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02 / 03 / 04


 


"실장님! 따님이 있으셨어요!?"



 출근 도장을 찍자마자,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성화에 귀가 먹먹해졌다.


 딱히 비밀로 하려던 건 아니었다.


 예전부터 남들 앞에서 개인사를 입에 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데다, 일터에서 사담이 오고 가는 것도 되도록 피하고 싶었을 뿐.


 따로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마지못해 대답해 줄 의향 정도는 있었다.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귀청 떨어지겠다. 왜들 이렇게 호들갑이야····."


"충분히 호들갑 떨 만하죠! 저희는 실장님에게 따님이 있으시다는 건커녕! 결혼하셨다는 소식도 이번에 처음 들었거든요!?"


"맞아요! 예전부터 생각해 온 거지만, 실장님은 본인 이야기를 안 해도 너무 안 하세요!"


"어쩐지! 주변에 그렇게나 미인이 많은데 눈길 한번 안 주시더라니!"



 침착하게 소동을 잠재우려 했으나, 굶주린 늑대 무리 같은 추궁이 뒷덜미를 물고 늘어졌다.


 남의 집 가족 구성원이 뭐 그리 궁금하다고 이 유난인 건지. 


 그 소갈머리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나로선 그저 난감할 따름이었다.



"따님분!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몇 살이에요? 장녀인가요? 차녀인가요? 혹시, 외동인가요?"


"사진! 사진 한 장만 보여주세요!"



 미간을 찡그리며 난색을 표해도, 직원들의 질문 공세는 도통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밤. 딸아이와 울며 겨자 먹기로 했던 약속.


 회사에 데리고 가서 꿈에도 그리던 왕자님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전에 직원들의 양해를 구하려 했던 것뿐인데.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사전 공지 없이 그냥 강행할걸. 후회가 막심했다.



"나중에 오전 업무 끝나면, 그때 가서 마저 이야기해. 지금은 일단 밀린 일부터····."


"아아! 안 돼요! 저희 오늘 오후에 외근 있는 거 실장님도 아시잖아요! 분명 따님분 마중 가는 건 학교가 끝난 뒤라고 하셨죠? 그럼 혹시라도 일이 길어지기라도 했다간, 저희는 따님을 아예 못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쯧····."



 단호하게 자리를 뜨려 했으나,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직원들의 협공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누가 전직 헌터 지망생들 아니랄까 봐. 


 표적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수완이 어지간한 특수부대는 저리 가라였다.


 현장 일할 때, 이거의 반만이라도 영민하게 움직여주면, 내 소원이 없으련만.


 들어차는 착잡한 감정 탓에 파르르 떨리던 한쪽 눈썹이 이내 역팔자로 치켜 올라갔다.



"하핫,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란이야~♪"


"헛! 로엘 님!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웬일이세요!?"



 바로 그때, 벌컥 열린 문 너머로 들린 청량한 음성이 가뜩이나 어지러운 내 심신을 한층 더 헤집어 놓았다.



"로엘 님! 저희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글쎄 실장님이요!" 



 내 옷깃을 단단히 움켜쥐는 것으로 탈출을 원천봉쇄한 직원들이 마치 하소연을 하듯 차례로 목청을 높였다.


 누가 보면 내가 무슨 죽을죄라도 지은 줄 알겠다.


 소싯적에 업보를 많이 쌓긴 했고, 당장 내일 칼 맞아 죽어도 할 말 없는 삶을 살아오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억울했다.



"흐응~♪ 과연, 그렇게 된 거였구나♪"


"그쵸! 로엘 님도 실장님이 너무하다고 생각하시죠!"



 직원들로부터 일련의 자초지종을 들은 녀석이 별안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와중에 내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대는 저 능글맞은 시선이 더없이 불쾌했다.


 놈한테 약점을 잡혀, 굴욕적인 불공정 계약을 체결 당한 게 불과 어제 있던 일.


 그 울분이 채 가시지도 않은 지금, 저 뻔뻔스러운 낯짝을 마주 보며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놈만 아니었어도, 어제처럼 딸아이에게 밉보이고, 오늘처럼 직원들에게 시달릴 일도 없었을 테니까.

  

 원망의 화살을 겨눠야 할 곳이 이보다 명확할 수가 없었다.



