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 나오는 일부 이름과 기관은 허구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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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네 진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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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압!"


힘껏 내지르는 기합과 함께 목검을 휘두른다.


상대는 나와 체격이 비슷한 여자아이.


그러나 여자아이답지 않게 진지한 느낌의 그녀는 서있기만 해도 긴장감을 흐르게 하는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이기기 위해, 여러 기술을 섞어가며 재빠르게 움직였다만....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의 검술을 마치 물 흘리는 것처럼 부드럽게 흘려보냈다.


여러 번, 그리고 똑같이.


분한 마음에 계속해서 목검을 휘둘렀으나, 그녀에게 내 검이 닿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반격을 당해 빈틈이 계속 생겨나게 되었다.


- 타악!! -


정면 찌르기를 파훼한 그녀가 살짝 피해 가볍게 목검을 들어 올려치자, 내 손에 있던 목검은 이내 방향을 잃은 채 흔한 나무 막대기처럼 저 멀리 날아갔다.


"크윽...."


그녀가 단순히 내 목검만 친 것 뿐인데 엄청난 진동이 내 오른팔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해서 공격만 한 탓인지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이내 털썩 주저 앉았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나와 다르게 그녀는 전혀 힘들지 않은 듯한 얼굴을 하고서는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제른! 전보다 움직임이 더 좋아졌는데?"


"그럼 뭐하냐, 너한테도 지는데."


말 그대로다.


나는 소꿉친구를 상대로 조차 지는 형편없는 실력이라는 거다.


강해져서 이곳저곳을 탐험하고 의뢰를 받는 용병이 되고 싶었던 나와 진은 낮에는 아카데미에서 검술 교육을 받고, 밤에는 이렇게 드넓은 평야에서 대결을 통해 실력을 기르고 있다.


문득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빨간색과 보라색이 섞인 듯한 특유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 그리고 단아한 분위기를 지어내는 아름다운 미소.


누가보면 활발한 소녀처럼 보일 법한데....


"응? 뭘 그렇게 빤히 바라봐?"


"ㅇ....어? 아....아니 아무것도...."


"에에, 제른. 거짓말~ 볼을 붉힌거 다 봤거든~?"


"뭐라는거야, 아니야."


"칫. 그렇게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잖아."


문제는 이렇게 귀여움과 달리 그녀가 말도 안되게 강하다는 것.


어릴 때의 아르카네 진은 내 주위를 따라다니며 함께 다녔던 소꿉친구였고, 그때 당시는 분명 아무것도 모르고 나만 쫓아다니던 귀여운 아이였는데....


그래, 분명 아카데미에 입학 당시의 출발선도 같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걷는 속도라면 그녀는 뛰는 속도.


이제 나는 고급반에 들어갔는데, 그녀는 이미 천재적인 검술의 재능만 모여있는 마스터 반,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1등이라고 한다.


그녀를 볼때마다 난....


그저 그녀 주위의 칭찬과 존경을 받는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내가 약하다는 나약함과 언제까지 그녀가 나와 함께 다닐지 모른다는 불안감만 휩싸였다.


마치 그림 속의 주인공이 아닌 이야기의 흐름을 지켜보는 투영된 존재처럼, 내 속마음은 자기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열등감이 솟구쳤다.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고 평가받는 그녀가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인 내 곁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부담스러워 할텐데.


그러나 그녀는 그런 신경 따윈 1도 쓰지 않는 것처럼 쉬는 시간이 생길때마다 바로 내가 있는 반으로 놀러 오곤 했다.


소꿉친구마저도 이기지 못하는 실력이라면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니까.


아니면, 소꿉친구가 사실은 사람의 실력이 아니었다던가......?


에이, 너무 어이없는 생각인가....


".....피곤한데, 조금만 잘까?"


"허허벌판에서 누우면 입 돌아가요~"


"캠프파이어 하면 되잖아. 그리고 너가 있으니 걱정 또한 안되기도 하고."


"흐응~ 대답은 합격."


