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가드너

엘버트 에버가든










이 세상에는 절대로 양립 할 수 없는 관념들이 존재한다.




뜨겁게 타오르는 붉은 태양과 서늘고 푸른 달,




찬란하게 세상을 밝히는 빛과 그 광명 속에서 피어나는 이면의 어둠 처럼



서로가 서로의 음과 양이 되어, 절대로 이어질 수 없는 관계가 버젓이 존재한다.








팅 ㅡ!


"으읏...!"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은


탱 ㅡ!



"윽!"


 

마치 이 두 남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 처럼 ㅡ



여기, 같은 하늘 아래에 동시에 존재 할 수 없는 서로의 적수가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성문을 무너뜨려주마!"



제국의 붉은 사자,



원수 레이첼 가드너




"내가 있는한 어림 없다!"



왕국의 푸른 별, 


최후의 기사단장 엘버트 에버가든



이 둘은 서로가 서로의 적장이자,


절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이었다.



자신이 섬기는 나라를 비롯해서



성별과 성격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좋아하는 음식이나 자잘한 취미 조차도 너무나 다른 이 둘은



마치 하늘의 변덕으로,



또는 신들의 장난으로인해 서로를 알게 되어


끝나지 않는 전쟁 속에서도 결코 매듭지을 수 없는 숙명의 적이 되버리고 말았다.






팅팅!




이 둘은 지금까지 수 많은 전장을 경험하며 서로를 대면했고 



그럴 때 마다 스스로가 앞장서 자신들의 손으로 이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



팅..! 팅!!



서로의 칼날이 수 차례 맞붙었고





"느으읏...!!"


"큭...."



그 어떤 전투에서도 지치지 않았던 둘도 이 순간만큼은 사력을 다해 숨을 헐떡이며





"원수님께 가세 해야.."


"미쳤어? 저 검기들 좀 봐...!"




"단장님이 위험.. ㅡ"


"안돼, 오히려 짐만 될 거야."



너무나도 치열한 일기토에 그 압도적인 위험은 누구의 참견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로지 본인들만의 싸움,





팅팅... 킹!


검들이 튕기는 소리는 마치 하나의 왈츠 같았고



그 선율의 압도된 이들은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도 넋 놓고 그 광경을 한 동안 지켜보게 되며




팅!!!



그리고 이러한 합주는 해가 산에 가려져 싸늘한 어스름이 찾아 올 때 까지도 이어져 나간다.








◇◇◇





"뭐라고?"






만월이 하늘의 꼭대기에 걸린 깊은 밤,



그날도 엘버트는 레이첼과의 혈투로 지처있을 때 였다.




"보는 그대로 입니다."



바스락거리는 갑옷을 벗어던지며 앞에 놓인 종이를 집어드는데.



"하아?"


첫 줄을 읽자마자 못마땅하다는듯 허탈한 한 숨을 내셔버린다.



"이게 말이 돼?"




그가 보고있는건 다름아닌...



"국왕 폐하의 어명인지라, 어쩔 수 없습니다."



휴가증 




"휴식도 일의 일환이지 않습니까? 기왕이 이렇게 된거 마음 편히 다녀오십시오."




부관은 어깨를 떠밀듯 엘버트에게 휴가증을 쥐어주지만은



"어떻게 마음 편히 다녀오라는건데?! 내가 없다면 누가 최전선에서 제국과 맞서지?"



굳은 정의감과 책임감은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듯 보였다.



무엇보다...



"특히 레이첼... 그녀를 어떻게 막아 설 방법이 없잖아."


그는 자신과 몆 본이고 부딪친 숙적을강조하는데.





"그건 걱정마십시오, 다른 단장님께서 자리를 매우실 테니까요."



"물론 엘버트님의 빈 자리는 크게 체감되겠지만은, 이대로 있다가 과로로 쓰러지는게 더 큰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숨 돌릴 틈이 있을 때 다녀오시는게 좋지 않습니까?"




"국민들도 그걸 원하기에 국왕께서도 직접 나서신 겁니다."




그래도 부관의 계속된 설득과



"....."



말은 그렇게 해도, 레이첼과의 전투로 근육 조직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는 상태였기에


"후.. 알았어.."



"제발 내가 없는 동안에 문제가 없기를..."


엘버트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하아~ 결국 이렇게 되는건가?"



그로부터 나흘이 지나고




결국 등 떠밀리듯 길고도 짧은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다.