"근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매니저한테 본인을 쏙 빼닮은 귀여운 딸이 있다는 거♪"


"네····?"



 그 담담한 말 한마디에 어수선했던 방 분위기가 순식간에 정돈됐다.


 벙찐 눈망울로 내 얼굴과 녀석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직원들의 표정은 너 나 할 것 없이 짙은 당혹감으로 가득했고.


 겉으로 표가 안 났을 뿐, 나 역시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심정이었다.



"뭐야? 다들 몰랐던 거야? 아, 하긴, 아기 고양이들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네. 하핫, 매니저는 원체 경계심이 많고 수줍음도 많이 타니까. 사서 본인 이야기를 할 만큼 붙임성 좋은 성격도 아니고 말이야♪"



 사뿐사뿐 경쾌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내게 어깨동무를 하는 녀석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내 옷깃을 붙든 여직원의 손을 천천히 떼어낸 뒤, 내 몸을 본인 쪽으로 끌어다 놓는 그 일련의 움직임은, 흐르는 물결처럼 유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너무 섭섭해하진 말아 주길 바래. 분명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뿐일 테니까. 나만큼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으면, 언젠가는 분명 매니저도 고양이들에게 마음을 열어줄 거야♪"


"아, 그, 그렇죠! 그렇겠네요····!"



 손끝이 아주 잠깐 스친 것뿐인데,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게진 여직원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 여성들이 녀석을 대할 때, 저 특유의 나사 빠진 반응은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본인이 지금 무슨 말을 듣고, 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기나 한 걸까.


 흘깃 지은 미소 한 방으로 사람을 저 지경까지 홀려놓다니.


 몸 어딘가에서 이상한 페로몬이라도 뿜어내고 있는 건 아닐는지, 심히 의심스러울 따름이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아침 인사가 아직이었지. 모두 안녕. 오늘도 다들 사랑스럽네. 그래, 이를테면, 가로화단에 줄지어 꽃을 피운 화사한 피튜니아를 보고 있는 것 같달까♪"


"로, 로엘 님도 아, 안녕하세요! 오늘도 정말 멋있으세요!"


"하핫, 고마워♪"


"꺄악~!"



 훈훈한 안부 인사가 오고 가고 있었지만, 그사이에 원치 않게 낀 내 얼굴은 갈수록 음산해져만 가고 있었다.



"매니저도 안녕. 좋은 아침♪"


"야, 아침부터 이건 또 무슨 지랄이냐?"



 내 몸을 뒤에서부터 봉제 인형 안듯 꽉 끌어안은 채, 태연히 아침 인사를 건네는 괴한에게 차가운 분노를 읊조렸다.


 힘으로는 뿌리칠 수가 없었다.


 체격은 근소하게 내가 우위였지만, 은퇴한 퇴물 헌터의 완력으로 현직 헌터의 구속을 벗어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


 이놈이 마음만 먹으면, 내 허리 따위 지금 당장이라도 두 동강 낼 수 있을 테지.


 그러니 지금으로선, 이렇게 입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었다.



"아기 고양이들~♪ 나 있잖아. 매니저랑 긴밀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잠깐만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래?"


"네? 그치만 이제부터 오전 업무가····."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금방 끝낼 테니까. 어떻게 안 될까?"


"꺄악~! 네! 얼마든지요!"


"뭐? 야! 누구 맘대로! 아니, 그것보다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작정이야! 당장 이거 안 놔!?"



 내 허가도 없이 직원들의 물리는 녀석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나가라고 하는 쪽도 문제지만, 나가라는 말을 듣자마자 우르르 몰려 나가는 쪽도 어지간했다.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댈 때는 언제고, 저 유사 알파메일이 한마디 했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다니.


 확 봉급을 깎아버릴까. 


 제법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계약 위반이야."


"뭐?"



 보는 눈이 없어지자, 녀석의 태도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평소처럼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는 있었지만, 짐승의 그것처럼 가늘게 뜨인 눈동자 속에는 언뜻 봐도 심상치 않은 전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내 허락 없이 여자와 이야기했잖아. 이건 명백한 계약 위반이지. 안 그래?"


"····?"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길래, 순간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뼈에 사무칠 정도로 치욕스러웠던 만큼, 뇌리에도 선명하게 각인된 그날의 대화를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헛소리 하지 마. 네가 내건 조건은 앞으로도 내가 매니저 일을 계속하는 것. 이 이상 훈련생을 늘리지 않을 것. 그리고─"


"지금 도맡고 있는 아이들을 빠른 시일 내로 모두 정리할 것. 다행이야.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구나♪" 


"····."



