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하나 없는 어느 방 안, 한 남자가 굳게 잠긴 철문을 열려고 애쓰고 있다.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못했는지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를 가진 남자는 제대로 씻지도 못 한 듯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점은 그가 어린 학생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단 점이다.


아닐 가능성도 있겠지만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담배나 주위에 널려있는 쓰고 남은 콘돔들은 남자가 성인임을 알려주었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어색하지만 솜털같은 수염까지 조금씩 보았을 때 위의 요소들을 모두 종합한다면 남자는 성인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세세한 요소는 신경 쓸 틈도 없이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손에 철사를 들고 손잡이에 쑤셔박으며 한참을 낑낑대던 남자의 노력이 결실을 보았는지, 문이 열리고 좁은 방 안에 자그마한 빛이 들어왔다. 그러자 남자는 눈을 크게 뜨며 기뻐했지만 그것이 외부의 요인임을 알자 표정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또 나가려고 한거야?"


그 말을 하며 방에 들어온, 목소리를 보아 여자로 보이는 누군가는 어딘가 한숨이 섞인 듯한 미성을 흘리며 벽을 더듬거렸다. 얼마 안 가 달칵 소리와 함께 어두운 방이 빛으로 가득 채워지고 그녀는 문을 닫았다.


칠흑처럼 어두운 머리칼에 티 없이 맑은 피부, 묘하게 색기가 섞인 커다란 눈망울. 눈에 섞인 색기를 증명하는 스웨터로도 가려지지 않는 커다란 가슴과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인 그녀의 패션에 잘 어울리는 검은색 스타킹. 여자의 외모는 길거리를 지나가면 그 누구라도 돌아보게 할만큼 아름다웠지만, 어째선지 남자는 겁에 질린 듯 벌벌 떨며 뒤로 물러났다.


"하아... 언제쯤 그만하려나? 누군 오늘도 힘들게 고생하고 왔는데."


비난 섞인 한탄을 하며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여자를 보던 어쩔 줄 몰라 하던 남자는 무언가를 알아챈 것처럼 잠시 멈칫 하더니, 이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려움이 섞인 질문을 던졌다.


"ㅇ... 오늘도? 너, 설마..."


"응. 우리 얀붕이 찾는 씨발년들 다 죽여버렸어."


질문을 받은 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말투로 대답을 했다. 마치 직장 동료와 오늘 먹을 점심 메뉴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처럼, 그 내용만 아니였다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을 일상적인 답변. 대답을 들은 남자는 분노와 공포가 동시에 서려있는 눈빛으로 여자를 노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너... 대체 언제까지 그럴거야. 날 가두고, 때리고, 그..."


"섹스?"


"씨발, 그래. 범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아니, 나한테만 그러면 됐지 남한테는 왜 그러는거야!"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던 남자는 벽에 등이 닿자 더 도망갈 곳은 없단 것을 깨닫고 최후의 발악으로 쌓여있던 울분을 토해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그는 여자가 이런 자신을 괴롭히는걸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잠시 잊고 말았다.


"우리 얀붕이, 용기 많이 냈네? 여자한테 따먹혔다고 자기 입으로도 말하고."


"..."


남자는 수치심으로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고는 더 말하기 싫다는 것처럼 조용히 벽에 기대 그녀를 노려봤지만, 여자는 그런 그조차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는 눈을 맞췄다. 기분이 상한 남자는 고개를 푹 숙여 바닥만 바라봤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난 남한테 그런게 아니야. 감히 우리 얀붕이를 찾는, 주제도 모르는 암캐들한테만 그런거지."


"..."


"일종의... 살충? 그래. 그게 맞겠네. 그리고 가두고 때려? 그게 무슨 소리야. 밖은 너무 위험하니까, 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잖아? 때린 것도... 음... 내 사랑으로 봐주면 안될까?"


"...지랄. 가증스러운 년. 그건 부정 안 하네."


참을 수 없단 듯이 입을 연 남자는 여전히 가시가 돋힌 말들을 퍼부었고, 여자는 그것을 웃으면서 받으며 그를 자극하기 위한 말을 일부러 골라서 했다.


"뭐? 따먹은거? 그건 사실 맞으니까."


"그걸 알면 좀-"


"아, 사실 항상 하고 나서 씻겨주고 싶었는데. 이 방 화장실은 너무 좁잖아? 그렇다고 혼자 씻게 냅두면 뭘 할지 모르고."


"...그게 씨발 지금 뭔 상관인데."


"그러니까 하고싶은 얘기가 뭐냐면, 우리 얀붕이 좆 냄새가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게 존나 좋다고. 한 번 입에 넣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아서..."


여자는 이 쯤 되면 남자의 입에서 닥치라는 말이 나올 줄 알고 스스로 말을 끊었으나, 어째선지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자를 바라보자 그는 부들부들 떨더니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 죽을거야."


"...뭐?"


여자의 대답이 기폭제가 된 듯 남자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목숨을 걸고 협박을 하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꺼낼 수 없는 말을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콱 죽어버릴거라고. 너가 자꾸 이런 짓 하면."


"...죽어?"


"그래. 자살한다고."


그 말은 그녀를 두고 일찍 세상을 떠버린 부모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고, 남자 또한 그 사실을 알고 그녀를 자극하기 위해 꺼낸 말이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충격이 컸는지 여자는 자리에 못 박힌 듯 가만히 서서 남자가 한 말을 되뇌였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마치 죽는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한 사람처럼 끊임없이 그 말을 반복하는 여자. 고장난 라디오처럼 어딘가 망가진 것 같은 그 모습을 보며 남자는 광기에 짓눌려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여자는 천천히 남자에게로 걸어왔다.


공포 영화를 볼 때 괴물과 눈 앞에서 마주한 기분. 남자는 자신이 물을 많이 마셨더라면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는 사이 남자의 바로 앞에 도달한 여자는 그에게 다가갈 때보다 더 천천히 우아한 손짓으로 남자의 턱을 들어올렸다.


"넌, 내 허락 없이 못 죽어."


신이 내린 선율처럼 아름다운 목소리. 그렇기에 남자는 더 큰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벌벌 떠는 남자를 본 여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스타킹 때문에 습기가 찬 발을 그의 성기 위에 살포시 올렸다.


때로는 주무르고 때로는 세게 밟으며 정성스레 애무하자 남자의 분신은 바지 너머로도 보일만큼 커졌고, 여자는 발가락 끝을 세심하게 움직여 지퍼를 내린 후에 팬티 또한 벗겼다.


꼿꼿이 선 기둥 끝에 쿠퍼액을 본 여자는 자신의 비부가 조금씩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대로 사정없이 괴롭히려던 여자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남자를 바라봤고, 그녀는 절망과 성욕이 뒤섞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가학심이 생긴 여자는 남자의 머리채를 쥐고 벽에 박았다. 그가 아파할 틈도 없이 여자는 남자의 귀에 속삭였다.


"오늘, 침대 위에서 죽어보자?"


남자는 이 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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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아서 퇴고 안 했는데 어색한 부분이나 맞춤법 틀린 부분 있으면 말해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