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 나오는 일부 이름과 기관은 허구임을 밝힘.)


ˉˉˉˉˉˉˉˉˉˉˉˉˉˉˉˉ



(소니야 린 / 25)


ˉˉˉˉˉˉˉˉˉˉˉˉˉˉˉˉ


어두운 분위기의 어느 한 폐공장.


사람들의 발길이 더 이상 오지 않는 이 곳에 차 한 대가 조용히 들어왔다.


차는 누가봐도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의 리무진이었고, 이내 그 차는 한 공장 입구 앞에서 천천히 멈춰 섰다.


이윽고 조수석에서 정장 차림의 사내가 빠르게 내리고는 뒷자석의 손잡이를 잡아 당겨 문을 열더니 그 안에서 천천히 한 여성이 내렸다.


천천히 여자가 내리자 운전석을 포함하여 차례대로 일제히 내리기 시작했다.


매혹적이면서도 차가운 듯한 눈매에 살짝 내려온 다크서클이 섣불리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먼저 차에서 내린 그녀는 무언가 피곤한 듯이 눈꺼풀을 살짝 내리깔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한 남자가 허겁지겁 주머니 속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그들은 천천히 폐공장 입구의 문을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사내들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 마시고는 내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패키지는?"


그러자 입구를 지키던 사내가 마치 군대에서 일개 병사가 고위직 장관을 맞이하듯이 잔뜩 기합을 준 상태로 대답했다.


"네, 공장 안쪽 마당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폐공장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을 열자 안쪽에는 한 사람이 의자에 꽁꽁 묶여있는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옆 쪽에서는 그녀가 오기 전에 고문을 하고 있던 사내 몇 명이 있었고, 그들은 그녀를 보자 다시금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예의를 갖추었다.


그녀가 천천히 다가가선 의자에 앉아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묶여있던 남자는 그녀의 내려다보는 시선과 마주치자 미친듯이 그녀에게 말했다.


"잘.....잘못... 잘못했습니다....쿨럭...! 제가 잠시 어리석었습니다! 다시는....다시는....!"


그녀는 그의 외침에도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이내 오른쪽의 깨진 창문에 다가갔다.


"난 있잖아....."


그러고는 이미 깨진 유리창의 조각 하나를 무심히 뜯어냈다.


"너가 몰래 횡령한 돈이 몇천만원이든, 몇억이든 상관없어.

어차피.... 유통되는 금액에 비하면 별로 안되는 금액이거든."


그녀는 깨진 유리조각을 들고 터벅터벅 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것보단 주인을 물은 거짓의 충성심을 가진 개는 내가 무척 싫어해서 말이야..."


그녀의 발걸음은 마치 저승사자처럼 공포의 소리가 되어 다가오는 듯 했다..


옆에 서있던 사내들은 묶여있던 의자 쪽으로 가더니 그의 턱과 이마를 잡고는 강제로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강제로 벌어진 입 안으로 그녀는 유리조각을 넣었고,

넣자마자 사내들은 입을 다시 닫아 벌리지 못하게 하였다.


"그렇게 큰 돈을 들고 달아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너의 그 보잘것없는 목숨을 걸었어야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주먹을 쥐곤 그의 얼굴을 냅다 패기 시작했다.


"뒷세계, 그것도 암시장에서."


한 대.


"물건이나 돈을 훔치고 싶으면."


한 대.


"확실하게."


한 대.


"꼬리를"


그리고 또 한 대.


"짤랐어야지."


맞을 때마다 그는 연신 소리를 질러댔지만,

꾹 닫힌 입에서는 그저 무음의 외침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맞는 그의 입에서는 한 대씩 맞을수록 입에서 피를 흘렸다.


얼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자비하게 때린 그녀는 살짝 상기된 호흡을 가다듬고는 피가 묻은 오른손 그대로 담배를 다시 한 모금 피웠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옆의 서있던 사내들 중 덩치가 조금 있어보이는 한 남자에게 말했다.


