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제목은 어느 고전 야겜과는 전혀 연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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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싸다.


좋게 말하면 반의 그림자로, 반에서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으며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이런 시간들이 길어지다보니 이제는 야외 체육시간라는 걸 잊은 채 자고있는 나를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을 지경이다.


아마 등교하지않더라도 다들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지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런 수준의 아싸가 되버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 나이 19살, 그 중에서 나는 13년의 기억이 없다.


6년 전, 아파트 앞에서 놀고 있었던 나는 불행하게도 몰상식한 주민이 창문 밖으로 던진 물건에 맞아 그대로 구급차에 실려갔다.


다행히 간단한 수술과 입원으로 육체의 건강은 찾았지만 외상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의사 선생님은 설명해주었다.


확실히 당시의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랐으며 부모님이 직접 찾아오기 전까진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부분적인 기억은 조금이나마 남아있지만 나 자신에 대한 것과 교우 관계에 관한 건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


나와 같은 또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도 모르게 되었고 하필 시기도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입학 전이였다.


결국 나는 자연스럽게 아싸가 되어버렸으며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내 친구없음은 현재진행형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혼밥, 혼술할지도 모른다는 운명에 쓸쓸함을 느꼈지만 괜찮다.


왜냐하면 나의 마음을 달래줄 존재는 따로 있으니까!


"나비야~! 오늘도 간식 갖고 왔어!"


"먀옹~!"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린 동네 공원, 공원 풀숲에서 작은 고양이가 튀어나와 내 발밑으로 다가온다.


치즈 색깔이 연상되는 털을 지닌 나비는 내가 부르자마자 내 다리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거나 고롱고롱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나비의 애정표현을 받을 때마다 나의 심장도 큰 타격을 받은 것처럼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존재가 또 있을까! 이런 귀여움 덩어리인 존재에게 츄르를 주는 게 유일한 낙이라서 행복하다.


학생의 용돈으로 고양이 간식을 산다는 건 조금 뼈아픈 일이지만 남들이 오락에 돈 쓸 때 나는 고양이에게 돈을 쓸 뿐이다.


애시당초 아싸인 나는 피시방이나 노래방에 가지를 않으니, 이런 식이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만 했다.


"그렇게 맛있어?"


"먀옹~!"


허윽! 나비를 만나기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내 인생이 의미있게 보였다.


잠시 후, 간식 타임이 끝나며 나는 고양이 장난감으로 나비랑 충분히 놀고난 뒤, 더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비와 헤어져야하는 시간이 아쉽지만 그래도 내일도 나비랑 놀면 괜찮겠지.


그렇게 오늘도 나는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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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아침 등굣길, 무거운 짐때문에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있음에도 아무도 도와주려하지 않길래 내가 나서서 도와드렸다.


선행을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옛날 기억이 있는 나였다면 주변 사람들처럼 무시했을지 궁금했다.


현재의 나는 선행은 할 수 있으면 나라도 해야한다는 마음가짐이지만 예전의 나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옛 기억이 없다는 것에 그다지 불만을 갖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오늘도 아싸라는 것은 변함없지만.......


그래도 요즘은 누군가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다.


아싸인 나에게 다가오는 시선의 근원지는 우리 반.......아니 우리 학교의 최고 인기 여학생 넘버 원, 얀예슬이었다.


은은하면서 빛나는 다크 그레이 색의 긴 생머리, 뚜렷한 이목구비로 이루어진 예쁜 미모, 고등학생이라고 볼 수 없는 글래머한 체형.


외형만 해도 가히 미쳤다라고 할 수 있는데 밝고 상냥한 성격과 최상위권의 성적, 그리고 대성한 사업가 부모님까지.


그냥 다른 세계의 사람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이 어째서인지 나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지금도 같이 웃고 떠드는 인싸 친구들조차 그녀를 벼랑 위의 꽃이라 여기며 조심히 대하는데, 그런 그녀가 어째서인지 나를 본다.


처음에는 나도 내 망상이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신경쓰지않는데 나를 그녀만이 신경쓴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녀가 나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옆이나 뒤를 보며 다른 사람을 본 것인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횟수가 계속 반복되고 계속해서 쌓이며 셀 수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되니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나를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그래서 나도 이제는 시선을 피하지않고 맞대응해보고자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와 시선이 겹치게 되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워하다가도 갑자기 눈웃음을 지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목격하게된 나는 또다시 시선을 피하게 되었고 내 머릿속에 연신 물음표가 떠오르게 되었다.


