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yandere/8317345  1


현관문 방향으로 둔탁한 구두 소리가 나고 있어.


 "이제 온 거니?"


아저씨께서 현관문 쪽으로 분주히 움직이시면서 누군가를 반기시는 것 같아.


콩닥콩닥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하던 요리를 계속하였어.

어제 보았던 네가 온 거구나.

어제 본 것으로도 모자라 오늘 아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온 거니까.

그래. 네가 맞겠지.

아저씨께서 둘이 산다고 알려주셨으니까.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좋은 일 있으셨어요?"


왔구나.

너의 목소리가 맞아.


 "오냐. 네 여자친구가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여러 가지 많이 도와주었단다."


조금씩 커지는 두 사람분의 발소리가 커져 올 때마다

콩닥거리던 내 심장도 쿵쾅거리며 변하듯 더 강하게 울리고 있었어.


 "연화야. 얀붕이 왔다."


아저씨의 말씀에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았어.

연한 회색 빛깔의 체크무늬 양복 차림에 화려한 자수가 박힌 군청색의 넥타이.

그 넥타이를 고정하기 위한 세련된 은색 넥타이핀은 마치 밤하늘을 관통하는 유성과 같이 눈에 띄었어.

드라이기로 깔끔하게 정리하여 가르마를 탄 머리는 단정해 보였어.


 "왔어?"


그래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입을 열어 말했어.

네가 입을 여는 그 순간까지 무슨 말을 할까 상상하면서 말이야.

갑자기 뛰어와서 내 팔을 붙잡고 화를 낼까?

눈썹을 찌푸리면서 경멸을 할까?


 "어. 왔구나. 힘들었을 텐데…. 너도 일하느라 피곤해서 오지 않아도 되는데."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내 맘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이전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너의 말을 듣고 얼굴을 쳐다보았을 땐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

예전에 나를 보고 웃던 그때만큼, 활짝 웃는 모습이 아닌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반겨주는 모습에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내심 안도했지.


알아.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제대로 된 사랑도 주지 않고 가지고 놀았으니까.

또, 어제만 해도 그렇게 화를 내고 갔던 나인데.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나오면 안 되었던 것인데.

네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남들이 나아졌다고 해서 보고 싶었던 게 절대로 아니라,

시간이 지나보니 너처럼 날 위해주는 사람은 내 엄마·아빠도 그렇게 해주지 않았으니까.

그저 그때의 포근함이 매일매일 꿈속에 나와 내 속을 찌르며 내 마음을 미치게 했던 것들이 너무나 그리워서.


 "잘 되었다. 연화가 저녁 차려주면 바로 먹자꾸나."

 "식사를 준비했다고요?"

 "어. 연화가 했단다."


아저씨께서 내가 했다는 말씀을 하시자 넌 부리나케 주방으로 걸어 들어와서 메뉴가 무엇인지 확인했지.


 "아버지 식사로 준비한 게 무엇이니?"

 "오뎅탕이야. 너도 좋아했던 거."


종종 네가 우리 집에 와서 배고파할 때 만들어 주었던 음식.

한 손도 안 되는 횟수밖에 해주지 않았지만, 내 기억 속의 네가 제일 좋아했던 것이라 했어. 


그런데, 


 "어묵 그대로 끓였어?"

 "어? 어. 전에 했던 그대로 했어."


그 말을 듣자 곧바로 냉장고에 있는 냄비 그릇을 하나 꺼내 가스레인지에 끓였지.

왜 그러는 것일까.


 "탕 만들어 놓았는데 왜 또…."


네 생각하면서 열심히 만든 것인데….


 "데쳐서 한 것도 아닌데 그것을 드릴 순 없어. 아버지는 짠 거 드시면 안 돼."


내 얼굴은 보지도 않은 체 주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냉장고에서 냄비를 꺼내 준비를 하는 너였어.

아저씨께 그 정도로 세심하게 준비하는지는 몰랐어.

아저씨랑 대화했을 땐 전보다 조금 야위신 것 말곤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는데….

또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면 아저씨도 같이 드실 수 있으실 것 같아서 했던 것인데….


 "아…. 그럼 물 좀 더 넣고 간 새로 맞추면…."

 "그걸 언제까지 기다려. 탕은 나랑 너 둘이서 먹고 냉장고에 넣어뒀던 미역국이나 끓여 드리면 되니까."

 "알았어..."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내가 다 할 테니까. 식탁에 앉아 있어."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내가 다 할 테니까 쉬어~`


예전에도 들었던 것 같은 말이지만 그때와 다르게 나를 위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너무나 귀찮아서 그러는 거구나.


네 말대로 식탁에 앉아 식사준비를 하는 너의 모습을 가만히 보았어.

재킷은 어딘가에 걸어 놓았는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착용한 모습이었던 너. 

