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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들어주는 은여우 님께서 (完)

 

 

 


 

빌딩이 무너져 내린다.

 

호은이가 팔을 휘두르자, 어마어마한 폭풍과 함께 땅이 갈라지며 흔들렸다.

 

“나한테서 아무것도 빼앗지 마!!”


신이 뒤로 밀려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격에 흔적도 남지 않게 될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조금 살갗이 까졌을 뿐이었다.

 

“여길 만들어내느라 힘을 꽤 썼나보군. 아니면……내 기대보다 네가 약하던가.”

 

그가 뱀처럼 생긴 검- 사도를 쥐고 자세를 잡았다.

 

“사도(巳刀), 능구렁이.”

 

검이 늘어났다. 눈으로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길어진 검이 호은이의 어깨를 꿰뚫었다.

 

“거, 검이 늘어나……!?”


“놀라긴 조금 이른데!”


그 상태로 검이 더욱 늘어났다.

 

마치 뱀처럼, 거대한 능구렁이처럼 호은이의 몸을 칭칭 감은 후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살이 갈라지고, 피가 튄다. 비명이 울려 퍼진다.

 

“끄아아아! 아파! 아파아아아!!”


“호은아!”


“나서지 마. 끼어들면 너도 죽인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건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눈. 사람이 사람을 볼 때의 눈빛이라곤 할 수 없는 차가운 눈빛.

 

“용서 못 해, 용서하지 않아. 아무것도!”

 

호은이가 몸을 크게 비틀었다. 그 힘에 그녀를 감싸고 있던 검이 부서졌다.

 

“이거 참, 그냥 당해주진 않는 건가?”

 

“죽어버려!!”


“네 말은 내게 통하지 않아.”


그녀가 사라졌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빠르게, 그녀가 신에게 날아들어 발차기를 날렸다.

 

“사도, 실뱀.”


길어진 칼날이 그의 몸을 감쌌다. 

 

“카악!?”


호은이가 순식간에 몇 번이나 베였다. 그녀의 팔이, 다리가 허공에 흩날렸다.

 

“강하지만 싸움의 경험이 부족하군. 힘만 믿고 싸우는 아이 같아.”


“닥쳐, 그 아가리 다물어!”


“날 죽이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이건 네 본질에 대한 문제야. 알고 있지?”


“아니야! 나는, 행복을……곡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야…….”

“불가능해. 너는 불꽃이야, 무언가를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다가가면 태워버리지.

 

인류에게 있어 너란 존재는 위험천만한 시한폭탄에 불과해.”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호은이의 팔다리가 재생됐다. 그녀가 뒤로 멀찍이 떨어지더니, 짐승처럼 자세를 잡았다.

 

“뭘 하려고? 야, 이제 그만 포기하면 안 돼? 나 슬슬 피곤하거든.”


그녀가 또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엔 달려들지도, 공격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의 옆에 있던 빌딩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배우는 속도가 빠르군. 이거야 원, 시간을 너무 끌면 귀찮겠는데.”


“신 씨!”


“사도, 석구렁이.”

 

검 그 자체가 거대해졌다. 거의 빌딩의 절반 크기였다.

 

“부탁이다, 그냥 포기해.”


그가 검을 크게 휘둘러 빌딩을 양단했다.

 

하지만 동시에- 호은이가 어디선가 나타나 그의 등 뒤를 노렸다.

 

“이런.”


서걱- 호은이의 발톱이, 신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뒈져버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호은이가 그의 빠져나온 창자를 붙잡은 후, 빙글빙글 돌렸다.

 

“크아아아아아아!!”


짐승, 아니 그 이하.

 

마치 악마처럼 울부짖으며 호은이가 그의 상반신을 이리저리 휘두르다 바닥에 처박았다.

 

“그만해! 이제 멈춰!”


“곡이를, 곡이만큼은 빼앗기지 않을 거야. 그 아이는 내 거야!!”


“하여간 곱게 말하면 바로 알아듣는 놈이 없다니까…….”

 

쾅, 콰앙, 으지지직-!

 

호은이가 그를 해체했다. 말 그래도, 손톱으로 온 몸을 쥐어뜯고 찢어발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이어했다.

 

“그만해, 그만. 이래봤자 딱히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

“뭐……?”