왤까? '초'가 붙을 정도로 인싸인 그녀가 마찬가지로 '초'가 붙을 정도의 아싸인 나를 보고 기쁜듯이 웃었던 것일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와 나의 공통점이라고는 같은 초,중학교를 나왔다는 것 밖에 없을 터.


혹시 기억을 잃기 전의 나와 무슨 접점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기억이 없는 지금의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렇게 나는 모든 수업 시간 동안 그녀의 미소에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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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 시간까지 고민하고 고심한 끝에 도달한 내 결론은 '의미없음' 이었다.


그냥 그녀가 오늘 기분 좋아서 지은 웃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애시당초 태양같은 그녀가 그림자에 불과한 나를 보고 미소 짓어주는 행위에 의미 부여해서는 안된다.


그녀에게 실례되는 행동이나 다름 없으니까, 아무튼 이제 후련해졌으니 오늘도 나의 치유 시간을 가지러 가야겠다.


그렇게 빠르게 교실을 나와 교문 밖으로 튀쳐나가려는 순간.


"이...이거 놔줘요!"


"잔말말고 따라와!"


오늘 하루동안 나를 고민에 빠뜨린 당사자가 얼굴이 험악해보이는 건달들에게 팔이 잡혀 끌려가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고는 있는 것 같지만 연약한 여자가 통뼈 굵어보이는 남성에게 이길 수 없는게 당연하다.


교문 앞에서부터 납치가 벌어지는 상황, 현장은 금세 논란의 도가니에 빠졌으며 학생들이 잔뜩 모이기 시작했다.


"뭘 봐? 이 새끼들아! 다들 안꺼져?"


무서운 건달의 호통소리에 주변 학생들은 전부 몸을 움츠렸고 선뜻 나설 행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 또한 건달들이 무서웠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한 여성의 인생이 끝날거라 생각해, 곧장 경찰에 신고하며 건달들에게 달려들었다.


"콩밥 먹기 싫으면 그녀를 놓고 떠나요!"


솔직히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들었다.


건달이니까 당연히 날붙이나 야구방망이가 있을 터, 그러니 나는 흉기들을 맞으면서 경찰이 올 때까지 버텨야만 했다.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기 위해 그녀를 끌고 가는 남성의 바지 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역시나 나를 향해 수많은 구타가 들어왔지만 나는 이를 악 물고 버텨냈다.


다행히 예상했었던 흉기들까지 나오지 않았기에 버틸 수 있게 되었고 결국 남성들이 단념하게될 정도의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씨발, 짭새 온다, 가자!"


나를 향해 얀예슬을 던져버리고서는 검은 봉고차에 올라타는 남성들, 그대로 현장을 벗어났다.


상황이 끝나고 잔뜩 두들겨 맞아서 만신창이가 된 나를 향해 학생들이 걱정하는 표정을 지은 채 하나둘씩 모였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자할 때, 학생들은 한마음으로 내가 받아든 얀예슬의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다만 이게 당연한 처사였다, 애초에 나는 칭찬받고 싶어서 나섰던게 아니였으니까.


나는 가볍게 몸을 털고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예슬이는 내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한 눈치였던 거 같다만 들을 생각은 없다.


 얼른 나비에게 간식을 주러 가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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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경찰을 불러놓고 무책임하게 가버린 것 같아 불안했지만 내게 조사받으러 오라는 일은 없었다.


그리하여 오늘도 평범하게 등교해서 조용히 일상을 보내볼까 하려던 때에 내 책상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얀붕아! 구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어제 바로 이 말을 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얀예슬이 직접 와서 내게 감사의 말을 전해왔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 전부가 나와 고개를 숙인 그녀를 번갈아 보면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기억을 잃은 후, 이렇게 시선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나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아...아니야! 별 거 아니니까! 고개를 들어 줘!"


"하지만 나 때문에 이렇게 다쳤는 걸?"