와이셔츠 너머로 보이는 다부진 어깨와 몸. 운동해서인지 울퉁불퉁한 곡선을 가진 팔.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때문에 힘이 들었는지 이마와 목에선 땀이 흐르고 있었어.

그런 것 하나하나

멋있어.

이전에 너와 달라진 게 더 맘에 든 것이 맞아.

내가 너를 보고 싶었던 것은 속이었지 겉은 아니었으니까.

겉도 나아지니 당연히 좋아하지 누가 싫어하겠어?

하지만,

꼭 그것 때문에 다시 보러 온 것은 절대로 아닌데.

그저, 네가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치사하게 나와서라도 그저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식사를 마친 뒤에 네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간식거리로 삼아 장 봐올 때 같이 샀던 키위랑 참외, 바나나를 예쁘게 깎아 접시에 담았어.


 "이거. 아저씨 드리려고 하는데 너무 많지 않지?"


넌 너보다 아저씨를 더 챙기는 것으로 보여서 아저씨께 드릴 것부터 먼저 준비했어.

이건 좋아하겠지?

괜찮다고 하겠지?

과일은 몸에 좋기도 하니까.

접시의 올려진 과일을 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확인하고 있었어.


 "후."


그런데 넌,

무엇이 싫은 건지 한숨만 내쉬는구나.

또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과일인데 괜찮지 않아?" 

 "심장이 좋지 않은 분께 칼륨이 높은 과일을 드리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안 드리는 거야."


예전처럼 나를 타이르듯 말하는 너.

하지만 모르고 있는 나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모르느냐고 말하듯 무시하는 것 같았어.

나는, 아저씨가 심장이 편찮으신지 잘 몰랐었어.

이 과일이 아저씨 몸에 안 좋은지도 자세히 알아보지 못했고.


 "아…. 미안. 몰랐어."

 "뭘 알겠어.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쉬고 있어."


 `아니야. 방에서 쉬어~ 내가 다 청소랑 정리 다 해줄게!`


아까처럼 웃으면서 살갑게 말을 하는 너였지만,

따뜻함은 하나도 없고

무언가,

새벽에 서리가 끼어있는 외진 숲 속 마냥 마냥 차가움만 느껴졌어.


접시를 탁자에 올려놓고 네 방으로 들어갔어.

오늘 이 집에 왔을 때도 보았고,

지금도 다시 들어와서 보는 것이지만

너랑 사귈 때의 그때의 그 방과 다르게

아주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어.

침대 위의 이불도 깔끔하게 정리되어있고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도 주름이 하나도 없었어.

행동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이전과 다른 너의 부지런함이 보였어.

그저 외형만 변한 것이 아니구나.

고개를 돌려 본 책장에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지.

무슨 책이 있는지도 확인해보았어.

너의 모습을 대변하듯 패션 잡지도 여럿 보였고,

아저씨를 걱정하는 너의 마음을 보듯 치매, 노화와 관련된 책도 많이 보였지.

특히, 그 책들은 다른 책들보다 더 자주 읽었는지 유달리 제본이 더 많이 헐어있었어.


 "오늘 점심은 뭘 먹었니?"


 "전에 알려드린 대로 얼굴 예쁘장하게 생겨서 인기 좋은 녀석 하나 있다고 알려드렸었죠? 제 이름과 같은 이름을 쓰는 부하 직원 걔요. 걔가 요즘 바빠서 그런지 밥을 잘 안 챙겨 먹어서 몸 좀 불려줄 겸 억지로 끌고 가서 그 녀석이랑 제육 쌈밥 먹었어요. 원래는 생선이라도 먹이고 싶었는데 육류 말곤 잘 안 먹는다고 해서 그걸 먹었죠. 편식이 심한 녀석이라 좀 곤란하기도 하고요."


 "그럼, 그 성씨가 다른 부하 직원이랑은 맛있게 먹었느냐?"


 "네. 그 입맛 까다로운 녀석이 맛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시간이 날 때 모시고 가고 싶다는 생각 많이 드는 곳이에요. 꼭 같이 가요."


 "좋아. 꼭 그러자꾸나."


 "네. 우리 꼭 그렇게 해요. 아버지."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나에게는 눈도 잘 안 마주치고 가짜 웃음만 보였던 너인데,

아저씨께는 내가 보고 싶었던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하고 있었어.

나도 저 사이에 끼어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방에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들었기에 나올 수 없었지.


그렇게 홀로 네 방에서 시간을 지내다가

내일의 일도 있고 해서 너와 아저씨께 간다고 말을 전하고 혼자 나가기로 했지.

데려다 달라고 하고 싶긴 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냥 혼자 가기로 마음먹고 인사드렸어.

조금

서운했지만.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오냐. 가냐? 야. 밤이라 어두운 데 차로 데려다주려무나. 여자애 혼자 걸어가게 하면 큰일 난다."


 "네. 그럴게요."