 싱긋.


 내 말을 자르며 해맑게 미소 짓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이 명치 끝에 걸렸다.


 자세가 불편한 것도 크게 한몫했다.


 한 사람 앉기도 벅찬 작은 소파 위에 건장한 체격의 성인 두 명이 얽히고설켜 있는데, 편할 턱이 있나.


 하반신에 피가 통하지 않는 건 둘째 치고, 목을 거세게 끌어안고 있는 팔 때문에 당장 숨 쉬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그거랑 여자랑 말 섞으면 안 된다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


"당연히 상관있고말고. 매니저는 내가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음흉한 눈을 가진 사람이니까. 틈만 나면, 당사자도 모르는 재능을 찾아내고 파헤쳐버린 뒤, 결국에는 그 재능에 심취하게끔 만들어 버리지. 남자라면 또 몰라도, 때 묻지 않은 아기 고양이들에게 그런 자극은 너무 일러♪"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궤변에 이제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늘 하는 같잖은 농지거리인가 했지만, 장난기가 조금도 묻어 있지 않은 녀석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다시는 한눈팔지 못하게끔, 이 눈을 내 손으로 도려내 버리고 싶지만. 만일 그렇게 되면, 매니저가 내 아름다운 얼굴을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테니까. 특별히 이 정도로 눈감아줄게♪"


"····!"



 섬칫.


 불현듯 엄습해 온 공포에 여태껏 얌전하던 맥박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 차례 호흡을 정돈한 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날이 밝은 만큼, 지난밤보다 훨씬 선명하게 보이는 커다란 눈망울은 들끓는 욕망으로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욕망의 주체가 무엇인지를 추리하기엔, 지금으로선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당초에는 늘 하던 질 나쁜 장난질 내지는, 본인의 루틴이 무너지는 게 싫어서 저지른 패악질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이쯤 오면, 그게 아니라는 것 정돈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


"하하핫♪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미간에 힘주고 노려보지는 말아줘. 내가 매니저한테 그런 난폭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안 그래? 매니저는 이 세상의 단 하나뿐인 내 소중한 파트너니까♪"



 녀석의 말마따나, 녀석과 나는 훈련생 시절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 하지만 그 기간은 불과 3년 남짓에 불과했다.


 길다고 하면 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집착 당할 빌미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부. 재력. 명예.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 없이 가진 데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세기의 대스타. 


 그런 절벽 위의 꽃 같은 존재가 애 딸린 폐품 중년에게 목을 맬 사유라.


 내 부족한 상상력으로는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힘겨운 난제였다.



"이만큼이나 말했으면 충분하지? 다음부터는 아무쪼록 주의해 주길 바래. 여태껏 말은 안 했었지만, 매니저가 그런 부주의한 행동을 할 때마다, 이쪽은 정말 참기 힘들었거든····."



 피부가 뜯겨나갈 것만 같던 살기가 사그라들고, 안도감에 푹 젖어 든 만족스러운 호흡이 서서히 그 빈자리를 대신해 갔다.



"아, 맞다. 문 바깥에서 전부 들었어. 오후에 매니저의 딸이 나를 보러 회사에 놀러 온다며? 사진으로만 봤지. 직접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이거야 원, 기대에 제대로 보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걸♪"



 사실 정말로 만나게 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회사에 널린 등신대 사진과 여러 굿즈 등으로 왕자가 있다는 현장감만 적당히 안겨준 뒤, 일이 바쁜 걸 핑계 삼아 돌려보낼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버린 이상, 그 계획은 써먹을 수가 없었다.



"안심해. 딸아이한테 어제 일에 대해선 입도 벙끗 안 할 테니. 나도 어머니를 여인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가여운 소녀한테, 되도록 그런 몹쓸 짓을 하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야♪"



 뿌득.


 불확실한 불길함이 짙은 안개처럼 눈 앞을 가리고 있는 가운데, 단 한 가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놈에게서 벗어나지 않으면, 내 인생에 평온과 안녕은 존재할 수 없다.


 베테랑 헌터로서의 직감은 내게 그리 말하고 있었다.