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 속 오두막


아니, 오두막이라기엔 조금 큰 나무로 된 별장에 한 금슬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어. 


남자의 이름은 얀붕, 여자의 이름은 얀순이었지. 


둘은 행복하게 오순도순 살고 있었어. 물론 처음엔 얀순 쪽에서 굳이 말할 필요는없는 조금은 과격한 얀챈전용 대화수단을 사용한 만남이었지만, 다행히 얀붕 쪽에서도 첫 만남부터 반해버렸기에 별 문제 없이 넘어간 일들이었지. 


그 날도 여느때와 다를 게 없는 날이었어, 얀순은 우월한 신체능력과 명석한 머리로 밖에서 일용할 양식을 사냥해 오고, 얀붕은 여느때와 같이 밖에서 여자라도 만나면 큰일나니까 집에서 열심히 내조를 하는 중이었지.


얀붕에겐 한 가지 취미가 있었어. 집안일을 전부 끝낸 오후, 차 한잔과 함께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독서를 즐기는 것 이었지. 


그 날도 평소처럼 독서를 즐기고 있었어, 딱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 깊은 산 속에 본 적도 없는 다른 사람이 들어온 것이었지.


얀붕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다른 사람의 존재에 정말 반가웠어, 어쩌면 자신과도 꽤나 닮은 외모에 더 반가웠을지도 모르지. 심지어 늙은 남자라니! 얀순에게도 딴지를 걸리지 않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존재라는 것은 지금까지 부모님밖에 없었는데, 한 명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얀붕은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어.


"처음보는 분이네요? 어디서 오신건가요?"


그 외지인은 꽤나 신기한 몰골이었어. 마치....무언가 항거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에게서 황급히 도망쳐 온 듯한 추레한 몰골이었지. 


그 외지인은 얀붕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사색이 된 채로 말을하기 시작했어. 


"아...안 돼......당신, 당신도 어서 도망치시오, 이곳은 곧 있으면 그 년이 올거야!!!!!!!"


"지.....진정하세요....그 년이라뇨? 그게 누구길래....."

 

"당신.....당신은 나와 닮았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흑발 흑안에 평범한 바가지 머리. 필시 성은 얀씨일 것이고 이름은 촌스럽게 외자에다가 붕이니 돌이니 하는 이상한 단어가 들어가 있겠지....."


"우.....우와.....어떻게 알았어요? 제 이름은 얀붕이라고 해요."


"곧 있으면 얀붕 자네에게도 들이닥칠거야..... 지금까지는 내가 감당하고 있었지만 기어코 도망친 나를 쫒아오고 있어..... 자네도 그녀를 만나면 안돼.....일단 한 번 그녀를 만나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될거야....."


"예? 그게 무슨소리....."


"설명은 얼추 해줬으니, 난 다시 도망가 봐야겠네. 곧 있으면 여기 들이닥칠테니 자네도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챙겨서 이 곳을 떠나게."


자기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겉으로 보이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다시 도망을 치기 시작했어. 사실 나이에 안 어울린 다기보단 그냥 사람이 낼 수 없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 걸 보니 아마 마법사인 것 같았어, 이내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지. 


"뭐지? 이상한 사람이네......"


얀붕은 별 생각없이 다시 독서를 시작했어. 


독서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숲 저편에서 횃불을 든 한 무리와, 그 선두에 선 여자 하나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어.


얀붕은 이번에도 반갑게 말을 걸려 했으나, 여자라는 생물이 끼어있다는 것을 본 순간 자신의 지조를 위해 새침한 얼굴로 창문을 닫은 뒤 커튼을 쳐 버렸지. 


허나 그 순간, 오두막의 벽이 말 그대로 박살나 버렸어. 


"어머....? 도망친 육봉을 찾아나서고 있었는데, 여기 훨씬 싱싱한 육봉이 있었네....?"


"난 이 곳 작은 시골 구석의 변경백을 맡고 있는 갈보얀진스라고 한단다, 편하게 얀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렴."


"자 그럼 이제 본론이야, 너 오늘부터 내꺼란다."


