 학생들은 지각할 시간도 아닌데 숨을 헐떡이며 오는 날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전력 질주 때문에 폐부가 찔리는 건가, 양심이 찔리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교실까지 향했다. 방금의 안경 사건을 제외하면 뒤로는 평소의 일상과 다름없었다.

 

교실 구석에 박혀서는 공부만 하는 재미없는 일상. 정신없이 공부만 하다 보니 아침의 사건도 어느새 기억이 잊혀지기 직전이었다.

 

방송에서 내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2학년 3반 정다운 학생. 방송을 듣는 즉시 교무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물론 교무실에서 나를 호출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결손 가정이라 국가에서 이런저런 지원을 해주는 일이 있어서 가끔 오라고 하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방송이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부르지 이렇게 방송을 하지는 않는다.

 

방송에서 내 이름이 나와서 그런지 교실의 시선은 잠깐 나를 향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곧 흥미를 잃고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교실을 뒤로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은 교실에 비하면 무척이나 조용했다. 가끔 들리는 담소를 제외하면 들리는 건 키보드 소리 아니면 싸구려 믹스커피 홀짝이는 소리.

 

그 정적을 깨지 않으려 조용히 들어가자 담임 선생님은 날 발견하고는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담임 선생님에게 가려고 한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선생님 옆에는 오늘 아침에 내가 부숴버린 안경의 주인이 있어서였다.

 

머리가 백지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온 걸까. 

 

사실 눈이 그렇게까지 나쁜 건 아니지 않았을까. 도망치고 싶어도 학교까지 찾아온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뭘 그리 멀뚱멀뚱 서있는 거야? 얼른 이리로 와.”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선생님은 얄궂게 어서 오라며 재촉을 해댔다. 우선 사과하면 넘어가 주지 않을까 하는 알량한 희망을 품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일은 죄...!”

 

하지만 무언가에 입뿐만 아니라 시야까지 막혀버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보고 싶었어. 정말로 미안해...!” 

 

선생님 옆에 있던 여자가 날 껴안은 것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숨이 막혔다. 어떻게든 숨을 쉬려 코로 공기를 빨아들이자 그리운 냄새가 훅 들어왔다.

 

향수를 자극하는 달달한 향기. 하지만 이모의 향기와는 결이 달랐다.

 

이모가 끈적해서 빠져나가기 힘든 파리지옥 같다면 앞의 여자에게는 이유 모를 포근함이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품에서 이 향기를 맡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갑작스레 몰려오는 감정의 파도 때문에 더욱이 당황스러웠다.

 

서둘러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여자는 내가 나오고 싶어 하는 걸 알았는지 천천히 손을 풀고는 눈높이를 맞추려 무릎을 굽혔다.

 

아침에는 급하게 자리를 빠져나오려고 하다보니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제대로 보니 그녀에게 기시감이 느껴졌다.

 

곧 그녀가 이모와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이모가 나이를 좀 더 먹고 인상이 순순해지면 이 사람처럼 되지 않을까?

 

나와 여자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서로 눈가에 물기만 그렁그렁 맺힌 채 보기만 했다. 먼저 정적을 깬 건 그녀였다.

 

“엄마가 그동안 정말 미안해...”

 

엄마라는 단어를 듣자 나도 모르게 엄마라고 자칭한 여자를 밀쳐버렸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평소에 조용히 공부만 하던 내가 갑작스레 이런 행동을 벌이자 담임 선생님도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진 게 보였다.

 

“야! 정다운 너 어머님께 뭐하는 짓이야!”

 

누가 엄마라는 걸까. 어렸을 때 날 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곤 연락 한번 없었으면서.

 

덕분에 짐덩이 같은 나를 키우느라 이모는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하고 고생만 했다. 그런데 내가 거의 성인이 되니까 나타나서는 엄마 행세를 한다?

 

그동안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만나고 보니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전 엄마 같은 거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

 

교무실을 도망치듯 빠져나간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저 교무실에서는 나를 부르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그걸 피하려 무작정 달렸다는 것 말고는.

 

밖은 지독하게 차가운 봄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은 가방에 있지만, 가지러 갔다간 붙잡힐 것만 같아서 그냥 나오기로 했다.

 

비가 체온을 앗아가자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찾아왔다. 이는 덜덜 떨리고 점점 감각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어서 집에 들어가서 따듯한 물로 씻고 싶다. 그리고 한숨 푹 자면 이 지독한 악몽에서 깨지 않을까.

 

현실 도피적인 얄팍한 희망을 품으며 집에 도착했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집 열쇠가 가방에 있었기 때문에.

 

어이없는 이 꼬일 대로 꼬인 상황에 그저 헛웃음만 터졌다. 학교로 돌아갈 순 없고 이모가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터.

 

혼자서는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끼고 이는 곧 날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었다.

 

“아... 이모 보고 싶다...”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물론 이런다고 마법처럼 이모가 나타날 리는 없겠지만.

 

“다운아!”

 

벌써 죽을 때가 됐나. 이 시간에 여기에 있을 리 없는 이모의 목소리가 들린 거 같았다. 하지만 환청치고는 너무 선명했다.

