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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a.live/b/yandere/8824528         - 4_1학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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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방과 후면 저녁까지 부활동을 했다. 말은 부활동이지만, 그냥 피아노 과외였다.


반에서 얀붕은 그리 눈에 잘 띄는 행동은 안 하는지라 평범하게 지냈고,


얀순의 머릿속에 서민이 어쩌고 하는 생각은 빠르게 옅어졌다.


전학생이라는 관심거리는 채 일주일도 가지 않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부대끼며 지내니 선입견은 금방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얀순은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되서 전학을 왔기 때문에, 학예회까지는 시간이 빠듯했다.


하지만 얀붕은 꽤 빠른 속도로 배웠다. 아마 얀순이 집에 간 뒤에도 연습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오늘은 집에 일찍 갈 거야. 부모님 늦게 오신다고 하셔서 혼자 밥 먹어야 돼."


"예. 많이 처드시구요. 가만보니까 너 다른 한 곡은 왜 연습 안하냐? 세 곡 한다면서?"


"아직 못 정했어. 테마가 얼추 겹치는게 지금 하는 두 곡이고, 나머지는 그 사람이 최신에 썼던 걸로 하려고."


"가사를 다 바꿔야 될텐데 그러려면. 그 작곡가 곡은 아닌데 이거 한번 들어봐."


"아, 장보고 하려면 시간이 없어서 지금 가야 돼. 내일 들을게."


"쯧쯧. 누나가 밥 사줄까?"


"예 엉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엉님은 썅. 개같이 구네? 디지고 싶어?"


"ㅎㅎㅎ됐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맞다. 너 왜 교실에서는 말 안거냐? 피아노 선생이 부끄러워? 조빠지게 가르쳐 놨더니 아아아아주 사람을 무시하고 말이야. 이래서 머리털 검은 짐승은 안 돼."


"다른 애들이 너한테 말 걸때마다 너 욕할 때 나오는 지금 그 표정이 나오길래. 어유 무서워."


"디졌다. 개-새끼가."


"오. 각시탈. 그엑."


얀순은 웃으며 얀붕의 머리를 단소로 쪼갰다. 얀붕은 조금 소름이 끼쳤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유는 없고, 단순히 얀순은 얀붕의 배려를 느꼈다.


친한 얀붕을 제외하고는 욕지거리를 하지 않았으니 얀순은 반에서 얌전한 아이로 통하고 있다. 물론 말을 건다고 얀순이 함부로 욕을 하진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 사이가 가까워졌긴 하지만, 같은 반 애들이 잘 안 맞는 것도 사실이다. 눈치있는 녀석이다.


"가자. 누가 보던말던, 따라와. 오늘은 기사님 불러야겠다."









얀순이 부유하다는 사실은 딱히 비밀은 아니었고, 대충 아는 사람들은 알았다. 


얀순에게 보내는 눈빛이 선망이든 뭐든 간에 그녀는 주목 받는 것을 싫어했고, 평소 걸어서 하교했다.


하지만 얀붕은 오늘, 돈 많은 사람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오와... 차원이 다르네. 이 돈 주고 왜 사먹는지 몰랐는데, 다 이유가 있구나..."


"음식은 질에 따라 차이가 크단다 제자야."


"운전기사님도 진짜 멋있더라. 나 면허 따면 너희 집에 취직 해도 돼?"


"샌드백 자리는 항상 남아 있고, 지금도 가능하지. 아빠 따라서 골프도 몇 번 치러 가봤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 아가리 하고 먹으니 보기 좋구나."


"우리 엄마아빠도 못 먹어본 것 같은데, 왠지... 불타는 아들이 된 느낌이야..."


밥상머리서 재수없는 소리한다고 뭐라고 하고 싶지만 얀순은 참기로 했다.


둘은 잠시 동안 수저만 달그락거렸다.




"아 맞다 노래... 시간 없으면 이거 가져가서 들어봐."


"아니, 폰을 왜 줘. 집에 가서 검색해서 들으면 되지."


"이건 전화용이 아니라서 없어도 돼. 내일 잘 갖고와. 대가리 터지기 싫으면."


"플래그쉽.. 주사율 120Hz.. 쩔어."