그렇게 나는 오늘도 그녀에게 패배했다는 무력감과 함께 언제일지 모르는 용병 생활을 꿈꾸며 이내 눈을 감고는 잠시 잠을 청했다.


다음엔.....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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잤나?


자는거지?


휙- 휙-


후훗. 곤히도 자는구나 우리 제른.


나는 그의 머리를 살포시 들어올려 내 무릎 위로 올렸다.


따뜻하다. 그리고, 포근하다.


그는 어렸을 적 언젠가 나에게 강해져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 뿐만 아니라 여러 곳곳을 탐험할 수 있는 용병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제른, 너는 모르겠지만 세상은 위험한 요소가 너무 많아.


심지어 용병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목숨을 내놓는 직업인데.


내가 미쳤다고 그 곳으로 너를 보내겠어?


절대 안 되지. 안 되고 말고.


나의 하나뿐인 표지판을 잃을 수는 없지.


너는 너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야.


내가 있으니까.


이내 제른의 머리카락을 슬며시 쓸어내리자, 작은 흉터가 보였다.


어렸을 적, 야생의 멧돼지를 상대로 나를 구하려다가 생긴 흉터.


상처를 살짝 만지자 그가 살짝 뒤척이기 시작했다.


응응, 나 여기 있어 제른.


자는 모습도 참 귀여워라.


너가 용병을 하기 위해서 나와 한 약속, 기억하고 있지?


나를 이긴다면, 그때 하고 싶은 걸 하자고.


하지만 넌 아직 약해 제른.


너무나, 툭 치면 바스러질 것만 같은 타버린 나뭇가지처럼.


그가 어느 정도 실력이 성장할수록 나에게 계속해서 도전을 신청해왔지만,

그때마다 난 냉정하게 그를 무너뜨렸다.


그치만 어떡해.


너가 약하다는 걸 깨닫고 나에게 의지해오는 그런 널 볼때마다 온 몸이 떨릴 정도로 너무 사랑스러운걸.


- 터벅터벅 -


아무도 없는데 확 덮쳐버릴....아, 불청객이 왔네.


풀밭을 밟는 수많은 소리가 내 뒤쪽에서 들려왔다.


일곱.....아니 여덟 마리인가...


발자국이 가까이 들릴수록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흐음....포위망을 만들어서 오는구나. 꽤 머리를 쓰는 짐승이네.


헬하운드라.....한 마리도 황실 기사단 여럿이서 협공해야할 만큼 매우 위험한 지옥의 짐승.....


평소에는 저 멀리 깊숙한 산속에서도 나오지 않던 놈들이 왜 여기까지 기어온걸까.


내 힘을 느끼고 온건가?


주위에서 으르렁거리며 다가오자, 내 품 안에 있던 제른이 심하게 뒤척였다.


아, 제른이 깨어나면 곤히 잠든 모습을 못 보잖아.


......화가 조금 나는걸.


금방이라도 저 짐승들이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 뜯을 듯한 분위기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는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자 점점 내 주위에 불꽃이 튀더니 머리에는 뿔의 형상이 서서히 자리 잡았다.


이내 나는 조용히 눈을 뜨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꺼져라, 미개한 짐승들아."


흠,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지레 겁을 먹은 헬하운드들은 마치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움츠리고는 뒤돌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깼나? 안 깼지?


아직 새근새근 자고 있음을 확인한 나는 다시 그의 가슴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아, 스트레스가 바로 풀리는 이 느낌. 힐링인걸.


......히히. 제른, 넌 내꺼야. 아무도 넘보지 못해.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이끌고 함께 걸어가준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널 지켜줄게.


고대의 군주, '오니' 로써 맹세해.


넌 그저, 영원히 나한테만 그렇게 의지하고 내 품에 안겨.


너를 위해 세계를 등져야한다면 기꺼이 이깟 세계, 멸망시킬 수 있으니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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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사료.

아침 먹다가 생각난 소재를 간단히 써봤습니다.

어떠한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의지 가능한 사람이 있다는 건 무슨 기분일까요.

아침으로 간단하게 팬케이크 입니다.

오타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