반창고 붙인 나의 뺨을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는 그녀의 손길에 내 머릿속은 더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미...미안! 나 잠깐 화장실좀!"


결국 나는 불쾌하지않을 정도의 위력으로 그녀를 밀어내며 교실 밖으로 튀쳐나왔다.


그 다음, 남자 화장실로 도망친 나는 미친듯이 뛰고 있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이게 그녀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부리나케 뛰어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상황은 매우 심장에 나빴다.


천천히 심호흡하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자 과부화로 인해 정신없었던 머리가 식어갔다.


예상치 못한 일을 겪어서 혼미해지긴 했다만 이제 감사의 말을 전했으니 그녀가 나를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얀붕아, 답례라고 하기엔 미안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사왔어!"


내 생각은 틀렸다, 얀예슬은 학교 매점에서 내가 평소에 즐겨먹던 빵과 음료수를 가득 사와서 나에게 직접 건네주기까지 했다.


당연히 주변인들은 내가 그녀에게 빵셔틀을 시킨 거라고 착각을 하며 나를 잡아먹을 기세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미칠 거 같다, 이럴려고 도와주려했던 게 아니였는데.......그나저나 내 취향은 어떻게 알고있는 거지?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 입지가 평온한 아싸에서 부조리를 당하는 왕따로 변하게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답례품은 거부하고 조용히 다시 교실 밖으로 나가자, 반 애들이 그녀에게 다가와서 나를 헐뜯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팠다, 선행을 베풀며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왜 내가 이런 비난까지 받아야하는 것일까.


나는 더 이상 뒷담을 듣기 싫어서 교실 문에서 완전히 떨어지며 오늘은 처음으로 땡땡이이라는 걸 해보기로 했다.


언제나 열려있는 학교의 옥상, 여기라면 모든 생각을 비우고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것만 같다.


애써 안좋은 기억을 떨쳐낸 나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고 조용히 의식을 저 멀리 보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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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떴을 땐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던 저녁 시간이었다.


부활동하려고 남아있던 학생들 이외에는 모두가 하교를 마친 상태, 나는 모든 수업은 물론이며 종례시간마저 재껴버린 것이었다.


큰일이다 싶어서 휴대폰을 확인해봤으나 다행히 아무런 문자도 전화도 없는 걸보면 내가 땡땡이쳤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서 교실에 있는 가방을 챙기고 나비에게 가봐야겠다.


어제 이상하게도 나비를 아무리 불러보고 찾아봐도 나비의 모습은 커녕 울음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오늘도 나비가 나타나지 않으면 나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으니 확인해야만 했다.


그렇게 교실에 도착한 나는 가방을 챙기고 빠르게 나가려던 순간, 우연히 칠판에 크게 쓰여져있는 글씨를 보게 되었다.


'얀붕아! 내 책상 위에 음료수를 올려두었으니 그거라도 꼭 마셔줘!'


끝까지 이러는 걸보면 아무래도 얀예슬은 은혜에 보답하기위해 잔뜩 독이 오른 사람 같다.


할 수 없이 나는 칠판의 글씨부터 지웠다, 혹여 이걸 냅뒀다가는 내일 먼저 등교한 아이들에게 발각되어 또 소문나게 되버리니까.


그 다음엔 그녀의 책상 위에 있는 캔 음료를 가져가고자 했다, 답례를 또 거부한다면 내일 그녀가 나에게 다가올지 모르기에......


확실하게 답례를 받으면 그녀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터.


그렇게 생각해서 음료수를 집어들자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또다른 물건이 내 눈에 띄였다.


조금 두께가 있는 평범한 다이어리, 그러나 책의 표지에 적힌 제목은 평범하지않았다.


'나의 얀붕이 관찰 일기 6, 아무도 열어보지 말 것!"


누군가의 질나쁜 장난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않는 제목.


혹시 처음부터 얀예슬은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서 다가온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튼 열어보지 말라고 한다면 더 열어보고 싶어지는 법, 그대로 다이어리를 열어보자 나는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첫페이지부터 내가 찍혀있는 대량의 사진들이 붙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등굣길에 하품하는 모습,수업 중에 조는 모습, 내가 좋아하는 빵과 음료수를 맛있게 먹는 모습, 나비와 놀아주고 있는 모습까지.