얀붕의 관심사는 금방 옮겨졌다. 얀순은 그냥 지금 당장 그의 두개골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아마 둘만 있는 음악실이었으면 아마 얀붕은 반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다른것도 들어도 되고, 내가 아까 말한 거는 이거야."


"응. 잘 들을게."











'하아.. 졸려.. 씨.. 오늘은 그냥 태워달라고 할 걸.'


"얀순. 하이?"


"그래, 아침부터 활기차구나. 죽이고 싶게."


"잘 들었어. 어제 그 곡 너무 좋더라. 이어폰 귀에 꽂고 잤어."


"당연하지. 누나가 들어본 게 너보다 200배는 더 많거든."


"그래그래ㅋㅋㅋ 세번째 곡은 그걸로 하려고."


그 때, 누군가 얀붕에게 날아차기를 먹였다.


'좆고전 헥토파스칼킥을 여기서 보네.'


"김얀붕이. 너 이얀순이랑 친한가봐?"


얀붕은 가방에서 단소를 꺼내더니 번개의 호흡이 어쩌고 하는 씹덕 대사를 뱉었고, 신속하게 상대의 머리를 뎅강. 잘리지는 않았다.


상대는 잼민이들이 좋아할 플라스틱 칼을 꺼냈고, 한 방씩 주고받은 둘은 교문까지 가검승부를 벌였다.


교문에서 칼은 압수당했고, 단소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압수는 면했다.


이전에 얀순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거의 없었던 일이지만, 여기서는 일상이다. 오히려 평범하다.


'평범하게 미친놈들.'








"그래서 이걸로 한다고?"


"어엉. 좋더라. 그 작곡가분 곡들도 다 들어보려고."


"그럼 나 이거 여자 보컬은 내가 할래."


"오 진짜??"


"다른 곡들도 여보컬은 내가 할게. 첫곡은 내가. 두번째는 남보컬 곡이니까 너가. 마지막은 같이. 남보컬이 아니라 거의 코러스긴 한데..."


"괜찮아!!! 열심히 연습하겠습니다! 선생님!"


"그래 새끼야. 내 마음에 들 때까지 할 거니까 각오해라."


"당연하지. 엄청 재밌겠다!"


"이거 피아노 연타 파트 조지는 거 알지? 그것때문에 코러스밖에 없거든? 니가 이거 하려면 진짜로 피날 때까지 연습 해야 돼."


"안 그래도 그 부분 너무 해보고 싶더라고. 머릿속으로 연습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잤어."


"아침부터 미친듯이 날뛰더니만 잠을 못자기는 개뿔이."


"코드부터 뽑아 봐야겠다. 너가 가르쳐 준 대로 한 번 해봐야지."


"시간 맞출 수 있으려나? 일단 한 번 해 봐야 알겠네."









시간은 열심히 보내는 자에게 자비없이 흘러갔다.


어느새 강당에 서게 된 둘은 당연히 긴장했다. 얀붕은 좀 많이 긴장했다.


"야. 리허설 때처럼 틀리면 죽는다 오늘.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죽일 거야."


"어어....... 아으..... 너무 떨려......"


"어제 잘 했잖아. 했던 대로 하면 돼. 부원 받아야지 새끼야."


"오케이..... 좋아요..... 갑시다....."


첫 곡은 얀붕의 피아노 반주에 얀순의 보컬이 메인인 곡이었다.


얀순은 노력의 결과를 보기 위해 열창했고, 


얀붕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Promise me. You're not...."


노래에 실린 감정을 느끼며 얀붕은 두번째 곡을 이어갔다.


무슨 노래인지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었지만, 이별 테마의 노래를 슬프게 잘 불렀다.


세번째 노래는 듀엣이라고 하긴 좀 애매한, 얀붕의 피아노와 얀붕의 코러스가 조금 들어간 얀순의 보컬이 둘 다 주연인 노래였다.


그리움의 테마에 맞게 얀순은 가사에 담긴 애절함을 표현했고, 그것을 모두 담은 샤우팅.


이어지는 피아노 독주.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간주를 기점으로 공연은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고,


그렇게 두 명이 함께 고개를 떨구는 연출로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두 사람은 학교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공식 커플이 된 것은 덤이다.