“구천십지의 귀마왕은 그 어떤 무기도, 힘도 통하지 않아. 나야 피가 옅어졌으니 다칠 수도

 

있고 아프기도 하지만……죽진 않거든. 불사신이라는 것도 꽤 편리해.”

 

“그럼 죽을 때까지 죽여줄게!!”


“아니. 그랬다간 우리 둘 다 늙어죽을 때까지 이래야 할 거야.”


하반신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재빠르게 달려가 호은이의 등 뒤를 걷어찼다.

 

“크윽!?”


“이제 만족해? 우리 그만하고 대화 좀 할까?”


“닥쳐!!”


호은이가 방금 전처럼,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달리며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서걱, 스걱- 그의 살점이 뚝뚝 끊어지며 온 사방에 피가 튀었다.

 

그럼에도, 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냥 서 있었다.

 

“왜 안 죽는 거야! 왜!?”


“방금 설명했잖아. 너, 사람이 말하면 안 듣는 타입이지?”


……상대가 안 된다.

 

싸움이라곤 어릴 적에 싸운 게 고작인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컸다.

 

호은이가 필사적으로 덤비지만 그에게 있어선 그건 그냥 ‘귀찮은 일’에 불과했다.

 

“죽어! 제발 좀 죽어버리란 말이야!”


“아……좋아. 내가 뭐라 말해도 안 듣겠다 이거지? 좋아. 알겠어, 나도 진지하게 해줄게.”


“뭐?”


어디선가 날아온 번개가 그의 몸을 강타했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한 우리는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오황갑 전개. 지금부터 넌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못 낸다.”


호은이가 그를 베었다. 그러나 그가 입고 있는 기묘한 색의 갑옷이 공격을 튕겨냈다.

 

“사도- 살모사.”


칼날이 발사됐다. 그렇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길어져 호은이의 배를 꿰뚫었다.

 

“!”


“어차피 나도 널 못 죽이지만, 그래도 좀 아플 거다.”


그대로 검이 쭉 길어지며 호은이를 빌딩 벽에 처박았다.

 

“이까짓 거, 나한텐 아무런……크허억……!?”

 

“사도의 독이다. 슬슬 약발이 들기 시작했지?”


그가 칼날을 타고 달려와, 그 기세로 호은이를 걷어차 빌딩을 부수고 반대편으로 날려버렸다.

 

“사도, 칠점사!”

 

검이 분열했다. 하나가 두 개로, 두 개는 곧 네 개가 됐다. 

 

순식간에 눈으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검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불사를 상대하는 법을 가르쳐주마.”


“크아아아아악!!”


호은이가 반격했다. 그러나 그가 떨어진 검을 주워 호은이의 왼팔을 날려버렸다.

 

“으학, 크아아아악!”


“이젠 말도 못 하냐? 짐승이 따로 없구먼.”


다시 반격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신이 더 빨랐다.

 

팔, 다리. 팔, 다리, 목, 어깨- 재생할 때마다 신이 그 부위에 검을 박아 넣었다.

 

“검이 박힌 부위는 재생할 수 없을 거다, 은여우.”


그 말대로. 어느새 수 개의 검이 박힌 호은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잘려나간 팔다리는 다시 돋아나지만, 검이 박힌 상태에선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이제 포기할 생각이 들어?”


“……큭.”


크하, 으하하, 아하하하하하하-!

 

호은이가 웃었다. 그녀가 억지로 팔을 꺾어 자신의 몸에 박힌 검을 빼냈다.

 

“포기? 뭘 포기해? 곡이를 포기하라고? 너 말이야, 하나만 물어볼게. 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포기할 수 있어? 삶 그 자체의 의미를? 그럴 순 없어. 이 사명은 내 목숨보다

 

소중해……네가 날 몇 번을 죽여도 소용없어. 나는 소원을 이뤄줄 거야. 행복하게 만들 거야!”

 

“……그래……이해한다. 그걸 포기한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는 나도 잘 알 거든.”

 

“우릴 보내줘. 나는 곡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걸로 충분해.”


“아니. 그건 안 돼. 왜냐하면, 몇 번이나 말했듯 너는 그럴 수 없을 테니까.”


격돌한다.

 

목이 잘리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지고, 피가 흩날린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호은이는 멈추지 않고 공격했다. 발톱을 휘두르고,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공격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 싸웠다.

 

“그만…….”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만해……그만! 부탁이니까 이제 그만해!!”

 

나의 외침에, 호은이의 팔이 멈췄다.

