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환아~ 먼저 간다.”

“고생이다. 참.”

 

입사 동기들이 잔업을 마치고 내게 인사를 전한다.

 

“그래. 잘 가라.”

 

철컥.

문이 닫히자 사람들로 북적였던 넓은 사무실 안은 나 혼자 남았다. 아니, 한 명 더 있었다.

 

“승환 씨, 오늘도 야근이에요?”

 

 내 옆자리인 이유리가 방금 밖에서 사온 따끈한 커피를 내민다.

나는 그걸 감사히 받아들였다.

 

“늘 고마워요. 유리 씨.”

“고맙긴요. 그것보다 너무 화나네. 어째서 승환 씨한테만 업무를 이리 과다하게 줄까요?”

“그, 글쎄요….”

 

마치 자기 일처럼 눈썹을 찌푸리는 이유리를 보며 나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나와 동갑인 것을 빼면 많은 것이 다르다.

명문 대학, 착하고 너그러운 성격과 총각인 동기들은 물론이고 유부남인 상사들에게까지 대쉬받는 눈부신 외모와 아름다운 흑발.

 

‘옆자리가 아니었으면 커피도 못 얻어먹었겠지….’

 

이유리는 늘 야근을 하는 나를 위해 퇴근도 하지 않고 이렇게 따뜻한 커피를 사온다.

정시퇴근이 직장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면 인간적으로 탄복할만한 대상임이 틀림 없다.

분명 동기인데도.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데요….”

“그건 안 돼요. 유리 씨.”

 

이유리의 말처럼 내가 이상할 정도로 과다한 업무를 떠맡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건 절대 사절이다.

우울한 삶뿐인 나에게 있어서 이건 ‘신념’ 같은 거다.

 

“…….”

 

갑작스러운 정적에 이유리를 올려보자 그녀는 물끄러미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표면에 있는 내가 아니라 다른 것을 쳐다보는 것 같은…….

 

“유리 씨?”

 

움찔.

이유리는 어깨를 들썩이며 황급히 의자 위에 올려놓은 코트를 들었다.

그녀는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하하. 내 정신 좀 봐. 그럼 먼저 들어 갈 게요. 승환 씨. 힘내요. 늘 응원하고 있어요.”

“네? 아, 네.”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로 긍정적인 말을 남기며 이유리는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 PM 07 : 05 ]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났으나 9시 출근 18시 퇴근이란 대기업의 워라밸은 내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평불만할 수도 없다.

정말 운 좋게, 운 좋게 알아주는 무역회사에 입사했는데 그 기회를 땅바닥에 버리고 싶은 사람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엄마도 호강시켜줘야 하고….’

 

어렸을 때 아버지는 몇 억의 빚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아마 그때부터 내 마음속엔 걷잡을 수 없는 우울함이 생긴 건지 모른다.

그건 마치 밝게 웃는 법을 까먹은 것과 같다.

친구를 사귈 마음의 여유도, 이유도 찾지 못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나는 괴롭히기 딱 좋은 표적감이었다.

왕따를 당하고도 그것을 토로할 사람은 없었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선생님들, 고된 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와 늦은 잠을 청하는 어머니, 장례식이 끝나자 도와주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연락을 끊은 친척들…….

 

‘또, 또. 이런다.’

 

나는 기분 전환할 겸 이유리가 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뜨겁다고 하기엔 애매한 따뜻함이 식도를 지나 위장에 도착하자 나는 간신히 과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어나 사무실의 온 전등을 밝게 켰다.

나 한 사람만을 위해.

전기낭비임은 알지만 이리 밝게 하지 않으면 나는 업무가 아니라 과거와 계속 씨름할 거다.

그리고 자리에서 돌아와 휴대폰을 켜 뉴스를 라디오 모드로 키고 다시 놓았다.

 

-최근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 원인은 무엇일지……

 

‘이때라도 뉴스를 듣지 않으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겠다니깐.’

 

다시 커피를 마시고 귀로는 뉴스를 듣고 꺼진 모니터를 다시 켰다.

문서함에 쌓인 처리되지 않은 내용들을 보자 적어도 10시, 아니 11시까지는 죽치고 앉아있어야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이유리의 제안을 거절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착하고 책임감있는 그녀라면 무조건 9시까지 같이 남으려고 했을 테니깐.

내 일인데.

 

“흐앗! 한 번 해볼까.”

 

기지개를 한 번 피고 나는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 PM 11 : 35 ]

 

나는 모니터 구석에 있는 시간을 확인하고 컴퓨터를 껐다.

 

“…하아. 너무 힘든데.”

 

야근을 마치고 녹초가 되는 몸은 조금도 적응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의자에 기대 자고 싶지만 그래도 퇴근은 해야한다.

 

-최근 여고생을 성매매한 중년 남성이 재판에 회부돼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에 검찰은 아청법 적용이 느슨했다며……

 

나는 휴대폰을 켜 뉴스를 껐다.

마지막에 들린 내용 때문에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참, 저런 새끼들은 감옥에 박아놔야 하는데. 어떻게 애들을 보고 저럴 수 있지.”

 

감옥살이를 하게 될 이름 모를 중년을 비웃으며 나는 코트를 입고 회사 밖을 나왔다.

차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내게 차가 있을 리가 없다.

지하철 역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후 입김을 불었다.

하얀 입김이 생겨나고 사라졌다.