그 위치는 항구 도시 에벤데스




제국과 왕국 사이에 위치한 중립 국가의 수도로




수식어 답게 넓고 푸른 바다가 관광 명소였다.




"....."



이제 막 도착한 소감으로는 뭐랄까...



확실히 바닷 공기가 불어오는 지역은 무언가 색 다른 기분이었다.


그저 살면서 처음 와보는 곳 인지라 무의식적인 기대감일 수도 있고,




"어디보자, 해변가가..."




그래도 일단 왔으니 뭐라도 즐기고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짐을 풀자마자 곧 바로 길을 나섰는데.




"으읏.... 내가 지갑을 어디에 뒀더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곤란한 목소리 ㅡ



시선을 돌리자 보인 것은 한 여인이 음식점 앞에서 음료를 받아 들었으나, 발을 옮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무언갈 애타게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손님...?"


"아.. 자.. 잠시만요..! 조금만 더 찾아볼게요!"



대화에 흐름을 보았을 땐... 아마 여자 쪽이 지갑을 깜빡하거나 잃어버린 것 같은데.


카플린을 써서, 얼굴을 확인 할 순 없지만 붉은색 장발과 목소리도 여린 것이 젋은 사람인듯 했다.




"..... 후우..."



왠지 지나치면 괜한 찝찝함이 온 종일 심기를 불편히 할 것 같아, 그녀에게 다가간다.



"계산이요."



그리곤 자연스레 옆에 서서 지폐를 내미는데.



"...?"


그 순간 여자는 어깨가 흠칫 떨려버린다.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에게 뜬금 없이 도움을 받는건 이상할 테니까.


카플린이라는 모자가 워낙 넓고 또 나보다 키도 작아서 아직도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어떠하리,


도움의 손길을 내밀거라는건 변함이 없었다.




"앗... 네..!"



직원도 여인 처럼 잠깐 병 쪄지긴 했으나, 이내 상황을 금방 이해한듯 내가 건내는 돈을 받아들고 거스름을 가져온다.




"감사합니다!"




그 뒤, 직원의 인사를 받고 유유히 떠나려던 그 순간.



"잠시만요..!"



여자는 내 옷 소매를 잡아당기며 발걸음을 붙잡는다.



"가.. 감사합니다!"


"지갑을 두고 오는 바람에... 어찌하나 싶었어요!"



그녀는 황급히 내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아, 아니에요. 크게 신경쓰지 마세요."



"아닙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사례를... ㅡ"



드디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치는데.




"어..?"


"엣...?"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동시에 한심한 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그야... 방금 내가 도와준 여자는 ㅡ



붉은 갈퀴를 가진 사자 처럼 고고하게 찰랑거리는 붉은 머릿결과


그에 걸맞는 루비 같은 눈동자,




또 얼굴 근육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물씬 풍기는 용맹함까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ㄹ... 레...!!"


"엘...!!!"



바로... 닷새 전만해도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던 숙명의 라이벌 ㅡ




"레이첼?!"


"엘버트!?!?"





바로 레이첼 가드너 였다...





"윽...!"



상대가 그녀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온 몸에 전율하는 소름을 뒤로하고,



마치 몸이 행동을 기억하는 것 마냥 레이첼을 인지하자, 나도 모르게 손이 옆구리로 향한다.




"큭, 하필 여기서...!"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





"...!"


"?!"


하지만 이내 우리 둘 다 이상함을 느끼고 몸이 경직되고 만다.



평소였다면 바로 맞서기 위한 검을 휴대하고 다녔겠지만은


지금은 휴가를 나왔다는걸 순간 잊고 말았었다.



손을 대도 허전한 감각에 마른 침을 삼켜버리고



"으윽..."



굳이 무기가 아니더라도 그녀와 싸우면 안되는 또 다른 이유에 골치가 아파져 온다.



그야 여긴 중립국의 영토,



그런데 이곳에서 제국과 왕국의 대표들이 난동을 벌였다는 사실이 퍼지게 된다면은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해 버린다.



그래서 움직여지기가 마냥 불편한 상황인데.



"우우웃...."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건지 똑같은 비무장으로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은 행동에는 망설임이 엿 보였다.




"후.."


"흥.."



결국 째릿한 눈빛만 교환하다,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듯 동시에 자세를 풀어버린다.




"내가 왕국군에게 도움을 받다니... 가문의 수치야."



그런데 레이첼이 먼저 내게 시비조로 야유를 퍼부어온다.



"누가 할 소리, 제국에게 도움을 줬다는 사실에 치가 떨리는군!"