 

“비에 홀딱 젖어서는 이게 뭐야! 몸도 얼음장이잖아!”

 

시야가 흐릿한 탓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이모 특유의 체취 덕분에 앞의 사람이 이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사람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걸까.

 

그런 건 어찌 되든 좋았다. 따듯하다는 걸 넘어 뜨거운 이모의 손길이 그저 기분 좋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온기를 더 크게 느끼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럼 거지 같은 기분이 나아질 것만 같았다.

 

“안아주라.”

 

“엥? 다운이가 나한테...? 이거 꿈?”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이모다. 그래도 그런 이모라도 너무 좋았다.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이 보였지만, 이모는 오늘 아침보다도 더 강하게 날 안아주었다.

 

온기가 내 몸에 자리 잡은 한기를 내쫓고는 점점 안을 채워갔다. 그리고 그 온기에 빠지자 수마에 빠르게 홀렸다.

 

“걱정하지 마. 누나가 해결해줄 테니까.”

 

*

 

학교에서 전화가 왔을 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순하디순한 다운이가 갑자기 학교를 빠져나왔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일이 있었다. 다운이의 엄마, 즉 언니가 돌아왔다는 것.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란 걸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빨랐다. 아직 다운이와 진도를 다 나가지도 않았는데 난입하다니.

 

“정말 다운이를 낳은 거 빼면 쓸모없네.”

 

지칠 대로 지쳐버려 곯아떨어진 다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푸념을 뱉었다.

 

그래도 요즘 유난히 부끄럼을 많이 타서 함께 씻은 지가 꽤 됐는데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거 보면 완전히 쓸모없지는 않은가?

 

“진짜로 부드러웠지~.”

 

아무것도 안 바르는데 피부가 웬만한 여자들보다 좋다니. 게다가 안아달라며 보호 욕구를 자극할 때는 정말... 평범하게 자랐다면 남자건 여자건 다 꼬시고 다니지 않았을까.

 

이런 모습을 나만 볼 수 있는 건 크나큰 행운이 아닐까 싶다.

 

지이잉~

 

다운이가 깨지 않게 조심히 머릿결을 쓰다듬는 중 주머니에 진동이 울렸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하지만 그 번호의 주인이 대충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마 다운이의 담임이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줬으리라.

 

그냥 무시할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이른 시일에 만나게 될 테니 지금 받아도 나쁜 건 없지 않을까.

 

다운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방문을 닫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크나큰 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그 심약한 언니가 소리를 지르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되다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왜 다운이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버린 거나 다름없긴 하잖아? 그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으면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편지도 계속 보냈는데 그때는 잘 받았다고 했잖아!’

 

“잘 받았긴 했지. 누가 받았다고는 얘기한 적은 없잖아?”

 

‘...’

 

매달 날아온 편지를 다운이 몰래 받는 게 얼마나 힘들었던지. 연차나 병가까지 써가면서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그 편지들은 물론 조금 읽어보고 전부 태워버렸다. 

 

내용은 항상 비슷했다. 한국에 홀로 둬서 미안하다부터 잘 지내고 있냐, 자리를 잡으면 데리러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 전부 진부한 내용 뿐이었다.

 

‘다운이에게 사실을 말할 거야... 그리고 다시 데려올 거라고!’

 

그걸 지금 협박이라고 하는 건가. 진짜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동안 나타나지도 않은 언니의 말을 믿을까 아니면 여태껏 키워 준 나를 믿을까.

 

답은 조금만 생각해도 나올 텐데 악에 받쳐서 소리지르는 꼴은 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던가. 잘 되길 빌게~”

 

스피커에서 언니가 뭐라 소리쳤지만, 이제는 상대하기도 귀찮아 그냥 끊고 번호를 차단해버렸다.

 

오늘 다운이의 반응을 보아하니 지금까지 했던 밑작업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아이의 기억은 백지 같아서 조금만 색칠을 해도 쉽게 물들었다.

 

‘엄마가 널 버리고 갔어.’

 

‘이제 너에겐 나밖엔 없어.’

 

‘내가 없으면 넌 혼자야.’

 

물론 직접 이렇게 말하진 않았다. 나도 다운이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그러니 조심히 반복적으로 이 인식을 심어줬다.

 

요즘은 이성으로 보게 하려고 더 적극적으로 몸을 부대끼기 시작했다. 물론 다운이가 부끄러워하긴 하지만, 지금처럼 빈틈이 생길 때 조금만 유혹하면 넘어오지 않을까?

 

그 까탈스러운 다운이가 먼저 안아달라 했으니 이는 확실했다.

 

언니랑 통화하니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다운이를 보며 다시 힐링이나 해야지.

 

방 안에는 여전히 세상 모르게 곤히 자는 다운이가 있었다. 통화하는 동안 잠꼬대라도 했는지 이불은 옆으로 치워졌고 잠옷은 위로 말려 올라갔다.

 

“음... 약간 장난쳐도 깨지 않겠지?”

 

물론 살짝 짓궂은 장난이 되겠지만♡


-----


조금 매운 해피?엔딩

https://arca.live/b/yandere/72531009?category=%EB%8C%80%ED%9A%8C&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