"둘이 엄청 잘 어울려!!!"


"그 때 했던 거 또 보여줘!!!"


방과 후 인데도 음악실이 북적북적거린다. 남학생들은 사실 한 번 보고 그냥 '오 잘한다.'하고 끝이었고,


때 아닌 앵콜을 부르짖는 이들은 보통 여학생들이었다. 평범했지만, 꽤 반반한 얀붕이 감정을 담아 피아노를 치는 모습에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은 다른 애들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었다.


얀붕은 피아노와 함께 앵콜을 외치는 폭도들에게 둘러쌓였고,


얀순은 몸을 더듬더듬 만져지고 있다.


"얀순이 볼 말랑말랑해. 젤리같아."


"어떻게 이렇게 작은 몸에서 그런 노래가 나오지?"


'시발시발시발....시발.....제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살려주세요!!!'


둘은 서로를 원망하듯 도와달라는 듯 쳐다보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은 학생들의 욕망이 담긴 신청곡을 즉석에서 최대한 임기응변으로 들려주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지친 두 사람이 등받이도 없는 피아노 의자에 서로 기대어 자는 모습은 다음 달 교내신문에 실렸다.


물론 후에 얀순의 '노력'으로 해당 월의 교내신문은 모두 불태워졌다.










얀순은 이전 학교에서 딱히 친밀한 교류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사교모임과 같이, 형식적으로 각자 얼굴도장을 찍으면서 지나가는 장소였다.


그런 주제에 내신 받기는 더럽게 힘들고 왜 다니는지 모르겠는 곳. 얀순의 비행은 아마 그것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이 학교는 그래도 얀순의 마음에 들었다. 그녀 자신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한 녀석이 그녀에 마음에 든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제 이번 달만 버티면 방학이다아아아."


"그러네 시발. 아, 방학 때 할거 존나게 많은데. 개짜증나. 그냥 여기서 멍때리는 게 제일 좋은데."


"방학 때 학원 다니나봐?"


"수능 과목은 지금 쳐도 될만큼 다 알고 있고, 경제학이랑 뭐 그지같은거 과외. 학원은 무슨, 돈 받고 싶으면 우리 집에 와야지."


"와 밸붕."


"어차피 내신은 1학기때 좆박아서 포기했으니까 핑계 댈 생각하지 마세요. 맨날 여기 처박혀 있으면서 성적이 오르길 바라냐?"


"하긴 그렇지... 악기부 부회장님. 오늘도 새 부원은 없나요?"


"꼴받게 해서 다 꺼지라 했다. 배울 생각도 없는 새끼들이 너무 많아서. 꼬우면 알지? 처신 잘 해라."


"아 왜애애애애애애...."


"한 곡 불러 봐라. 그러면 생각 해본다."


"너가 무섭게 쳐다봐서 싫어."


얀순은 잠시동안 말이 없다. 얀붕은 지금 얀순의 표정이 더 무섭긴 하다. 그냥 해줄 걸 그랬다.


"오케. 그러면 협상테이블 없음. 수고링."


"I.... remember...."


얀순은 '덜 무서운' 표정으로 얀붕의 연주를 감상했다. 그녀는 얀붕이 다른 사람이 있을 때와는 다르게 연주한다는 것을 안다.


시선을 끌기 위한 과장된 몸짓이나 표현 없이 연주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은 얀순과 단 둘이 있을 때만 보여주었다.


지금껏 힘들게 부정해왔건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얀순에게 얀붕과의 관계가 녹아들었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낸 몇 개월의 시간들이. 추억들이 함께.


인정하자마자 둑이 터지듯이 격류처럼 흐르는 감정. 원래 좋아한다는 것이 이런 걸까.


얀붕은 어제까지는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무섭게 쳐다보던 얀순의 시선이, 오늘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공연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대주주님."


"그래요."


"그럼 이제 저녁 시간인데 집에 가시죠? 협상내용은 잘 이행하시리라 믿어요."


"야. 김얀붕."


"엉."


"소문 알지?"


"그 얘긴 왜 해? 엄청 싫어하더니만."