그래서 나도 심술이 나버리는 바람에 돌아오는 야유를 야유로 맞받아쳤는데.



"흥! 그러다가 혀나 깨물고 죽어버려라!"


"하아~?! 그래도 누구 덕분에 위기에 벗어났는데!"


"너희 따위에게 도움을 받을 바엔 그냥 절벽 끝에 계속 내몰려 있겠어!"



"어쭈?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내 진흙탕 싸움만큼이나 추한 말싸움이 이어져나갔다.


"큭..!"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어린 아이들의 말싸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유치한 짓인가.



"그래? 그럼 내가 샀으니 내놔!"


"그래! 가져가라! 이딴거...!"



그러던와중 내 말에 더 흥분한듯한 레이첼이 방금 산 음료를 내게 던지려고 하는 순간 ㅡ



"......."



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자마자 마치 정지된듯 멈춰버리고 만다.



"으웃....!"


그리곤 시선만 위로 향한체 음료잔을 보는데.



초코 아이스크림 위에 올려진 휘핑 크림과 여러 과일 토핑들,


또 시럽 범벅과 더불어 과자들도 여럿 장식되어있는 파르폐를 가만히 올려다보곤



"이.. 이거.... 한정판인데....."



이내 분노와 이성 사이에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


솔직히 그 모습을 보고 한편으론 이질감을 느껴버렸는데.



전장에서 조차 항상 냉철한 모습으로 내게 검을 내지르는 그녀가



고작 초코 파르페 하나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너무나 매칭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소녀다운 사람이었나..?'



그래서 한편으론 내가 아는 레이첼이 맞는가 의심도 들었고



"그냥 먹어... 내가 물러날게.."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마지 못해 취식을 허락한다.



"뭐..?"


"지.. 진짜?"




"빨리 먹어.. 마음 바뀌기 전에."



그세 기분이 전환되어, 약해 빠져보이는 목소리로 내게 물어오길레 빨리 독촉하는데.



"음.. 그럼.. 거부는 안하고..."




"암..."



이내 크게 떠서 자신의 입 안에 파르페를 털어버린다.



"....!"


그 순간 별 처럼 반짝거리는 눈빛



마치 호기심 가득한 소녀 빛나는 보석을 처음 본듯한 감상이었다.





'우와....'



너무나도 이질적인 모습에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을 때 쯤



"으읍?!"



초코의 맛을 음미하는 것도 잠시, 레이첼은 내 안색을 살피더니 급격하게 내가 알던 몰골로 돌아온다.



"으읏..."


나름 부끄러웠던 걸까, 두 뺨이 붉으스름해지고



"......"



이내 말 없이 성큼성큼 다가와,


"자, 먹어."


이번엔 작게 뜬 스푼을 내게 내밀었다.



"뭐?"


"그... 그래도 니 돈으로 산거니까.."


"또..... 내가 빚지고 사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렇다곤 하는데....


아무리 내가 선의를 베풀었어도, 갚는다는 명목이라기엔



한 입으론 도저히 수지타산이 안 맞지 않나?




"..."


허나 그런 딴지는 목구멍에 일단 쑤셔 박으며 주는대로 한 입 받아먹는다.


"...?!"


"야!!"


그런데 그녀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는데도 내게 고함을 질러대고




"그.. 스푼이..!"


그 이유는 그녀가 '한 입' 먹었던 스푼에 있었다.




"?!"


나도 뒷 늦게나마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푼 째로 먹으면 어떡해!"


"이 색마!"


그녀의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에 대응하기엔 벅차올랐다.



"웁..!"


복부가 가격 당하고, 입에 머금었던 차가운 아이스를 도로 내뱉을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고,


"ㄴ.. 나... 간접이지만은.. ㅊ.. 처음이었는데...!"



... 그냥 내뱉을걸 그랬나?



"아 몰라!!"


"나.. 가.. 갈거니까..!"


"다신 마주치지말자고!"



허나 그런 갈등 속에 방황하던 순간, 그녀는 화끈해진 얼굴을 가리며 급하게 골목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후..."



그녀를 만나는건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하늘이 두 쪽나도 공존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숙명의 상대를 이리도 허무하게 대면하게 될 줄은.




하지만 그것보다도 충격이었던건 전장에거 보지 못했던 그녀의 여러 이면이었다.






"좀 쉬면서 나중에 산책이라도 가야지."



저녁 노을로 인해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든 시간이었다.



날씨가 점점 서늘해질 무렵, 여관으로 돌아왔는데...




