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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떄의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팠다. 너무 아프고 괴로워서 바늘 수십개가 몸 깊숙한 곳에서 피부를 뚫고 나오려는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의사는 내 팔에 주사를 꽂고 독한 진통제를 투여했다. 그럴떄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위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에 구역질이 나왔었다. 천장에 있는 형광불빛이 라바램프처럼 빛깔을 바꾸면서 일렁거렸다.
좁은 상자에 갇힌것처럼 들려오는 소리가 먹먹하다. 그럴떄마다 눈을 꼭 감았다. 아. 우리 엄마. 엄마 얼굴이 궁금해요. 생전에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우리 엄마, 이런 나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고싶지만 이제는 세상에 없는 우리 엄마. 약 기운으로 머리가 몽롱했다. 엄마 얼굴이 그려질 듯 말 듯, 수면 위에 물감을 올려 그린것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엉망으로 뒤섞여 형체를 알수없게 되었다. 눈을 다시 떠보면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다. 여기가 내 유일한 세상이고 나는 태어날때부터 이곳에 갇혀있었다.
나가고 싶어요. 나가게 해주세요
나는 지나가는 간호원을 붙잡고 울부짖는다. 조금 뒤에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몇 명의 간호원이 방안으로 달려온다. 그들은 또 한번 진통제를 내 팔에 놓는다. 다시 눈을 질끈 감고 다시 꺠어날때까지의 반복이다.
몇 달이 지났다. 모두 내가 죽을거라고 했었다. 더 이상은 몸이 견딜수 없을거다. 이전에 쓰던 약과 진통제도 이제는 들지 않는다. 병원의 있는 사람들은 나를 박물관 전시품 대하듯이 했다. 그도 그럴것이 약들이 지나가도록 내 팔다리에 매달려있는 무수한 튜브들과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의료기기는 보통의 수준을 넘어선것이었다.
그들은 가끔씩 신기하다거나, 불쌍하다는 눈짓을 하고 지나갈뿐 내게 손을 대지는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몇 분이고 누워있는 내 모습을 뜯어보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럴 기운이 없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몸안의 통증들도 전부 사라졌다. 죽으면 전부 사라진다는데 그래서 없어진거 아닐까. 그렇게 몇 번의 밤을 보내고 신기하게도 눈이 저절로 떠졌다. 삑삑대는 소리와 가습기 소리, 내 숨에 맞춰 쉭쉭거리며 바람새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도 들리는 소리가 맑았다.
저기요. 누구 없어요 ?
지나가던 간호원이 날 보고는 깜짝놀라 뒤로 물러섰다. 잠시 뒤에 의사가 간호원 몇 명을 대동하고 내 방으로 왔다. 또 한번 같은 일이 일어나는걸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들은 내 몸에 달린 튜브를 떼어내고 기계들을 치워주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에 얼떨떨하던차에 누군가 찾아온다는 말을 들었다. 저녁에 그 남자가 찾아왔었다.
“ 괜찮니 ? ”
남자는 대뜸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 질문에 답하기에는 주변이 너무 생소했다. 이렇게 맑은 시야는 처음이다. 나에게 말을 거는 저 사람 조차도.
“ 아저씨는 누구세요 ? ”
“ 그건 조금 있다가 말해주마 ”
“ 엄마는 어디있어요 ? ”
“ 엄마는 지금 다른곳에 있다. ”
“ 어디요 ? 우리 엄마 어디있는지 아세요 ? ”
남자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었다.
“ 나중에 어디있는지 말해줄게. 그리고 꼭 만나게 해준다고 약속하마 ”
“ 꼭 말해주세요, 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요 ”
“ 차라리 모르는게 나을거다. ”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복도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아까 전 아저씨랑 의사선생님이 대화를 하나보다.