"이제 소문 말고...... 음....."


항상 남자애같은 행동과 말을 보여주던 얀순이 이때만큼은 소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던 말도 못 마치고, 부끄러워하며 눈을 돌리는 그녀에게서.


얀붕은 평생 못 느낄 줄 알았던 귀여움을 한가득 느꼈다.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도.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그냥 하교했다.


다만, 손을 잡은 채로 같이 걸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종례와 동시에 그냥 하교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얼마 안 되어서 '공식 커플'에 대한 이야기는 여학생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제 등에 왜 자꾸 당신의 면상을 비비고 그럽니까. 간지러워요. 놔요. 제발... 이게 뭐하는 짓이야..."


"화장품 묻히기."


"앆!! 고만해! 애정행각은 사람들 안 볼때 하세요!"


"아무도 안 볼때? 음악실에서? 뭘 하려고?"


각이 나왔다. 여학생들이 수군거린다. 남학생들은 ㅗㅜㅑ하면서 항상 들고 다니던 팝콘을 씹고 있다.


"뭘 하려고 그럴까아? 김얀붕씨? 대답 좀 해보세요오."


"제가 다 죄송합니다. 그러니 한 번만 봐주세요..."


"어제 저한테 그렇게 부끄러움을 안겨 놓고선 이제와서 빼시는 건가요?"


"아니, 우리 어제부터 시작했는데 내가 뭘 해!"


여학생들은 이제 남학생들의 팝콘을 몇 개 뺏어서 같이 감상하고 있다. 몇몇은 사둔 팝콘을 가지러 갔다.


얀순은 얀붕을 어떻게 더 놀려먹을까 하는 생각으로 싱글벙글했다. 어째선지 지금은 시선들이 그렇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진짜 아무것도 안했다고 생각해..? 시...실망이야...."


"제발요! 선생님! 못난 제자에게 한 번만 자비를 주세요! 시련을 멈춰 주세요!"


"히히. 내가 먼저 고백했잖아. 얼마나 부끄러웠는데. 그것도 기억 못하냐?"


구경꾼들은 꿀잼각이 끝난 것이 아쉬웠지만, 다른 곳에서 각을 재 보기로 했다.


여학생들은 '꺄아!꺄아! 고백했대! 고백했대!'라며 보고 있었고,


남학생들은 "저저저 못난놈. 남자 새끼가 저러면 안돼지 안돼." 하면서 얀붕을 비난했다.


얀순은 그렇게 얀붕을 끝없이 갈궜고, 얀붕은 끝내 '화장품 많이 묻히기 형'을 받았다.


그래도 얀순은 기초화장만 해서 딱히 묻힐 것은 없었다.









얀붕은 피아노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하루 만에 이런 극적인 변화가 오다니. 대단해."


얀순은 옆에서 얀붕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나도 이제야 알았네. 좀 봐줘 개새야. 난 학교 끝나면 지옥 시작이야."


"흠... 신입 부원을 내친 것도, 딱히 소문을 부정하지 않으신 것도 이유가 있었군요? 이번달 교내신문은 악착같이 찾으시던 얀순씨?"


"이... 새끼가..?"


얼굴이 붉어진 얀순은 팔을 풀고, 근처의 무기를 집었다. 음악실에는 타격감 좋은 무기가 많다. 부러지면 새 걸로 갖다 놓으면 된다.


"아니, 아까 전에 그렇게 괴롭혀 놓고, 이거 내로남불이야.."


"너는 오늘 죽을 것이다. 처참하게."


오늘의 신청곡을 들고 연주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일방적 부부싸움을 구경하게 되었다.


"팝콘 가져와!!!"


공연은 망했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은 아니긴 하다.


"역시 평범한 데가 좋아. 선생님도 드시죠?"


"보면 입맛이 참 특이해. 보통 비싼거 먹어 보면 싼건 잘 안먹으려고 하는데."


"난 남들이 맛이 없다고 해도 나한테는 맛있더라. 개밥 먹을 상인가 봐."


"어쨌든 좋겠네? 비싼거 사주는 여친 생겨서?"


"그래도 이 정도는 내가 낼 거야!"


"예. 많이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