모조리 언제 어느 틈에 찍힌 건지 알 수 없는 사진들 뿐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조심히 다이어리를 계속 넘겨갔다.


3페이지 정도까지가 나의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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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3월 XX일


드디어 나는 얀붕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2학년까지 거치면서 그와 한번도 같은 반이 되지못해 아쉬웠는데 겨우 같은 반이 되어서 무척이나 행복하다.


앞으로 항상 곁에서 얀붕이를 볼 수 있게 되다니 정말로 행복해♡


그녀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쭉 같은 학교, 그러나 이렇다저렇다할 접점이 없으니 그녀가 나를 특별하게 여겨주는 게 믿기질 않는다.


20XX년 3월 XX일


얀붕이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홀로 쓸쓸히 지내고 있었다.


그에게 친구란 없으며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도 않으니......안타깝다, 나라도 말을 걸어주고 싶으나 그랬다가는 경계만 받겠지?


겨우 같은 반이 되었는데 말조차 걸 수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하면 좋을까?


가끔씩 내가 느꼈던 시선의 주인은 역시 그녀였다,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관찰한 것인가.......도대체 왜?


20XX년 4월 XX일


오늘은 하교하는 얀붕이를 따라가보았다, 그는 언제나 항상 급한 일이 있는 것인지 누구보다도 빨리 교실 문을 열고 나간다.


하지만 매우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으니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의 뒤를 유심히 따라가보자.......


놀라운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교실에선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해맑은 미소! 하지만 그 미소는 도둑 고양이의 것이었다, 부러워!


스토커 짓까지 한 것인가, 나비의 관한 내용까지 상세한 걸보면 이 일기는 망상이 아닌 진짜로 나를 관찰한 일기가 맞는 것 같다.


20XX년 5월 XX일


오늘 아침에도 얀붕이는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솔선수범해서 도와드렸다, 얀붕이는 상냥해♡


상냥한 얀붕이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다니! 벌써부터 하반신이 젖을 거 같아 


생각해보면 얀붕이는 항상 선행을 베풀고 다녔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게 기막히고 놀라운 작전이 하나 떠올랐다.


나도 위험에 쳐해 있으면 얀붕이가 도와주겠지? 그러면 이를 빌미로 감사하다며 대화할 명분도 생긴다!


고용인들을 이용해 납치 자작극 벌였더니......진짜로 얀붕이가 나를 도와주었다! 역시 얀붕이는 최고야 멋져♡


벌레같은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얀붕이를 놓쳐버렸지만 괜찮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치만 살살하라고 했는데도 얀붕이를 크게 다치게한 고용인들은 용서할 수 없어.....해고 시켜버렸다.


.......그 사건이 만들어진 자작극이였어?! 충격스러운 사실을 깨달자 또다시 나의 심장이 심각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시 추스리고자 캔 음료를 따서 벌컥벌컥 전부 마셨더니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오늘 일이 적혀있는 마지막 페이지 뿐, 무슨 내용이 적혀있을지 예상이 할 수 없었다.


20XX년 5월 XX일


드디어 얀붕이에게 말을 거는데 성공했으나 그는 당황하며 도망쳐버렸다.


말로는 부족할까싶어서 얀붕이가 평소 즐겨먹는 것들도 사왔으나 거절하며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돌아오질 않는다.


그렇게 내가 싫은 걸까? 어제 내가 데려간 도둑 고양이보다도 내가 못난 것일까?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최후의 수단을 사용해야겠다, 얀붕이의 가방이 아직 남아있으니 그는 다시 돌아올 터, 그때 내 사랑을 입증하도록 하자.


나는 주사기를 통해 강한 수면약을 캔음료에 투여하였고, 얀붕이가 마실 수 있도록 칠판에 글씨를 써서 유도했다.


그리고 내 사랑을 증명해주는 이 일기를 일부로 남겨놓으며 얀붕이가 이 일기를 읽고 음료를 마시게끔 했다.


