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yandere/8305277?target=all&keyword=%ED%83%80%EB%9D%BD%ED%95%9C%20%EC%96%80%EB%B6%95%EC%9D%B4&p=1 


2화 https://arca.live/b/yandere/8501878?target=all&keyword=%ED%83%80%EB%9D%BD%ED%95%9C%20%EC%96%80%EB%B6%95%EC%9D%B4&p=1 





'나중에 화 풀리면, 아니면 나한테 화풀이 하고싶으면 언제든 연락해줘. 응?'



화풀이하고 싶으면 연락해 달라고? 뺨이라도 더 때려달라는 얘긴가? 못본 사이에 이상한 취향이 생겼거나 정신이 나갔나보다.


별로 떠올리기 싫은 옛날 생각들을 해보면, 생각 짧고 다른사람 생각 안하는 점을 빼면 정상적인 애였다. 다시는 인생에서 엮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됬는지 모르겠다. 걔가 정신이 나갔든, 이상한 취향이 생겼든 내가 어울려줄 생각은 없다.



휴대폰 수리비를 보내고 연락을 차단했다. 그러고 나면 이 구질구질한 관계도 끝날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나 보다. 내가 사는 곳은 어떻게 알았는지, 집 주변을 얼쩡대다 나를 보고 달려와서 매달린다.



옛날부터 좋아했다느니, 자기 감정을 잘 몰라서 표현을 못했다느니, 우물쭈물 거리며 개소리를 늘어놓았다.



애초에 우리 사이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안나나? 아니면 그냥 더럽게 뻔뻔한 건가? 어느쪽이든 화가 치미는 이야기다. 혹시 진짜 쳐맞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건가? 한대 후려치고 싶은데 그럼 얘가 바라는대로 되는게 아닐까?


잠깐 그런 고민을 하고있자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뭐라 웅얼댄다. 좋아해요 라고, 그렇게 들렸다.



문득 내가 얘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것도 집까지 나오고 나서 꽤 오랫동안. 그딴 꼴을 봐놓고도 좋아한다니 병신새끼가 따로 없지. 그 때는 종종 좋아했던 기억들이 예고없이 튀어나와서 가슴이 욱신거리곤 했다. 


그럴때마다 동생들을 기억했다. 기절할때까지 아버지에게 맞고 나면 울면서 내 곁에 매달려있던 동생들. 몇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난리피우는게 하루이틀도 아니라며 나보고 좀 참아달라던, 짜증이 섞인 부탁. 자기까지 말려들게 하지 말라며 노골적으로 혐오하는 얼굴들. 


결국 반복되는 행위에 사람들은 질리기 마련이고, 걔들은 나한테 질렸을 뿐이다. 그게 다야. 그렇게 생각하니 별로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사랑이든 동정이든 감정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두 번이나 직접 겪은 일이다.

내 사랑은 유통기한이 끝났고, 그래서 대충 접어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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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에서 시간 떼울 여자를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눈을 좀 낮추고, 상투적인 대사를 좀 내뱉고, 웃는 얼굴 몇 번 비춰주면 넘어 올 여자는 넘어오고, 아니면 몇번 반복하면 되니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는데, 괜한 일 때문에 기분 잡쳐서 친구를 불러 나왔다. 기분나쁜 생각을 치우려고 술을 잔뜩 마셨다. 머리가 어지러울 때 쯤, 누구든 처음 보이는 여자랑 만나보려고 했는데...몇번 봤던 얼굴이 보였다.


기억이 맞다면 별로 귀찮지 않은 여자애다. 


사귀자는 말을 거절해도 별 미련없이 깔끔하게 받아들였고, 연락처를 달라고 칭얼대지도 않았다. 가끔 만나자느니 놀러와도 되냐느니 쓸데없는 말도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 호감 없는 사람한테 이런 말은 어울리지 않겠지만, 괜찮은 상대다.


말을 걸어봤더니 나름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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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집 근처에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대놓고 면전에서 함께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기다리던 자리를 잠깐 들러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좀 더 둘러볼까 했지만, 슬슬 머리가 심하게 아프니까 빨리 해치우고 자고싶다.


왜 아쉬운 얼굴이야? 별 일 아냐. 보기보다 눈치 빠른 애다. 별로 얘기할만한 일도 아니라서 얼버무렸다. 정신 이상한 여자 이야기로 괜히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으니까. 

말랑한 혀가 파고들었다. 향수냄새가 나쁘지 않다. 키스 좋아? 좋은지 안좋은지 잘 모르겠다. 그냥...모르겠다. 아무 감정 없이 나도 혀를 섞는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거지? 인간관계는 싫어하면서 속으로는 외로움을 타는건가? 모르겠다. 오늘은 이상하게 옛날 생각이 계속 나서, 떨쳐버리려고 술을 너무 마셔버려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뇌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나 보다. 전에는 번호도 안주고, 다시 만날일 없을거라고 그랬잖아. 생각이 바뀐거야? 모르겠어. 옷이 바닥에 떨어지자 향수냄새와 살냄새가 섞여서 기묘한 냄새가 났다. 야하다. 아직도 나한테 관심없어? 미안해, 잘 모르겠어. 근데 아마 그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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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과 아침의 중간 정도 되는 시간이다. 같이 잤던 얘는, 이름이 기억 안나지만 집에 안가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지고있다. 머리가 좀 아프고 입에서 쓴맛이 나지만 술은 거의 깬 것 같다.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다. 이 애는 아마 아침이 되면, 내가 깨있든 말든 자기 물건 챙겨서 조용히 집에 가겠지.


이정도가 좋다. 오늘 만나서 내일이면 서로 잊어버릴 관계. 서로의 인생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관계. 쓸데없이 기한이 뻔히 보이는 감정도 생기지 않는 그런 관계.



"야."



내가 일어났다는 걸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돌아본다. 퇴폐적인 분위기에 안 어울리는 귀여운 표정이 묘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이고 솔직히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사귈까?"


"왜? 저번엔 싫다고 했잖아."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다. 날 좋아한다는 여자애 앞에서 다른 여자랑 사귀는걸 보여주고 싶다는 건, 복수하고 싶은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걔가 슬퍼하는 모습을 본다고 해서 내 기분이 나아지거나, 통쾌한 감정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걔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내 알바 아니니까. 아니면 그냥 걔를 빨리 떨쳐버리고 싶은건가? 그것도 좀 아닌 것 같다. 계약기간이 얼마 안남았고 일도 그만 뒀으니, 귀찮게 감정없는 연애를 보여주느니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 그만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화풀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