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눈을 뜨면 낯선 천장.

얀붕이는 오늘도 유쾌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금방 잠에서 깨어난 얀붕이는 아직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대충 파악 완료.

얀붕이는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더니 자신이 깨어난 장소를 정확히 파악했어요.

그리고 금세 표정이 일그러지는 우리 얀붕이.


"우리 집에서 20km나 떨어져 있네... 이번엔 아주 독하게 마음 먹었나 봐."


얀붕이는 곧바로 자리에서 벗어날지 아니면 조금 기다릴지 고민했어요.

왜냐면 얀순이의 기척이 저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죠.

잠깐 고민하다가 얀붕이는 얀순이를 기다리는 것을 택했어요. 그녀가 대체 어떤 핑계를 댈지 궁금하기도 했고, 심심하기도 했거든요.


"안녕, 얀붕아~ 누나왔어~"

"응, 안녕."

"우리 얀붕이 갑자기 이상한 곳에서 깨어났는데도 안 울고 누나 기다리고 있었구나? 누나는 너무 기뻐~♡"


얀순이가 덜컥 문을 열고 얀붕이를 향해 안겨들었어요. 자신을 기다려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얀순이의 팬티는 촉촉히 젖어가네요.

이 음탕한 여자아이는 얀붕이를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해왔답니다. 


그 이유도 얀붕이가 귀찮게 구는 사람을 초능력으로 떼어내다가 우연히 얀순이를 돕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 뒤로 얀순이는 얀붕이를 마음에 두고 천천히 접근했지만, 지금 모습을 봐서는 그 마음이 얼마나 삐뚤어졌는지는 쉽게 알 수 있죠?


"누나, 여긴 어디야?"

"응? 왜에? 알고 싶어?"

"아니... 딱히 가르쳐주기 싫다면 됐어."

"아냐아냐! 가르쳐주기 싫은게 아니라... 응, 그러니까 여기는 내가 최근에 계약한 원룸이야. 임대인이랑 원만한 합의를 통해서 CCTV를 설치하는 것도 허락받았답니다~ 그래서 우리 얀붕이를 매일 같이 실시간으로 상태 확인해주고 돌봐줄 수 있게 됐어. 너무 좋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얀붕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어요. 얀순이가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면 탈출하는데 힘을 더 써야하기 때문이였죠.

얀순은 얀붕이가 순순히 납득하는 모습을 보더니 너무 기뻐서 눈물을 찔끔 흘리네요. 물론 전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지만요!


"배고파."

"밥 차려줄게! 우리 얀붕이 고기 좋아하지? 누나가 얀붕이가 무슨 음식 좋아하는지 매일 지켜보면서 기록했거든! 누나가 사랑을 가득 담아줄게~"

"응"


얀붕은 잠깐 힘을 써서 얀순이의 생각을 읽었어요. 그랬더니 에그머니나! 얀순이가 망측하게도 요리에 발정제를 넣을 계획을 짜고 있네요.

물론 얀붕이는 그런 약을 먹어봤자 바로 기운을 중화시킬 수 있어서 별 의미는 없어요. 그렇지만 약 들어간 요리를 먹는 것도 사절이었답니다.


"그럼 누나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을 테니까. 우리 얀붕이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해. 그래야 착한 아이니까. 알겠지?"

"...알겠어"


얀순이는 그 예쁜 얼굴로 서글서글하게 웃다가도 자신이 요리중에 얀붕이가 탈출을 할까 싶어 진지하게 경고를 하네요.

경고하는 얀순이의 얼굴에는 약간의 광기마저 서려있었지만 얀붕이는 그저 귀찮다는 얼굴이에요.

얀순이는 부엌으로 향하면서도 계속 고개를 돌리면서 얀붕이를 지켜보는 게, 너무너무 신경이 쓰여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에요.


얀붕이는 얀순이가 부엌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완전히 요리에 집중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 천천히 머리를 굴렸어요.

대충 기척을 제거하고,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만든 다음, 자신은 텔레포트를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걸로 가닥을 잡은 우리 얀붕이.


"그럼, 누나 나 먼저 갈게."


계획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어느새 얀붕이가 있던 자리에는 얀붕과 똑같은 모습의 환상만 남겨지고, 본인은 순식간에 집으로 귀가.