"어?!"



"...!"



어째서인지 또 다시 레이첼을 마주하게 되었다.





"엘버... 아니 그보다도... 왜 여기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허나 그것보다도 나를 경악스럽게 한 것은...



"그야 당연히 내가 묵기로한 방으로 온건데."


"그건 나 역시 ㅡ"



바로 각자의 방이라고 주장하는 곳이 ㅡ



"허헙?!"


"아 설마.."



서로의 옆방이라는 것이다.





"너..!! 솔직히 말해! 나를 스토킹한거지?!"


"웃기는 소리하네! 내가 음침한 제국군이나 할 짓을 왜해?!"



"뭐어? 제국군?!!"


"그래!"



제발 얽히지 않았으면 하는 상대와 다시 만나버리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서로 으르렁되었다.



사실상 무기만 없지, 전장에서 느끼던 살벌함이 여기서도 느껴졌고





"윽..! 정말 얼마만의 휴식인데 완전 초 쳤네!"


"하아?! 내가 할 말이다!"





쿵 ㅡ!


쿵!!



결국 끝까지 서로를 모함하다, 동시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과격히 문을 닫아버린다.






"아하... 진짜 어지럽네."



뒷 통수를 긁적거리며 침대에 몸을 날린다.



하필 호적수를 도와준 것도 모자라, 바로 옆 방에서 휴식이라니.


서로의 목숨을 갈구하는 사이인데, 이러다가 나를 암살하려 몰래 잠입하는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마음 놓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인데...



"하..."


애초에 분명 휴양을 목적으로 온 것인데 오히려 피곤한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는 걸까.



생각 할 수록 짜증만이 솟구쳤다.



"......."



더 이상 머리만 굴러봤자, 현기증이 날려한다.



그래서 차라리 머릿 속을 쉬어주기 위해서 잠시 생각을 정지하고 눈을 감는다.






"......"



그런데 왠지 모를 피로감과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욕구에



"..."


서서히 의식이 심연 속에 가라 앉기 시작하더니,




"........"


이내 아까의 걱정과는 다르게, 저항 없이 잠들고 만다.







◇◇◇




눈을 떴을 땐 어둑한 밤이었다.



달 빛만이 은은하게 실내를 비추는 실내에




"....."



명료해진 의식을 이끌고 발코니를 향한다.




덜컥



어차피 다시 잠들기 글른거 밤 공기나 좀 마실까 하고 밖으로 나가는데.



"응?"



"뭐야 또.."



이 정도면 그녀와 나 사이에 이상한 실이라도 이어져 있는게 아닐까.



밖으로 나가자 레이첼도 자기 방 발코니에 나와있었다.




"...."



허나 야밤이라 그런가 그 천하의 레이첼도 이젠 화낼 기운도 없어 보였다.




"그냥.. 바람 좀 쐴까 해서."


"그러냐... 내 상관은 아니지만."


확실히 낮과 비교하면 온순해진 말투,




"...."


"......"


그대로 끊겨진 대화에 그녀도 나도 멍하니 밤 하늘을 올려다 보기 시작했다.




밝은 달을 중심으로 빼곡히 채워져있는 수 많은 별들.



이것이 새벽의 절경이었다.




"....."



허나 그런 감상도 잠시



잠깐 레이첼에게 눈길을 돌리는데.


"우웃...."



그녀는 어째서인지 서글퍼 보였다.




전장의 냉혈함도



낮에 마주친 분노와 적의도 사라진 체



마치 그리운 허상을 보듯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있는 것 처럼.


평소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답지 않는 울적함이 자리 잡아 있었다.




"... 이봐."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슨 슬픈 생각을 그리 골똘이 하는거야."



그 이유를 물어보게 되었다.



내가 알고있던 모습이 아닌 이질적인 태도에 엄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내가 왜 적한테 약점이 될 수 있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레이첼은 매섭게 거절했고.




역시 안되는걸까?


"그러냐, 그럼 난 이만..."



그래서 괜한 행동은 관두고 이제 그만 돌아라려던 찰나 ㅡ




"넌... 어떻게 생각해?"


그녀는 선듯 주어 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뭐?"



"여.. 여자가 검을 들고 최전선에 싸우는게.."



"어떤 것 같냐고."



하지만 이내 자신의 고민거리를 솔직히 털어놓으며 고개를 떨궈버리는데.



"나, 사실 생각만큼 좋은 환경은 아니었어."



"물론 권력 높은 가문인지라, 모든걸 누리고... 물론 그만큼의 실력이 있는 것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원수의 자리까지 올랐지."