잠시 후, 약 효과를 받은 얀붕이는 그대로 잠에 빠졌고, 나는 그런 얀붕이와.......하나가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얀붕아, 사랑해♡"


 내 뒤에서 누군가가 내 귀에 속삭여왔다, 나는 그 사람의 정체를 보지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수면약의 효과가 나타난 것인지 내 시야가 흐릿해지며 일렁이기 시작했고, 필사적으로 의식의 끈을 붙잡아보려 했으나........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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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하반신에서 느껴져오는 따뜻하고 축축한 감각에 나의 의식은 돌아올 수 있었다.


양호실 침대 위, 알몸 상태로 누워있는 내 위로 아름다운 나체의 여성이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하응 잘잤어 얀붕아? 미안해, 하읏 깨우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사랑스러워서 그만......으응♡"


"윽!......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어째서!"


"그야 사랑하니까♡ 얀붕이 너를 사랑해왔으니까"


그녀의 대답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반신에서 밀려오는 쾌감때문에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한가지만큼은 확실하다.


얀예슬이 나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 납치 사건은 자작극이며 그 이전부터 나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그녀의 일기는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무슨 이유로?


"하으응 왜 내가 너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 그치만 곧 알게 될거야, 그러니까...아앙 흐응♡ 잔뜩 안에 싸줘 얀붕아"


"으윽?!"


갑자기 조여오는 그녀의 질벽에 의해 내 성기는 사정감을 참지 못한 채 결국 그녀의 안에 백탁액을 잔뜩 쏟아내며 가버렸다.


그녀또한 자궁 안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정자 때문에 야릇한 신음소리와 함께 성대히 가버리고 있었다.


격한 행위 후, 우리 둘은 거친 숨을 몰아내쉬며 몸을 포개고 있었다.


그녀의 안에서 빠져나온 나의 성기에는 내 정액과 그녀의 애액 그리고 소량의 혈액이 묻어있었다.


하늘 위에 태양같은 존재인 얀예슬, 그녀의 처음을 나같이 하찮은 놈이 가져가버린 것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내 안의 불안과 의문이 피어올랐고 이런 나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그녀는 나에게 한 권의 다이어리를 건네주었다.


이전 교실에서 읽은 다이어리와 똑같은 것, 그러나 좀 더 낡아있었으며 똑같은 제목에서 숫자만 '6'에서 '1'로 달라져 있었다.


조심스레 펼쳐보자 역시나 똑같이 첫 페이지에서부터 내 사진이 붙어있었으나......기억에 없는 시절의 내가 있었다.


개구쟁이같은 내 어린 모습들, 그러나 모든 사진에 나만이 아닌 작고 소심해보이는 여자아이도 같이 찍혀있었다.


이 여자아이는 누구인가 잠시 생각해보니 믿기지 않지만 눈앞에 있는 여성밖에 가능성이 없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이 맞는지 힐끔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그저 미소만 지으며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결국 일기 내용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거 같았기에 나는 페이지를 넘겨가며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그렇게 얼추 후반까지 읽고나니 내 의문이 하나하나 풀려나갔다.


어린 시절의 나는 예슬이랑 친밀한 관계였다.


초등학생 당시, 그녀의 부모님은 많은 사업 실패로 인해 싸움을 자주하셨고 그녀의 성격은 그리 밝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그녀는 반에서 고립되어갔다.


그러던 때에 그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것이 나였으며 내가 그녀를 어둠속에서 꺼내준 햇님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항상 밝게 웃으며 이끌어주던 나로 인해 그녀는 행복해 했으며 용기까지 얻게 되었다.


덕분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부모님의 싸움에 나서 말릴 수 있게 되었고, 그녀의 부모님또한 뉘우치고 사업 성공으로 이어져갔다.


나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예슬이, 그런 그녀가 나를 좋아하게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내가 옛날 기억을 잃어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고, 나를 걱정한 그녀는 당연히 나를 찾아왔으나.......


20XX년 12월 01일


사고로 입원해 있는 얀붕이의 의식이 돌아왔다!


기쁜 마음에 바로 달려가서 나는 병실문을 열고 얀붕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얀붕이는 해맑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겠지? 상상만해도 행복할 것 같아!


......어라? 얀붕아? 왜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거야? 뭐? 내가 누구냐니......?


얀붕이와 같이 있었던 그의 부모님이 내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는 다쳐서 지금까지의 기억을 거의 잃어버렸다고 했다.


거짓말이야...그럴리가 없어! 나와 얀붕이의 소중한 추억이 없어지다니 말도 안돼!