원래 이렇게 갑자기 나아지는 경우가 있습니까 ? 글쎄요…저도 이 일 하면서 처음 보는 상황이라… 병원에는 얼마나 더 오래있어야하죠 ? 통상 입원치료는 년 단위으로 잡는게 맞고요. 근데 환우분께서 갑자기 호전 되신터라 이것도 딱 잘라 말씀 못 드리겠네요. 나 참…. 큰일이네.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두 분은 오랫동안 대화를 했다. 오늘 온 아저씨는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헛기침을 계속했다.
조금 뒤에 아저씨가 들어왔다. 다시 또 온다고 말했다. 지갑을 열더니 오만원짜리 지폐를 건네주었다.
“ 이걸로 뭐라도 사 먹어라 ”
“ 저는 밖에 못 나가요 ”
“ 간호사한테 말해두마, 나중에 사 달라고 부탁하렴 ”
나는 돈을 받았다.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나갔다. 혹시 이걸 주려고 온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 )
며칠 뒤 그 남자는 또 병원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어린 여자애와 남자애를 데리고 왔다. 여자아이는 키가 작고 검게 탄 진주처럼 똘망한 눈매를 가졌다. 여자애는 날 보고는 아저씨의 바짓춤을 붙잡고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 어. 아빠. 아빠. 재 봐봐, 나랑 엄청 닮았어 그치 ? 그치 ? ”
“ 조용히 해 수아야. 여기서는 시끄럽게 하면 안돼 ”
“ 그치만 엄청 닮았는걸 ”
여자애는 대뜸 나에게로 다가왔다. 허락도 없이 내 긴 머리칼을 붙잡더니 위 아래로 쓸어내려 감촉을 살펴보았다.
“ 뭐야아. 머리 이상해. 아빠. 애 머리 개털같아 ”
“ 정수아! 그만하고 빨리 이리 와 !”
“ 칫 ”
여자애는 입을 삐쭉내밀고 돌아간다. 걸어가면서도 발을 탁탁 구르며 심술을 부렸다. 그 와중에 나는 여자애 손에 머리칼 몇 올이 빠지고 말았다. 아야. 따가운 감촉에 손바닥으로 머리를 문질렀다. 아저씨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 저번에 엄마 만나고 싶다 말했었지 ? ”
“ 네 ”
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곧 오실거란다. ”
“ 정말요 ? ”
“ 그래 ”
기뻐서 나도 모르게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인사를 꾸벅했다. 아저씨는 불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아끼셨다. 여자아이는 아직도 입을 내민채 죽상을 지었다.
“ 아빠. 근데 우리 여기 왜 온거야 ? 하나도 재미없어 ”
“ 아빠가 할 일이 있어서 그래 ”
“ 재미없다니까 ”
“ 잠깐만 기다리면 안되겠니 ? ”
“ 싫어. 여기 나랑 안 맞아. 그리고 나, 재 보면 왠지 으슬으슬하고 기분나빠 ”
여자애가 나를 가르키며 말했다. 아저씨는 한숨을 쉬었다.
“ 수아야. 잠깐 나가있으렴, 간호사 언니랑 놀고있어 ”
“ 아아아 왜에에 ”
“ 글쎄 나가있으래두, 얀붕이 너는 어쩔래 ? 수아랑 같이 놀거야 ? ”
그제서야 함께 온 남자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그 아이는 나와 눈을 빤히 마주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여기 있을래요.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신기했다. 그 아이의 눈 안에는 나 자신이 비쳤는데, 마치 먼 바다를 보는것처럼 눈동자 한 가운데에서 맑은 빛이 났다. 나를 단순히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로 바라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 뭐야. 왜 안가는데 ? ”
여자애가 남자애의 팔을 붙잡아 끌었다. 남자애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그냥 여기 있을래 ”
여자애는 몇 번씩 팔을 잡아끌며 생떼를 피웠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길게 투정을 부리고는 화가 났는지 방을 그대로 나갔다. 아저씨는 잠시 뒤에 전화가 오자 똑같이 방을 나갔다. 방에는 나랑 남자애 둘만이 남아있었다.