그 와중에도 얀순이는 고개를 내밀어 얀붕이가 잘 있나 지켜보다가 잘 있는 걸 확인하고는 흐뭇하게 웃으며 돌아가네요.

아, 불쌍한 아가씨라니까요. 정말. 아니, 사실 안 불쌍할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30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요리를 들고 나오는 얀순이.


"얀붕아~ 밥 다 됐어. 누나랑 같이 먹자~♡"

"..."

"응? 우리 얀붕이 자고 있어? 심심했나 보구나... 미안해 누나가 신경 못 써줘서... 그치만 얀붕이가 나쁜 거야. 자꾸 어떤 식으로던 내게서 도망치니까 누나가 조급해지잖아. 얀붕이는 누나한테 벗어나면 안.돼.♡ 알겠지?"

"..."

"자, 얀붕아~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야지? 밥 먹을 시간이야~"

"..."


얀순이가 얀붕이의 환상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얀붕이의 환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어요. 

순간적인 상황 변화에 파악을 하지 못한 얀순이는 응? 어라? 같은 소리를 내면서 얀붕이가 있던 자리를 더듬어 보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얀붕이는 집에 있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영혼의 맞다이를 하고 있는 중인데 말이죠.


"얀붕아...? 얀붕아... 어디갔어?"

"얀붕아? 얀붕아!? 얀붕아!!"

"얀붕아! 얀붕아? 얀붕아, 얀붕아, 얀붕아...!!"


들고 있던 요리를 내팽겨친채, 정신이라도 나간듯이 주변을 이잡듯 뒤지면서 얀붕이를 애타게 찾는 우리 얀순이.

하지만 20km나 멀리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얀붕이를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에요.


"얀붕아...! 대체 왜... 왜...? 왜 자꾸 누나에게서 도망치는 거니... 누나가 그렇게 싫어? 누나가 그렇게 무서워?"

"누나는 얀붕이 너무 사랑하는데... 얀붕이는 누나한테 이런 마음만 들게 만들고 도망만 치는 거야...?"


결국 자리에 무릎을 꿇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얀붕이의 이름을 부르짖는 얀순이.

길 한복판에서 얀붕이의 이름을 외치며 구슬프게 우는 모습은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뭐 그거 뿐이죠.

사람들은 얀붕과 얀순이의 사이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그냥 얀순이가 애인을 떠나보냈나보다 싶어서 무시했어요.


"얀붕아... 그래, CCTV... CCTV에는 얀붕이가 뭘 했는지 녹화되어 있을 거야...!"


옷도, 마음도 엉망진창이 된 채, 얀붕이를 가둬 놓았던 원룸으로 돌아온 우리 얀순이.

얀순이는 눈을 희번득 뜨더니 CCTV로 녹화됐을 장면을 뒤지기 시작하네요. 하지만 뭐가 보이겠어요? 얀붕이는 그 자리 그대로 있었는데 말이에요.


"뭐야...? 뭐냐구...! 대체 이게..."


아무리 보아도, 몇번을 반복해봐도, 얀붕이는 자신이 묶어놓았던 곳에서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을 확인한 얀순이는 혼란스러워졌어요.

평소에도 얀붕이가 귀신처럼 자신을 피하거나, 계획을 파훼하거나 했지만, 지금의 광경은 쉽게 믿을 수 없는 현상이었으니까요.


"그래, CCTV가 고장난 거구나... 아하하... 맞아. 중요할 때 CCTV가 고장이 나다니, 이런 쓰레기 고철을 돈주고 판 사람들은 꼭 혼을 내줘야 겠는 걸...?"

"그리고 얀붕아... 절대 못 도망쳐... 누나한테선 절대 못 도망쳐...! 이렇게 잠깐은 누나의 곁을 떠났겠지만 금방 누나가 찾아서 데려올 거거든... 응?"

"그러니까 우리 얀붕이... 조금만 기다려...? 누나가... 누나가 데리러 갈 게... 헤헤헤..."


아무래도 얀순이의 얀붕이 납치 계획은 아직도 계속 될 것 같네요.

초능력자인 얀붕이를 일반인인 얀순이가 과연 잘 보쌈해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지는 아마 계속 지켜봐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