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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순아, 우, 우리 사귈래?”

 중학교 3학년. 본격적으로 그녀가 신경쓰이기 시작했던 무렵이었다. 분명 우리의 관계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두근거렸다. 그녀의 행동에 별다른 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소한 일에 기뻐하고 슬퍼했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던 하굣길, 결국 난 어떠한 분위기도 맥락도 고려하지 않고 넘쳐흐르는 마음을 고백했다. 풋풋했지만 서투르고 엉망진창이었다.

 “……”

 그때, 그녀의 표정은 조금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빠르게 뛰었다.

 “얀붕아.”

 그녀는 대답을 정한 듯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네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너랑 있으면 즐겁고, 소중한 추억도 많아.”

 곧바로 긍정의 대답이 들려오리라는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무너졌다. 나는 가슴이 철렁거리는 기분이 드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그래서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 그러니까…….”

 석양이 그녀의 웃는 얼굴을 눈부시게 비추었다. 그 때문이지 몰라도 눈이 따가웠다.

 “친구로 지내자. 미안.”

 그때 억지로 지었던 내 미소는, 신경쓰지 말라던 내 대답은, 과연 그녀에게 자연스러워 보이긴 했을까.



 “선배.”

 “……”

 “일어나세요, 선배.”

 하필이면 가장 기억하기 싫은 순간의 꿈을 꾸었다. 전날 그녀와 꼭 붙어있었던 것이 원인임에 분명했다. 나를 상냥하게 깨우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 시간이 한창 지나고 있었다.

 “정말, 저 없었으면 어떡하려고 세상 편하게 자고 계셨어요?”

 얀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후후 웃었다. 그녀는 나의 한 학년 후배로, 언제부턴가 쓸데없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녀석이었다.

 “별로 상관없잖아. 내가 뭘 하든.”

 “병문안이라도 갔다 오셨나 봐요?”

 “어떻게……?”

 실제로 나는 얀순이의 부탁으로 새벽까지 그녀의 곁에 있었다.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애써 설득하고, 학교가 마치자 마자 다시 그녀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나는 그녀로부터 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잠도 거의 자지 못한  채 등교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전 수업 내내, 심지어 점심 시간까지 이어지는 취침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후후, 선배는 정말 알기 쉽네요. 그냥 찍었을 뿐인데 순순히 말하다니.”

 얀진이는 후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악했다.

 “……내가 그랬나.”

 “걱정 말아요. 선배가 얀순 선배랑 친하다는 건 저만 알고있는 비밀이니까요.”

 모두를 속이는 것은 쉬웠지만, 얀진이는 이상하게 속이는 것이 어려웠다. 마치 나에 대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자의 감이란 정말 무섭네.”

 “그런게 아니에요. 선배한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거예요. 선배가 관심을 원하지 않을 뿐.”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정답이었다. 나는 얀순이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조용하게 생활했다. 아이돌에게 있어서 어릴 때부터 친했던 이성 친구란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니까.

 “오늘도 병문안 가실 거죠?”

 “……왜.”

 “저도 끼워주세요. 선배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거든요.”

 얀진이는 기분나쁘게 웃었다. 나는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

 “……싫다면?”

 “그럼 선배가 얀순 선배와 어떤 사이였는지 모두 말해버릴 거예요. 저, 이래봬도 학교에서 꽤 영향력 있답니다?”

 분하게도 그녀의 말이 맞았다. 우리 학년의 스타가 얀순이라면, 얀진이는 밑 학년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였다. 오직 그 외모만으로 1학년 학생회장을 맡았을 정도였으니까. 어째서 이런 아이가 나와 필요 이상의 관계를 갖길 원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알았어. 학교 마치고 조용히 따라와.”

 “만세! 아, 얀순 선배. 부디 별 일 없어야 할텐데.”

 걱정스러운 어조와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음흉했다. 그때, 나는 어떻게든 그녀와 얀순이를 만나지 않도록 했어야만 했다.

 그랬더라면, 이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