 

“곡아, 조금만……기다려……내가, 이 녀석을 쓰러트릴게……그리고 행복해지자……응?”


“호은아, 너도 알고 있잖아……이제 더 이상…….”


“아니야. 아냐, 그럴 리 없어. 이길 수 없는 상대 따윈 없어. 나는 뭐든지 해줄 수 있어!”


“나는 네가 사랑할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아냐.”


“아냐. 너야말로! 곡이 너야말로 내 모든 것이야! 내 소원 그 자체라고!!”


오로지 홀로 살아온 고독한 여우의 소원.

 

그저, 누군가가 곁에 남아주길 바랬던 그 작은 소망.

 

“곡이는 죽었어. 옛날의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고, 지금의 난 그저 그 잔해에 불과해.”


“……아니야…….”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는 거야.”

“그렇지 않아. 곡아,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왜 나를 아프게 하는 거야? 왜!?”


“네가 사랑한 남자의 마음조차 알아주지 못하는 거냐.”


신이 말했다. 그가 검을 거두고 칼집에 도로 넣었다.

 

“나는 널 죽일 수 없다. 너도 날 죽일 수 없어. 이걸 끝내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그가 나를 보았다. 호은이를 죽일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오직 나 자신뿐.

 

“선택권을 줄게. 첫째, 네가 지금 내 손에 죽는다. 그러면 이 녀석은 또 네가 환생할 때까지 

 

봉인당해 어마어마한 시간을 낭비하겠지. 저번처럼 말이야.”

 

“…….”


그럴 순 없다. 호은이는 이미 400년이나 기다렸다.

 

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하는 건 너무나도 잔인하다.

 

“둘째……네 손으로 끝낸다. 이 녀석은 어쨌든 인간들 속에서 살아갈 수 없어. 그만 보내줘.”


“곡아……있지, 나 더 열심히 할게……이번에야말로 널 행복하게 해줄게…….”


호은이가 내게 기어왔다. 그리고 내 다리를 붙잡았다.

 

마치 어디로도 가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아이처럼.

 

“호은아,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날 버리지 마…….”

 

“우선……나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정말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받았어.”


나를 낳아준 부모조차 사랑해주지 않은 날 처음으로 사랑해 준 사람.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분명- 사랑을 느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다.

 

“네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해줘서 기뻤어.”


“…….”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독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도- 그리고 앞으로도 날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이든 감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나는 호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있지, 내 소원을 들어줄래?”


“뭐든지……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면, 말해도 돼…….”


그녀는 소원을 들어준다. 어떤 것이든, 바라는 모든 걸 이뤄준다.

 

하지만 그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소원을 진정으로 이룬 적은 없었다.

 

“신 씨, 방금 전의 그 제안 말인데요. 사실 3번째 선택지가 있습니다.”


“네가 내놓은 답이냐?”


“네. 호은아, 가능하다면……‘인간’이 될 수 있어?”

 

그들이 호은이를 노리는 이유는 단 하나, 그 힘이 너무나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힘을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노릴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아하, 과연……그 생각은 못 했네. 확실히 힘이 없어진다면 우리도 노릴 필요가 없지.”

 

“그러면 더 이상 네 소원을 이뤄줄 수 없어. 아무것도! 난 아무 쓸모도 없는-”

“그렇지 않아. 너는 이미 내 소원을 이뤄줬어.”


내 진정한 소원.

 

그건 세상의 왕이 되는 것도,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것도, 세상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이 망하고,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일 따윈 진정으로 바란 적이 없었다.

 

그저 사랑받고 싶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진정으로 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니 이번엔 네 소원을, 내가 이뤄줄게.”

“……!”

 

“너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했지. 그럼 그렇게 해,”


“하지만, 나는 아직 널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했어……!”


“이제 난 행복해. 사랑받고, 사랑했어. 지금껏 받지 못한 사랑을 전부 너에게 받았어.”

 

그러니 이번엔, 내가 그 사랑을 돌려줄 차례다.

 

“인간이 되면……지금의 난 사라지고, 어디선가 환생해……아무 힘도 없는 인간으로……

 

또 너와 헤어지게 돼. 게다가 나는 더 이상 널 기억할 수 없게 돼…….”

 

“내가 널 기억할게. 그리고 이번에도 널 찾아낼게.”


“또 나를 기다리게 할 셈이야?”