“ 이름이 뭐야 ? ”
남자애는 날 보고는 물었다. 기왕이면 내가 아는거였으면 좋았을텐데.
“ 나도 몰라 ”
나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남자애는 더 묻지 않았다.
“ 너, 많이 아픈거 맞지 ? ”
“ 응 ”
“ 얼마나 ? ”
“ 많이 아파 ”
“ 그러니까 얼마나 ? 이빨 뺴는것보다 아파 ? ”
남자애가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최근에 뽑은건지 어금니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 이빨을 뺴보지 않아서 몰라 ”
나는 그렇게 말하고 팔 소매를 걷어보였다. 팔에는 굵은 바늘자국이 많았다. 얼핏 보니 썩은사과를 벌레가 파먹은것처럼 푸른 멍자국에 구멍들이 점점이 박혀있었다.
“ 윽….”
“ 왜 그래 ? ”
“ 나는 주사 싫어해 ”
남자애가 창피한지 얼굴을 붉힌채 푹 숙였다. 어쩐지 그 모습이 작고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이런적은 처음이었다. 아하하하. 한바탕 웃고나자 남자애가 말했다.
“ 너는 아파도 금방 낫겠다. 주사도 잘 맞잖아. ”
“ 나도 얼마전에 깨어났어 ”
“ 그래 ? 그럼 전에는 어떘는데 ? ”
나는 침울해져서 말한다.
“ 별로 말하기 싫어. 너무 힘들었어 ”
남자애는 나를 보고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 물끄러미 쳐다보니 뭔가를 생각하는 듯 눈동자가 위쪽에서 굴러다닌다. 나는 얌전히 기다렸다. 생각이 끝난건지 남자애가 말했다.
“ 있잖아. 이빨 빼면은 엄청 아파 ”
“ 응 ”
“ 피도 막 철철 나온다 ? ”
“ 으엑…피 나온다고 ? 안 울었어 ? ”
“ 엄청 울었어. 근데 이제는 안 울어, 아프지도 않아. 왜 그런지 알아 ? ”
“ 왜 ? ”
“ 엄마 아빠가 말하는데 이빨 뺴고 나면은 지붕 위로 던져야한데. 던지면서 눈 꼭 감고, 손을 모아서 비는거야.
새 이빨 예쁘게 나게 해주고 이제 안 아프게 해주세요라고 ”
정말 신기한 말이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집중했다. 남자애는 계속 이어갔다.
“ 그러면 까치가 와서 물어간대, 그러면 이빨도 나고 다음부터는 하나도 안 아프다고 했어. 그래서 이제는 안 아파 ”
“ 신기하다. ”
“ 그치, 근데 봐봐. ”
남자애는 입을 또 한번 열었다. 그리고는 위쪽에 있는 어금니를 손가락으로 건들었다. 살짝 흔들리는게 보인다.
“ 나 곧 있으면 이빨 하나 더 빼야할거야. 그럼 그떄는 까치한테 너도 아프지 말라고 전해줄게 ”
남자애는 봄바람처럼 따스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똑바로 쳐다봐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놀라서 눈길을 피하고 말았다. 이상해. 가슴이 아픈적은 있어도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이 발갛게 오르고 괜히 눈을 마주치는게 어색하다.
“ 아 맞아. 너 이빨 뺸거 없지 ? ”
“ 어 ? 어..으응.. ”
“ 그럼 같이 던질만한거 없어 ? ”
“ 어 ? 어 ? 던질거 ? ”
“ 응. 너도 까치한테 줄게 있어야지 ”
남자애는 천진하게 물어보았다. 나는 혼자 당황해서 몸짓을 허둥거린다. 급한대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대 옆 탁상에 분홍색 손수건이 보였다. 나는 그걸 집어서 건네준다.
“ 이..이거 ”
분홍색 손수건. 사실 그 자리에 있는지조차 몰랐었다. 그냥 아무거나 되는대로 건네준거다.
