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오늘치는 끝인가…"


"네, 방금 그게 오늘치 분량의 마지막 서류였어요."


"그럼 잠시 바람 좀 쐬러 갈까…는 비가 내리고 있네."


"일이 끝나자마자 보이는게 비가 오는 풍경이라니, 뭔가 하늘이 내 휴식을 거부하는 느낌인걸…"


"후훗, 선생님은 비를 싫어하시나요?"


"딱히 선호하는 날씨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쪽일까."


"아무래도 어두운거엔 거부감이 든달까, 그래도 이젠 좋아하게 됐지만."


"좋아하게 되다니, 무슨 이유라도 있는건가요?"


"그건 뭐, 각각의 날씨에는 날씨마다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지."


"날씨마다 떠오르는 기억인가요."


"그, 노아는 이해하기 힘들려나?"


"딱히 무언가랑 연관 짓지 않아도 전부 기억에 남을테니까."


"글쎄요, 뭔가 예시를 들어주신다면 알기 쉬울텐데 말이죠."


"그치, 예를 들면… 아, 그러고보니 그때도 비가 왔었지?"


"그때라면… 혹시 그 오후의 일을 말하시는건가요?"


"그래, 노아가 창문에 글을 적은 날 있잖아."


"네, 제가 생각하는 날이 맞다면 제가 선생님께 질문을 했었죠."


"그치, 아마 Qui aimes-tu le mieux, homme énigmatique, dis? 였지. 노아가 좋아하는 시의 일부분이라고 했었는데, 맞나?"


"그랬었죠, 잘도 기억하고 계시네요?"


"뭐, 그렇지? 난 노아 네가 아니라서 기억하는데 고생 좀 했지만."


"'고생 좀 했다' 인가요… 그럼 당연히 그 답변도 생각해 오셨겠죠?"


"그 답변이라면 일단 생각해놓긴 했는데 말이지, 노아는 어때?"


"네? 어떻냐고요?"


'뭐랄까, 기록으로 남은게 그대로 굳어지는게 싫으니까 일부러 비오는 창에 적은거잖아? '


"기껏 그랬는데 이렇게 계속 상기시키는건 어떨까 해서. 뭐 상관없다면 괜찮지만 굳이 기분 상하게 만들건 없으니까."


"계속 상기시킨다, 그렇네요.

확실히 이렇게 계속 상기된다면 기록으로 남은거랑 다를바가 없겠네요, 그렇죠?"


"엥, 이거 내가 잘못한건가? 내가 사과해야만 하는거야?"


"후훗, 농담이에요, 그나저나 제 한 마디 한 마디를 전부 기억하실 정도라니. 저에게 향하는 관심이 너무 지나친거 아닌가요?"


"그건… 크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글쎄, 내 구름은 누구일까?’ 이게 그 당시의 내 생각이야."


"‘글쎄, 내 구름은 누구일까?’ 이게 그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답인건가요…"


"그치, 그 시의 주인공은 구름을 사랑한다고 했잖아?그래서 나도 내 구름이 뭘까…생각해봤어."


"직접 시까지 찾아보시다니,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뺏은 것 같아 죄송하네요."


"내가 원해서 찾아본건데 뭘,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다기엔 정작 그 구름이 뭔지 알려주시지 않았지만요."


"너무 성의 없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그야 이건 그 당시의 내 생각이니까. 지금이랑은 좀 다르지."


"지금이랑은 좀 다르다, 인가요."


"그간 이래저래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답은 '너희 모두가 내 구름이다.' 랄까."


"'너희 모두가 내 구름이다.' 라니. 음… 이건 뭐랄까, 선생님답다고나 할까요."


"저기, 노아? 뭔가 답변에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데?"


"그런 선생님다운 답이 싫은건 아니지만요. 그런 답지에 있을 것 같은 답 말고 뭐랄까… 좀 더 그런, 선생님 개인의 사심이 담긴 그런 답은 없는건가요?"


"내 사심이 담긴 답? 그건 말하기 힘들지…"


"그런 반응은… 있긴 있다는거네요?"


"있긴 무슨, 너흰 내 학생들인데?"


"그런 뻔한 답변은 필요없어요. 그리고 키보토스에는 딱히 사제간의 연애를 금하는 법 같은 것도 없고요."


"그런 뜻이 아니라 애초에 나한테 그런 마음이 없다는거야. 난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는걸?"


"그니까 모두에게 공평하기 위해, 그런 마음이 없도록 노력을 하시고 있다는거죠?"


"음?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비록 직접 그런 말을 하신적은 없지만요…

저는 직접 말로 전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답니다?"


"뭐야 그게, 그건 억측이잖아 노아."


"억측이라, 흐응…과연, 그럴까요?

제가 가지고있는 선생님 관찰 일지에는 말 그대로 모든게 적혀있답니다?"


"아…거기엔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도 적혀있는거야?"


"아뇨? 단지 각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평소 태도를 바탕으로 선생님이 누굴 좋아하는지 추론한거에요."


"내 평소 태도가 어때서? 난 내 학생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잘 해주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무언가를 노력한다고 그게 이루어지는건 아니니까요. 한번 볼까요?"


"20xx년 x월 x일

게헨나의 '히나'라는 학생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쇼핑과 식사를 했다."


"그건 과로하는 히나를 좀 쉬게 하려고 그런거야."


"20xx년 x월 x일

샬레의 일과가 끝나고 산책을 하던 중, '히나'라는 학생이 밤 늦게 일을 하는걸 보고는 직접 찾아갔다."


"히나가 너무 무리하지는 않는지 걱정되서…"


"에덴조약 당시에는 '히나'라는 학생의 집도 찾으셨죠."