 

“이번엔 더 빨리 찾을게. 네가 어디서, 누구로 태어나든 반드시 찾아내겠어.”

 

그리고 그 때야말로.

 

너의, 진정한 소원을 이뤄줄게.

 

“다시 만나면- 또 가족이 되어줄래?”


“……응……될게. 쓸쓸한 건 싫으니까, 얼른 나를 찾아줘.”


“약속할게.”


그녀의 몸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금강산의 은여우는 여기서 죽는다. 사라지고, 잊힌다.

 

그거면 된다.

 

“사랑해.”


눈물이 나왔다.

 

왠지 모르게, 이토록 슬픈 기분은 처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만나자, 호은아.”

 

 

 

 

 

 

 

 

*****

 

 

 

 

 

 

 

 

아, 죽고 싶어. 

 

나는 연필심을 손가락으로 부러트리며 중얼거렸다.

 

겨울이 왔다. 눈이 오고 날씨가 추워졌다. 그렇지만, 뭐가 달라졌지?

 

인생은 무의미하고 나는 늘 고독하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대체 사람은 왜 살고, 고통 받고, 발악해야 하는 걸까?

 

“호인아! 널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

 

“네? 네에…….”


부모도 모르고, 친척도 없고, 이 바보 같은 놈들이랑 고아원에서 지내는 것도 질린다.

 

이제 나도 10살인데……날 입양하고 싶다고 한 사람은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 날 기대하게 만들지 마.

 

사랑해 줄 게 아니라면 내게 다가오지 말아줘.

 

나는 응대실에 혼자 앉아 코코아를 홀짝거렸다. 

 

이 소파 의자는 몇 번을 앉아도 촉감이 기분 나빴다.

 

“안녕, 네 이름이…….”


“호인이요.”


“아, 그래.”

 

이상한 남자였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왠지 좀 어수룩해보였다.

 

“머리카락 색이 특이하구나.”

“태어날 적부터 이랬어요. 부모님이 외국인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래?”


그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왠지 모르게……조금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사람은 그걸 알기 위해 살아가는 거란다. 자신이 누구인진 아무도 모르는 거야.”


이상한 사람이네……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가 요상하게 생긴 나침반을 꺼냈다. 그리고 그 바늘은,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신 씨가 준 물건은 제대로 된 거였군…….”

 

“네?”


“아니, 아무것도 아냐……단지 널 만나기 위해 정말 먼 길을 왔다는 것만 알아주렴.”


나 같은 놈을 만나려고? 아니, 그럴 리 없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 낳아준 부모조차 버린 고아 년의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있지, 호인아. 너의 소원은 뭐야?”


“……딱히 없어요.”


“그래도 하나만 이룰 수 있다면?”

 

“가족……이요. 가족을 가지고 싶어요.”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그것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한테……이해할 수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왠지 낯이 익었다. 그립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있지, 아저씨는 오래 전에 소원을 이뤘어.”

“그게 뭔데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거였어. 그리고 거기 보답하고 싶어서, 널 찾아온 거야.”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무심결에 그 손을 붙잡았다.

 

“너의 소원을 이뤄줄게. 이번엔, 내가…….”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그렇지만 날 사랑했던 여자애는 날 이렇게 불렀어.”

 

어차피 세상엔 믿을 것도, 중요한 것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 사람을 ‘믿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까?


“앞으론 나를 곡이 아저씨라고 불러주렴.”

 

 

 

 

 

 

 

 

 

 

 

 

 

후기

 

그렇다. 완결을 냈다. 저번에 쓴 농부 기사가 새드 엔딩이었으니 이번엔 해피로 냈다.

사실 저번에 쓴 것보다 반응도 그렇고 영 아닌 모양이다만 너무 개의치 않기로 했다.

원래 글을 10편 쓰면 잘 나오는 게 3개, 보통 5개, 별로인 거 2개가 보통이거든.

모티브가 된 은여우 설화랑 다른 것도 많고, 내가 머나먼 고대 시절에 쓴 단편의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신, 예옥 등)을 재활용하기도 했고 아무튼 조잡한 부분이 좀 있지만 너그러이

넘어가주길 바란다. 

다음엔 반응도 좋고 쓰기도 한결 수월한 야설이나 쓸까, 아니면 저번에 쓰던 마검 소설을

이어쓸까 고민 중인데 조만간 결정날 듯

암튼 읽어줘서 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