이 상황자체가 어이없을 법도 하지만, 다른 사소한 건 얀붕에겐 알바가 아니었어. 그저 자신의 지조가 최우선이었기에 얀붕은 짧게 읊조리고 당장 갈본지 개갈본지 하는 여자에게서 최대한 멀어지기 시작했어. 


"임자있어요."


허나 얀진이라는 이름답게 그녀는 임자가 있다는 말에 더 좋아하기 시작했어, 얀진이라는 이름이 얀순이라는 임자가 있는 남자에게서만 흥분을 느낀다는 더러운 이름이라는 풍문이 있다던데, 얀붕은 속으로 그 풍문을 진실로 인식하기 시작했지. 


그렇게 깔끔하게 무시한채로, 멋들어지게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으나 주위를 변경백의 무사들이 포위해 버린지 오래였고, 얀붕은 할 수 있는만큼의 모든 저항을 해보았으나 1분도 버티지 못한채로 질질 끌려갔어. 그야 그렇겠지. 얀붕이 가지고 있는거라곤 지금까지 열심히 지켜온 지조 하나가 끝이라서, 있는거라 해봤자 남들에게는 없는 신성함 정도 말고는 변경백에게 저항할만한 수단따위 없었거든. 


그렇게, 얀붕은 사라졌어. 




***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온 얀순은 집 꼬라지를 본 순간 개거품을 물 뻔했어. 벽이 부숴지고 집안이 난리가 난 것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지만, 얀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상황 판단을 마쳤거든. 


"그 씨발 개갈보련......도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들어온거지......."


사실 얀순이 이 깊은 산속에 별장을 지은 건 이유가 있었어. 다른 여자도 다른 여자지만 그 거지같은 년이 백날 끼고 다니는 남자가 얀붕이와 상당히 닮은 외모여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꼭꼭 숨겨놓은 거였지. 


얀순은 지금 미치기 직전이었어. 변경백이라는 위치는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에, 얀붕이를 되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만 했는데, 그 기간동안 얀붕이가 당할짓을 생각하니까 미쳐버릴 지경이었지. 


물론 지조있는 얀붕이가 그딴 늙고 추레한 년한테 아랫도리를 세울리는 없으니까 그 방면으로는 안심할 수 있어도, 갈보라는 성이 괜히 붙은 게 아닐 터,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성희롱들을 그 긴 기간동안 얀붕이에게 할 거라는 사실에 얀순은 이성을 잃었고, 그냥 검을 들고 달려가기 시작했어. 



***



"이야~ 독하다 독해, 여기까지 버텨? 슬슬 나도 지치려 한다 그냥 좀 세우면 안될까?"


"니 년의 그 비린내나는 아랫도리부터 치우고 말해주면 안될까....? 코가 썩을 것 같아서 생리활동이 불가능해 질 수준이야...."


얀진은 그 짧은 사이에 이미 익숙한 듯이 약 투여, 나이에 맞지도 않는 시스루를 입고 가히 갈보스러운 아양을 떨며 몸을 비벼대고 있었지만, 우리의 신성한 얀붕이에게 통할리가 없었어. 


보통사람 같았으면 나이를 40이나 먹은 것 치고 20대라 해도 믿어줄 외모에 속아 삐에로가 주는 검 모양 풍선마냥 부풀어 있겠지만, 하루에도 수백번은 하는 것 같은 도저히 맡아줄 수 없는 밤꽃냄새와, 이미 본인도 상대가 있는 주제에 외모가 좀 되는 다른 남자가 나오자마자 갈아치우는 가히 창녀스러운 창녀촌 마인드 때문에 서기는 커녕 안쪽으로 쑥 들어가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어. 


'어? 그건 좀 큰일인데.'


납치되고 나서 온갖 약물을 주입받을 때보다 위기감이 커진 얀붕이었어, 얀순이야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좋아해 줄테지만, 정작 자신은 그쪽은 흥미가 없었거든. 


그런 자잘구레한 생각을 하고있는 순간, 밖에서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어. 


그래, 이성을 잃은 얀순이 기어코 쳐들어오는 소리였지. 


"니 주인왔네? 잘 됐다, 저거라도 어따 가둬두면 너가 억지로라도 세울 수 밖에 없겠다. 그치?"


"아......안 돼......"