"하지만 있지."


"여자는 검의 길을 걸어선 안돼..."


"그게 내 어렸을 적 부터 들어온 말이었어."



나는 그녀의 사정을 묵묵히 들어주기 시작했다.




"가족은 내가 가고자하는 길을 항상 반대했어."


"여자는 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항상 내 목적을 끌어내릴려 했지."






"허나 그렇기에 오히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검을 잡고 아득바득 올라가서, 가족의 생각이 잘 못 되었다는걸 알려주겠다고."



"또 그렇게 된다면 모두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하며 노력했어."



그 말의 마침표를 찍고 레이첼은 잠시 침묵하였다.



"으읏...."


그리고 이내 붉어지는 눈시울



촉촉해져가는 뺨으로



"하.. 하지만.. 으웃.. 젠장....."


"마.. 막상 오.. 올라오고나니."


"ㄷ.. 더 많은 지.. 질타를 받았어."



슬픔 속에 곁들여진 분함과 억울함에 목소리는 갈라져만 갔다.



"괴물이라느니.... 이 시대에 태어난 모독이라느니.."


"남자였다면 천하 통일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등.."


"뒤에서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며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주고.."


"이 전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더라고...."



얼굴은 일그러지고



"크흑..."



댐에서 물이 흘러넘치듯 눈 밑으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런 내가 한심하지?"


"굳이 반대하는 길을 어거지로 걸은 내가... 어리석기만 하지?"



그녀는 스스로를 자학하다가도



"하핫.. 나... 적한테 무슨 말이래..."


"내 아픔을 다 말해버리고.... 꼴 사납게 울기만하고.."



이내 이성을 되찾은듯한 말을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린다.




"알아, 내가 이상하게 보일거라는걸."


"크흑..... 내가 괜한 말을 ㅡ"



"아니, 대단한데?"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




"뭐..?"


그 순간 분위기엔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대단하다고."


"단순 격려나 위로가 아닌 순수한 의미로서."



그녀와 나 사이에선 절대 양립 할 수 없을거라 확신했던 애듯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거.. 거짓말.."


"아냐, 진짜야. 니 말 처럼 내가 왜 적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겠어?"


"그만큼 난 사람 대 사람으로서 너를 존중하겠다는 거야."



"어... 째서.."



그녀는 처음으로 내게 상냥한 목소리로 이유를 물어본다.



"그야 당연하잖아?"


솔직히 나도 적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찾자면 애증 같은 느낌이려나?


천하의 웬수도 곁에 두다 보면 정이 든다는 말이 있듯.


비록 그녀가 좋다고 할 순 없으나


그래도 라이벌이자 호적수로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알게되니 내버려 둘 수가 없었기에


"넌 악 조건 속에서도 너의 꿈을 쫒아 당당히 이루었어."


나는 심호한 마음으로 본심을 털어놓았다.




"편견을 깨고 당당히 너가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으며,"


"결국엔 그 위치의 최정상까지 왔잖아?"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을 몰랐는데..."


"솔직히 존경하고 있어."





"저.. 정말..?"


내가 말이 끝나자 레이첼은 눈을 부릅뜬다.



그 눈빛엔 여러 감정이 스며들어 있었는데.



희망 불길함 걱정




기대 후회 기쁨




방금 내가 했던 말을 긍정하길 바라지만


동시에 적군이기에 최대한 기대를 져버릴려는 모순 에 빠져있었다.





"응."


그래도 난 단호히 답해주었다.



비록 서로의 목숨을 빼았아야하는 숙적이지만



진심으로 힘들어하는 이를 무시하기가 어려워서,



"너와 지금껏 수 없이 겨루며 느낀 내 진실한 소견이야."



있는 그대로, 그리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본심을 전했다.



"으읏... 뭔가 당황스럽네."


그러자 레이첼은 어쩔줄 몰라하는 얼굴로 내 눈을 이리저리 피하고


"이 전만 해도 서로에게 검을 겨루던 사이에게 위로를 받다니.."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나지막히 말한다.



그 목소리엔 여전히 슬픔이 가시지 않아, 울적함이 서려 있었지만은


"그래도 뭐, 나쁘지 않네.."


그래도 입꼬리만큼은 수줍게 올라가 있었다.



"하핫... 무.. 뭔가 세삼스레 부끄러워지네!"



모든 감정을 털어놓고 뒷 늦은 부끄러움이 찾아왔는지.


"... 하하하!"