나는 얀붕이에게 달려가 지금까지 함께하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전부 말해보았지만 얀붕이는 그저 미안하다고 기억이 안난다고 했다.


......아프다, 오랫동안 웃으며 즐겁게 보내왔는데 그런 추억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고 하니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나의 손을 잡아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햇님은 이제 기억 속의 사람이 되버렸다.


그 날, 나는 방에 틀어박혀 울고 또 울었다.


그녀의 문장 하나하나에 초등학생이라고 볼 수 없는 비애가 섞여있었다.


그만큼 그녀에게 어린 시절의 나는 특별하고 동경하며 사랑했던 존재였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뒤의 페이지의 그녀도 하루하루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달의 마지막에 가까워지자 그녀의 심경에 변화가 찾아왔다.


20XX년 12월 29일


울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내 안의 햇님은 이제 없어졌으나 사랑하는 얀붕이는 그대로 있으니까!


그래, 기억을 잃었다고해도 얀붕이는 얀붕이다, 내가 사랑하는 얀붕이다.


햇님이 사라졌다면 이제 내가 그의 햇님이 되어주면 그만이다.


얀붕이의 햇님이 되어 사랑하는 그를 계속 바라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어떤 노력이라도 감수할 것이다.


지금의 나로는 햇님이 되기 부족하니 좀 더 나를 가꾸고 나서 얀붕이에게 다가가야만 한다.


그날부터 나는 아리따운 여성이 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보았고 꾸준히 매일 나 자신을 가꾸기로 했다.


그 전에......


사진을 보면 어린 시절의 예슬이는 왜소하고 자신감 없는 아이였다.


그런 소녀가 지금의 모습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적혀있는 '그 전에' 는 대체 뭘까?


궁금했던 나는 아무렇지 않게 페이지를 넘겼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다이어리의 마지막에는 구타당해 피떡이 되어있는 소녀들의 사진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20XX년 12월 30일


오늘은 나의 얀붕이에게 먼저 다가가 꼬리치는 벌레에게 제재를 가했다.


그의 햇님이 될 자격도 없는데! 벌써부터 얀붕이의 마음을 얻으려고하는 편법은 용서 못해!


모두의 빛이었던 그에게 벌레가 꼬이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까 햇님이 되기 전에 앞서 해충들부터 박멸해야한다.


어른들이 쓰는 도구들은 쓰기 버겁긴 해도 고통은 확실했다, 역시 맨주먹으로 치는 것보다는 흉기를.......


나는 더 이상 읽은 수 없었다, 몸 속에서 올라오는 구역질에 인하여 다이어리를 던져버리고 입을 틀어 막았다.


기억을 잃은 나에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던 이유, 그 이유가 사실은 그녀에 의했던 거였다.


그녀는 나를 따라다니며 감시하면서 내게 다가오는 자들 전부를 배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런 짓까지 벌인 정도로 그녀가 삐뚤어진 것은 어째서인 걸까? 어째서 이런 심한 짓을 벌인 것일까?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두렵고 무서웠다.


그런 나의 심정을 아는 것인지 얀예슬은 어느새 2번째 다이어리를 꺼내들더니 내 성기를 손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뒷내용이 궁금하지 얀붕아? 한번 더 내 안에 싸주면 보여줄게♡"


자신의 비부에 다시금 발기된 나의 성기를 넣은 그녀는 나의 경직되어있는 얼굴을 두손으로 붙잡았다.


"하흣 너는 나만 바라보면 돼! 항상 사랑해 얀붕아♡"


해가 져버린 밤의 양호실, 달빛 외에는 빛이 존재하지않는 이곳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보았다.


음란하면서도 매혹적인 그녀의 미소를......


아무래도 나는 이 햇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래를 맞이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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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카드 19번 Sun이 밝은 미래랑 연기라는 뜻이 있길래 써봤음


근데 요즘 글쓰는 감을 잃어서인가 쓰기 힘드네.....그래도 사료를 받아먹으니 사료를 뱉어야겠지


항상 즐겁게 봐줘서 고마워!


연기가 부진의 의미였네....그래도 썬의 역위치에 사랑의 파국이라는 뜻도 있다니까 틀리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