너와 조금이라도 있게 해주시려는 아저씨의 말씀에 

속으로는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엄청나게 기뻤지만

너는 불편할 것 같아서 사양하듯이 말했어.


 "아니에요. 퇴근하고 식사 준비하고 여러 가지 하는 거 보니 힘들 텐데 혼자 가도 돼요~"


 "어허이! 그럼 못 써! 얀붕아. 꼭 데려다줘라. 응?"


 "네. 꼭 데려다줄게요."


아저씨 말이면 무조건 듣는 너인지 싫을 텐데 토하나 달지 않고 그대로 따랐지.

살며시 윙크하는 아저씨께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한 번 더 드리고 너랑 밖으로 나왔어.

지하에 있는 주차장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네 차에 탔지.


 "내비 찍어."


집에서 말하던 그런 살가운 목소리가 아니라

어제 보았던 너의 차갑디차가운 그때 그 목소리였어.


 "나 예전에 살던 곳 그대로야."


이렇게 말하면 네가 알아줄 것 같아서 말했어.

넌 기억력이 매우 좋았으니까.


 "내려서 혼자 갈래. 가만히 내비 찍을래."

 "찌, 찍을게…."


너의 차디찬 음성을 듣고 차에 설치된 기계를 조작했어.

너라면 말 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 같았는데

조금이라도 생각하기 싫은 거구나.


운전을 하는 너는 운전석 앞쪽 유리와 내비게이션 화면, 내가 앉은 조수석 옆 거울만 바라보고 

아무런 말 없이 운전만 하는 것을 보아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대화할 기회를 잡지 못할 것 같아 입을 열었어.


 "저기, 오늘…."

 "너 하나 크게 착각하고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내가 입을 열려고 하면 넌 바로 끊어버리더라.


 "난 너한테 미련이 있어서 집에서 착하게 한 게 아니야."


알고 있어. 예전에 나랑 사귈 때 웃었던 그 모습이 아니라 억지로 웃고 있는 거였으니까.

그래도 너랑 사귀었던 여자인데 그걸 모를까.


 "아버지께 한 톨도 신경을 쓰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서 쫓아내고 싶어도 참은 거라고."


속으로라도 이런 말 하면 정말 안되지만,

아저씨보다 나를 더 위해주던 너였는데 이젠 그러지도 않는구나.


 "그러니까 그냥 다 물고 계세요. 오늘 이건 아버지께 한 행동에 대한 감사일 뿐이니까."


예전에는 하지도 않았을 말.

내겐 절대로 나쁜 말 하지 않던 너였는데 너무 할 정도로 얼음장같이 차갑기만 하네.


 "가라."

집 앞에 도착하고 내가 차에 내리자 넌 그 말 한마디만 내뱉고 내가 집 문을 여는 것도 기다리지 않은 체 바로 갔어.

너무나 싫은 것이겠지.


터덜터덜한 걸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불도 켜지 않은 체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어.

그리고 네가 너무나 그리워 이전보다 더 가녀려진 내 팔을 천장 쪽으로 뻗어 팔목에 끼워놓았던 못난이 조약돌 팔찌를 바라보았어.

지금 내가 입은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돌로 된 장신구.

넌 이게 너무나 예쁘다며 내게 주었던 선물이었지.

너와 만날 때 빼고 거의 착용하지 않던 장신구.

거의 열지 않았던 서랍 속에 넣어 놨던 것을 오늘 꺼내 네가 기억해주길 바라서 했던 장신구였는데.

하나도 기억 못 하는 구나.

안 한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네가 사준 건데.


 "우욱..."


네가 날 밀어도 네가 너무나 그리워지고 보고 싶어서

조금이나마 접점을 만들고자 착용했던 건데.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조그마한 이야깃거리.

조금의 여지를 위해서 가지고 갔던 것인데.

내가 너에게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차마 그러면 안 되는데도,

네 모습이 너무나 아른거려 보고 싶고

그때 그 포근함이 너무나 그리워서

가까이하고 싶은 것을 나 자신을 못 막는데 어떻게 하라고.


 "크흑."


그랬구나.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인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무시하면 이렇게 아픈 거구나.

여태껏 나만 몰랐구나.

네가 느꼈을 아픔을.


 "우욱... 진짜, 정말로, 훌쩍, 정말로 미안해. 미안해..."


다시 돌이킬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정말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네가 실망할 일 하나도 만들지 않게 완벽히 다 잘라버리고 시작했을 텐데.


 "미안해..."


까만 방 안에서도 유난히 밝게 빛나는 조약돌 하나를 보면서 눈물 흘렸다.

그 돌을 보며 네가 해준 것들이 계속 생각 나.

그걸 생각하면 눈물은 더 더, 흐를 뿐이고.

오늘 밤도 곱게 잠을 자긴 그른 것 같아.

어쩌겠어.

내 잘못 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