그녀는 부자연스러운 웃음 소리와 함께 최대한 미소를 보이려고 했다.



조금 어색함이 찾아오긴했지만 분위기 훈훈함으로 환기 되었고


"그래도.. 신세를 졌어!"


사뭇 다르지만 내가 알던 레이첼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감으로 가득찬 당당한 웃음기, 물러서지 않는 자신감.


다행이라 해야 할지.


나와 몆 번이고 부딪친 숙명의 라이벌로 돌아와있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지?"


"고.. 고마워..!"



그리고 제국의 붉은 사자로 돌아오자마자 내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데.



"으읏..."


남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익숙치 않은지 뺨은 한껏 붉어져 있었다. 



"나.. 난.. 그럼 이만 들어가볼게!"



이내 밤 바람에 휘날리는 붉은 머릿결을 정돈하며 먼저 자리를 뜨게 된다.



"... 나도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그리고 나 역시 실내로 몸을 옮기며 


"하아, 나도 모르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복잡한 심정과 함께 다시금 잠에 들었다.





◇◇◇





"... 여, 오늘 어울려 줄 수 있을까?"



아침이 밝자 들려오는 잦은 노크 소리에



"레이첼?"



댓바람부터 누구인가 싶어 나가보자, 그곳엔 꾸미는데에 힘을 잔뜩 준듯한 레이첼이 서있었다.



"어.. 어제의 일에 작게나마 보상을 하고 싶었다.


아르답다 못해 화려한 원피스에 꽃 장식까지 올려진 모자, 그리고 코를 살살 건드리는 짙은 향수 냄새.



"무.. 물론..!! 너가 좋아서보다는... 그.. 그래..! 내가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그리고 횡설수설 말하는 어조에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 알았어."


적의라던가 수상한 꿍꿍이는 보이지 않았기에 일단 협조하기로 했다.


"그래?! 그.. 그럼.. 따라와!"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예상 못했다.





분명 서로의 목숨을 노려야 될 상대와


"내가 좋은 곳을 잔뜩 알아!"


최고의 휴가를 보낼거라곤






"어때?맛있지?!"


"으음... 그렇긴한데, 막 내 입맛은 아니네."


그냐의 주도하에 여러 맛집을 돌아다닌 다던가.



"어때? 바다가 태양을 반쯤 삼킨 노을은?"


"오, 절경인데?"


"이 곳의 매력중 하나라구!"


도시의 관광 명소를 둘러보고,


"오~ 엘버트! 이거 예쁘다!"


"그렇네."


기념품 가게에 들러, 물건을 구경하고 하나씩 간직하는 등.


추억 거리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것들을 여럿 쌓아올렸다.





그렇게 빠른 시간이 흘러 ㅡ


"흠~ 뭔가 아쉽네."


우리 둘다 복귀를 앞두고 있는 마지막 밤 이었다.



"뭐가?"


"그야~ 돌아가면 또 서로에게 검을 겨누는 사이로 돌아갈거 아니야?"


"그게 아쉽단 말이지."


"또 이렇게 가까워져서는, 옛날 처럼 적응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첫 날의 밤 처럼, 각자의 발코니에서 아마 마지막일 수도 있는 대화를 이어나간다.




"나도 그런 생각이야."


솔직히 레이첼의 말에 어느정도 동의한다




그야 친한 친구 마냥 함께 실컷 놀아놓곤


내일이 되면 없었던 일 마냥 다시 매서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는게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그래도 엘버트 너와 친해진 것에 후회는 없어, 지난 2주간 자인한 현실을 잊으며 미련 없이 살 수 있었으니까."


"또 무엇보다도...."



"........."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중간에 끊어버리곤.


"으...."


괜스레 얼굴에 홍조를 들이며 나를 뻔히 쳐다 봤는데.



"왜?"


".... 아니야, 흥..'"


내가 순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어째서인지 입술을 뾰루퉁하게 내민다.


"하아~"


그러곤 아쉬움과 여운 섞인 한 숨을 내쉬며 허공을 봐라보다.



"너가 그리도 다정한 남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 아.. 아마... 적군이 아니었다면.. 고... 고백 해버렸을걸?"


웃으겟 소리로 그런 말을 내뱉는데.



"나도야."


나 역시 농담으로 그녀의 의견을 받아친다.



"저... 정말?!"


그러자 순간 레이첼은 그 어느때보다도 들뜬 목소리로 물어오는데.



"그래, 약혼자만 없었다면."





그것도 잠시...