"Убейте его. Сожгите тело, чтобы оно не осталось. (죽여. 시체가 남지 않게 태워서.)"


"Понятно. (알겠습니다.)"


이미 반죽음 상태인 그가 연신 살려달라고 외치려 했으나,

이미 입 안에서는 깨진 유리 파편으로 인해 정상적인 언어기능은 물론 소리조차 크게 지를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탁, 하고 그녀의 라이터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뒤쪽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폐공장에서 나오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들이 그녀에게 외투를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러고는 옆에서 보폭을 맞추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보스, 19시 정각입니다. 약속시간에 맞춰 차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운전석 쪽의 문을 열자,

그녀는 안 쪽으로 들어가 운전대를 잡으며 말했다.


"나머지 처리는..... 알아서 해."


"По приказу. (명령대로.)"


그렇게 한 사람을 쥐도새도 모르게 간단히 없앤 그녀는 서둘러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폐공장에 도착했었을 때의 고혹적이고 냉소적인 미소는 온데간데 없고,

이내, 화사한 웃음기와 함께.


ˉˉˉˉˉˉˉˉˉˉˉˉˉˉˉˉ


서울 어딘가의 도시 한복판.


한창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기간에 맞게,

환한 조명이 거리를 가로지으며 건물들은 저마다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옆 쪽에 세워져 있었다.


연말 분위기를 즐기는 가족, 마지막 달을 알차게 보내는 커플들.


다양한 사람들이 따스한 옷을 입고는 거리를 다니고 있었다.


어느 한 고급 레스토랑 앞에 서있는 한 남자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 남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연신 입김을 불어대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그의 앞으로 한 명의 여자가 손을 살짝 흔들며 다가왔다.

그녀를 본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린~! 오늘 너무 이쁘게 하고 온거 아니야?"


"으응~ 자기한테 잘 보일려고 힘 좀 썼어요~"


꼬리가 달렸다면 살랑살랑 흔들고 있을만큼 그녀는 옆에 다가와서 남자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여자의 예쁜 얼굴과 함께 흉악한 무기가 그의 팔뚝에 닿자 남자는 당황해했다.


"후후, 자기 당황한 모습 귀엽다~"


"읏, ㅂ....밥이나 먹으러 가자...."


"네에~ 제가 쏘는 거니까 맛있게 먹어요~"


"그나저나 여기 레스토랑 별점 5점인만큼 가격이 엄청나다던데... 괜찮겠어...?"


"네에~ 괜찮아요~ 자기는 밤에만 열심히 일해주시면 되요~"


여자가 무슨 의미로 말한건지 파악한 그는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더니 이내 당황한 듯 말했다.


"ㅂ...밤일이라니...."

"아, 자기 또 당황한 얼굴~ 히히!"


'역시 어릴 때 러시아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런가... 스위치만 켜지면 무섭단 말이지....'


그저 귀여운 여우상의 얼굴의 미녀라는 생각과 또 오늘은 얼만큼 쥐어짜일지 걱정을 하며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남자였다.

남자가 생각하는 그대로 그녀는 예쁘고 적극적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슬쩍 보게 만드는 매력.

하지만 그는 전혀 모른다.


단지, 그녀가 오기 전에 미처 못 닦았던 손목의 피를 발견하고는 몰래 닦았다는 사실과,

그녀가 사실은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암시장 운영의 주인이자, 뒷세계에서는 '여제' 라고 불리는 사실을 몰랐을 뿐.


크리스마스의 시간은 내리는 눈처럼 계속해서 흘러갈 것이다.


ˉˉˉˉˉˉˉˉˉˉˉˉˉˉˉˉ


14번째 사료.

크리스마스 기념 소설입니다.

본업을 할 때와 연인을 만날 때의 차이가 있는 설정에 회로가 돌았습니다.

오늘 저녁은 칠면조 구이입니다.
오타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