10월 말인데도 기록적인 추위다. 이게 다 석탄을 마구잡이로 쓴 선조들 때문이다.

계단을 내려가고 기둥에 기대 꾸벅꾸벅 조니 잠시 후 안내음이 들렸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안으로 들어가 빈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13정거장이 지났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에 간신히 내려 계단을 오르자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보이는 번화가였다.

집으로 가려면 이 번화가를 지나가야 한다.

 

“호호. 이제 어디 갈 거야?”

“글쎄, 가고 싶은 곳 있어?”

 

흔한 연인의 모습이다.

 

“어이~ 2차는 너가 쏘는 거지? 끅.”

“노래방, 저기 있는 노래방 가자. 내가 쏜다. 크크.”

 

술에 취한 중년들의 모습이다.

 

“너 개 남친 있던 거 몰랐냐?”

“와. 진짜냐? 존나 충격이네.”

 

시끄럽게 떠드는 이 녀석들은 성인도 아니면서 성인 흉내를 내는 고등학생들이다.

어디 뚫리는 술집을 찾은 걸까? 얼굴에 홍조가 깊다.

 

‘…….’

 

와글와글.

불금을 즐기는 인파들로 번화가는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친구나 연인을 옆에 끼며 감성적인 밤과 걱정 없는 내일을 즐기고 있었다.

이 자리엔 나만 이질적이었다.

친구도, 연인도 없고, 불금을 즐기기는커녕 과로에 휩싸여 집으로 우울하게 걸어가는 나만이.

 

‘…….’

 

터벅터벅.

몸을 가누기 힘든 취객을 피하고 시끄러운 무리들을 무시하며 나는 다시 만성적인 우울함에 젖었다.

초등학생 때 왕따를 당한 것을 계기로 나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피했다.

중고등학생땐 다행히 왕따를 당하지 않았지만 친구는 없었다.

트라우마로 인한 방어기제에 벗어나게 된 건 지독한 대학 아싸 생활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나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사람을 피하지 않고 억지로 웃는 연습을 하기 위해 상하차 같은 육체노동 대신 서빙같은 서비스업에서 일했다.

그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평범한 것이 내겐 지옥처럼 느껴지는 변화였다.

하지만 결국 해내긴 해냈다.

여전히 밝게 웃는 법은 모르겠지만 그건 영영 몰라도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터벅터벅.

계속 걷자 번화가에서 빠져나와 가로등만 보이는 주택가로 들어섰다.

 

“후우.”

 

역설적이다.

시끌벅적한 번화가에서 우울함이 날 지배하고, 조용하고 어두운 주택가에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니.

 

“언제까지 과거에 사로잡히며 살 거냐. 김승환.”

 

난 그렇게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날 이해하면서도 친구도 연인도 사귀지 못한 우울한 과거를 후회하고 있다.

그렇기에 번화가에 있던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부러워하며 회한을 느낀 것이다.

참으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감정이다.

 

“…집에 가자. 지친다….”

 

좀 더 걷자 낡은 빌딩이 보였다.

하지만 귀를 찢는 메아리가 먼저 들렸다.

 

-미야옹. 미야옹.

 

소리가 들린 곳은 공교롭게도 내가 사는 빌딩의 유리문 바로 옆이었다.

나는 작은 박스에 검은 형광펜으로 그은 글자를 봤다.

 

<죄송합니다. 키워주세요.>

 

“진짜 미친 새낀가? 이 추운 밤에 박스에 담아놓고 그냥 내놓는다고?”

 

흔한 담요나 그런 것도 없다.

잠이 들어 조용한 주택가에 작은 아기고양이의 처량한 목소리는 애처롭지만 작고 볼품 없었다.

내가 지나치면 새벽도 못가 이 고양이는 얼어죽을 것이다.

내가 버린 것도, 죽인 것도 아니건만 그냥 지나치기엔 굉장히 마음이 쓰였다.

 

“개새끼.”

 

고양이를 아무렇게나 버려버린 개자식을 욕하고 무릎을 굽혀 고양이를 손에 담았다.

아기 고양이는 덜덜 떨면서도 주머니에 넣은 탓에 따뜻해진 내 손바닥을 혀로 핥으며 날 반가워했다.

 

“미야옹-”

“…귀엽네. 하얀색이면 페르시안인가?”

 

빌딩 안으로 들어가 6층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매번 느끼지만 퇴근길에 계단을 오르는 건 힘겹고 쓸모 없는 짓이다.

 

‘다음엔 1층이나 2층으로 이사 가던가 해야지. 후우.’

“미야아옹-”

 

고양이가 울자 나는 귀여운 그것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알았어. 춥지? 들어가면 밥부터 줄게. 냉장고에 참치가 있었나….”

 

이 불쌍한 고양이는 먹이를 먹이고 잠을 재운 다음 내일 병원에 들러 혹시 병이 있나 봐볼 것이다.

그다음 유기묘를 맡는 위탁업체에 맡길 것이다.

 

‘돈도 없고 내가 앨 돌볼 수도 없으니깐.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돌보겠어. 좋은 주인 찾길 바래야지.’

 

그렇게 계단을 다 오르자 현관문이 보였다.

그런데.

 

“쿠울-”

 

교복을 입은, 긴 금발의 학생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내 집 현관문을 베개삼아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야 이건.’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여고생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