"에...?"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내 말 한 마디에 ㅡ



"약혼.. 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고 말았다.




"야.. 약혼자라니.. ㅇ... 엘... 엘버트... 결혼한 사람이었어?"





"응? 아니, 아직 확정된건 아니지만... 최근 가문에서 맞선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그리고 만약... 상대가 정해진다면 최전선에서 물러나게 될 거야."



방금까지만 해도 적장의 사이치곤 화목했는데.




"그.. 그럼... 전장에서 조차 너를 다시 못 볼수도 있다는거야..?"


"당장은 아니겠지만... 뭐.."




이젠 다시 비장함이 흐르기 시작했다.



"레이첼?"



"......"



갑작스레 내리앉은 엄중함에 급히 이름을 불러보지만 생각에 빠져있는 건지 아니면 정신을 못 차린건지, 그녀는 침묵을 택 했고...




"미안.. 나 들어가볼게."


"아.. 안녕..."



이내 작별의 말을 건내더니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어? 잠깐만 레이첼?!"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잡아보려고도 했지만



드르륵, 탁 ㅡ!



말의 마침표을 찍기도 전에 문이 닫혀버리고 말았다.




"...."


어떻게 된 걸까.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어안이 벙벙해진다.






일단 내일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손님은 꼭두 새벽에 이미 방을 비우셨습니다."


"네..?"



그녀는 소리 소문도 없이 먼저 제국으로 떠나버렸으니...



"....."



어젯밤 발코니에서 보았던 서글픈 얼굴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엘버트




참으로 끈질긴 남자



처음엔 그렇게 여겼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실패한적 없는 계획을 처음으로 틀어막은 사내.




눈엣 가시 같은 인물에 존재 자체를 까다롭게 여겼었다.




그래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목적에 차질이 생기는건 골치 아프지만



드디어 만난 적수에 나름의 희열도 느껴져셔,


마냥 혐오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두루뭉술한 감정을 품고 있던 어느날...



'현실의 아픔'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중립국으로 휴양을 다녀오기로 했었다.



원래부터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주기적으로 자리를 비우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귀를 가렵게 하는 악소문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엘버트!?!?"




누가 알았겠는가.



그곳에서 영원한 라이벌과 마주치게 될 줄은...



허나 그것보다 더 놀란 것은



"레이첼?!"



물론 그는 몰랐겠지만은



항상 얼굴을 마주보고 검을 휘둘렀던 상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뭘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은...



고맙기도 하면서



평소 으르렁 거리던 사이였다보니 분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따지고보면...




솔직히 기뻤다.






설령 몰랐다 하더라도 곤란한 내게 손을 뻗어줬다는게.





애증이었던 감정이 서서히 특별한 무언가로 바뀌고 있다는걸 느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솔직히 존경하고 있어.'




유독 별들이 빛 났던 밤,


그에게 진심어린 격려를 듣고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게 되었다.



아군에게... 심지어는 가족들 조차 내게 등을 돌렸는데.



다름 아닌 적장인 그가...


덩달아 야유를 퍼부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가 ㅡ


처음으로 내 존재를 긍정해 주었다.


틀렸다고 생각한 내 길을 응원해 주었다는 것이다.






분명 적 인데...


죽여도 모자랄판인 내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특별한 마음이 겉잡을 수 없게 커지게 되었고



그 감정은 2주간의 휴가를 통해 점점 뚜렷하게 인지 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비록 모든게 달라, 잘 맞는게 하나 없어도.


싫은듯 한 발 물러나며 서로를 배려하는 그와의 시간이


마냥 좋기만하고 과거의 아픔을 완전히 외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문뜩 그가 편하다고 느끼며



나아가서는.. 다른 무언가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하지만 2주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짧았고


당연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걸 다 하기엔 턱 없었다.







그래도... 



이 마음은 충분히 확인했고,


또 언제까지고 간직할 터라.


나름 만족하기로 했다.



단순한 적대 관계에서 발전된 사이로서



진영은 달라도 앞으로도 만날 수 있으니 시간은 많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의 입에서 약혼자라는 말이 나오며 산산조각 나버리고 만다.




"약.. 혼..?"



처음 그 단어가 뇌리를 스쳤을 때, 알 수 없는 배신감과 상실감이 심장을 강타했다.



가슴이 뭉클한 것이 찌그러질 것만 같았다.


내 주변에게 쓴 소리를 들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그만 침대에 숨어들어갔다.


"으읏..."