어떻게든 얀순은 얀붕이 있는 위치까지는 결국 도달해냈어


"마이.......프레셔스....... 이 씨발 개갈보련이 내 유일한 보물을 훔쳐가?"


기세좋게 말하고 있었지만 다른 병사들을 뚫고 온 것이기에 체력이 바닥나기 직전이었고, 무엇보다 얀진에게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었지. 


바로 그녀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사실이었어. 자신이 맨날 끼고다니던 남자 얀돌이 마법사 였기에, 평범하게는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바로 악마와 계약을 해버린 그녀였지. 


소드 엑스퍼트였던 얀순이었지만, 만전의 상태여도 이길지 모르는 상대를 지금 상태로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고, 결국 얀순은 제압당한 뒤 얀진과 얀붕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태로 쓰러져버려. 


"하하.....어쩔까 얀붕아? 저 년의 목숨을 굳이 가져가야만 그 아랫도리를 세울려나~?"


그렇게 얀붕이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아랫도리를 세우는 전형적인 ntr물로 가려는 순간


"순간이동"


갑자기 한 마법사가 눈 앞에 등장했어. 


그래, 도망쳤었던 마법사, 얀돌이었지. 당장은 무서워서 도망쳤었으나, 어찌보면 자신때문에 잡혀간 두 사람에게 책임감을 느낀 그가 결국 그들을 도와주러 온 것 이었어. 


"....저 둘은 놔줘."


"왜 얀돌아~? 가던 도망이나 마저 가지 어짜피 니가 저 둘 데리고 도망도 못 칠텐데~? 오히려 난 뷔페처럼 둘 다 즐기면 되지 않을까~?"


"....널 이기진 못해도 이곳에 폭발마법을 한방 갈기는 건 가능하거든, 넌 살아도 나랑 저 남자는 확실히 죽을텐데, 괜찮겠어?"


"......쯧, 얀돌이 머리 좀 썼네? 그래 뭐 원래 목적은 되찾았으니 아쉽지만 만족하지 뭐."


아무렇지 않게 창녀스러운 말을 씨부리는 얀진의 더러운 자태와, 그런 얀진에게 20년동안 더럽혀져 왔으면서 자신들을 구하러 여기로 온 얀돌이가 또 더럽혀질거라는 사실에, 얀붕이는 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진 느낌이 들었어. 


그 순간, 얀붕의 몸에서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내려왔어, 얀붕의 몸속에 내제되어 있던 거대한 신성력이 껍질을 깨고 나오고 있었지. 


마치 유니콘을 실제로 영접하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지. 


보통같았으면 평생 나올 일 없을거였어. 본래 마왕이 살아있을때나 신들이 인간을 위해 내려주는 신성력을, 얀붕은 유니콘마냥 지조를 지키면서 쌓아왔으나, 악마의 본신이라도 만나지 않는 이상 그걸 자각할 일따위 평화로운 일상에서 찾을 수 있을리가 없었거든. 


그러나 악마보다도 더 불결하고 더러운 얀진의 모습에 의해, 저 더러운 것을 정화해버리고 싶다는 본능이 결국 얀붕의 신성력을 일깨워 버렸어. 


그렇게 깨어난 신성력을 얀붕이 제어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지. 그리고 제어할 일도 딱히 없었어. 그 뿜어져나오는 신성력에 의해 얀순이 말끔히 치료되어 가고 있는데다가, 악마보다도 더럽게 추한 년 하나를 지금도 열심히 불태우는 중이었거든.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냥 천성만 더러운 년이었으면 모를까, 악마랑 계약도 했던 여자라서 효과는 가히 발군이었지. 결국 갈보얀진스는, 자신의 성처럼 갈색으로 변색되다 못해 아예 검은색으로 그을려지면서 죽어버렸어. 


그 뒤 얀돌의 마법으로 현장을 은폐하고 도주한 뒤, 부부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얀돌은 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 얀희를 찾아 행복하게 살아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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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벌 반지의 제왕 보다가 빌보배긴스 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갑자기 막 휘갈겼는데, 내가 도대체 뭘 쓴거지.....? 머리에 아무것도 거치지않고 영혼이 시키는대로 막 썼더니 어느샌가 오천자가 채워져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