"그건 히나의 건강과 멘탈 관리가 목적이었고."


"게다가 '히나'라는 학생을 보려고 종종 게헨나에 가시죠?"


"딱히 히나를 보기위한게 아니고, 단순히 게헨나에 사고가 많이 일어나서 가는거야. 간김에 겸사겸사 만나는거고."


"정말로 아무런 마음이 없다고요?"


"딴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건 아니야, 아마도."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공원의 벤치에서 '히나'라는 학생을 무릎 위에 앉게하고…정수리 냄새를 맡았다네요?"


"그건 할 말이 없네…"


"이것 말고도 증거는 많답니다?"


.

.

.


"그렇게 한참동안 내가 히나와 단 둘이 있는 증거들이 이어지고."


"이렇듯 재학중인 게헨나 교내에서는 물론이며, 시내에서도, 심지어는 타 학교 근처에서도 단 둘이 있는걸 기록한 증거는 넘쳐나요."


"이래도 인정하지 않으실건가요?"


"아니, 그런 것들은 다 어디서 찾은거야…

이런걸 보고 창살 없는 감옥이라 하는건가."


"익명의 밀레니엄 학생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요."


"아니 방금 그 부분,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건 나중에 따로 얘기하면 되니깐요. 지금은 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세요."


"그래서 그 증거들로 도출해낸 결론이, 내가 히나를 좋아한다는거야?"


"그렇게… 보이죠?"


"그런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부터 히나를 좋아했다는건가."


"생각보다 순순히 인정하시네요?"


"그야 아까 네가 말했듯이 딱히 문제 될 그게 없으니까. 게다가 이미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 굳이 부정할 이유도 없고."


"…그런가요."


"과정이야 어쨌든 나도 모르던 내 속 마음을 깨닫게 해줬으니까, 이번만큼은 그 노트에 감사해야겠는걸?"


"그런가요."


"그렇다고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한걸 용서한건 아니니까?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되는거니까…"


"그런가요."


"그야 그런거지. 그럼 어디보자, 옛말에 쇠뿔도 단 김에 빼라고 했으니까…"


"그런가요."


"음… 노아?"


"그런가요."


"저기, 노아? 말하는게 이상한데."


"그런가요."


"슬슬 무서워 지려고 하는데 말이지."


"그런가요."


"끄응… 뭔가 문제가 있으면 말을 해줘야 뭔가를 해줄수 있는데…"


"그런가요?"


"내가 독심술을 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그러면, 그러면요."


"응?"


"제가 제 불만을 얘기하면 선생님은 들어주시는건가요."


"그게 뭔지 일단 들어봐야겠지."


"아까, 기뻤어요."


"아까?"


"기억의 예시로 저와의 기억을 말해주셔서, 제가 창문에 적었던 그 글귀를 기억해 주셔서, 그 글귀가 제가 좋아하는 시에 있다는걸 기억해 주셔서, 그걸 기억하려고 고생해주셔서, 또 그 답변을 생각해주셔서, 그 답변을 생각하기위해 직접 시까지 찾아 읽어주셔서, 그리고 바로 답을 말하지 않으시고 저한테 그 여하를 물어봐 주셔서, 예전에 제3가 했던 말들을 기억해주셔서, 마치 선생님의 머릿속 한켠에 제가 자리잡은거 같아서, 제가 선생님의 특별한 존재가 된것 같아서, 비록 내색하진 않았지만 정말로 기뻤어요."


"그…그거 참 다행이네."


"근데 있잖아요. 전부 제 착각이었던 거예요."


"착각…이라니? 뭘 착각했다는거야?"


"아까 히나라는 학생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하나하나 전부를 기억하시더라고요."


"그 히나라는 학생과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그 학생과 같이 어디어디를 갔는지, 그 학생과 왜 같이 있었는지, 그 어디어디에서 그년과 무엇을 했는지, 심지어는 그 히나라는 년의 반응은 어땠는지, 그 년이 선생님한테 했던 말부터 손짓 발짓 하물며 날갯짓까지!"


"선생님은 그년에 관련된 그 모든걸 빠짐없이 기억하시더라고요?"


"아니 그건 내가 선생이니까…"


"아니요. 그럴수 없어요."


"선생님은 제가 아니잖아요. 선생님은 저처럼 선생님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할 수 없으시잖아요.

선생님은 뭔가를 기억하실때 그만한 노력을 들여야하잖아요. 그런 노력은 보상을 받아야해요.

선생님께서 학생들과의 일을 기억하시면 응당 그 학생들도 선생님과의 일을 기억해야해요.

그러니까 선생님과의 일들을 전부 기억하지도 못 할 혹은 애초에 그럴 노력을 하지도 않는 그런 못난 년들에겐 선생님의 그 노력이 돌아가선 안돼요. 선생님은 선생님과의 모든걸 기억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 그 노력을 쏟으셔야해요.

그렇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도 억울하실거 아니에요. 아닌가요? 선생님?"


"그야... 내가 기억하고 있는걸 그 상대가 기억하고있지 못한다면 섭섭하기야 하겠다마는.

그치만 노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애초에 모든걸 기억할 순 없어."


"그렇죠? 대부분의, 절대다수의 학생들은 모든걸 기억할수 없을거에요."


"하지만 저는, 저는 달라요. 저는 선생님의 기억 그 전부를, 어쩌면 그 이상을 기억해낼수 있어요.

저는 선생님의 노력에 보답해 드릴수 있어요. 아니, 오직 저만이 선생님의 노력에 보답하는게 가능해요. 

선생님, 그니깐 선생님도 저한테만 그 노력을 쏟으셔야되요.

오직 저와의 기억만이 선생님의 머릿속에 남아야해요. 그래야만해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