하지만 그렇게 현실을 도피해도 혼자서 침대에 뒤척이며



여러 좋지 못한 생각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엘버트가 다른 여자와 결혼 한다니...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를 뺏겨?


다신 못 만나?


그런 생각이 머릿 속이 멤돌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최악의 상상마저 해버리고 말았다.



드디어 마음이 열어, 겨우겨우 이룰 수 있었던 지난 2주간의 추억들,



그 자리엔 내가 아닌 다른 여자의 모습을 투영해버렸다.



다른 여자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한 테이블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고


오붓히 길거리를 걷다가...



나아가선 내가 해보지 못한 것들을 독점하는 상상을..



"....!"


치가 떨린다.



분함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싫은 기분에 온 몸에 소름이 퍼져나간다.



세상을 잃은 것만 같은 공허함.




질투가 난다.



인정 할 수 없다.



아닌 인정해선 안된다.




엘버트를 어떻게든 가져야한다는 욕망이 거친 파도 처럼 넝실거린다.





"......."



그리고.. 나는 머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에게 느낀 이 특별한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사랑



사실은 그를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게 너무 아쉽고


다른 년들에게 죽어도 넘기기 싫었던 것이었다.




아아....


그렇구나.



나는 어느센가 부터 그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전쟁의 악연이 아닌,


한 명의 남자로서 좋아하고 있었구나.




만약 그렇다면...



"이대로는 안돼..."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






그로부터 한 달.



당연하게도 나는 전선에 복귀했다.




하지만...




"단장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아무것도..."



어째서인지 레이첼과 재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전장으로 향한다면 그녀와 만날 수 있을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지만은.




실상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날 밤의 영향인건가?




그런 찜찜한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는데.



"도전장?"



어느날 의문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오늘 밤, 나와 최후의 대결을 하자. 레시아르 숲에서 기다릴게


ㅡ 붉은 사자'




붉은 사자


그 단어를 보자마자 이 글을 쓴 사람이 레이첼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고







철컥 ㅡ



마치 홀린듯 찾아간 그 장소엔...



"안녕? 오랜만이야."



정말로 그녀와 만날 수 있었다.


"레이첼, 그 동안 안 보이던데."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준비 할게 많았거든."



"그나저나, 약혼 이야기는 어떻게 되가?"


"뭐, 아직도 확실한건 없지. 하지만 아마 다음 달 내로 정해 질 것 같아."



우린 여러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그래? 그럼 최적의 타이밍이네."




척..!




자연스레 검집에 손을 대며 엄숙함을 불러오는데.


"최적?"


"응..."


그녀도 나도,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이젠 검도 갑옷도 착용한 완전무장의 상태였다.


그야말로 결전의 시간.


"최전선에서 물러나면 다시 못 본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 전에 우리의 관계를 확실히 끝내야지."




뭔가 그녀 다운 발상에 쓴 웃음이 튀어나온다.


"하핫, 그렇네."





"이 싸움에서 너가 이긴다면 더 이상 왕국을 침범하는 일은 그만둘게."


"원수의 권한으로 어떻게든 너의 나라에 더 이상 해를 입히지 않도록 할게."



싸움이 성사되고, 그녀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말해오는데.



"하지만 만약.. 내가 이긴다면 너의 팔 다리를 거둬가겠어."



오랜 악연 치곤 생각보다 평범한 조건에 안심하려던 그 순간 ㅡ





"... 그리고 내 전용 성노예가 되어, 평생동안 건강한 아기씨를 제공해야 할 거야."



순간 귀를 의심하게 되는 한 마디.




"뭐? 잠깐 ㅡ"




팅 ㅡㅡ!!





허나 무어라 의문을 토하기도 전에 목덜미에 칼이 들이밀어진다.




"답지 않게 방심한 거야?"



가까스로 방어엔 성공했지만..


"....?!"


기습을 고려해도 저릿한 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라이벌로서 마지막으로 충고하자면... 부디 최선을 다하길 바래."



허나 당혹스러운 나와는 다르게 레이첼은 여유로운 미소와 색기가 섞인 시선으로 



"안 그러면 돌이킬 수 없게 될 테니까."





팅!!



"으윽?!!"



점점 감당 할 수 없는 일격을 가해온다.
















내가 써본 사료중에서


아마 제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듯


막 이렇다할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이런저런 전개들 다 써보고


그나마 괜찮은게 이거다 싶어서 올려봤음


근데 단편에 다 담으려니 생각보다 빡빡해서 무진장 길어져버렸네...


다음편은 슈뢰딩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