내 머리칼을 잘라서 줄수는 없지 않은가. 어딘지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기쁘게 받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예쁘다. 조금 아까운데 괜찮아 ? ”
“ 응 ”
남자애는 손수건을 받았다. 그걸 보더니 갑자기 냄새를 맡는다. 이상하게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남자애는 그걸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 내가 잘 전해줄게, 이제 하나도 안 아플거야 ”
“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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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학교로 향하는 골목을 걷고있었다. 산뜻한 바람이 불어오자 갑자기 옛날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어린 소년을 떠올렸다.
아. 역시 그때가 가장 좋았어요. 우리 둘만 있으면 모든게 완벽했는데. 저의 기억도 딱 여기까지만 본다면 아름답잖아요 ? 물론 바로 그 다음은 죽고싶을정도로 끔찍했어요. 아니, 그런게 아니죠. 항상 끔찍했어요. 항상 죽고싶었어요. 제가 유일하게 웃음 지을수 있는 추억은 이것뿐이에요. 당신이 있는 순간만이 제가 행복했답니다.
당신의 집에는 자주 들어가봤어요. 손수건, 안 보이더라고요? 그 거지 같은 토끼인형은 책상위에 올려놓고말이죠. 뭐… 사실 그 손수건 저도 어디 있던 누구의 물건인지도 모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대신 제가 쓰던 물건은 당신의 집에 꽁꽁 숨겨두었으니까. 그래도 그 손수건…. 어떻게 됬을지 궁금하기는 하네요.
있으면 그거대로 문제, 없으면 그거대로 문제죠. 있다면 당신이 약속을 안 지킨거고, 없으면 약속은 지켰지만 어딘가 아쉽단말이에요. 어디에 있든 상관없으니까 그냥 알아보기만 한다면 좋을텐데. 정말로 까치가 물어간걸까요 ?
갑자기 하늘에서 까악거리는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멈춰서서 하늘을 본다. 검은 형체의 새 몇 마리가 주위를 빙빙 돌았다.
아. 뭔가 생각난게 있네요.
그녀는 살짝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네모반듯한 모양을 만든다. 사진을 찍듯 그대로 머리 위의 새들을 그 안에 담아놓는다.
까치가 물어간다는거 아주 좋은 생각인거 같아요. 근데 혹시 모르잖아요. 그 손수건을 물어간것도. 지금 제가 생각한 대상도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일지 모르는거죠.
찰칵. 그녀는 속으로 셔터를 눌렀다. 새들은 너무 멀어서 육안으로 구분할수 없었다.
역시 직접 확인해야 아는 법이죠. 그녀는 손을 내려놓고는 다시 제 갈길을 갔다.
높은곳에서 새 울음소리가 땅으로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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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삼인방의 어린시절이 나오네요. 다들 귀엽습니다. 쓰면서 참 재밌었네요.
문제는 다 써놓고보니 잼민이 수아를 한대 쥐어박아주고 싶은데 퇴고가 또 문제란 말이죠.
그냥 냅둘랍니다. 저것도 캐릭터니까요.
그리고 결말에 얀순이가 뭔가가 떠올랐다고 말하고 애꿎은 새를 도촬하는데요
사실 이 여편네가 뭔 생각을 했길래 새를 찍었는지 저도 잘 모릅니다...;;
떠오를만한게 좀 있기는 한데, 일단 흘러가는대로 쓴 글이라서 용두사미로 끝날까봐 걱정이네요.
그래도 일단은 ' 니들이 얼마나 잘 하는지 함 보자, 재밌으면 다들 읽어주는거고 아니면 말고 '
이런 심정으로 인물을 관찰한다는 마인드 하에 쓰고있습니다. 리허설 겸 오디션이라 해야할까요.
어쨌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과거회상은 여기서 안 끝나고 쪼끔 더 이어질겁니다. 다 쓰기에는 좀 피곤해서. ( 분량 많으면 읽기도 힘드시고 )
다들 얀순이한테 잘자라고 인사하시고, 다음에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